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장애인고용안정협회가 장애인의 잠재된 문화예술 역량을 계발하고, 장애인도 다양한 가능성을 가진 근로 주체임을 알려 올바른 장애 인식 개선에 기여할 목적으로 지난 2000년부터 ‘장애인 고용 인식개선 콘테스트’ 개최하고 있다.

올해로 17회를 맞은 콘테스트 공모전에는 운문, 산문, 사진, 컴퓨터그래픽, 미술, 광고영상/스토리보드 등 6개 부문에 총 469명의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작품 1029점을 응모했고, 1·2차 심사를 통해 총 68점이 최종 선정됐다. 에이블뉴스는 운문, 산문 부문의 입상작 26점을 소개한다. 여섯 번째는 산문 부문 금상 수상작이다.

남편 목욕 서비스

김미정(여, 지체)

“여보, 온수 가득 받아 두었으니 욕조 안에 몸을 푹 담그고서 먼저 때부터 불리고 계세요. 나는 이 빨랫감을 세탁기에다 넣고 나서 곧장 뒤따라 들어갈게요.“

남편을 욕실로 먼저 들여 보내놓고서는 거실 한편에 수북하게 쌓인 빨랫감들을 주섬주섬 챙겨서 베란다로 나간다. 그리고 베란다 한쪽 구석에 놓아둔 세탁기에다 빨랫감들을 집어넣고 나서 전원 버튼을 누른 후 잠시 얼쩡거리다가 욕실로 들어선다. 이미 욕조에다 몸을 담근 채 편안한 자세로 길게 드러누워 있던 남편은 나에게로 천천히 얼굴을 돌리더니만 살짝 눈살을 찌푸린다. 나의 입실이 약간 지체되었다는 나름대로의 시위 표시인 것이다. 체질상으로 남들보다도 가쁜 호흡으로 인하여 뜨거운 물속에 오랫동안 몸을 담그는 것을 무척 힘들어하는 남편이다.

오늘은 남편에게 욕조에서 목욕서비스를 해주기로 약속한 날이다. 평소에는 간단하게 비누칠 위주의 샤워 식으로 대신하다가 가끔씩은 이렇게 욕조에다 물을 받아서 목욕서비스를 해 주고 있다. 욕조 모서리 쪽에 머리 부위만 달랑 드러내놓고서 누워있는 남편은 수증기가 자욱이 피어오르는 온탕에서 견디는 것이 힘겨운지 당장이라도 때 밀기를 시작해 주면 좋겠다는 표정이 역력하다. 나는 가장 먼저 때가 불린 상태를 점검을 하기 위해 누워있는 남편의 팔뚝부위를 시험 삼아 문질러 본다. 물의 온도에 따라서 때 불린 상태가 다르게 나타나기 때문이다. 물이 뜨거울수록 짧은 시간 내에도 충분히 불려지겠지만 만약 미지근하다면 그만큼 불려야 할 시간이 길어지는 까닭이다.

때를 충분히 불리지 않고서 작업을 할 경우엔 힘이 더 들고 효과도 덜하다. 이럴 때는 뜨거운 물을 보충해서라도 제대로 때를 불려야만 손쉽게 밀려지고 한층 수월해지는 것이다. 때 불린 상태가 어느 정도 적당하다고 생각되면 비로소 때 밀기에 들어간다. 때 밀기에 앞서 내가 가장 먼저 취해야 할 자세는 남편 뒤편의 욕조 모서리에 걸터앉는 일이다. 그리고는 때수건을 장갑처럼 착용하고서 남편의 고개를 뒤쪽으로 바짝 당겨서 얼굴 부위부터 목덜미까지 마사지하듯 부드럽게 문지른다. 이어서 어깻죽지와 겨드랑이를 거쳐서 팔뚝으로 진행하고 그리고는 남편의 몸뚱이를 바짝 끌어당긴 후 앞가슴과 아랫배로 문지르고 마지막 순서로 허벅지와 무릎을 통과하여 무릎 아랫부분과 발목으로 마무리를 한다.

그런데 근육병으로 지체장애 1급인 남편은 병의 특성상 무릎 아래쪽 장딴지부위를 제외하곤 팔뚝과 허벅지는 몹시 야윈 상태이다. 남편의 유년기에는 또래들에 비해 체격도 크고 또 날렵하였기에 교내 육상 선수로까지 선발되었고 씨름 같은 힘겨루기 시합에서도 좀처럼 밀리지가 않았다. 그런데 중학교에 입학할 즈음에 느닷없이 찾아온 근육병은 남편의 삶을 송두리째 빼앗아갔고 일상생활을 전반적으로 옥죄이기 시작했다. 시간이 흐르고 세월이 지날수록 근육세포가 하나 둘 떨어져나가는 진행성이라서 기력은 점점 쇠하여지는데 현대의학으로서는 아무런 치료약이 없다는 사실 앞에 남편은 망연자실 할 수밖에 없었다.

한창 감수성이 예민하던 청소년기에 찾아온 청천벽력과도 같은 불청객으로 인하여 갈등과 방황으로 점철된 시간 속에서 심한 좌절감을 맛봐야 했다. 그러나 시시각각으로 파고드는 허탈감과 무력감 속에서도 남편은 장래에 대한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고 강한 의지와 집념으로 부단한 노력을 기울인 결과 현재는 신안군 산하 도서지역에서 16년째 공무원으로 재직 중에 있다.

열 서넛 살에 시작하여 지천명의 중간 고개를 훌쩍 넘긴 이날 이때까지 40여 년 동안 빠져나간 근육세포로 인하여 유난히 가늘고 야윈 남편의 팔목을 붙잡고 손목 부위에서부터 어깻죽지로까지 오르락내리락 하며 때수건을 반복해서 문지르다 보면 새까만 때가 국수 가락처럼 벗겨져 나온다. 두 눈을 지그시 감은 채 생각에 골똘히 잠겨 있는 남편과 달리 내 눈길은 새까맣게 밀린 때보다도 마치 연체동물처럼 흐느적거리며 너울너울 춤을 추는 남편의 팔에 멎는다. 근육병이 찾아오고 난 후 재활의지를 불태우던 청년기에는 장애인 체육대회에서 명성을 떨치던 장애 극복의 본보기와도 같던 남편의 팔이 아니었던가!

그러니까 나와 결혼하기 이전 경기도 성남시에서 개최된 제17회 전국장애인체육대회에서 전남대표로 출전한 남편은 탁구종목에서 동메달을 획득했었다. 장식장 한쪽 구석에 자랑스럽게 모셔둔 탁구부문의 빛바랜 메달을 볼 때마다 현재보다는 장애상태가 경미했던 청년기 남편의 호연지기를 보여주는 것 같아 내 마음은 더욱 애틋해진다. 그런데 요즘은 단순한 옷 입기에서부터 신발을 신고 벗는 기본적인 동작마저도 힘겨워하고 일거수일투족을 도움을 받아야 할 만큼 허약해졌다. 그리고 이어지는 앙상한 갈비뼈의 앞가슴과 마치 올챙이배처럼 볼록하게 튀어나온 아랫배 부위에는 때가 별로 밀리지 않는다. 그렇다고 결코 소홀히 다룰 수는 없는 곳이다.

비록 갈비뼈가 드러나는 앞가슴이지만 남편의 아름다운 마음씨 하나를 보고서 나는 인생에 있어서 중대사인 결혼을 선뜻 결정했었다. 신혼 초기, 남편은 평생을 두고서 꼭 한번은 가보고 싶은 곳이 있다면서 동행해 달라고 부탁을 했다. 그래서 어느 해 연말, 승용차 보조석에 남편을 모시고서 새벽 같이 남해안쪽으로 내달렸다. 긴 여행 끝에 찾아간 곳은 한센 병 환자들이 함께 모여 산다는 남해안의 작은 섬 소록도였다.

섬의 특성을 익히 알고 있는 나는 약간의 경계심으로 다수 우물쭈물하는데 반해 남편의 두 눈은 오히려 생기로 넘쳐났다. 소록도 깊숙한 마을 어귀에서 우연히 만난 한센 병 어르신에게 먼저 다가가 스스럼없이 어울렸고 잠시 동안 대화를 나누더니만 서로가 마주보면서 찬송가를 합창하며 행복해 했다. 학창시절 [성 다미엔] 신부의 전기문을 읽고서 크게 감명을 받고서 남편도 그렇게 한세상을 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공직의 문을 선택할 때도 복지적 인프라가 가장 열악하다는 서남해안 끄트머리 도서지역으로 결정했고 사회복지전담공무원의 명찰로 입문했다고 귀띔했다. 성치 못한 몸으로 사고무친 땅에서 오로지 숭고한 가치관과 복지마인드로 자신의 청춘을 불사르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아랫배 부위까지 때 밀기 작업이 끝나면 남편의 몸뚱이의 위치를 180도 되돌려서 다리 부위로 작업을 시작한다. 때 밀기 과정에서 다리부위는 내가 가장 정성을 쏟고 신경을 쓰는 부위이다. 먼저 아기 살결같이 보드라운 허벅지 부위부터 살살 문지르고 나서 무릎 쪽을 거쳐 장딴지 부위로 넘어가면 나의 손은 어느새 힘이 바짝 들어간다. 지

금까지 경험상으로 미루어 볼 때 발목까지 이어지는 무릎 아래쪽 부분이 가장 취약지역 중 한곳이기 때문이다. 이 부위는 묵은 때뿐만 아니라 피부의 각질까지도 추가로 제거해 줘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 다리부위의 작업이 힘들기는 하지만 한편으로는 만감이 교차하는 곳이다. 초등학교 시절에는 교내 육상선수까지 선발되었고 공차기에도 상당한 자질을 보일 정도로 건강했던 다리가 이제는 비정상적으로 비대해진 장딴지 부위만 제외하고는 삐쩍 마르고 야윈 상태로 제 기능을 잃은 지 오래이다. 요즘은 스스로 기립하는 것은 전혀 불가능하고 반드시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만 간신히 일어설 수가 있다. 그리고 계단 오르기는 전혀 불가능하고 평탄한 길을 보행할 때도 걸음걸이 자체가 위태로울 정도로 뒤뚱거리며 자칫 몸의 무게 중심과 균형이 조금만 흩트려져도 곧잘 넘어지거나 나뒹굴기 일쑤다.

그래서 매년 한 두 차례 정도는 크게 넘어져서 발목을 삔다거나 발가락이 골절되어 병원신세를 지곤 한다. 내가 24시간 바로 곁에 붙어서 보조하고는 있지만 어릴 적 불의의 교통사고로 한쪽 무릎 아래 부분을 절단하여 의족을 착용한 지체4급의 장애인인 나로서는 한계가 있는 것이다. 더군다나 눈 쌓인 빙판길을 동행해야 할 때에는 완전 지뢰밭을 걷는 기분이다. 행여 남편이 땅바닥에 미끄러져 넘어지고 나뒹굴어 고통스러움에 비명을 지를 때에는 나의 마음은 천 갈래 만 갈래로 찢어진다. 그러기에 갖가지 눈물겨운 추억과 안타까운 사연이 스며있는 다리부위 만큼은 다른 부위에 비해 더욱 더 정성을 쏟고 신경을 써서 문지르며 작업에 임하는 것이다.

다리와 발쪽 부위의 작업을 마치면 남편을 욕조에서 일으킨답시고 또 한 번 더 난리법석을 떨어야 한다. 오른쪽 무릎 아래쪽 부위의 절단 장애로 인하여 힘의 지침 대 역할에 상당히 허약한 나는 남편을 붙잡고서 낑낑거리며 욕조 밖으로 간신히 안내하여 온몸에 비누칠로 마무리 작업을 함으로써 목욕은 얼추 끝을 맺는다. 이런 복잡하고 번거로운 절차를 거치며 10여 년이 넘는 세월동안 나는 남편의 목욕서비스를 해 오고 있다.

이 세상의 조각가들은 칼이나 각종 도구를 이용하여 거친 나무를 다듬고 모난 돌덩이를 깎아서 아름답고 멋진 작품을 만들어낸다. 하나의 작품을 완성시키기까지 온 정열을 작품에 다 쏟아 붇는다. 조각가의 땀과 정성으로 탄생한 작품은 그 무엇과도 감히 비기지 못할 정도로 의미 있게 다가온다.

마찬가지로 남편에게 목욕을 시킬 때마다 나 자신도 [인간 조각가]라고 상상을 하면서 지금까지 정성을 쏟아 바쳐 임하고 있다.

때 수건이라는 작은 작업도구를 이용하여 남편의 앙상한 몸뚱이를 수없이 문지르고 때를 벗겨내어 멋진 작품을 탄생시킨다고 최면을 거는 것이다.

비록 세상의 조각가들보다는 기교면에서 부족하고 작품의 완성도면에서는 한참 뒤처질지는 모르겠지만 대상을 향해 쏟아 붙는 정성과 절박함은 그 어떤 조각가에게도 뒤지지 않는다고 자처한다. 그러기에 불가능에 가까운 확률이겠지만 남편의 야윈 몸뚱이 구석구석 내 손에 끼워진 때 수건을 문지르면서 늘 이렇게 흥얼거리곤 한다.

“나의 작은 노력과 정성이 하늘까지 도달되어서 하나 둘 떨어져나가는 근육세포의 진행이 멈춰지고 다시금 건강한 근육세포로 리모델링되어서 더 이상 뒤뚱거리거나 넘어지지 않고서 그 어떤 언덕이든 계단이든 둘이서 손 맞잡고 웃으면서 자유롭게 보행하는 그 날이 반드시 올 것이라고......”

나의 간절한 이 염원이 희박한 확률로 남편 생전에 이루어지지 않을지라도 나는 결코 중단한다거나 포기하지 않을 것이며 앞으로도 남편에게 목욕서비스를 펼칠 때마다 계속될 것이다.

장장 두 시간에 걸친 목욕서비스로 인하여 구슬땀으로 뒤범벅이 된 나의 모습을 본 남편은 뒤뚱뒤뚱 욕실 문을 나서면서 겸연쩍게 한마디를 던진다.

“여보, 수고 했어요. 정말 고맙네.”

경상도 본토박이 출신인 남편의 단말마에 나도 은근슬쩍 맞장구를 친다.

“아니에요. 당신의 아내로서 당연히 감당해야 할 제 몫이랍니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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