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알복지재단이 최근 보건복지부, 국민일보, 에이블뉴스, MBC나눔의 후원으로 ‘제 4회 일상속의 장애인-스토리텔링 공모전’을 진행했다.

이번 공모전은 장애와 관련된 일상 속의 모든 이야기를 주제로 장애인 당사자, 부모, 주변인들의 다양한 사연들이 총 393편 접수됐다. 이중 이영순씨의 ‘기적’이 보건복지부 장관상의 영예를 안았으며, 총 18편이 수상했다.

에이블뉴스는 총 15회에 걸쳐 공모전 수상작을 연재한다. 다섯 번째는 우수상 수상작인 김세훈 씨의 ‘춤추는 구두’이다.

춤추는 구두

김세훈

절름발이 혹은 딱새.

아버지는 대체로 그렇게 불렸던 것 같다. 내 기억이 닿을 수 있는 깊숙한 유년 시절부터 아버지는 구둣방 사장님이셨다. 새벽같이 나가 저녁 늦게야 돌아오셨던 아버지의 젊은 생김새는 기억도 잘 나지 않지만 절뚝대던 다리, 그리고 묵은 상처와 새로 생긴 생채기가 빼곡하던 아버지의 거친 손만큼은 아직도 생생하다.

도통 바르게는 움직이지 못하고 그림자 같이 질질 끌려 다니던 아버지의 다리는 좁고 칙칙하던 구둣방과 닮아 있었다.

사춘기에 들어 선 내게 아버지는 부인하고 싶은 존재였다.

우리 아버지가 장애인에 구두닦이라고 비아냥대던 친구와 어느 날은 주먹다짐을 하고 억울한 마음에 아버지의 구둣방에 달려가 소리쳤다.

“남들이 아버지를 뭐라 부르는지 알아? 아부지를 절름발이 딱새라고 불러! 장애인인건 그렇다 쳐도 이딴 구둣방쯤은 때려 칠 수 있잖아!”

막내아들의 철없는 물음에도 아버지는 빙그레 웃으며 말씀하셨다.

“사람이 아프면 병원에 가는 것처럼 구두도 아프면 병원이 있어야 하는 거야! 특히 아버지처럼 몸이 불편한 사람들에게 편안한 신발은 정말 소중한 거야. 딱새든 뭐든 아버지의 직업도 꼭 필요한 일이란다.”

친절하고 솜씨 좋았던 무엇보다 몸이 불편한 사람들이 신는 특수화까지 수선해 주셨던 아버지의 구둣방은 나의 심술궂은 바람과는 상관없이 나날이 손님들로 북적댔다. 하지만 난 여전히 다른 아버지와 다른 내 아버지가 부끄러웠다.

아버지의 키를 훌쩍 뛰어 넘을 만큼 내가 자라 고등학생이 되었을 때부터 아버지의 몸은 이상 신호를 보내왔다. 시커먼 구두약과 여러 가지 약품들은 아버지의 심장을 얼룩지게 만드는 가장 큰 이유가 되었고 그와 동시에 내 사춘기의 마침표가 되어 주었다.

학교가 파하고 나면 아버지의 구둣방으로 향했다. 그리고는 아버지가 가장 벅차 하시던 아버지가 작업 해 놓은 신발을 제 주인에게 가져다 드리는 일을 도왔다. 깨끗하게 닦이고 말끔하게 수리된 신발을 새신인 듯 신어보며 즐거워하는 사람들, 살짝 미소까지 짓는 신발 주인들의 모습에 아버지의 직업이 보람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가져 본 것도 내게는 그때가 처음이었다.

아버지의 일터에서 아버지를 보며 그렇게 나는 어른이 되어갔다.

아버지의 소원처럼 나는 대학에 입학했고 얼마 후 영장을 받게 되었다.

훈련소로 떠나기 며칠 전, 구둣방에서 들른 내게 아버지는 다 낡은 구두와 새 구두 하나를 손에 들고는 그것을 보여주시면서 말씀하셨다.

“훈아! 이 두 구두 중 하나를 골라보거라.”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새 구두를 택한 내게 아버지는 외려 낡은 구두를 번쩍 들어 보이셨다.

“아버지는 생각이 좀 다르구나. 아버지는 이 낡은 구두가 더 좋다. 새 구두는 폼 나고 멋지게 보일지 몰라도 내 발 모양에 따라 길이 나 있고 편한 낡은 구두보다 못하다는 게 아버지 생각이다. 훈아! 더럽고 냄새나는 구두라도 내 기술을 믿고 찾아 와주는 손님들 덕에 너희들 다 키워낼 수 있었는데 내가 어찌 그 고마움을 잊을 수 있겠니? 아버지가 제일 잘 할 수 있고 사람들에게 조금이나마 보탬이 될 수 있는 이 일이 아버지는 자랑스럽구나!”

영업시간이 끝난 후 아버지의 구둣방은 문을 닫았지만 아버지와 나는 작은 그 공간에서 처음으로 부자만의 파티를 시작하고 있었다. 소주 두어 병에 마른 오징어 한 마리를 두고 날이 새도록 아버지와 나는 오래토록 하지 못했던 수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얼큰하게 취기가 오르신 아버지는 갑자기 내게

“춤추는 구두를 보여주랴?” 라고 말씀하셨다. 무슨 소리인지 의아해 하는 나를 보시며 아버지 찰칵. 카세트테이프를 거셨다. 고물라디오에서 흘러나오던‘빨간 구두 아가씨’의 장단에 맞추어 아버지는 구두 두 개를 손에 끼신 뒤 탁자에 의자에 여기저기에 두드리기 시작하셨다.

“솔솔솔 오솔길에 빨간 구두 아가씨 똑똑똑 구두소리 어딜가시나 한번 뒤돌아 볼만도 한데 발걸음만 하나 둘 세며 가는지 빨간 구두 아가씨.”

‘또각, 또각, 똑똑똑! 또각, 똑, 또각, 똑!’

아버지의 살뜰한 솜씨로 잘 고쳐진 구두는 아버지의 말씀처럼 음악에 맞추어 신나고 경쾌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아버지와 나는 그 장단에 어우러져 밤이 새도록 노래를 부르고 들썩들썩 어깨춤을 추었다.

아버지와 나, 단 둘만의 아니 구두 한 켤레도 함께였던 파티의 여운은 가라앉지 않았지만 나는 잠시 아버지의 아들이란 이름을 뒤로 한 채 대한의 아들이 되어 군에 입대하였다. 사랑하는 아버지의 사진을 매일 들여다보며 아버지를 원망했던 지난날들을 뼈저리게 후회하였다. 그리고 제대를 하게 되면 세상의 어느 아버지 보다 훌륭한 나의 아버지께 당당한 아들이 되리라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하지만 아버지는 기다려 주지 않으셨다. 고작 3개월, 100일 휴가를 채 나오기도 전에 아버지는 심장병으로 세상을 달리 하셨다.

아버지는 한 켤레의 구두와 신발에도 늘 정성을 다하셨다.

시장 구석, 탁한 공기와 지저분한 모습이 전부였던 아버지의 구둣방에서 아버지는 온전치 못한 다리를 부여잡고 사랑하는 가족의 행복을 바라며 구두에 광택을 내셨고, 구두가 망가진 누군가의 불편함을 덜어 주시기 위해 피와 땀을 흘려가며 구두를 수선하셨다.

그 성실함은 우리 가족에게는 빛나는 미래를 선물했고, 감사의 마음은 수많은 이들에게 힘찬 발걸음을 선물했으리라.

내 아버지는 장애인이셨다.

어린 시절 부터 사람들의 따가운 시선이 무서워 땅을 보고 걷는 습관이 생겼다시던 많이 배우시지도 못한 구두수선공이셨던 내 아버지는 어쩌면 그리 숙명처럼 세상 가장 낮은 곳만을 보시며 사셔야만 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게 아버지는 그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는 자랑스러운 아버지!

하늘보다 더 높은 곳에 영원히 계시는 분이다.

나는 안다.

구두를 닦고, 수선하는 일을 당신의 천직이라 생각하시며 그 일을 사랑하고 자랑스러워하시던 내 아버지는 건강하게 다시 태어난다 해도 구두수선공의 일을 택하시리라는 것을.

제 주인의 삶에 무게를 고스란히 안고 달려 온 낡고 아픈 구두들을 안타까워하시며 세상의 모든 구두를 춤추게 만들기 위해 그리 또 비지땀을 흘리실 것을……. 그렇다면 나도 구두수선공의 아들로 거듭 태어나 아버지와 함께 춤추는 구두와 같이 멋진 파티를 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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