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국장애인복지시설협회(회장 임성현)가 장애인의 개별욕구를 존중하고 개개인의 삶이 묻어나는 이야기를 발굴하기 위한 목적으로 ‘장애인거주시설 우수사례’ 공모를 진행했다.

이번 공모에는 협회 소속 시설의 이용장애인과 직원이 총 53편의 우수사례를 제출했다. 여기에는 시설거주 장애인의 삶의 이야기가 담겼다.

협회는 외부심사위원의 심사를 거쳐 수상작으로 최우수상 1편, 우수상 3편, 장려상 2편, 우수작 3편 등 총 12편을 선정했다. 에이블뉴스는 수상작을 연재한다. 아홉 번째는 우수작 ‘자취를 하며 사랑을 느껴요’ 이다.

자취를 하며 사랑을 느껴요

이수진(월평빌라)

지순이(지적장애 2급)는 18살, 고2 여학생입니다. 할머니, 아버지, 베트남이 고향인 어머니와 여동생 세 명이 있습니다.

막냇동생은 부모님과 살고, 다른 두 명은 지순이와 월평빌라에서 같이 삽니다. 부모님께 수시로 연락하고, 방학이나 명절에는 부모님 댁에, 친척 집에, 학교 선생님 댁에 며칠씩 다녀옵니다.

가족·친척들과 지내고 옵니다. 주말에 때때로 부모님 댁에 가서 자고 오고, 어떤 날은 점심만 먹고 옵니다. 애교가 많은 아이입니다.

웃을 때 보조개가 들어갑니다. 미용과 네일아트에 관심이 많아 학교 마치고 미용실에서 아르바이트합니다.

미용실 청소를 하고 원장님을 도와 파마 보조도 합니다. 올해 여름방학에는 평소 관심이 많았던 네일아트를 배웠습니다.

2015년 1월부터 자취를 시작했습니다. 지순이가 다니는 창동교회 목사님과 교회 중·고등부 신을재 선생님·김초록 선생님, 교회 집사님과 권사님들, 청소년수련관 선생님들과 아림고등학교 박주영 선생님을 비롯해 지순이를 아는 많은 분들이 도와주셨습니다.

지순이에게 왜 자취하고 싶은지 물었습니다. 혼자 살고 싶다고 했습니다. 혼자 살면 무섭지 않은지, 밥하고 빨래할 수 있는지 물었습니다.

혼자 살아도 무섭지 않고 밥과 빨래도 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자취를 하면 가장 먼저 무엇을 하고 싶은지 물었습니다.

시설 직원들을 초대해 식사대접 하고 싶다고 했습니다. ‘사람들 집에 초대해 식사 대접하기’ 자취를 하면 무엇을 하고 싶은지 생각해 놓았습니다. 자취하고 싶어 하는 지순이의 마음이 느껴졌습니다.

안전사고가 가장 걱정되었습니다. 교회 목사님과 주일학교 선생님, 집사님들과 학교 선생님, 시설 직원들이 ‘여자’라서 위험하지 않겠냐고 걱정했습니다.

원룸보다는 이웃이 있는 주택, 정 많은 할머니가 주인인 집, 운동을 하고 화단을 가꿀 수 있는 마당이 있는 집, 그런 집이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겨울방학을 이용해서 스무 곳 가까이 둘러보고 자취방을 구했습니다. 자취방을 둘러볼 때, 지순이가 싱크대를 열어보고, 물이 잘 나오는지 확인하고, 화장실은 깨끗한지 살폈습니다.

집 주인들이 ‘부모님과 함께 오면 좋겠다.’는 말을 많이 했습니다. 어느 집 대문을 나서며 “엄마 아빠랑 같이 오면 되겠다.” 지순이가 혼잣말을 했습니다. 집이 마음에 들었나 봅니다.

북상에 계신 부모님을 찾아뵙고, 지순이가 둘러보고 맘에 들어했던 자취집 두 군데에 함께 갈 수 있는지 여쭤보았습니다.

어머니께서는 “나 한국말 잘 못하니깐 선생님이 계약할 때 말 잘해줘.” 하셨습니다. 첫 번째 집에 갔을 때 어머니께서 별로라 하셨습니다.

딸이 살 집이니 더욱 꼼꼼히 살피셨습니다. 두 번째 집을 보더니 아버지께서 “좋네요.” 하셨습니다. 아버지께 지순이 집세 보태줄 수 있는지 여쭈었습니다. “딸인데 안 돼도 해야지요. 많이는 아니더라도 보태겠습니다.”하셨습니다.

이삿짐을 옮기기 전에 청소를 했습니다. 몇 시간 동안 쓸고 또 닦기를 반복했습니다. 더러웠던 방바닥에서 빛이 났습니다.

청소하는 내내 지순이가 신이 났습니다. 자취를 얼마나 바랐을까. 자신의 집을 청소하니 얼마나 기쁠까. 침대에서 잠을 자고 책상에서 공부할 생각을 하니 얼마나 설렐까. 스무 군데가 넘는 곳을 둘러보고 정한 집입니다. 지순이가 바라던 일, 꿈꾸던 일입니다.

이사하는 날. 아침부터 비가 내렸습니다. 이사하는 날 비가 오면 잘 산다고 합니다. 잘 사려나 봅니다. 창동교회 집사님께서 지순이의 이사를 도와주셨습니다.

드디어 이삿짐을 문 앞에 두고, 지순이가 도어락 비밀번호를 눌렀습니다. 틀렸습니다. 다시 눌렀습니다.

또 틀렸습니다. “뭐였더라? 까먹었다. 히히” 다시 눌렀습니다. ‘띠 띠 띠 띠 띠 띠 띠. 또로록.’ 마침내 도어락이 열렸습니다.

“내가 열었다.” 했습니다. 자취하며 실수하고 어려운 일이 생겨도 오늘처럼 끝까지 해내며 살아가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옷장에 옷을, 책상에 책을, 주방에 그릇을, 화장실 서랍에 목욕 바구니를 정리했습니다. 지순이의 물건으로 빈 집을 채웠습니다.

첫 주말. 집에서 혼자 자는 것이 무섭지 않은지, 혼자 자도 괜찮은지 물었습니다. “괜찮아요. 똑같이 하면 돼요.” 지순이 말처럼 평소와 다를 것 없는 보통의 주말입니다.

“쌤, 있잖아요. 냉동실에 있는 돈가스요. 제가 실수로 태워서 다 버렸어요.” 귀찮아서 냄비에 한꺼번에 넣고 구웠다고 했습니다.

‘귀찮아서’라는 말에 웃음이 터졌습니다. 지순이도 웃었습니다. 냉동실에 있는 만두는 식용유를 두르고 구우라 했습니다.

돈가스처럼 하지 말고. 지순이가 웃었습니다. 지순이가 하고 싶은 것이 늘어날수록 실수도 잦습니다.

매주 수요일에 지순이와 장을 보러 갑니다. 학교 정문에서 만나 지순이가 자주 가는 마트에 갑니다. “쌤, 우유에 말아 먹는 거 있잖아요. 그거. 그거는 사면 안 돼요? 아침밥 말고 그거 먹으려고요. 아, 맞아. 콘푸로스트~ 콘푸로스트다.”

시리얼 파는 진열대 앞에 갔습니다. ‘이거는 초콜렛. 이거는 뭐지? 아, 똑같은데 이게 더 크네?’ 이것저것 보더니 가장 큰 것을 골랐습니다. 아침이 바쁘니 시리얼을 먹겠다고 했습니다. 자취를 할수록 노하우가 늘어갑니다.

하루는 지순이가 장 볼 목록을 적어왔습니다. ‘애닭이 왕란, 바나나, 유우(우유), 토마토, 행복한 콩, 당군(당근), 고구마, 지짐만두’ 일주일 동안 무엇을 사야 할지 생각하고 적었다 합니다. 일주일 먹고 살 겁니다.

지순이가 카트를 끌며 앞장섰습니다. 우유를 자세히 들여다 보았습니다. 유통기한이 짧으면 다 먹지 못해 버린다며 유통기한을 잘 보고 사야 한다고 지순이가 알려주었습니다.

자취하고 핸드폰을 장만했습니다. 처음에는 주로 전화를 이용했고 문자를 보낼 때에는 단어를 보냈습니다.

지금은 ‘지순이 사랑하해 우리 집에서’와 같은 짧은 문장과 함께 사진을 첨부해서 보냅니다.

초등학교 때부터 6년간 언어치료를 받고 특수학급에서 한글을 배웠지만 발전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어떤 영문인지 자취를 시작하고 핸드폰을 사용한 6개월 만에 한글을 깨우쳤습니다.

평소에는 일이만 원 나오던 요금이 어느 달 오만 원 넘게 나왔습니다. 자초지정을 물으니, TV에 아프리카 어린이를 돕기 위한 ARS 성금 모금하는 것을 보고 지순이가 핸드폰으로 성금을 보냈답니다.

어느 달은 보고 싶은 사람들과 영상통화를 하느라 핸드폰 요금이 십만 원 넘게 나오기도 했습니다.

핸드폰 요금을 어떻게 마련하면 좋을지 의논했습니다. 모아놓았던 용돈 이만 원과 미용실 사장님께 가불 받은 월급 삼만 원, 용돈을 줄여서 생긴 이만 원으로 처리했습니다.

자취한 후로 학교생활도 많이 달라졌습니다. “지순이가 자취하고 많이 자랐어요. 핸드폰이 생기고 나서는 갑자기 글도 많이 늘고 발음도 정확해졌어요. 처음에는 잘 할 수 있을지 걱정했는데, 잘 살고 있는 모습 보니까 대견하기도 하고 놀랍기도 하고 그래요.” 담임 선생님께서 놀랍고 대견하다며 칭찬하셨습니다.

후배들이 자취하는 지순이를 부러워했습니다. “너희는 언제 지순이 언니처럼 자취할래?” 담임 선생님 말씀에 지순이가 쑥스러워했습니다.

교복 입는 스타일도 달라졌습니다. 흰색 티셔츠를 입고 블라우스는 걸치기만 합니다. 치마는 갈수록 짧아집니다. 가방은 한 어깨에만 걸칩니다.

요즘 유행하는 여고생의 스타일입니다. 자취를 하면서 옷 스타일도, 머리 스타일에도 관심이 많아졌습니다.

친구들과 보내는 시간이 많아지니 시설에서 생활재활교사가 알려줄 수 없는 친구들 사이의 유행과 문화에 민감해졌습니다.

창동교회 김초록 선생님께서 “지순이가 어떻게 살고 있나 궁금해서 오랜만에 왔는데 잘 살고 있네요.

잘 사는 걸 보니 안심이 돼요.”하셨습니다. 지순이가 대접한다며 음료를 꺼내고 과자를 내놓으며 선생님을 잘 대접했습니다. 김초록 선생님이 챙겨 온 카레와 지순이가 손수 지은 밥으로 저녁을 먹었습니다.

설거지는 지순이가 했다고 자랑했습니다. 하루는 교회 친구들과 김초록 선생님이 지순이 집에 놀러 온다고 했습니다. “떡볶이랑 과자 준비하면 돼요.” 지순이가 자신 있게 말했습니다.

시설 직원에게 도와달라고 하는 것은 어떤지 물었습니다. “아니요. 제가 할 수 있어요.” 집에 손님들을 초대하고 가장 자신 있는 떡볶이를 만들어 대접했습니다.

미용실에서 청소를 하고 미용보조 일을 합니다. 건조대에 걸린 수건을 정리하는 지순이를 보며, “지순이가 월평빌라에서 살다가 독립해서 자취를 한단다. 대단하지 않나?" 사장님께서 손님에게 지순이 자랑을 했습니다.

수학여행을 갈 때 사장님께서 용돈을 주셨습니다. “올 때 사장님 선물 살 거예요.” 수학여행에서 돌아오는 길에 약속대로 사장님께 드릴 호두과자를 사왔습니다.

6년 동안 배웠지만 못 깨우친 한글을 자취하고 6개월 만에 깨우쳤습니다. 시설 직원의 차로 다니던 학교를 자전거를 타고 다닙니다.

교복 치마는 짧아졌고, 학교 마치면 미용실에서 아르바이트합니다. 뭘 먹을지 적었다가 장 봐서 손수 만들어 먹습니다.

전기세, 월세, 핸드폰 요금을 내느라 용돈을 아껴야 합니다. 늦게 일어나서 지각하기도 하고, 요리하다 돈가스를 다 태우기도 하고, 청소도 빨래도 온전히 지순이가 합니다. 그래도 지순이는 혼자 자취하는 게 좋다고 합니다.

{공고}2016년 에이블뉴스 칼럼니스트 공개 모집

[설문]2015년 장애인계 10대 키워드 설문조사(추첨 통해 왁스 타블렛 증정)

-장애인 곁을 든든하게 지켜주는 대안언론 에이블뉴스(ablenews.co.kr)-

-에이블뉴스 기사 제보 및 보도자료 발송 ablenews@ablenews.co.kr-

저작권자 © 에이블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