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알복지재단이 최근 보건복지부, 국민일보, 에이블뉴스, MBC나눔의 후원으로 ‘제 4회 일상속의 장애인-스토리텔링 공모전’을 진행했다.

이번 공모전은 장애와 관련된 일상 속의 모든 이야기를 주제로 장애인 당사자, 부모, 주변인들의 다양한 사연들이 총 393편 접수됐다. 이중 이영순씨의 ‘기적’이 보건복지부 장관상의 영예를 안았으며, 총 18편이 수상했다.

에이블뉴스는 총 15회에 걸쳐 공모전 수상작을 연재한다. 네 번째는 밀알복지재단 이사장상 수상작인 이병언 씨의 ‘내 도전사의 원동력’이다.

내 도전사의 원동력

이병언

“고객님은 2018년도 제16회 사회복지사 1급 국가시험에 합격예정자로 결정되셨습니다.”

자동응답서비스[ARS]에서 흘러나오는 기계적인 멘트 앞에서 나는 가까스로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가 있었다. 그리고는 문득 4전 5기라는 사자성어를 떠올리면서 깊은 상념의 나락으로 빠져들었다.

그러니까 바로 한 달 전 즈음이었다. 어둠이 채 가시지 않은 겨울날 새벽녘, 행여 시험시간에 늦을세라 허둥지둥 잠자리에서 일어난 나는 유난히도 아침잠이 많은 아내를 깨우고 채근하여 아내가 운전대를 잡은 승용차의 보조석에 올라타고서 목포시가지를 벗어났다.

그런데 고사장이 위치한 광주 시내를 향하여 달려가는 동안 가슴을 무겁게 짓누르는 심리적 압박감에 마음이 편치가 않았다.

매년 초, 전국적으로 일제히 실시되는 사회복지사 1급 국가 자격시험, 이번까지 포함해서 나는 모두 세 차례나 도전을 시도하고 있는 셈이었다. 도전 횟수가 거듭될수록 아내의 표정은 걱정스러움에 일그러졌고 나는 오히려 한 번 더 해보자는 오기로 전의를 불태우고 있었다.

아내가 걱정하는 이유는 온종일 직장일로 인하여 지쳐있으면서도 퇴근 후의 달콤한 휴식은커녕 밤늦도록 눈 비비며 문제집을 붙들고 씨름하는 남편의 모습이 안쓰러웠기 때문이었다.

더군다나 성치 않은 몸이요 정년퇴임을 바로 눈앞에 두었을 뿐만 아니라 행여 합격자 명단에 이름을 올린다고 하더라도 당장 눈에 보이는 인센티브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단지 매사에 도전의지를 불태우는 남편의 사기를 꺾지 않기 위해서 드러내놓고 만류하지는 못할 뿐이었다.

아무튼 고사장에 도착하여 시험을 치렀는데 시험 시간동안 아내는 고사장 밖에서 언 손을 호호 불며 남편의 합격을 위하여 간절히 기도했다. 시험이 모두 끝나고 아내의 손에 이끌리어 고사장을 뒤뚱뒤뚱 빠져나오는데 수준 높은 난이도의 문제들로 인해 합격에 대한 자신감이 없었기에 마음이 무거웠다.

목포로 되돌아오는 승용차 안에서 시험에서 해방되었다는 긴장이 풀어지니 주마등처럼 뇌리를 스치는 나의 도전사가 영화의 한 장면처럼 오버랩 되고 있었다.

우람한 산봉우리들이 마치 병풍처럼 둘러싼 경상북도 팔공산 동편자락의 산골마을에서 태어난 나는 또래들과 온 산천을 놀이터삼아 뛰어놀던 유년기에는 매우 건강했었다. 그런데 청소년기로 접어들면서 몸에 이상증세를 느낀 나머지 여러 병원들을 전전하며 진단을 받았으나 뚜렷한 병명이 나오지 않았다.

나중에서야 비로소 알게 된 사실이지만 현대 의학으로는 완치가 불가능한 희귀난치성 질환으로서 시간의 흐름에 따라 근육세포가 하나씩 떨어져 나가고 마지막에는 사지마비가 찾아오며 호흡기 장애까지 동반한다는 [진행성 근 이영양증]이라는 진단이었다.

한창 감수성이 예민하던 청소년기에 느닷없이 찾아온 불청객 앞에서 나는 세상을 원망하며 하루하루를 눈물로 보냈다. 가문의 장손으로서 가난한 집안의 살림을 일으키고 보란 듯이 살아 보겠다던 장밋빛 꿈은 산산이 부서지고 갈등과 좌절로 방황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갈등과 좌절로 방황하는 나의 모습에 어머니는 나를 부둥켜안고서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셨다. 당신의 뼈마디가 뭉그러지는 한이 있더라도 농사를 지어 모든 뒷바라지 할 테니 너무 상심하지 말고서 열심히 노력하며 주어진 운명대로 살다가자고 나의 등을 토닥이며 달래주셨다.

자식보다도 더 가슴아파하는 어머니의 뜨거운 눈물 앞에서 나는 입술을 깨문 채 생각을 고쳐먹기로 했다. 비록 세상의 장벽이 높고 험난할지라도 과감하게 도전장을 내밀기로 작정했던 것이다. 이처럼 생각을 바꾸니까 세상이 두렵지가 않았다. 오히려 마음 속 깊은 곳에 잠재해 있던 오기가 발동했다.

이때부터 포기할 줄 모르는 나의 극복의 도전사가 시작된 것이다. 가장 먼저 시도한 것은 대학 진학의 학과선택에서부터였다. 나름대로 뜻이 있어 주변인들의 호기심어린 시선에도 불구하고 유아교육과에 지원을 했다.

유치원 교사를 양성하는 유아교육과는 주로 발랄한 여학생들이 지원한다는 사실을 뻔히 인지하고 있으면서도 신체적 장애를 가진 남학생이 겁 없이 도전장을 내밀었던 것이다.

거기에다가 또 1997년에 실시된 제17회 전국 장애인체육대회에서는 사지 마비로 인하여 마치 연체동물처럼 흐느적거리는 근육병 장애인에게는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는 탁구종목에 피나는 노력과 훈련으로 전라남도 대표선수로 출전하여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그리고 사회복지사 자격증을 취득한 후 불혹의 나이에는 공무원 시험에 도전하여 공직자의 길로 들어섰고 서남해안 끄트머리 도서벽지로 발령을 받았다. 사실상 근무여건이 열악하기 그지없는 도서벽지에서 지체1급의 중증장애인이 근무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렇지만 지금까지 장장 17년간 [사회복지전담공무원]이라는 명찰을 달고서 비린내 풍기는 섬마을 골목길을 뒤뚱뒤뚱 누비면서 공복의 역할을 감당했다.

또 지난해에는 대학을 졸업한 지 어연 40여 년 만에 4년제 사이버대학에 편입학하여 향학열을 불태우고 있다.

이 외에도 공인중개사 자격시험을 비롯한 수많은 관문에 도전하여 합격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고 나의 굴곡진 삶과 또 극복해 가는 도전의 모습이 주변에 알려져서 국내 모 단체가 주관하는 [1997년 올해의 인간승리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모름지기 [진행성 근 이영양증]이라는 질환의 증세가 시간의 흐름에 따라 근육세포가 하나씩 떨어져 나가는 것이기에 세월이 흐른 만큼 내 몸의 근육세포도 처음으로 발병했던 청소년기에 비해 상당히 진행이 되었다.

초창기에는 혼자서도 어느 정도의 일상생활이 가능했지만 지천명의 고개턱을 넘어서고부터는 아내의 도움이 없으면 간단한 신변처리조차도 힘겨운 지경에 이르렀다.

그래서 나를 걱정해 주는 주변인들은 정년퇴직을 눈앞에 둔 이 마당에 편안한 노후를 준비하는 것이 우선순위라고 귀띔하며 더 이상의 무모한 도전은 그만 접으라고 만류하고 있다. 그러나 건강 상태가 악화되면 악화될수록 나이를 먹으면 먹을수록 나의 도전의지는 오히려 더욱 더 불타오른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하는 소리인 것이다.

다소 늦은 나이와 신체적 장애에도 불구하고 사회복지사 1급 자격시험을 비롯하여 지금까지 나의 각종 도전사에 극복의 흔적을 남기고 긍정적인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었던 근본 원동력은 지금도 시골 고향집에서 당신의 아픈 손가락인 이 자식을 걱정하는 여든 줄 노모의 평생을 두고서 마르지 않을 눈물과 또 하루 24시간 나의 손발이 되어 일거수일투족을 보필하며 새벽마다 이어지는 아내의 간절한 기도 때문이라는 사실은 두 말할 필요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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