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병변장애 김재호(39세, 지체1급)가 7번째 개인전을 맞았다.ⓒ에이블뉴스

9세가 되던 해, 한강에서 “김밥을 사 오겠다”던 아버지는 끝내 돌아오지 않았다. 아버지 대신 찾아온 경찰에 의해 서울시립아동병원, 그리고 주몽재활원을 거쳐 대학 졸업장을 들고 사회로 나왔다. 하지만 사회생활은 만만치 않았다. 연이은 취업의 실패로 인생의 좌절까지 맛본 후에야 다시 붓을 잡았다. 운명과 같은 그림과 함께 이제는 롤러코스터 같이 오르락내리락하는 인생을 즐기고 있다.

뇌병변장애 김재호(39세, 지체1급) 작가에게 그림은 “하나뿐인 친구이자, 인생의 동반자”다.

김 작가는 주몽재활원에서 생활하던 고등학생 시절, 보육교사의 소개로 화실에 있던 미술 선생님을 만나 그림을 처음 접했다. 2000년 초, 미술학도를 꿈꾸며 미대 진학을 꿈꿨지만 시설 사정으로 국립대인 한국재활복지대학 애니메이션과에 진학했다. 2년 후 졸업장을 받은 그는 시설이 아닌 지역사회에서의 제2의 인생을 꿈꿨다.

“대학을 졸업하고 재활원 6개월 자립 프로그램을 거쳐, 탈시설 했습니다. 어떻게든 돈을 벌어보려고 갖가지 고심을 해봤지만, 여러 가지 벽에 막혀 인생의 첫 실패를 맛봤습니다.”

2004년 전공을 살려 웹디자이너로 취업해보려고 구인 구직란에 등록했지만, 이력서마저도 통과되지 못했고, 직업훈련도 받았지만 ‘제자리’였다.

결국 구직활동 중 틈틈이 그렸던 그림을 업으로 택했다. 당시는 어쩔 수 없던, 일종의 도피수단이었다. 실패를 맛보고 다시 그림을 그려야 하는 것이 그에게는 큰 아픔이었지만, 이제는 인생의 동반자가 됐단다.

“지금 그림 때문에 울고, 웃고, 그림 때문에 행복함을 얻고 있습니다. 재활원에 있을 때는 재활원 원장님도 계시고, 그 속에서 보호받으면서 인생을 배워갔죠. 나와서 자립하다 보니 외롭긴 하지만, 그림을 통해 인생을 다시 느끼고 있습니다.”

어린 시절 아픔을 담아 그린 ‘이별’ 작품.ⓒ김재호

자립 당시, 미술 선생님으로부터 지원받은 금액으로 임대아파트에 둥지를 꾸려 기초생활수급자로 살아가고 있는 김 작가는 경제적 어려움에 시달려 밥도 제대로 먹지 못하던 순간도 있었다. 고생 하나하나가 모여 지금의 김 작가의 작품 활동을 이뤄냈다.

김 작가는 2009년 제1회 개인전을 시작으로, 10년이 되는 올해 7번째 개인전을 마련했다.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이 지원하는 ‘2019 장애인 예술가 창작지원 사업’ 일환으로, 1차로 오는 31일까지 서울 잠실창작스튜디오 하늘연 갤러리, 2차로 10월 9일부터 22일까지 서울 종로구 인사동 JH갤러리에서 각각 열리는 것.

이번 전시는 ‘물감의 다변화 Part 2 흩어짐’이란 주제로, 각각의 색이 다른 튜브 물감을 은유적 표현으로 형상화해 뭉치고 흩어지며 흘러내리는 물감의 다양한 변화들을 인간과 사회의 관계 속에 대입해 상징화해온 김재호 작가의 3부작 전시 중 2번째 시리즈다.

2016년에는 물감 고유의 모습을, 2017년에는 뭉쳐져 있는 모습을, 2019년에는 흩어진 모습, 이후에는 흘러내리는 모습을 진행할 예정이다.

2011년 3회 개인전 때 우연히 그렸던 ‘프로시안 블루’ 작품. 이 작품을 시작으로 물감 시리즈를 진행 중이다.ⓒ김재호

최근 김 작가의 작품에는 ‘물감’이 빠지지 않는다. 2011년 3회 개인전 때 우연히 그렸던 ‘프로시안 블루’라는 작품을 문득 보다 “물감도 생산하고 쓰고 버려지는 과정에서 사람 사는 세상과 비교해봤을 때 똑같다”는 결론을 접했단다.

화가로서 자주 접하는 물건인 물감을 그대로 그려보고, 좀 더 나아가 추상적인 표현을 그렸더니, 사람들의 반응이 좋아 물감 시리즈를 이어오고 있다.

“이번 전시인 ‘물감의 흩어짐’은 팝콘을 보고, ‘물감이 팝콘처럼 튀겨져 나오면 어떨까’ 라는 생각에 캔버스에 바로 옮겨봤습니다.” 이번 전시회에는 ‘기타’ 등 총 17개의 작품을 만나볼 수 있다.

김재호 작가의 작품 ‘축음기’, 아래는 ‘매직’.ⓒ김재호

경제적 어려움에 시달리는 장애예술인에게 장애예술인지원법 제정을 통해 창작비, 공간 등의 지원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김 작가 또한 창작 공간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2008년부터 2012년까지, 또 2016년부터 1년간 서울문화재단 잠실창작스튜디오 입주작가로도 활동해왔던 그에게 창작 공간은 너무나 절실하기 때문이다.

“인프라가 갖춰줘야 좋은 작가가 배출되고 좋은 작품이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잠실창작스튜디오는 작가님들과 교류를 통해 그림 내용 면으로도 풍부해지고 작가로 펼쳐나갈 기회가 됐던 곳이었어요.”

김재호 작가가 7번째 개인전이 열리는 잠실창작스튜디오 하늘연에서 자신의 작품을 보고 있다.ⓒ에이블뉴스

김 작가는 2016년부터 이어온 ‘물감’ 시리즈를 무사히 끝낸 후, 물감 시리즈의 작품집을 내는 것이 목표다. 또 다른 작품을 위한 고민도 이어갈 계획이다.

“저는 일상생활에서 모양 같은 것을 보며 작품의 영감을 많이 떠올려요. 앞으로 더 좋은 작품을 그려서 개인전을 10번 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한편, 김재호 작가의 7번째 개인전 ‘물감의 다변화 Part 2 흩어짐’ 개막식은 오는 22일 오후 12시부터 서울시 송파구 올림픽로 25 잠실창작스튜디오 하늘연에서 개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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