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를 마친 뒤 박재현 영화감독과 DEAFinitor팀의 기념촬영 모습. ⓒ조현석

‘청각장애인’은 병리적 관점에서 청력장애가 있는 이들을 일컫는 반면, ‘농인’은 못 듣는 대신 더 잘 보는 장점을 지닌 존재임을 인정하고 정체성으로 받아들인 사람들을 말한다.

농인이 듣지 못하는 것은 그들의 특징일 뿐이기 때문에 '농인'이란 말은 문화적 정체성을 담아낸 표현이다.

농문화의 정체성을 한국사회에 널리 알리고자 하는 8명의 청년들이 DEAFinitor라는 팀을 만들었다.

이들은 '2013 장애청년드림팀 6대륙에 도전하다'에 선발됐고 농인 4명, 청인 4명으로 구성됐다. 오는 8월 21일부터 8월 30일까지 "이중소외에 갇힌 농노인과 농아동을 구출하라!'는 주제로 미국 연수에 나선다. 농인의 문화향유권을 찾기 위한 것이다.

DEAFinitor팀은 알찬 미국연수를 위해 지난 6월 15일 대구영상미디어센터에서 데프미디어가 상영한 미국농역사 소개 내용이 담긴 ‘농인의 눈으로’라는 다큐멘터리를 관람했다.

‘농인의 눈으로’는 약 200년 간의 미국 농인의 삶을 더듬어보고, 농문화의 질 향상 및 인식 개선하기 위한 영상으로 농학생들을 위한 학교설립, 미국수화에 대한 논의, TTY캠페인(통신중계서비스), 갈로뎃대학의 농인 총장 선출에 관한 투쟁 등의 내용으로 농인의 삶이 어떠한지를 잘 보여준다.

세상에서 비주류인 농인들은 좀처럼 목소리를 내지 않는다. ‘농인의 눈으로’는 바로, 국내에서 최초로 그 목소리와 그 이야기를 담았다고 볼 수 있다.

이 영화의 매력을 말하자면 영화에 출연한 농인들의 각양각색 표정과 현란한 손짓, 그리고 무성(無聲)이다. 왜 이 영화는 소리가 없을까? 그 이유는 바로 상영회를 연 감독이 농인이기 때문이다.

‘농인의 눈으로’ 상영회를 연 박재현씨는 국내에서 유일한 농인영화감독이다. 그는 그림의 떡(2007), 애인보다 더 좋은 내 인생의 친구(2007), DEAF A.I(2009) 등 다양한 장르의 영화들을 제작했다.

농인배우들과 수화가 나오는 그의 작품들은 농인들에게 갑갑함에서 벗어나 커다란 즐거움과 왠지 모를 뿌듯한 자부심을 느끼게 해준다.

현재 한국 농인사회에서는 ‘한국영화 자막상영의무화’가 최대 이슈다. 영화관에서 개봉하는 한국영화는 자막이 없어 농인들이 보기에 상당한 어려움이 있기 때문에 농인들은 자막이 삽입된 DVD가 나오기를 기다리고, DVD가 나오기까지는 3개월이 걸린다.

즉, 농인들은 문화생활을 마음껏 누리기가 쉽지 않은 것이다. 그래서 여러 차례 한국영화 자막상영의무화를 위한 요구를 하였고 그것이 어느 정도 받아들여져, 일부 영화관에서 ‘영화 관람 데이’를 만들어 월 1~3회 한글자막상영을 시작하였다. 그러나 이것이 과연 긍정적인 효과가 있는지 우리는 의문을 가져야 한다.

박재현 영화감독은 “농인 소비자들은 보고 싶은 영화를 볼 선택권 없이 자막을 제공해주는 영화만 보아야 한다. 본인이 원하는 영화를 원하는 장소에서 원하는 시간에 관람하지 못한다. 이처럼 농인을 위한 영화 상영은 전혀 농인의 입장을 고려하지 못하고 있으며, 영화관의 이벤트성 행사에 그치고 있다”고 말하며 농인의 문화향유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는 현실을 비판했다.

또한 “독일, 유럽 등 여러 선진국에서는 정부에서 농인이 영화를 제작할 때 제작비를 지원해주는 등 농인에 대한 인식개선을 위한 지원을 많이 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이러한 지원에 인색해 내가 영화감독으로서 활동하는 것에 많은 어려움이 있다”고 말했다.

이소연(29) 팀원이 “영화를 보니까 미국 농인들은 정말 단합이 좋은 것 같다. 그래서 미국 농사회가 발전하고 농인에 대한 미국인들의 인식이 많이 바뀌었다는 생각이 든다”고 영화를 본 자신의 소감을 얘기했다.

이에 박 감독은 “그것이 바로 내가 ‘농인의 눈으로’ 상영회를 연 이유다. 예전에 인도로 여행을 가서 여러 농인들을 만났는데 인도가 우리나라보다 경제적으로 뒤처지는 나라임에도 불구하고 농인들의 단합이 정말 좋았고 농인에 대한 비장애인들의 인식도 우리나라보다 좋았다. 그래서 우리나라 농인들에게 다른 나라의 농문화와 농역사를 소개하는 영화를 보여주어 간접체험을 하게 해주고 단합을 이끌어내고 싶었다. 농인들 뿐만 아니라 청인들도 이 영화를 보고 농인에 대한 인식을 바꾸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다음에는 프랑스의 농문화와 농역사를 보여주는 영화를 상영할 예정이다”라고 답했다.

고단아(23) 팀원이 “왜 영화에 소리를 넣지 않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지자, 박 감독은 “내가 농인이기 때문이다. 사실 처음에 영화에 소리를 담지 않은 것에 대해서 역차별을 한다는 이야기를 들을까봐 걱정을 많이 했다. 그런데 오히려 소리를 넣지 않은 것이 긍정적인 반응을 가져왔다. 내 영화를 본 관람객들이 소리가 없었기에 자신에게 농인배우들의 표정과 손짓이 더욱 더 생생하게 다가왔다고 말한다”고 말했다.

“그럼 앞으로도 계속 무성영화를 만들 것인가?”라고 또 다시 던진 질문에 박 감독은 “죽을 때까지!”라고 답하며 자신의 포부를 밝혔다.

DEAFintor팀은 농인들의 자유로운 영화관람을 위해 미국의 자막제작업체(CPC)를 방문하여 자막 제작시 소요되는 실제적인 비용의 수급과정, 구체적인 자막제작 시스템을 탐방하고 한국 사회에 적용시킬 수 있는 방안을 연구하고 모색할 예정이다.

*이글은 ‘2013 장애청년드림팀 6대륙에 도전하다’, 'DEAFinitor'팀의 조현석님이 보내왔습니다. 에이블뉴스는 언제나 애독자 여러분들의 기고를 환영합니다. 에이블뉴스 회원 가입을 하고, 취재팀(02-792-7166)으로 전화연락을 주시면 직접 글을 등록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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