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국장애인복지시설협회(회장 임성현)는 장애인의 개별욕구를 존중하고 개개인의 삶이 묻어나도록 지원하는 이야기를 발굴하기 위한 목적으로 2015년에 이어 두 번째로 ‘2016년 장애인거주시설 우수사례’공모를 진행했다.

이번 공모에는 협회소속 시설의 이용장애인과 직원이 총 86편의 우수사례를 제출했다. 여기에는 시설거주 장애인의 삶의 이야기가 담겼다.

협회는 외부심사위원의 심사를 거쳐 수상작으로 최우수상 1편, 우수상 2편, 장려상 2편, 우수작 2편 등 총 7편을 선정했다. 에이블뉴스는 수상작을 연재한다. 네 번째는 장려상 수상작 “서은정씨의 일주일” 이다.

천마재활원 직원 이재미

월, 화, 수, 목, 금, 토, 일 나에겐 하루 24시간이 너무 짧다.

하루가 더 길어졌으면 좋겠다.

#월요일

오늘은 월요일이다. 아침부터 일어나서 출근준비를 해야 한다. 어제 밤에 아침을 해놓고 잔 것 들을 꺼내서 전자레인지에 데우고, 국을 다시 끓이고, 반찬들을 꺼내서 아침을 준비한다.

내가 살고 있는 체험홈은 식사당번이 정해져 있어서 아침을 하도록 약속되어있다. 박OO언니랑 같이 전날 밤에 미리 아침을 만들어놓고 잔다. 나는 아침을 먹지 않는다. 아침 먹을 시간에 잠을 선택했다. 예전에는 먹기도 하고 안 먹기도 했는데 그게 더 몸에 좋지 않다고 해서 이제는 우유 한잔으로 아침을 때운다.

언니들이 밥을 다 먹고 설거지 거리를 산처럼 내어 놓았다. 월, 수, 금은 설거지 당번이여서 출근에 늦지 않게 설거지를 후딱 끝냈다. 예전에는 그릇도 많이 깨어 먹었는데... 이제는 요령이 생겨서 그릇을 깨는 일은 거의 없다.

머리를 빗고 화장을 한다. 화장하는 법을 올해부터 담임선생님에게 배우고 싶다고 하니 알려줄테니 출근할 때나 외출할 때 화장을 하고 다니면서 나의 용모를 꾸미고 다녀 라고 하셨다.

선생님은 까다롭다. 화장도 잘해야 하고, 어깨도 펴고 걸어야하고, 옷도 색감, 계절에 맞추어서 입으라고 하신다. 어렵다. 오늘은 비비크림과 눈썹을 그리고, 입술을 바르고 출근해야겠다.

비비크림은 잘 안 펴 발라지고, 입술을 삐뚤빼뚤 하지만 많이 늘었다고 칭찬을 해주신다. 괜히 기분은 좋은데 언제쯤 선생님처럼 화장을 잘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래도 내가 볼 때도 꽤 많이 는 것 같다. 그리고 화장을 한 모습이 더 예쁘다. 오늘도 내 모습이 마음에 든다.

#화요일

오늘은 화요일이다. 전쟁 같은 출근시간 오늘도 열심히 오르막길을 걸어서 직장에 도착했다. 오늘은 나의 직장생활에 대해 말해 보려고 한다. 나의 직장은 천마도예의 숲으로 도자기를 만드는 곳이다.

나는 작년부터 직장을 다녔고, 손잡이 다듬질을 하는 역할을 한다. 손잡이를 말끔하게 다듬어서 예쁘게 보이게 하고, 우리가 만들었다는 표식인 전사지를 컵 밑 부분에 붙힌다.

직장동료인 장OO언니랑 같이 일 할 때가 난 너무 즐겁다. 또 선생님들과 같이 그림 그리고, 힘든 일이 있을 때 말하면 너무 잘 들어 주신다. 그리고 한 달에 한번 재가반에 있는 사람들이랑 모여서 외식을 한다. 공식적으로 정해진 것은 아니지만 친목도 다지고, 맛있는 것도 먹기 위해서 모임 같은 것을 만들었다.

직장은 내 하루의 1/3을 보낸다. 점심시간에는 식당에 가서 주임선생님들을 도와 배식을 하고, 휴대폰 게임을 하는 것을 공유하기도 하고, 안내실 앞에서 바람을 쐬기도 한다. 나는 재활원에서 마당발이다.

이곳에서 나를 모르는 사람은 간첩이라고 할 수 있다. 선생님들의 일을 보조 해주는 일이 너무 재미있다. 특히 간호사 선생님이 너무 좋다. 내의 마음 속 상처를 간호사선생님께 말하면 다 나아지는 기분이다. 그래서 일부러 선생님이 보고 싶어서 아픈 척을 하기도 한다. 항상 들키기는 하지만 그래도 항상 웃으면서 나를 반겨주신다.

#수요일

퇴근 후에 해야 할 일은 두 가지로 나뉜다. 운동과 공부. 오늘은 운동을 가는 날이다. 올해 첫 목표로 운동을 해서 다이어트에 성공하고, 건강한 몸을 가질 것이라고 약속했다.

줄넘기, 훌라후프를 사서 집에서 해봤는데 역시 작심삼일인 것 같다. 예전에 탁구를 배운 적이 있어서 탁구를 다시 배우고 싶다고 하였다. 선생님과 동행해서 송도스포츠센터를 갔었다. 그런데 장애인이라고 선생님과 항상 동행하지 않으면 등록이 힘들다고 했단다.

나도 그런 생각을 가진 강사선생님에게는 배우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조금 멀지만 버스를 타고 구덕운동장까지 가기로 하였다. 예전에 다닌 적이 있어서 바로 등록해서 탁구를 다녔다.

재활원에서 벗어나서 다른 사람들과 부딪히고, 웃고, 운동하면서 땀을 흘리는 것이 너무 좋았다. 하루의 스트레스가 다 풀리는 것 같다. 그런데 1층에 수영장이 있다. ‘나는 수영도 배우고 싶은데...수강료가 비싸다.’

7월쯤 엄청 더울 때 선생님께 말했다. 수영을 배우고 싶다고, 그리고 타구를 치러 가는 버스비를 수영비에 보태면 수강료를 충분히 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송도스포츠센터를 다시 가보기로 하였다.

수영강사선생님께서 나를 직접 봤고, 수영을 배운 적도 있다고 하니 등록하게 해주었다. 이제는 히파 없이 자유형과 배영을 할 수 있도록 연습하고 있다. 매일 물먹고, 앞사람한테 부딪히고, 발에 맞기도 하지만 열심히 운동하고 샤워를 하고 나오면 그것보다 개운한 것도 없는 것 같다. 그나저나 벌써 10시가 다 되어간다. ‘다시 집까지 언제 걸어가지...’

#목요일

오늘은 퇴근하고 공부를 하는 날이다. 교대대학생봉사자분들이 와서 일주일에 두 번 저녁에 공부를 가르쳐주신다. 숫자는 너무 어렵다. 자꾸 이천원이 이만원으로 보인다. 돈을 헤프게 쓰면 안 된다고 해서 용돈기입장을 쓰고 있지만 숫자를 틀리고, 수입과 지출을 구분 하는 것이 너무 어렵다. 그래도 계속 하다보면 ‘늘겠지... 못 읽는 글자가 없어지겠지...’

오늘은 내 짝지가 와서 더욱 열심히 공부를 했다. 봉사자 중 한분은 나랑 짝지가 되어서 주말에 같이 놀러가기도 한다. 오랜만에 봐서 이런 저런 얘기를 했는데, 방학에는 해외여행을 간다고 한다. 유럽이라는 곳을 가본적은 없지만 일본은 몇 번 다녀와봤다.

해외는 신기했다. 말도 안통하고, 온통 처음 보는 사람, 장소에 표지판을 읽어도 무슨말인지 하나도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돈을 모아서 짝지처럼 다른 곳에 해외여행을 가보도록 해야겠다. 또 벌써 저녁 10시다. 빨리 집에 가서 밥을 해놓고 자야겠다.

#금요일

오늘은 금요일이다. 일주일 중에서 제일 기다렸던 날이다. 왜냐면 오늘은 찜.질.방을 가기로 약속했다. 직장에 계신 이OO 선생님께서 “찜질방에 갈까?” 라고 물어봐서 바로 “콜”을 외쳤다. 퇴근하고 찜질방에 왔다.

나는 원래 더운 것을 싫어해서 찜질방이 싫었는데, 나도 이제 나이를 먹는가보다. 뜨끈뜨끈 한곳에서 땀을 쫙 빼고, 시원한 식혜 먹으면서 직장생활이 힘든 것은 없는지, 남자친구는 어떤 사람인지, 수영을 얼마나 잘하는지 등등 오만가지 얘기를 했다.

나의 얘기를, 나의 속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참 행복한 일인 것 같다. 역시 집에서 벗어나서 외박을 하는 것은 재미있다. 등도 밀어드리고, 냉탕에서 수영실력도 보여드리고, 묵은 때를 밀어내니 새까맣게 탔던 피부가 뽀얗게 돌아오는 것 같다. ‘담임선생님이랑 왔어도 좋았을 텐데... 다음에 또 찜질방을 가자고 해야겠다!’

#토요일

오늘은 피플퍼스트 모임이 있어서 대구를 가는 날이다. 한 달에 두 번. 나는 대구에 가서 교육을 받고 온다. 피플퍼스트는 장애인인식개선캠페인을 위한 모임으로 11월에 사상에서 공연을 한다. 올해 초부터 계속해서 모임을 가지고 준비를 하고 있다.

지적장애인들끼리 자발적으로 자조모임을 만들어서 우리의 목소리를 높여 평소에 차별 받았던 것들, 우리를 위해서 바꾸어줬으면 하는 것들에 대해 얘기를 한다.

대구 까지 가면 또 멀미를 할 것 같아서 미리 멀미약을 사서 붙였다. 항상 우리를 대구까지 왕복으로 운전해주신다고 고생하시는 선생님께 커피도 하나 사드렸다. 오랜만에 만나서 회의하기 전에 인사하고 안부를 묻는 데만 벌써 한 시간이 흘렀다.

나는 서기의 역할을 하고 있어서 회의시간에 이루어지는 대화 내용을 작성하여 회의록을 만들고 있다. 일이 좀 많고, 어렵기는 하지만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해낼 것이다.

#일요일

오늘은 남자친구를 만나기로 했다. 한 달에 한번정도 밖에 데이트를 할 수 없지만 그래도 벌써 일 년 넘게 만났다. 우리는 장거리 연애커플이다. 나는 부산송도, 남자친구는 양산에 살고 있다.

양산까지 버스를 타고 지하철을 환승해서 가는 1시간 10분은 너무 길다. 노래를 들으면서 지하철에 타고 있는 사람들을 구경하면서, 남자친구를 만나러 가는 길이다.

얼마 전 까지만 해도 지하철은 혼자 못 탔었는데 지하철을 이용하는 방법에 대해서 담임선생님이 알려주었고, 이제는 혼자서 다닌다. 모를 때에는 그냥 철판 깔고 “죄송한데 여기로 갈려면 어디서 타야 되나요?”라고 한마디만 하면 된다.

생일도 챙겨주고, 기념일도 챙기고, 수시로 연락하면서 안부를 묻는다. 사랑의작대기라는 데이트 지원 프로그램에서 만나서 유일하게 이어지게 된 커플이었고, 지금까지 인연을 이어왔다.

남자친구는 무뚝뚝하고 말을 아끼는 스타일인데, 나는 말을 하는 것을 좋아하고 궁금 한게 너무 많다. 11월에 장애인 인식 개선 캠페인을 한다. 꼭 남자친구가 와서 봐주었으면 좋겠어서 꼭 보러오라고 얘기를 하였다.

흔쾌히 승낙을 했고, 기분이 좋았다. 더 열심히 준비해서 실수 없이 잘하는 모습을 보여주어야겠다. 양산타워에 가서 구경도 하고, 밥도 먹었는데 부산에 있는 용두산타워와는 많이 달랐다. 생전처음 보는 곳을 아주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니 일주일 피로가 싹 날아가는 것 같다.

나는 장애연금이 20,000원 밖에 나오지 않는다. 한 달 월급은 23만원이다. 하고 싶은 것, 가보고 싶은 곳은 너무나 많은데 항상 용돈이 부족하다. 그래서 돈을 더 많이 벌고 싶다. 내년에는 다른 곳에 이직을 해볼 생각이다.

식당보조? 세탁? 청소? 아직 어떤 직업을 생각해본 것은 없지만 직무능력검사도 해보고 여기저기 알아봐서 돈을 더 많이 벌 수 있는 곳으로 이직해서 하고 싶은 것들 다하면서 살고 싶다.

오늘도 바쁘게 살았고, 내일, 모레도 더욱 바쁘게 살 것이다. 진정한 자립을 하는 그 때까지 보고, 배우고, 직접 해보면서 자립할 것이다. 다치고, 아프고, 피곤하고, 울고 싶을 때도 있지만 다 이겨내고 자립할 것이다. 사랑하는 내 가족을 만들고 사람답게 살며 자립할 것이다. 내 주위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고맙고 감사하다.

나는 지적장애인이다. 말을 조금 더듬기도 하고, 이해가 안 되는 것들이 많고, 이런 내 자신이 미운적도 있지만 이젠 이런 ‘나를 나는 사랑한다.’

-장애인 곁을 든든하게 지켜주는 대안언론 에이블뉴스(ablenews.co.kr)-

-에이블뉴스 기사 제보 및 보도자료 발송 ablenews@ablenews.co.kr-

저작권자 © 에이블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