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성(樂聖)이라 불리는 서양 고전 음악가 루트비히 판 베토벤(1778년 ~ 1827년)은 청각장애인이었다. 그럼에도 베토벤은 9개의 교향곡을 비롯하여 비창 소나타, 월광 소나타 등 주옥같이 많은 곡들을 작곡하고 연주했다.

교향곡 9번을 초연할 때 아무것도 들리지 않던 베토벤은 관중들의 박수조차 듣지 못했고, 누군가가 그를 객석으로 돌려세워 관중들이 열광적으로 박수치는 모습을 보고는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소리를 듣지 못하는 베토벤은 피아노 소리를 조금이라도 감지하기 위하여, 피아노 공명판에 막대기를 대고 입에 물어서 그 진동을 턱으로 느꼈다고 한다.

듣지 못하는 사람이 어떻게 첼로를 연주할까? 첼로는 가슴에 안고 연주하는 악기이므로 가슴의 떨림으로 연주한다고 했다. 필자도 알고는 있었지만 실제로 첼로를 연주하는 모습은 보지 못했었다.

학생들의 질문을 받는 박관찬씨. ⓒ이복남

부산솔빛학교에서 지난 29일 자유학기제 수업으로 ‘이야기가 있는 음악여행’이라는 제목으로 시청각장애인 박관찬 씨를 초청했다. 박관찬 씨는 수어통역사 A 씨와 함께 왔는데 필자가 동행했다.

부산솔빛학교는 사상에 있는 지적장애 및 지체장애 특수교육기관이다. 다목적실에서 강의를 했는데 자유학기제 수업에 참여한 학생들은 중학생 30여명이라고 했다.

박관찬 강사는 듣지 못하는 저시력인이다. 대부분의 농인은 듣지 못해서 말도 못하는 농아(聾啞)지만 박관찬 씨는 말은 할 수 있다. 그래서 박관찬 강사는 마이크를 들고 PPT(파워포인트) 화면을 보면서 강의했는데 화면은 수어통역사 A 씨가 컴퓨터로 조정해 주고 있었다. 아마도 박관찬 씨와 A 씨는 사전에 입을 맞춰보는 예행연습을 한 것 같았다.

박 강사는 헬렌 켈러 이야기를 하면서 자신도 앞은 잘 보이지 않고 귀는 아예 들리지 않는다며 자기소개를 하고는 질문 있느냐고 물었다. 몇 명이 손을 들었고 그 중에 두 명이 앞으로 나가서 박 강사 왼손 손바닥에 뭐라고 썼다.

첼로에 관한 설명. ⓒ이복남

박 강사는 어릴 때부터 음악을 좋아해서 피아노를 배웠으나 점점 귀가 들리지 않아서 피아노는 그만 두었다고 했다. 그러다가 우연히 일본영화 ‘굿바이’를 보고 첼로에 반해서 정말 어렵게 첼로를 배우게 되었다고 했다.

그도 처음에는 안 들리는데 첼로를 배울 수 있을까 걱정을 했지만 첼로 선생을 만나 보니 그의 걱정은 기우에 불과했다. 첼로는 가슴에 안고 켜는 악기이므로 첼로의 그 떨림이 가슴에 닿았다는 것이다.

“문을 두드릴 때 진동이 있는 것처럼 첼로를 연주하면 영혼의 떨림이 있습니다.”

그가 처음 첼로를 배웠을 때처럼 첼로의 구조와 각 명칭 그리고 활 잡는 법과 4선 위의 운지법 등을 하나하나 설명했다.

“첼로를 배우면서 집에서 연습을 해야 되는데 이웃에서 시끄럽다고 했습니다.”

악기소리가 너무 시끄러워요. ⓒ이복남

하는 수 없이 공원 벤치에서 연습을 했다. 그 때 연습한 노래가 ‘10월의 어느 멋진 날에’이다. 나중에 연습장면을 친구에게 보여 줬더니 그는 듣지 못했지만 매미소리가 들린다고 했다. 가을이 지나 겨울이 되니까 연습할 곳이 없었다.

첼로는 오른손으로 활을 잡고 켜면서 왼손으로 운지를 해야 되는데 겨울이면 날씨가 추워서 밖에서 연습을 할 수가 없었다. 그는 집집마다 다니면서 사정을 설명했다.

“저는 눈도 잘 못 보고 귀도 안 들리는 시청각장애인인데 겨울이라 밖에서 연습할 데가 없으니 낮에 한 시간만 연습하게 해 주세요.”

공원 벤치에서 연습하던 모습. ⓒ이복남

그렇게 해서 얻은 이웃들의 양해 하에 집에서 한 시간씩 연습을 했다. 박관찬 씨가 첼로를 가슴에 안고 한 음 또 한 음 가슴의 떨림으로 얼마나 많은 시간동안 반복연습으로 첼로를 배웠을 것을 생각하니 가슴이 먹먹했다.

강의를 듣는 학생들은 열심히 듣는 아이들도 있고 소리를 지르거나 딴 짓을 하는 아이 등 각양각색이었다.

한 시간(40분) 수업이 끝날 무렵 한 학생이 첼로는 언제 연주하느냐고 큰 소리로 물었다.

10분 쉬고 두 번째 강의는 와인색 가방에서 첼로를 꺼내는 것으로 시작했다.

“첼로는 모두 네 곡을 연주할 예정인데 제가 못 듣기에 잘못 연주할 수도 있으므로 이해 바랍니다.”

첼로 연주 모습. ⓒ이복남

그가 첫 번째로 연주한 곡은 ‘어머님 은혜’였다. 그의 고향은 경북 포항인데 지금도 어머니를 생각하면 눈물이 난다고 했다. 그가 연주를 하자 학생들은 ‘어머님 은혜’를 따라 불렀다. 두 번째 곡은 오즈의 마법사에 나오는 ‘오버 더 레인보우’였다. 학생들은 이 곡도 아는 모양이었다. 세 번째 곡은 ‘10월의 어느 멋진 날에’였고, 네 번째 곡은 ‘마법의 성’이었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는 안 된다고 생각하지 마세요. 안 된다는 것은 되게 만들면 됩니다.”

그가 듣지 못하는데 첼로를 연주하게 될 줄을 누가 알았겠는가. 누구든지 하면 다 된다. 열심히 재미있고 즐겁게 그리고 자신 있게 살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마지막 강의. ⓒ이복남

박관찬 씨의 강의는 잘 한 것 같았다. 첼로 연주 솜씨도 그런대로 괜찮았고 강의를 듣는 학생들의 태도도 좋았다

박관찬 씨를 초청했던 솔빛학교 선생도 강의는 별 탈 없이 무난했다며 흡족해 했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박관찬 씨가 듣지 못하기 때문에 학생들이 질문을 할 때는 손을 들고 앞에 나가서 박관찬 씨의 왼손 손바닥에 써 주었는데, 박관찬 씨가 그 질문 내용을 객석에게 알려 주면서 답을 해 주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한 학생이 손을 번쩍 들고 요즘 신세대처럼 큰소리로 “좋아요.”를 외쳐서 모두가 다 함께 웃기도 했다.

* 이복남 기자는 에이블뉴스 객원기자로 하사가장애인상담넷(www.gktkrk.net) 원장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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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웃이 행복하지 않는 한 나 또한 온전히 행복할 수 없으며 모두 함께 하는 마음이 없는 한 공동체의 건강한 발전은 기대하기 어렵다. 우리는 함께 살아가야 할 운명공동체이기 때문이다. 아름답고 건강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가진 자와 못 가진자,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평등하게 공유할 수 있는 열린사회를 건설해야 한다. 쓸모 없음을 쓸모 있음으로 가꾸어 함께 어우러져 나아갈 수 있도록 서로 사랑으로 용서하고 화합하여 사랑을 나눔으로 실천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이복남 원장은 부산장애인총연합회 사무총장을 역임하였으며 현재 하늘사랑가족상담실을 운영하고 있다. 하사가장애인상담넷www.gktkrk.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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