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황 집사를 남편감으로 생각했기에 제일먼저 외할머니에게 소개시켰다.

“할머니는 나이차이가 많다고 했지만, 엄마는 욕심이 많아서인지 반대를 했습니다.”

어머니는 욕심이 많아서 그런지 사윗감으로 흡족하지 않았던 모양이다. 그는 어머니의 반대를 설득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해야 했다.

정은주씨의 결혼식. ⓒ이복남

“남편 집은 경남 김해인데, 그의 어머니는 좋다고 했습니다.”

시어머니는 지금도 그가 가면 예뻐한다고 했다.

남편이 가족들하고는 잘 지내고 있을까.

“시누이가 수어를 알아서 가족들의 이야기를 남편에게 전해주기도 하고, 저와 남편의 이야기를 시어머니에게 해주기도 해서 잘 지내고 있습니다.”

대구에서 결혼식을 하고 부산에서 살았다. 남편이 부산직업전문학교 제과제빵과를 나와서 빵집에 취업을 했기 때문이다.

“저는 집에서 살림을 하면서 아이를 낳고 여기저기 수어교육도 했습니다.”

아이 키우면서 어려움은 없었을까.

“대부분의 농아들이 듣지 못하기 때문에 밤에는 아이가 어릴 때 손목에 끈을 묶어 보기도 했는데 별로 소용이 없었어요.”

손에 감각마비가 와서 아이들이 울고 보채도 잘 모르는 경우도 생겨서 아이 양육은 그야말로 스트레스였다.

“남편이 출근하는 낮에는 제가 돌아이를 보고 남편이 퇴근하면 12시까지 남편이 보고 12시부터 새벽까지는 제가 보곤 했는데, 엄청 피곤하고 해서 많이 다투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지난 한 세월 속에서 아이 둘을 키웠다. 큰아들은 현재 10살이고 둘째딸은 8살이란다.

“아이가 울고 보채면 바로 달려가서 안아주고 싶은데 듣지 못하니 아이가 와서 알게 될 때는 정말 울고 싶었습니다.”

지금도 아이에게 여러 가지로 미안하고 가슴 아프단다. 아이들하고 의사소통은 가능하지만 마음속 깊은 대화를 나눌 수 없다는 것, 아이들에게 책 읽어주지 못할 때, 부부 또는 아이들하고 수어로 대화는 하지만 아이들의 학업에 도움을 주지 못할 때 등 그 고충은 여러 가지였다.

“시각장애인의 소원이 아이 얼굴 한 번만 볼 수 있었으면 하던데, 농아부부들도 아이들의 목소리 한 번 만 들어 봤으면 소원이 없겠습니다.”

그래도 아이들이 친구들 앞에서 엄마 아빠를 부끄러워하지 않고 떳떳하게 말하고 있어서 그나마 다행이란다.

“울산 한빛(농인)교회 **목사님에게서 한번 오라는 연락이 왔습니다.”

남편이 운전하는 승용차에 아이들을 데리고 울산으로 갔다. 울산 한빛교회는 농인과 가족 등 20~30명이 출석하는 작은 교회였다.

“목사님께서 저에게 그 교회를 맡아 보라고 했습니다.”

교회에서. ⓒ이복남

어떻게 할 것인가, 처음에는 많이 고민하며 하나님 앞에 간절히 기도했다. 그러다가 어차피 그는 사역자이므로 청각장애인들을 위해 교회를 운영해 보기로 했다.

그러나 울산 한빛교회는 작고 가난한 교회였다. ‘꽃들도’의 첫머리처럼 ‘이곳에 생명 샘 솟아나 눈물 골짝 지나갈 때에 머잖아 열매 맺히고 웃음소리 넘쳐나리라’를 믿으며 기도했다.

교회를 운영하다보니 교회운영 그리고 신학에 대해 공부를 더 하고 싶었다.

“김해에 있는 부산장신대학교 대학원에 입학했습니다.”

부산장신대학교 대학원 신학과는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통합) 위탁 과정으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위해 헌신할 주님의 일꾼인 목사 후보생을 양성하는 과정이다.

대학원을 졸업하면 목사가 될 예정일까.

“학교를 졸업하면 목사시험을 치고, 하나님이 원하시면 목사가 될 예정입니다.”

그러나 현재는 목사보다는 창업을 해서 돈을 벌고 싶단다.

왜, 무엇 때문에 돈을 벌고 싶은가?

“사례비 걱정 없이 순수하게 교회를 운영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돈을 많이 벌면 어려운 교회를 도와주고 싶습니다.”

남편이 부산시장상 받던 날. ⓒ이복남

현재 울산 한빛교회도 가난한 교회이므로, 큰 교회에서 조금씩 도와주고, 교인들의 헌금으로 약간의 사례비만 받고 있다고 했다.

현재 대부분의 큰 교회에는 농인부가 다 있는데, 왜 굳이 농인교회를 따로 운영하는 이유는 뭘까.

“큰 교회에는 다 농인부가 있지만, 기성교회에서 농인들은 그 교회의 한 파트일 뿐, 농인들이 그 교회 성도의 역할로 실질적으로 설 수가 없습니다.”

그는 농인들이 함께 어울려 예배보고 마음을 털어 놓을 수 있는 빛 같은 농인교회가 되기를 원한다고 했다.

“농인들이 행복한 교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농인들도 사회의 구성원으로 직장에서 일을 하고, 단란한 가정을 꾸리고 생활을 하지만 비장애인 사회에서는 잘 어울리지 못하고 겉돌기 마련이다. 서로 대화가 안 되기 때문에 대화가 되는 사람 즉 수어를 할 수 있는 농인들끼리만 어울리는 것은 아닐까 싶다.

“농인은 일반사회에서 청인들과 소통이 안 됩니다. 그래서 마음에 상처가 깊고 병이 많습니다. 마음의 병은 청인이 들어 줘야 하고 그 벽을 허물어줘야 하는데 그게 잘 안 되는 것 같습니다.”

정은주 전도사는 그런 농인들이 교회에서나 사회에서나 모두가 행복한 사람이 되면 좋겠다고 했다. 그래서 농인들이 현실적인 역경에도 불구하고 감사하고 인내하면서 빛이 되는 교회가 되기를 바란다고 했다.

교회에서 주일예배를 인도하실 때 수어로만 하는지, 아니면 말도 함께 하는지? 정은주 전도사는 말도 잘 하므로.

“예배는 수어로만 합니다. 말을 함께 하면 농인들에게 혼란이 생깁니다.”

그 대신 수어를 아는 사람이 그의 수어를 컴퓨터로 쳐서 문자로 알려 준단다.

정은주씨와 가족들. ⓒ이복남

대부분의 교회에서 점심을 제공하던데 그 교회에서는 어떻게 할까.

“처음에는 저 혼자 했는데, 요즘은 교인들이 돌아가면서 점심을 준비해서 예배가 끝나면 다 같이 식사합니다.”

그는 현재 부산 해운대구 재송동에 산다. 일주일에 두 번은 김해에 있는 부산장신대학교 대학원에 가서 공부를 하고, 일요일이면 아침이면 남편이 운전하는 승용차에 아이들과 함께 울산 한빛교회로 가서 예배를 본다.

“요즘은 너무 바빠서 다른 것은 돌아 볼 여지가 없습니다.”

정은주 씨는 매사에 긍정적이고 언제나 활달하게 잘 웃는다.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괴롭고 힘든 시절이 있었지만, 언제 그랬느냐는 듯 사람들에게 웃음바이러스를 전파하는 행복전도사 같다.

정은주 씨가 대학원을 졸업하고 훌륭한 목사가 되어 농인교회를 잘 이끌 수 있었으면 좋겠고, 아울러 그의 남편과 아이들에게 축복이 있기를. <끝>

* 정은주 씨와의 인터뷰는 그의 교회에서 수어를 배우며 통역하는 최소형 씨의 수어통역으로 이루어졌으며, 최소형 씨는 수어통역사 시험을 준비하고 있는데 이번 시험에 꼭 합격하기 바란다.

* 이복남 기자는 에이블뉴스 객원기자로 하사가장애인상담넷(www.gktkrk.net) 원장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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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웃이 행복하지 않는 한 나 또한 온전히 행복할 수 없으며 모두 함께 하는 마음이 없는 한 공동체의 건강한 발전은 기대하기 어렵다. 우리는 함께 살아가야 할 운명공동체이기 때문이다. 아름답고 건강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가진 자와 못 가진자,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평등하게 공유할 수 있는 열린사회를 건설해야 한다. 쓸모 없음을 쓸모 있음으로 가꾸어 함께 어우러져 나아갈 수 있도록 서로 사랑으로 용서하고 화합하여 사랑을 나눔으로 실천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이복남 원장은 부산장애인총연합회 사무총장을 역임하였으며 현재 하늘사랑가족상담실을 운영하고 있다. 하사가장애인상담넷www.gktkrk.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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