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알복지재단이 최근 보건복지부, 국민일보, 에이블뉴스, MBC나눔의 후원으로 ‘제 4회 일상속의 장애인-스토리텔링 공모전’을 진행했다.

이번 공모전은 장애와 관련된 일상 속의 모든 이야기를 주제로 장애인 당사자, 부모, 주변인들의 다양한 사연들이 총 393편 접수됐다. 이중 이영순씨의 ‘기적’이 보건복지부 장관상의 영예를 안았으며, 총 18편이 수상했다.

에이블뉴스는 총 15회에 걸쳐 공모전 수상작을 연재한다. 일곱 번째는 우수상 수상작인 홍시원 씨의 ‘쓸 수 없는 글’이다.

쓸 수 없는 글

홍시원

부모님이 장애인이면 할 수 없는 일들이 많다. 식사 후에 가볍게 배드민턴을 치거나, 팔짱 끼고 하루 종일 쇼핑몰을 돌아다니거나, 단풍이 드는 계절에 산을 오르거나 하는 일들. 그러나 이런 일들은 다른 방식으로 할 수 있다. 배드민턴 대신 같이 게임을 하면 되고, 소파에 기대 앉아 인터넷 쇼핑몰을 둘러보고, 단풍을 보려면 케이블카를 타면 된다. 현대 문물 만세!

그러나 한 가지, 도저히 다른 방식으로 할 수 없는 일이 있었다. 10년 전, 나는 중학교 도덕시간에 선생님이 내준 글쓰기 과제를 할 수 없었다. 단 한 글자도 쓰지 못했다. 반 친구들이 막힘 없이 글을 써내려 가는 동안, 딸각거리는 샤프 소리와 사각거리는 연필 소리 속에서 나는 어떤 소리도 낼 수 없었다.

왜냐하면 우리 부모님은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장애인이셨고, 지금도 장애인이시고 아마 앞으로도 그럴 것이기 때문이다. 글을 쓸 수 없었던 이유는 글의 주제가 그런 나의 존재를, 우리의 존재를 부정했기 때문이다.

글쓰기 과제의 주제는 ‘만약 내 가족 중에 장애인이 있다면 어떨까?’였다. 이 주제로 글을 쓰기 위해서는 먼저 가족 중에 장애인이 없어야 했다.

멍하니 있다가 백지로 과제를 낼 수는 없어 손을 들어 질문했다. “가족 중에 장애인이 실제로 있는 사람은 뭘 써야 하나요?” 선생님은 당황하고, 아무 말도 못 하시다가, 그럼 장애인 가족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어떤지 쓰라고 했다. 당황하는 선생님의 모습이 황당했다.

전교생들 아니 한 반 학생들 중에 장애인 가족, 혹은 당사자가 있을 거라는 생각은 하지 못하신 걸까. 나는 종이에 ‘장애인 가족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나만 다른 주제로 글을 쓰는 것과 같은 일이다.’ 라고 적었다.

연필 소리가 잦아들고, 글을 발표하는 시간이 되었다. 번호가 불린 아이들이 일어나서 자기가 쓴 글을 읽었다. 표현은 다양했지만 내용은 비슷했다. 장애인 가족으로 사는 건 매우 힘들 것 같다. 장애인 가족들이 불쌍하고 대단하다. 앞으로는 장애인들을 배려해야겠다. 발표를 듣는 내내 마음이 불편했지만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이제는 안다. 그 글쓰기의 주제는 나뿐만 아니라 다른 아이들도 쓸 수 없는 주제였다. 장애에 대한 편견이 있는 사람이 장애인의 삶을 상상한다면, 그 상상은 실제 장애인의 삶보다 그 사람의 편견을 반영할 것이다. 아이들이 상상한 장애인 가족의 삶은 내 삶과 조금도 비슷하지 않았다.

우리는 불쌍하지도, 대단하지도 않다. 다른 가족들처럼 밥을 만들어 먹고, 설거지를 하고, 싸우고 토라지고 화해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누구도 타인의 삶을 함부로 상상하고 재단해서는 안 된다. 비장애인 학생들에게 무언가를 가르치고 싶었다면, 실제 장애인들의 목소리를 들려주었어야 했다. 비단 장애인 이슈뿐만 아니라 모든 소수자 이슈에서, 다수가 해야 할 일은 쓰고 말하는 일이 아니라 읽고 듣는 일이라는 것을 이제는 안다.

부모님이 장애인이면 배울 수 있는 것들이 많다. 나는 함부로 다른 사람을 동정하지 않는 법을 배웠다. 겉모습으로 상대를 정의 내리지 않고, 먼저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법을 배웠다. 중학교 도덕시간의 글쓰기 과제가 나에게 도덕적으로 준 가르침이 있다면 쓸 수 없는 글은 쓰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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