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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의 자신을 사랑하라

지체장애 손필숙 씨의 삶 - ③

에이블뉴스, 기사작성일 : 2019-10-31 11:4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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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종일 마사지를 하다 보니 손에 관절염이 와서 그만두었습니다.”

피부 관리실을 그만두고 손의 관절염을 치료했다. 그동안 결혼을 했고 아들 하나를 키웠다. 그러나 집에서 먹고 놀 팔자는 아니었나 보다.

“아는 언니가 영도에서 한복을 했는데 한복을 해보라고 했습니다.”


군산 학생체전에서. ⓒ이복남 에이블포토로 보기 군산 학생체전에서. ⓒ이복남
한복을 배우기 시작했다. 한복을 하려면 손재주도 있어야 되고, 무엇보다도 끈기와 참을성이 있어야 된다고 했다.

“손재주가 있는지 한복도 금방 배웠습니다.”

치수에 맞춰서 패턴을 그려서 마름질을 하고 드르륵드르륵 재봉질을 했다. 치맛단을 박고 저고리 도련을 날렵하게 꺾어서 인두질을 하고 동정을 달면 끝이었다.

“부산진시장에서 일감을 줬기에 일은 많았습니다.”

한복 만드는 일을 몇 년씩 했다면 장애인기능대회에 나가 볼 생각은 안 했을까.

“어릴 때부터 장애인들하고는 어울리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는 왠지 동병상련이 싫었다고 했다. 장애인은 자신 하나면 족하다고 생각했기에 또 다른 장애인과 마주하고 싶지 않았다는 것이다.

“어쩌면 내 자존심이자 자긍심이었지요.”

장애인은 사회적 배려가 필요한 사람이다. 그러나 그는 다리만 불편하다. 그 불편한 부분만 보완해 주면 된다. 그러나 장애인은 그 외에도 많은 것을 요구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그래서 ‘장애가 벼슬이가?’하는 말을 들으면 서글퍼집니다. 저는 한 번도 장애를 벼슬처럼 내세운 적은 없지만, 정말 장애를 벼슬로 생각하는 사람도 있는 것 같았습니다.”

장애인들과 어울리고 싶지 않았다면서 지금은 어떻게 어울리게 되었을까.

“송충이는 솔잎을 먹어야 된다는 것을 뒤늦게 깨닫기는 했지만, 지금도 장애를 벼슬로 내세우는 사람은 정말 싫습니다.”

군산 학생체전에서 개그맨 김영준과 함께.  ⓒ이복남 에이블포토로 보기 군산 학생체전에서 개그맨 김영준과 함께. ⓒ이복남
그는 한복을 하면서 하루 종일 앉아 있어서 그런지 소화가 잘 안되고 속이 불편했다. 걸핏하면 체해서 응급실에 실려 가기도 했다.

“한 지인이 운동을 해 보라고 하더군요.”

장애인으로서 다리가 불편한 그가 할 수 있는 운동이 무엇이 있을까 찾아봤다.

“그때 제가 찾은 운동이 좌식배드민턴이었습니다.”

양지재활원에 있는 부산곰두리스포츠센터를 찾아 좌식배드민턴을 배우기 시작했다.

영도에서 거제리에 있는 스포츠센터는 교통이 불편하지는 않았을까

“운전을 배웠고 차가 있었기에 그렇게 불편하지는 않았습니다.”

좌식배드민턴을 하면서 장애인들과 어울리기 시작했다.

“항상 속이 더부룩하고 소화가 잘 안되었는데 배드민턴을 하면서 그게 다 나았습니다.”

지금은 아니지만 그때만 해도 그는 장애인이면서도 경계인이었다. 비장애인들과 더 잘 어울리면서 장애인을 바라봤던 것이다.

“옛날 친구들하고 지금도 가끔씩 만나는데 그 친구들이 ‘너는 장애인이니까’하는 것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몇 년 동안 좌식배드민턴을 하면서 많은 장애인들과 만났다. 그가 장애인에 대해서 가졌던 생각들이 간혹 잘못된 것도 있었지만 대부분이 맞는 것 같았다.

“대부분의 장애인이 받을 줄만 알았지 줄 줄을 모른다는 겁니다.”

조카하고 베트남에서. ⓒ이복남 에이블포토로 보기 조카하고 베트남에서. ⓒ이복남
우리 사회는 주고받는 상호작용 속에서 인간관계가 형성되는데, 장애인은 어릴 때부터 받는 것에만 익숙하고 습관이 되어서 그런지 베풀 줄을 모르는 것 같다고 했다. 그런 사람들을 자주 만나다 보니 자연히 멀어져서 지금은 좌식배드민턴을 안 한다고 했다.

“아들이 군대 가면서 이혼을 했습니다.”

그는 이혼을 하고 영도 동삼동 아파트에서 혼자 살고 있다.

아들은 누구하고 산다는 것일까

“아들은 대학생인데 군대 갔다 와서 아빠하고 살고 있는데 자주 옵니다.”

아들이 어렸을 때는 상처받을까 봐 이혼을 하지 못했다. 그래서 아들이 성인이 될 때까지는 참고 기다렸지만, 이제는 아들도 왜 이혼할 수밖에 없었는지 이해한다는 것이다.

한복은 오래전에 그만두었고 요즘은 집에서 도라지정과와 비누를 만들고 있다고 했다.

“지인의 소개로 도라지정과를 만들게 되었는데 주문이 많이 들어옵니다.”

처음에는 도라지정과가 아니라 인삼정과를 만들었다. 인삼은 비싸다 보니 잔뿌리까지 하나하나 씻어야 되는데 그 과정이 너무 귀찮고 번거로워서 도라지로 바꿨단다.

“도라지는 잔뿌리도 별로 없을뿐더러 있으면 떼버리면 그만입니다.”

구포시장에서 크고 좋은 도라지 3kg를 사서 껍질을 까서 조청에 고아서 말리는데 한 번에 할 수 있는 게 3kg 정도란다.

“자세한 것은 비밀이고 자연바람에 말리다 보니 한번 하는데 20일 정도 걸립니다.”

도라지정과 외에 고급비누를 만든다고 했다.

비누는 식용유로 만드는 것일까?

“하하하, 그건 빨래비누이고요.”

필자의 무지가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문득 장애인들이 폐식용유를 걷으러 다니는 게 생각났던 것이다.

“비누는 오일에 따라서 여러 가지가 달라집니다.”

자신이 만든 비누는 아로마 오일이나 꿀 등이 들어가기 때문에 피부에 좋다며 필자에게도 6개들이 한 박스를 건넸다.

“명절 때는 주문이 많아서 포장 같은 것은 이웃 아줌마들이 도와줍니다.”

그가 만든 비누는 일류 회사에서 만든 제품 못지않다고 했다.

“이곳에 이사 와서 영도장애인복지관에서 바리스타를 배웠습니다.”

바리스타를 배우는 사람은 장애인도 있고 비장애인도 있는데 그는 사람들과 잘 어울린다고 했다. 바리스타 자격증을 따고도 영도복지관에 일주일에 한 번씩은 간다고 했다.

“비장애인은 장애인이 잘못해도 뭐라고 못하는데 저는 할 수 있다는 게, 어떻게 보면 모순이겠지요?”

언니, 오빠하고 괌에서. ⓒ이복남 에이블포토로 보기 언니, 오빠하고 괌에서. ⓒ이복남
바리스타를 배우고 나서, 바리스타 동문들이 일주일에 한 번씩 복지관에 나와서 빵 봉사를 하고 있단다. 빵은 바리스타 동문들이 십시일반 각출을 해서 빵도 사고 부재료도 사서 토스트 등 여러 가지 빵을 만들어 복지관에 오는 장애인들에게 나눠주는데 하나라도 더 가지려고 욕심 부리는 사람을 보면 속이 편치 않단다.

“지적장애인은 잘 몰라서 그럴 수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는 어릴 대부터 타인에 대한 이해와 배려를 배우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장애인에 대한 편견이나 인식개선에는 그런 부분도 포함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

손필숙 씨가 처음에는 자신의 삶이 다른 사람들에게 내세울 게 없다며 인터뷰를 극구 사양했었다. 필자는 장애인의 성공스토리나 휴먼스토리가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면 족하다고 설득했다.

“제가 비장애인들과 잘 어울리고 그 사회 속에서 살려고 하니까 간혹 못마땅해 하는 친구들도 있는 것 같은데 별로 개의치 않습니다.”

장애도 개성이라는 시대에 손필숙 씨도 나름대로의 개성으로 살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죽을 때까지 공부는 하고 싶습니다.”

그동안 여러 가지 배웠는데 이제 대학을 가볼까 생각 중이란다.

“요즘은 ‘구도자에게 보낸 편지’를 읽고 있는데 인상적인 문구가 있었습니다.

‘구도자에게 보낸 편지’는 헨리 데이빗 소로우 저 류시화 역으로 소로우가 헤리슨 블레이크에게 13년 동안 보낸 서간문이다.

「나는 그저 있는 그대로의 나 자신일 뿐이고, 또 그렇게 되고자 합니다. 나는 지금 이 순간을 삽니다. 과거는 기억일 뿐이고, 미래는 기대에 불과합니다. 나는 살아 있음을 사랑합니다. 유행을 따르기보다는 변화와 새로움을 더 좋아합니다. 나쁜 것이 어떻게 나아졌는가에 대한 기록은 아직 없습니다. 나는 다만 어떤 것을 믿을 뿐이며 그것 외에는 아무것도 알지 못합니다.」

가끔 필자를 찾아오는 내담자들은 과거의 기억 때문에 아파하고 고통스러워한다. 그러나 과거는 이미 흘러갔고 미래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니 지금 이 순간 현재에 충실하라고 조언하곤 했다. 그런데 현재에 충실하라, 살아있음을 사랑한다는 말이 ‘구도자에게 보낸 편지’에 있었다.

“죽을 때까지 배우고, 현재를 사랑하고, 좋은 사람이 되기보다는 좋은 일을 하면서, 남을 이해하고 배려하려고 합니다.”

내가 옳다고 해서 내 생각을 타인에게도 강요할 수는 없다. 그러나 내가 나쁘지 않다면 다른 사람들도 그래 주었으면 좋겠단다.

“장애인은 도움이 필요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주는 것을 모르고 받는 것에만 익숙하다 보니 가끔은 이해충돌이 생기는 것 같습니다. 감사는 물론이고 이해도 배려도 없이 무조건 받기만 한다면 도움이 아니라 동정이나 시혜의 대상으로 전락하는 게 아닐까요?”

‘구도자에게 보낸 편지’에서 소로우는 ‘영혼이 썩지 않게 하는 방법은 수행밖에 없다’고 했다.

자신의 자리에서 열심히 사는 게 곧 수행일진대, 사는 날까지 자신이 놓지 말아야 할 것을 위해서 열심히 살아가시기를. <끝>

* 이복남 기자는 에이블뉴스 객원기자로 하사가장애인상담넷(www.gktkrk.net) 원장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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