밀알복지재단이 최근 보건복지부, 국민일보, 에이블뉴스, MBC나눔의 후원으로 ‘제 4회 일상속의 장애인-스토리텔링 공모전’을 진행했다.

이번 공모전은 장애와 관련된 일상 속의 모든 이야기를 주제로 장애인 당사자, 부모, 주변인들의 다양한 사연들이 총 393편 접수됐다. 이중 이영순씨의 ‘기적’이 보건복지부 장관상의 영예를 안았으며, 총 18편이 수상했다.

에이블뉴스는 총 15회에 걸쳐 공모전 수상작을 연재한다. 열 두 번째는 가작 수상작인 이소희 씨의 ‘모래의 온도’이다.

모래의 온도

이소희

파도가 지나간 자리의 온도를 가늠해 본다. 옆에 있던 흙을 끌어모아 작은 모래성을 빚었다. 축축한 모래가 손등 위로 쌓이고 두꺼비 집처럼 둥근 지붕이 되면 손을 살짝 뺀다. 오늘의 손님은 파도다. 무릎을 꿇어 정중하게 손님을 모시려는데 다리에 쥐가 났다. 쥐를 잡으려고 다리를 주무르며 야옹야옹 고양이 소리를 내다 풉 웃음을 터뜨렸다. 그 사이 모래성은 허물어졌다.

언제나 내 무릎은 상처투성이였다. 언제 생겼는지 모를 멍과 시멘트바닥에 쓸린 흔적들은 지워지지 않고 자꾸 덧대어졌다. 어디에서 어떻게 생겨났는지 모를 상처들을 발견할 때면 내가 누군가에게 준 상처들이 떠오르곤 했다. 상처를 준 최초의 기억은 오해가 쌓일 때까지 방치한 기억이다.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질 거라고 일부러 그 대화가 나오면 회피했다.

엄마의 오해는 나의 말로 시작되었다. “괜찮아 엄마, 내가 동생 엄마처럼 잘 보살펴줄게” 그 말 한마디에 나는 제2의 엄마가 되기 위해 더욱 노력했다. 엄마가 내게 부탁을 하지 않았지만 나는 책임감을 느끼고 있었다. ‘나는 우진이의 누나니까 지켜줘야해. 동생을 더 많이 사랑해주면 엄마에게 예쁨 받을 수 있을 거야.’

그래도 나는 어린아이에 불과했다. 동생만 예뻐하는 것 같아 동생을 질투했고 가끔 엄마가 없는 틈을 타 동생의 머리를 살짝 쥐어박기도 했다. 그렇게 조금씩 원망이 쌓였다. 말을 했으면 금방 풀릴 일이었을 텐데도 좋은 누나로 있고 싶어서 사랑 받고 싶어서 침묵을 선택했던 것뿐인데 그게 오히려 상처가 될 줄은 몰랐다.

종종 엄마와 대화를 할 때면 그때 있잖아, 나 엄마가 동생만 예뻐하는 줄 알고 완전 상처받았었잖아 라며 웃으며 이야기를 하는데 흉터가 남은 모양이었다. 겉은 따뜻하지만 속은 한 없이 차가운 모래사장처럼 말이다.

누구에게나 공평한 사랑을 나누어주는 일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똑같이 챙겨주었다고 생각했지만 상대방은 덜 챙겨주었다고 실망감을 느끼는 경우가 있다. 엄마의 사랑이 그랬다. “엄마는 왜 동생만 예뻐하고 나한테 관심도 안줘” 라며 화를 냈다. 엄마의 눈에 당혹감이 서렸다. 오늘은 소희도 같이 가자. 한 달의 한 번 엄마는 동생과 단 둘이 외출을 했다. 외출을 하고 오면 동생은 내게 맛있는 거 먹고 들어왔다고 자랑을 했었다. 서둘러 준비를 하고 따라나섰다. 나만 두고 가버릴까봐.

동생과 엄마가 향한 곳은 병원이었다. 혼자 중얼거리는 사람, 병원 안을 정신없이 뛰어다니는 사람, 고개만 푹 숙이고 있는 사람. 엄마는 마음 아픈 사람들이 가는 곳이라고 말했다. 병원에서 의사선생님과 엄마의 대화를 엿들었다. 우진이는 클수록 학습능력의 한계로 다른 사람과 격차가 벌어져 더 힘들어질 수 있어요, 그러니 각별히 더 신경을 써주세요. 엄마는 괜찮다고 말했다. 괜찮아. 라는 말이 너무 낯설었다. 진료실 문을 열고 나온 엄마가 동생을 꼭 안아주는데 엄마의 어깨가 조금씩 떨렸다. 애써 모르는 척 넘어가려 애썼다. 동생은 지적장애3급이다. 그 날 너무 슬픈 비밀 하나를 알게 되었다.

사람 일이라는 게 뜻대로 되지 않는다. 사람 마음도 마찬가지였다. 엄마의 부은 눈을 볼 때 마다 동생이 미웠고, 누나라고 부르며 나를 향해 달려오는 동생이 부끄러웠다. 혼자 있는 시간이 늘어날수록 내 상처를 들여다 볼 시간도 늘어났다. 타인의 상처를 신경 쓰느라 보지 못했던, 곪아서 짓물이 흐르는 내 상처가 그제야 눈에 들어왔다. 눈에 보이지 않았을 때 아픈 줄도 몰랐는데 상처가 눈에 보이자 그 아픔이 더 크게 다가왔다. 나도 아프단 말이야. 울부짖었다. 한 동안 무릎에 얼굴을 파묻은 채 엉엉 소리 내어 울었던 것 같다.

“누나 죽어서 다시 태어나면 나도 평범해 질 수 있을까.”

왜 죽고 싶으냐고 동생에게 물었다. 내 친구 중에 호석이라는 애가 있는데 오늘 학교 옥상에 같이 올라가자고 했어, 그러더니 같이 죽지 않겠냐고 하더라고, 그 친구 아빠가 목사이신데 죽으면 천국 간데. 나는 무섭다고 싫다고 했어. 천국은 편하다고 하더라. 있지, 그 친구 몸이 아프데. 그래서 차라리 죽고 싶다 했어. 죽으면 아프지 않아도 될 것 같다고. 다음 생이 있다면 다르게 살고 싶지 않냐고 묻더라. 동생의 말에 이기적인 내가 너무나 미웠다. 동생은 속편한 줄 알았다.

그저 해맑게 웃어넘기는 동생에게 상처 따위는 존재 하지 않는 줄 알았다. 아래로 내려다보는 시선, 빨래를 짜듯 힘을 주어 비트는 말투, 눌러버리는 듯한 억양. 이 모든 것들을 나와 엄마만이 느끼고 견디고 있는 것인 줄 알았다. 동생은 언제나 허물어질 준비를 하고 있었다. 자신이 울면 엄마가 속상해 할까봐. 괜찮은 척 웃어넘겼을 뿐이었다. 그게 당연한 것이라고 동생은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허물어 질 걸 알면서도 모래성을 쌓았다. 혹시라도 조금 늦게 허물어지길 바라는 마음으로 쌓았지만 한 번의 파도로 너무나 쉽게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내 손에 닿은 자리는 따뜻했다. 손의 열기를 다 가져가 버린 탓이었다. 파도는 미온마저도 삼켜버렸다.

축축한 모래가 손등 위로 쌓이고 두꺼비 집처럼 둥근 지붕이 되면 손을 살짝 뺀다. 모래의 온도를 가늠해보았다. 상처의 온도와 같았다. 변덕스러운 모래의 온도, 변덕스러운 상처의 온도. 두 온도가 맞닿는 포말이 일어나는 지점에서 다시 나의 상처가 많은 무릎을 끌어안은 채 모랫속으로 손을 넣었다. 손가락 사이로 모래알들이 빠져나갔다. 온도가 알알이 빠져나가는 걸 손가락 사이로 느꼈다. 상처로 남은 지난 삶을 헤아려 보는 것이었다. 삶은 시렸다. 몸이 차갑게 식어갔다. 이제 동생의 상처까지도 끌어안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내가 깨어있는 시간들 중 나의 생애를 헤아려보는 시간은 많이 있지 않을 것이다. 상처로 남은 지난 생애를 헤아려보며 동생의 곁을 지키며 더 나은 내일을 기약한다. 구부러진 생을 구술하며 동생이 앞으로의 생에 절망하지 않기를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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