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알복지재단이 최근 보건복지부, 국민일보, 에이블뉴스, MBC나눔의 후원으로 ‘제 4회 일상속의 장애인-스토리텔링 공모전’을 진행했다.

이번 공모전은 장애와 관련된 일상 속의 모든 이야기를 주제로 장애인 당사자, 부모, 주변인들의 다양한 사연들이 총 393편 접수됐다. 이중 이영순씨의 ‘기적’이 보건복지부 장관상의 영예를 안았으며, 총 18편이 수상했다.

에이블뉴스는 총 15회에 걸쳐 공모전 수상작을 연재한다. 여섯 번째는 우수상 수상작인 허경회 씨의 ‘내일을 위해 꿈을 꾼다’이다.

내일을 위해 꿈을 꾼다.

허경회

여름이 다가온다. 지금은 후덥지근한 바다바람으로 여름이 오는 것을 알게 되지만, 어렸을 적 만해도 여름은 바다 그 위에서 시작됐었다. 지금도 여름이 오면 40여 년 전 그 시절이 생생히 기억난다. 넓고 파란 바다 위. 노 젓는 아버지 곁에서 투명한 바다 아래로 보이는 환상적인 세상. 그 세상을 바라보며 나는 그 누구보다 행복하고 운 좋은 아이라고 생각했었다.

누군가가 그런 나의 마음을 읽을 수 있었다면 이상하다고 고개를 저었을지도 모른다. 그도 그럴 것이다. 나는 부모님 나이 50이 넘어 태어난 늦둥이에 장애까지 가지고 있는 아이였으니까. 그 바다를 떠난 현실에서 나는 사람들의 웃음거리가 되거나 연민의 눈빛을 항상 받아야 하는 불행한 아이로 돌아와야만 했다.

어머니는 내가 어렸을 때 항상 입버릇처럼 말씀을 하셨다. 바닷물이 바짝 마른날에 태어난 아이는 인생이 순탄치 않다면서 네가 태어나던 날이 꼭 그랬다며. “어쩌나 어쩌나” 한숨을 그렇게 쉬셨다. 사실 내가 태어날 때부터 장애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두 살 무렵 고열로 아팠을 때 (그 시절 많은 사람들이 그랬던 것처럼) 무면허 의사가 주사를 잘못 놓아 소아마비가 생겼던 것이다.

장애를 가지고 있음으로써 세상을 살아가기란 결코 쉽지 않았다. 우선 뭐든 한 손으로 해야 하고 의족에 의지해야만 걸을 수 있었다. 매듭하나 묶으려고 하면 손가락을 이리저리 움직이느라 마비가 올 것 같고, 의족은 살을 파고들어 뼈까지 부셔버리는 것 같은 느낌을 매일 같이 느껴야 했기에 어린 아이로써는 참기 힘든 고통이었다.

하지만 그런 고통보다 더 힘들었던 것은 어디를 가든 쫓아오는 시선과 마주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팔 하나 다리 하나 제대로 사용하지 못한다는 이유만으로 나는 사람들에게서 모자란 아이, 불쌍한 아이로 취급당하기 일쑤였다. 동네 꼬마들이 나를 따라 절뚝거리며 걷는 것은 너무나 흔한 풍경이요 ‘병신’이라는 꼬리표는 항상 달고 다녔다. 지나가던 아줌마는 저렇게 어떻게 사냐고 혀를 끌끌 차셨고, 나이 드신 어른들은 불쌍한 것이라며 지겨운 한 숨을 푹푹 내쉬었다.

나는 나 때문이 아닌 나의 운명이라는 그 상황이 너무나 싫었다. 그런 취급을 받는다는 것을 인정하기 싫었다는 것이 더 맞을 것이다. 그래서 등굣길에도 편안한 아버지 등이 아닌 의족의 고통과 시선을 선택했고, 공부든 운동이든 놀이든 모두 내가 먼저 하겠다고 자처하고 나섰다. 하지만 장애라는 선은 너무나 명확해서 무엇을 하든 장애 없는 아이가 더 주목받고 칭찬을 받고 아낌을 받았다.

그 나이에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하려고 노력했지만 나는 중학교 진학은 진즉에 포기해야만했고, 모든 가족들이 밖에서 공부하고 일하는 동안 집안일이 맡겨졌을 뿐이었다. 나는 그렇게 나의 운명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장애를 가지고 있다는 것 자체가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결론을 너무나도 쉽게 가르쳐주고 있었다. 대부분의 모든 사람들이 나이든 부모님에게 의지하며 바보처럼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살아갈 것이라고 나를 그렇게 봤다.

지금의 나는 너무나 행복하다. 그 이유는 돈이 많아서도 누가 나의 장애를 없애준 것도 아니었다. 오로지 나의 마음이 변했을 뿐이었다. 예전의 나는 장애를 가진 내 삶을 한탄하고 창피하게 생각해서 사람을 피했었다.

딸들을 바라 볼 때도 장애를 가진 엄마가 있는 것처럼 보이지 말아야지 하며 예쁜 옷만 입히고, 없는 살림에도 몸에 좋은 것을 찾으며 먹였다. 그런 나에게 내 자신을 돌아보게 한 사건이 있었으니 그 것은 다름이 아닌 딸의 친구 덕분이었다.

딸이 초등학교에 입학한지 며칠이 지난 어느 날, 전동휠체어를 타고 딸을 데리고 운동장을 지나는데 딸의 친구가 나를 유심히 보고 있었다. 나는 그런 아이의 모습에 예전에 꼬마들의 놀림이 생각나 딸의 마음에 상처가 될까 걱정먼저 앞섰다. 그 아이는 한참을 그렇게 보더니

“한 쪽 팔은 없는 거예요? 일어설 수는 있어요?”

라고 물어왔고, 나는 딸이 옆에 있던지라 아무렇지도 않은 척

“한 쪽 팔은 여기 가방 뒤에 있지. 힘이 좀 약할 뿐이야. 그리고 봐봐 이렇게 일어설 수는 있어.”라고 있는 힘을 다해 일어서며 이야기 해줬다.

“어. 진짜네요”

그리고 끝이었다.

딸의 친구는 아무런 놀림도 물음도 더 이상 묻지 않고, 다음에 만날 때부터 꼬박꼬박 인사도 하고, 조금 친해지고는 잘 웃고 딸에게도 차별 없이 대해주었다.

나는 생각했다. 어쩌면 장애를 창피하다고 생각하고 차별대우를 했던 것은 바로 내 자신이 아니었을까? 내가 장애가 있지만 나 스스로에게 당당해 질 수 있다면 남들이 나에게 향했던 시선에 부끄러워지진 않았을 텐데.

그 후로 나는 딸들이 꿈을 꾸라고 할 때 나도 늦더라도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찾아 꿈을 꾸기로 마음먹었다. 배운 것 하나 없었지만 그래도 책이 좋고 글을 쓰고 상상하는 것이 좋기에 부족한 실력이지만 조금씩 끼적이기도 하고 딸의 학교에서 글쓰기 대회가 있을 때 공모도 하며 소소한 나의 시간을 가졌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상을 이곳저곳에서 받게 되면서 나는 내 꿈을 이룰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의 불씨를 보았다. 무엇보다 가장 기뻤던 것은 장애를 가짐으로써 항상 부족하고 미안하기만 했던 나의 마음이 엄마가 자랑스럽다는 딸의 한마디로 모든 것을 보상받았다는 것이다.

그렇다. 장애는 나의 불행의 유일한 이유가 아니었다. 조금 불편할 뿐이다. 요즘 장애인에 대한 인권 운동이 많지만 우선 달라져야 하는 것은 다른 사람이 아닌 장애를 가진 나 자신이 아닐까 생각한다.

나 자신에게 당당 할 수만 있다면, 내가 꿈꾸는 것을 이룰 수만 있다면 ‘헬렌켈러’처럼 장애를 가진 사람이 아닌 장애를 뛰어넘은 사람으로 기억될 수 있다고 나는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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