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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땅에서 장애인으로 산다는 것은

지체장애 1급 송성민 씨의 삶 - ②

에이블뉴스, 기사작성일 : 2019-04-24 15:42:10
아버지는 피복 공장을 하셨는데 어찌 된 일인지 사업이 망했다. 그래서 아버지는 집에 들어앉았고 그 대신 엄마가 밖에서 식당을 했다.

아버지가 집에 있고 엄마가 밖에서 돈을 벌기 시작했지만, 아버지가 요즘 같은 가정주부는 아니었다. 아버지가 집안일은 손도 꼼짝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집안 살림은 누가 했을까.

“근처에 사시는 외할머니가 다 하셨고, 엄마와 아버지는 얼굴을 맞대는 일도 거의 없었습니다.”

아버지가 집에 계시기 전에는 잠시 가정교사가 있었다. 그는 그전부터 더하기 빼기 등 산수의 기본은 알고 있었기에 여자 선생은 그에게 구구단을 가르쳤다.

에버랜드에서.  ⓒ이복남 에이블포토로 보기 에버랜드에서. ⓒ이복남
얼마 후부터 아버지 사업이 망하고 아버지가 집안에 들어앉았지만, 집안일은 안 했고 그 대신 아버지가 하는 일이 하나 있었으니 그에게 공부를 가르치는 일이었다. 아버지는 그에게 국어와 산수를 가르치고 한문도 가르쳤다.

“그때 신문에는 한문이 있었는데 아버지가 한문을 가르쳐 주신 덕에 신문을 읽을 수가 있었습니다.”

나이가 들자 신문 기사를 가지고 곧잘 아버지와 토론을 했다. 아버지에게 배운 지식이 학교에 다닌 것보다는 더 도움이 된 것 같았다. 신문에 실린 각종 사건 사고에 대해서 아버지와 토론을 벌임으로써 사회를 바라보는 안목을 키웠던 것 같다.

“아버지는 일제 강점기 시대에 향수를 가지고 계셨기에 일본 사람이 다 나쁜 것은 아니라고 했고, 저는 반일이기에 식민지 잔재에 대해서 역설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아버지와의 토론에서 결론은 없었다. 서로의 사고와 철학이 다름을 인정했던 것이다.

“제도권 교육은 못 받았기에 사회생활이나 사회적 인맥 그런 것은 없지만 사회를 바라보는 안목은 키웠던 것 같습니다.”

그는 칸트와 사르트르를 읽었고 헨델의 메시아와 슈베르트의 겨울 나그네를 들으며, 김소월과 김수영에 심취했다.

좋아하는 작품이나 작가는 누구였을까.

“채만식의 탁류를 좋아했고 이문열도 좋아했습니다.”

음악을 듣고 철학과 시와 소설을 읽으며 일기를 썼고 그리고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글을 어떻게 썼을까.

“컴퓨터도 없던 시절이라 연필을 발가락에 끼어서 썼습니다.”

문학가가 되고 싶었다. 그래서 열심히 책을 읽고 부지런히 글을 썼다. 그런 그가 보기 딱했는지 어머니가 시장에서 책을 몇 권 사 오셨다. 사주관상 등 동양철학 관련 책이었다.

“엄마가 언제까지 너를 돌봐 줄 수도 없고, 너도 먹고 살라카믄 이런 거라도 연구해 봐라.”

어머니가 책을 사다 주신 이유였지만 사주관상은 그의 취향이 아니었기에 관심도 없었다. 그래서 어머니가 사다 주신 책은 다락에 처박아 두었다.

다락에는 어떻게 올라갔을까.

“그때는 다락에 올라갈 수가 있었지만, 지금은 못 올라갑니다.”

용인 민속촌에서 아내와 함께. ⓒ이복남 에이블포토로 보기 용인 민속촌에서 아내와 함께. ⓒ이복남
그럴 즈음 가톨릭에 귀의했다. 예전에 어머니께서 아들의 장애를 치유해 달라는 간절한 기도를 하기 위해 잠시 감리교를 다니셨는데 그때 쓰시던 성경(신약)이 책꽂이 한쪽 구석에 먼지를 인체 꽂혀 있었다. 그는 무슨 이유에선지 그것을 하루에 1장씩 꼬박꼬박 몇 년에 걸쳐 세 번(마태복음에서 요한계시록까지)을 읽었다. 그리고 난 후 5대째 가톨릭 신앙을 이어 온 큰집 형을 만나 성당으로 안내받아 세례를 받게 되었다. 그의 영세명은 가브리엘이다.

그는 여전히 아버지와 토론을 하고 책을 읽고 음악을 들으며 글을 썼다. 몇 군데 신춘문예에 응모도 했으나 본선까지만 오르고 입선은 못 해 등단의 꿈을 이루지는 못했다.

“소설을 쓰려면 사회적 경험도 중요하고 여행도 많이 다녀야 할 텐데 저는 그런 것도 없고 학교도 못 다녀 봤고, 아무래도 내 길이 아닌 것 같았습니다.”

문학은 그의 길이 아닌 모양이었다. 절망감이 들었다. 이제 무얼 해서 먹고살아야 하나.

“그때 문득 생각난 것이 오래전 어머니가 사다 주셨던 사주관상 관련 책이었습니다.”

다락에 올라가서 책을 꺼내 와서 사주관상에 관한 공부를 시작했다. 혼자 끙끙대며 공부를 해봤으나 혼자 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그러던 차에 장애인 김헌일 씨가 사주관상을 하고 있다는 것을 우연히 알게 되었다. 김헌일 형은 지금은 이미 고인이 되었지만, 그때는 제법 잘 나가던 시절이었다.

“형을 찾아갔더니 같은 장애인이라 잘 지도해 주셨습니다.”

형님 책을 빌려서 혼자 공부하면서 틈틈이 형에게 지도를 받은 세월이 3년이었다.

“형이 이제 손님을 받아도 되겠다고 했는데 그 전에 해야 할 일이 있었습니다.”

에버랜드에서 가족과 함께. ⓒ이복남 에이블포토로 보기 에버랜드에서 가족과 함께. ⓒ이복남
그는 가톨릭 신자였다. 동양철학은 가톨릭의 가르침에 위배되는 사상이었다. 그는 사주관상을 공부하면서도 고민하였다. 형이 이제 손님을 받아도 되겠다고 하자 그가 해야 할 일은 신부님을 찾아가서 고해성사를 하는 일이었다.

“저는 학교도 못 다녔고 배운 것도 없는 장애인이라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습니다. 단 한 가지 동양철학을 하려고 하는데 어떻게 해야 할까요?”

신부님 : “그 또한 가브리엘에게 준 달란트일 수도 있으니까 열심히 해 보세요.”

“신부님이 못하라 하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정말 멋지지 않습니까?”

신부님의 그 말씀에 용기백배하여 개업을 했다. 서른두 살 무렵인데 금곡동 집에서 시작하였다.

“손님들은 두 가지 타입이었는데, 어떤 사람은 반응이 없고, 어떤 사람은 정말 용하다고 했습니다.”

용하다는 사람이 늘어나자 자신이 생겼다. 몇 달 만에 해운대 오션타워에 사무실을 하나 얻어서 본격적으로 손님을 받기 시작했다. 용하다는 입소문을 타면서 손님이 많았다. 장사가 잘되었던 것이다.

“손님 중에는 사주궁합을 보는 사람들이 많아서 욕심이 생겼습니다.”

사주궁합을 잘만 하면 시너지효과가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결혼정보회사를 차렸다. 그동안 사주관상을 보면서 번 돈을 전부 쏟아 부었고 여기저기 약간의 빚을 얻기도 했다. 그런데 사업은커녕 사회 경험도 없는 재가 장애인으로서 결혼정보회사의 운영은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몇 번의 이벤트를 했는데 유료회원이 별로 없어서 자금회전이 되지 않아 적자를 면치 못했다.

“3년 만에 문을 닫았습니다.”

이리저리 빚잔치를 하고 나니 140만원이 남았다. 김헌일 형이랑 친구 몇 명을 불러서 제주도 여행을 갔다. 공항 근처에 여장을 풀고 용두암으로 갔다.

“용두암 잘 아시지요? 용두암에서 좀 멋지게 죽고 싶었습니다.”

용두암. ⓒ한국관광공사 에이블포토로 보기 용두암. ⓒ한국관광공사
용두암은 잘 알려진 관광지로 제주시 용담동 해안에 있다. 용두암 부근은 높은 절벽을 이루고 있는데 용두암을 옆에서 보면 용머리 모양을 하고 있다. 용이 바닷속에서 지상으로 솟아오르는 모습이라 하여 용두암이라고 한다.

전설에 의하면 제주 용담동 바다 깊은 곳에 용이 되고 싶은 이무기가 살고 있었다. 천년을 기다려 용이 되어 승천하려는 순간 한라산 신령이 쏜 화살에 맞아 몸체는 물에 잠기고 머리만 남아 울부짖고 있다고 한다. 또 다른 전설은 용 한 마리가 한라산 신령의 옥구슬을 훔쳐 달아나자 화가 난 한라산 신령이 활을 쏘아 용을 바닷가에 떨어뜨렸는데 몸체만 바닷속에 잠기고 머리는 울부짖는 모습으로 굳어져 남아 있다고 한다.

그러나 그는 용두암 근처에도 못 가 봤다. 그 당시 휠체어를 탄 장애인이 용두암으로 갈 수 있는 길은 어디에도 없었다.

“중증장애인은 죽는 것도 힘들었습니다. 흐흐흐.”

다시 숙소로 돌아와 형과 밤새도록 술을 마시며 마음대로 죽을 수도 없다고 장애인의 신세를 넋두리했다.

“죽을 용기가 있다면 살 용기도 있을 테니, 죽을 방법만 연구하지 말고 잘 사는 법을 연구해 봐라.”

형의 격려로 다시 살아보기로 결심하고 금곡동 집으로 돌아 왔다. 한 푼 없는 빈털터리가 되었으니 동사무소를 찾아갔다. 국민기초생활보장 수급자를 신청했다. 동사무소 담당자는 당신 같은 사람 많으니까 될 수 있으면 표 안 나게 조용히 살라면서 수급자로 만들어 주었다.

그렇게 수급자로 살면서 ‘뇌성마비장애인청년회 민들레’에 가끔 나가곤 했다. 일 년쯤 지났을 때 청년회에서 장애인 포럼이 있다며 나와 보라고 했다. 그 포럼이 그에게는 운명의 순간이자 새로운 도약의 시간이기도 했다.

“지금은 고인 된 춘해대학 이경희 교수가 강사로 나왔는데, 마지막에 비디오 하나를 보여 주었습니다.”

비디오는 KBS의 다큐멘터리였는데 ‘중증장애인의 일본 자립생활 체험’이었다. 내용은 우리나라 최초로 피노키오자립생활센터를 운영하는 정만훈 소장의 이야기였다.

가족과 함께 한 망중한. ⓒ이복남 에이블포토로 보기 가족과 함께 한 망중한. ⓒ이복남
바로 이거다! 대부분의 장애인이 부모님이 돌아가시면 시설로 들어간다. 시설로 들어가지 않고 혼자 자립할 수만 있다면 그 보다 좋을 수가 없다. 다큐멘터리를 보니까 장애인을 아침부터 저녁까지 유급으로 케어를 해주고 있었다. 일본에 가면 혼자 자립할 수 있는 그런 방법을 배울 수 있을 것 같았다.

“2003년 3월, 김헌일 형과 일본의 자립생활센터를 연결시켜 줄 박찬오 소장(현 서울장애인자립생활센터 소장)과 함께 자비로 일본 연수를 갔습니다.”

4박 5일 동안 일본 최초의 자립생활센터인 휴먼케어협회 등 3곳을 둘러보았고 나카니시, 노구치, 오카야마 소장 등 일본 자립생활 운동의 선구자들도 만나 일본의 자립생활 운동사 등을 보고 듣고 배웠다.

장애인을 유급으로 케어를 해준다는 것은 생각지도 못한 일이었다. 그리고 처음 보는 전동휠체어는 너무나 신기했고 부러웠다. 휠체어가 혼자서 가다니 놀라울 뿐이었다.

“우리나라는 활동보조 시간을 등급에 따라서 배정하는데, 일본은 자신이 원하는 시간을 계획서로 제출하면 그대로 다 인정해 주었습니다.”

모든 것을 장애인이 결정하고 장애인의 선택을 우선시했다. 개호 서비스(일본의 활동보조)는 기존의 공급자 중심이 아닌 장애인의 선택과 결정에 따른 철저한 ‘이용자 중심의 서비스’라는 것도 놀라웠다.

“모든 것이 자신의 라이프 스타일에 맞춰서 서비스를 받을 수 있겠구나 싶었습니다.”

그에게는 자립생활이라는 용어조차 생소하던 시절이었다. 부산으로 돌아오자마자 자립생활 스터디그룹을 만들어 중증장애인 당사자들과 자립생활 이념과 철학을 공부하기 시작했고, 서울과 광주에 이어 부산 최초의 자립생활센터인 ‘상화장애인자립생활센터’를 2003년 7월 18일 개소하였다.<3편에 계속>

* 이복남 기자는 에이블뉴스 객원기자로 하사가장애인상담넷(www.gktkrk.net) 원장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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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복남 기자 (gktkrk@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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