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국장애인복지시설협회(회장 임성현)가 장애인의 개별욕구를 존중하고 개개인의 삶이 묻어나는 이야기를 발굴하기 위한 목적으로 ‘장애인거주시설 우수사례’ 공모를 진행했다.

이번 공모에는 협회 소속 시설의 이용장애인과 직원이 총 53편의 우수사례를 제출했다. 여기에는 시설거주 장애인의 삶의 이야기가 담겼다.

협회는 외부심사위원의 심사를 거쳐 수상작으로 최우수상 1편, 우수상 3편, 장려상 2편, 우수작 3편 등 총 12편을 선정했다. 에이블뉴스는 수상작을 연재한다. 두번째는 우수상 ‘딸기 밭, 그 사나이’ 이다.

딸기 밭, 그 사나이

문효정(예천사랑마을)

하얀 눈이 소복소복 내리는 어느 겨울날.

퇴근길에 지나다보니 저 멀리 비닐하우스를 부산하게 오가는 치훈씨가 보입니다.

“아이고, 치훈씨 혼자 뭘 그렇게 열심히 하니껴?

하우스에 들어 가보니 한 겨울인데도 아주 뜨끈뜨끈합니다.

“와 여기는 억씨 따숩네, 사우나 긋다.”

“음마, 마마 음마 으으.”

저를 보자 송아지 같은 눈을 껌벅 껌벅 거리며 여기 저기 손가락질 해대는데 도통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 없어 가까이 다가가니 손바닥에 ‘딸기’라고 적어보입니다.

그제야 알아듣고“아! 맞다 치훈씨 딸기 농사짓지, 지금이 농사짓는 시기래요?”라고 되묻습니다.

“어, 어.”하며 치훈씨가 고개를 끄덕입니다.

치훈씨가 수확한 딸기를 몇 년 동안 얻어먹었는데 딸기 재배 시기도 모르는 것이 염치없어 갠스레 무안해집니다.

청각·언어·지적 중복 장애를 가진 치훈씨는 경북 영천에서 가족과 함께 딸기 재배를 하며 살다 연로해지신 부모님이 더 이상 치훈씨를 돌봐 줄 수 없게 되자 2007년 이곳 시설에 입소하였습니다.

처음에는 가족과 고향 생각에 시설에 잘 적응을 하지 못하고 창밖을 보며 울기도 많이 울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함께 생활하던 3살 연상 옥순씨를 좋아하게 되면서 빈 가슴을 설렘으로 채우고 하루하루를 즐겁게 지냈습니다.

치훈씨가 사랑한 그녀 옥순씨는 작고 아담한 체구에 쌍꺼풀이 진하게 진 예쁜 얼굴로 다른 장애인들을 친 동생처럼 알뜰살뜰 보살피는 착하고 인정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옥순씨는 가족이 없어 일평생 시설에서만 살아왔고 가족이 없어 찾아오는 사람도 갈 곳도 없어 누구보다 정에 목말라 했습니다.

이런 옥순씨에게 치훈씨는 사랑의 큐피트를 날리며 아껴둔 과자와 커피를 선물하거나 은근히 주위를 맴돌며 온 맘과 정성을 다해 애정공세를 펼쳤고, 그 결과 두 사람은 그해가 다 갈 무렵 결혼을 하게 되었습니다.

하늘도 축복하는지 결혼식 날은 유난히도 맑고 화창했습니다. 시설 앞마당 잔디밭에서 진행된 결혼식은 사랑하는 가족과 후원자, 온 직원이 모인가운데 전통 혼례로 치러졌습니다.

긴장한 듯 경직된 치훈씨가 사선으로 얼굴을 가리고 입장하자 뒤를 이어 빨간 연지곤지를 찍은 옥순씨가 직원들이 태운 꽃가마를 타고 입장했습니다.

옥순씨는 부끄러운 듯 얼굴이 발그레 했지만 치훈씨와 눈이 마주 칠 때 마다 함박웃음을 터뜨리며 행복한 마음을 숨기지는 않았습니다.

혼인 서약 후 술잔을 나누고 맞절을 한 뒤 두 사람은 마침내 정식 부부가 되었습니다.

두 사람을 축복하는 직원들의 축가가 온 사방에 울려 퍼졌고 십시일반으로 준비한 음식을 나누며 결혼식은 한마당 축제가 되었습니다.

그렇게 결혼식이 끝나고 두 사람은 시설 3층 독채에서 첫날밤을 보내고 일주일간 치훈씨 고향으로 신혼여행을 다녀왔습니다.

두 사람이 신접살림을 차린 이 3층 독채는 둘 만을 위한 공간을 고민하던 원장님이 후원자들에게 두 사람의 이야기를 전했고 그 중 두 사람의 행복을 바라는 몇몇 후원자들과 시설이 뜻을 모아 마련한 나눔 공간이었습니다.

그리고 친정엄마가 없는 옥순씨를 위해 원장님은 손수 자비를 들여 혼수를 장만해 주셨습니다.

원장님은 친정엄마의 마음으로 레이스 달린 이불이며 커플잠옷, 장롱에 소파까지 뭐 하나 부족함 없이 채워주려 애쓰셨습니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의 응원과 후원으로 결혼 생활을 시작한 두 부부는 방방마다 결혼사진을 걸어 놓고 깨소금 냄새를 솔솔 풍기며 신혼생활을 즐겼습니다.

그러나 서로 다른 남녀가 십 수 년을 따로 살다 만났는데 어려운 점이 없었겠습니까. 언어장애를 가진 치훈씨와 의사소통에 어려움을 느낀 옥순씨는 말이 안 통한다며 답답해하기도 하고 가끔 오해가 생겨 다투기도 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치훈씨는 오순씨에게 자신이 알고 있는 수화를 가르치려 노력 했지만 지적능력이 낮은 옥순씨는 수화를 배우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세월이 약이라 했던가요. 수화를 배우지 못했어도 결혼 8년차가 되니 옥순씨는 치훈씨의 손짓, 눈짓만 보고도 무슨 말인지 알아듣고 다른 사람에게 통역까지 해주는 수준이 되었습니다.

함께하는 시간 동안 서로를 더 깊이 이해하고 알게 된 것이죠. 그렇게 두 사람은 서로를 믿고 신뢰하며 더욱더 의지하게 되었고 지금은 어디를 가나, 무엇을 하나 늘 함께하는 금술 좋은 부부가 되었습니다.

푸름이 피어나는 오월. 두 사람이 저녁을 먹고 마실 겸 시설 주위를 돌며 길가에 즐비한 오디를 따고 있습니다.

“옥순씨 그건 따서 뭐해요.”

“이거 먹지.”

“어애 먹는데요?”

“냉장고에 넣어놓고…이래이래.” 하며 한손으로 맷돌 돌리는 시늉을 합니다.

“아~ 냉동실에 얼려놨다가 갈아먹을라꼬?”

“아하하하하.”

“완전 웰빙이네 웰빙.”

부부가 오디 따는 것을 가만히 지켜보니, 치훈씨가 바닥에 돗자리를 깔고 나무를 흔들어 떠니 옥순씨가 떨어진 오디를 주워 담습니다.

손발이 어찌나 척척 맞는지 세상에 못할 일이 없어 보입니다. 그리고 며칠 뒤, 부부가 시설 입구에서 또 무언가를 하고 있습니다. 이번엔 보리수 입니다.

하나 따서 먹고 하나 따서 먹여주고, 서로 주거니 받거니 하며 보리수를 따는 모습이 얼마나 다정한지…

이렇게 자연과 함께 즐거운 삶을 누리는 부부는 자라온 환경 탓인지 유독 농작물에 관심이 많습니다. 그래서 부부는 시설 프로그램인 원예, 유기농 채소 가꾸기에 열심히 참여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프로그램에 참여해 가꾼 토마토며 오이, 고추, 상추를 여름날 수확해 시설 식구들과 나누어 먹고 본인들 간식으로도 즐깁니다.

그런데 평소 묻지 않으면 말도 잘 안하는 치훈씨가 유독 채소 가꾸기 프로그램에 참여 할 때면 선생님들에게 다가와 고향에서 하던 딸기재배며 가족들의 이야기를 자주 하였습니다.

비슷한 일을 하니 고향 생각이 많이 났나 봅니다. 이런 치훈씨를 마음을 읽은 선생님이 치훈씨의 향수를 달래주고 싶어 “그럼 올해는 딸기 한번 키워볼까.” 했던 것이 발단이 되어 그해 하우스 한 동을 조그맣게 짓고 딸기 모종을 몇 포기 사 딸기재배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인터넷을 통해 딸기 재배를 글로 배운 선생님과 달리 어려서부터 딸기를 재배했던 치훈씨는 딸기 박사였습니다.

농사를 안지은지 꽤 시간이 흘렀는데도 딸기 재배 순서 하나하나를 다 기억하고 스스로 농사를 지으며 선생님들을 가르쳐주기도 하였습니다.

여름에 새순을 받아 초가을에 이식 작업을 한 뒤, 물주고, 풀 뽑아 1~2월에 수확 하는 딸기 재배 시기와 과정을 치훈씨는 단 한 번도 놓치거나 늦춘 적이 없습니다.

다른 농사보다도 손이 많이 가고 전문기술이 필요하다는데 누구한테 물어보지도 않고 스스로 하는 것을 보면 정말 대단합니다.

그렇게 한해 두해 해가 거듭 될수록 재배 규모는 늘어갔고 4년차인 지금은 재배 량이 반골에서 한골이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치훈씨의 실력을 인지하지 못하고 그저 정서함양, 정서안정 만을 목표로 삼고 시험조로 시작 하였는데 지금은 기대했던 것 이상으로 다양한 효과를 보고 있습니다.

이 효과는 모두 치훈씨의 놀랍고도 전문가적인 실력 덕분입니다. 그 실력은 딸기 한 포기 한 포기 심어 놓은 모습에서도 엿 볼 수 있습니다. 간격이 어쩜 그리도 일정한지 놀라 울 따름 입니다.

“치훈씨 어애 이래 딱딱 맞춰 심었니껴? 진~짜 신기하네.”하니 치훈씨가 손사래를 칩니다. 그러나 입을 벌리고 웃는 모양새를 보니 기분이 좋은가 봅니다.

치훈씨 딸기 다 익으면 내 한소쿠리 주니껴?

“으으 마마.”하며 손바닥에 숫자 2를 적습니다. 두 소쿠리나 준답니다.

“치훈씨 인심도 좋니더, 내 두 소쿠리나 주면 치훈씨는 뭐 먹을라꼬?.”하니 치훈씨가 두 팔을 쫙 벌리며 웃습니다. 아마‘여기 있는 딸기가 다 내 건데 뭐.’라고 말하는 거겠죠?

치훈씨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히고 땀이 맺히는 만큼 주렁주렁 달렸던 딸기도 어느덧 빨갛게 익어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첫눈이 오던 크리스마스이브 날. 옥순씨가 사무실까지 저를 부르러 왔습니다. 지금 당장 하우스로 오라고 하네요.

하우스에 들어서자 소쿠리를 들고 딸기 밭을 이리 저리 돌아보고 있는 부부가 보입니다.

겨우 내 문턱이 닳도록 하우스를 들락날락 거리며 키워온 딸기를 드디어 수확하나 봅니다. 치훈씨가 빨갛게 익은 첫 딸기를 따 가장 먼저 옥순씨 입에 넣어줍니다.

“달다. 달다”

옥순씨가 입이 찢어지게 웃습니다.

“옥순씨는 조컷다. 남편이 얼마나 챙기는 동 부러워 죽겠네.”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옥순씨가 딸기를 따 제 입에 넣어 줍니다.

“선생님도 먹어 하하하.”

“치훈씨 딸기 진짜 맛있다. 이거 장에 갖다 팔까?”

치훈씨가 “마마,” 하며 손을 젓습니다. 그리곤 손바닥에“애들”이라고 적어 보여줍니다. 시설 친구들 줄 거라고 합니다.

미우나 고우나 함께 살고 있는 친구들을 가장 먼저 챙기는 치훈씨 입니다. 그리고는 또 손가락으로 먼 곳을 가리킵니다.

그러자 옆에 있던 옥순씨가

“아아 이건 저기, 저기 사는 길동씨 줘야 된다.”라며 대신 말을 전합니다. 부부와 인연을 맺고 10년이 넘게 결연후원을 하고 있는 후원자에게 선물할 모양입니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농사지은 열매를 순서 되로 챙기는 마음 깊은 치훈씨 입니다. 며칠 뒤, 부부가 옷을 곱게 차려입고 길을 나섭니다.

“치훈씨 어디가요?”

“마마”하며 먼 곳을 가리킵니다.

“아, 후원자한테 간다 캤지? 잘 다녀와요.”

웃으며 손을 흔드는 부부의 뒷모습이 참 아름답습니다.

그리고, 또 여름 저 멀리 하우스를 연신 왔다 갔다 하는 치훈씨가 보입니다.

“치훈씨 아직 딸기 재배 할라면 멀었는데 뭐 하니껴?.”하고 하우스에 들어가 보니, 무성한 딸기 풀 옆 모종 컵에 새순이 나란히 심겨져 있습니다.

누구 보다 먼저, 누구 보다 부지런히 한 해 농사를 준비하는 치훈씨입니다. 주인이 땀 흘린 만큼, 주인과 더 자주 만나는 만큼 작물의 열매는 달고 풍성하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런 걸까요? 우리 치훈씨네 딸기는 세상에서 가장 달고 맛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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