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간조는 저녁에 출근하고 주간조는 새벽에 출근했는데 어느 날 새벽을 출근을 해서 차를 몰고 나가는데 머리가 아팠다. 머리가 아프다고 했더니 동료는 좀 쉬었다하자고 했다.

“며칠 사이에 머리가 몇 번이나 아팠는데 좀 있으면 금방 나았습니다.”

지난 12월에 회사에서 신체검사를 했는데 콜레스테롤 수치가 높다고 재검사를 받으라고 했다. 그러나 바쁘다는 핑계로 차일피일 하고 있던 2008년 1월이었다. 퇴근하려고 회사에 가니 00아파트에서 폐비닐 수거가 덜 되었다고 하니 가서 좀 수거해 오라고 했다.

“1톤 트럭을 몰고 나갔는데 머리가 어찔했지만 금방 좋아졌습니다.”

발달장애아 도우미 김영탁 씨. ⓒ이복남

00아파트에 가서 폐비닐을 수거해서 회사에 내려놓고 12시 쯤 차를 몰고 집으로 갔다. 겨울방학이라 큰아들이 집에 있었는데 차에서 내리는 아버지를 보더니 “아버지 술 드셨어요?” 하고 물었다. “술은 무슨 술 피곤해서 그런갑다.”

큰아들은 점심식사를 하라고 했지만 작은 아들이 2시쯤 오는데 오면 같이 먹으려고 기다렸다. 둘째 아들이 와서 일어나려니까 이미 왼쪽은 마비가 와서 일어날 수가 없었다.

“아는 게 병이지요. 고향에서 중풍은 한의원에서 고친다고 알고 있었습니다.”

큰아들 등에 업혀서 택시를 타고 근처 한의원으로 갔다. 한의사가 그를 살펴보더니 고개를 저으며 큰 병원으로 가라고 했다. 다시 택시를 타고 찾아간 곳이 양정에 있는 동의의료원이었다.

의사는 얼마나 됐느냐고 물었다. 2시간 이내면 약물로 해 볼 수도 있지만 2시간이 지났다면 수술을 해야 된다고 했다. 수술이라니……. 그가 의식은 남아 있었다.

“머리를 따개는 수술은 하고 싶지 않아서 2시간이 안 되었다고 거짓말을 했습니다.”

그는 수술은 하지 않았고 약물로 치료 했는데 왼쪽은 완전 마비가 되고 말았다.

“그 때 수술을 했으면 이러지는 않았을지도 모르지요.”

병원에 3개월쯤 입원해 있었다. 큰아들은 고3이고 작은 아들은 고2인데 병원비도 없었다. 입원해 있는 동안 주변 사람들의 이런저런 조언으로 주민센터에서 수급자도 만들어주고 병원비도 긴급지원비로 해결해 주었다.

청소회사에 다닐 때는 4대 보험을 넣고 있었으나 산재가 안 된다고 했다. 산재가 안 된다니 너무 억울해서 노무사에게 의뢰를 했다.

“기왕증이 있어서 안 된답니다.”

점촌 있을 때부터 혈압도 높았고 당뇨도 있었다. 지난 12월 신체검사에서도 그렇게 나왔다는 것이다.

기왕증(旣往症)이란 과거에 치료를 받은 병력(病歷)이다. 여기서 기왕증이란 김영탁 씨가 청소회사에서 산재에 가입하기 전에 이미 고혈압이나 당뇨가 있었다는 것이다.

“사실 결혼 2~3년이 지나자 퇴근해도 집에 들어가기가 싫어서 이 친구 저 친구 불러내서 날마다 술에 절어 살았습니다.”

지체장애 3급을 받았다. 예전에 다니던 청소회사에서 경비원은 할 수 있겠느냐는 문의가 왔다. 당연히 한다고 했다. 한 달에 한 번 신경외과에 다녔는데 내과도 같이 다니면서 청소회사 경비원을 했다.

“몇 년 지났을 때 내과의사가 신장내과가 생겼으니 그리 한 번 가보라고 합디다.”

김영탁 씨 오른팔의 혈관 접근로. ⓒ이복남

한 달에 한 번 신경외과에 가는데 며칠 전부터 얼굴이 붓고 푸석했다. 그동안 신경외과에 다니면서 내과에도 다녔는데 그렇다면 내과의사가 다른 병원에라도 가보라고 하지 신장내과가 생겼다고 그리 가보라고 하다니…….

“괘씸한 생각이 들었지만 의사가 시키는 대로 신장내과로 갔습니다.”

그런데 그를 진찰한 신장내과 의사는 청천벽력 같은 말을 했다.

“당장 투석 안하면 아저씨 죽어요.”

그에게 죽음이 두려울 것이 있겠는가마는 죽으려면 그 때(점촌) 죽었어야지 지금 와서 이렇게 죽는단 말인가.

신장내과에서는 당장 투석이 필요한데 혈관 확장술을 안 했으므로 목을 뚫어야 된다고 했다. 하는 수 없이 목을 뚫어서 투석을 했다. 일주일에 두 번 씩은 투석을 하러 오라고 했다. 그러면서 팔에 혈관 확장술을 받으라고 했는데 그 병원에서는 안 되므로 다른 병원에서 해 오라고 했다.

만성신부전 등으로 콩팥의 기능이 떨어져 체내의 노폐물을 배설하지 못하는 경우 혈액 투석을 해야 되는데 혈관 확장술이란 혈액 투석 환자들에게 투석을 할 수 있도록 만든 혈관 접근로인데 동정맥루라고도 한다. 동정맥루 수술은 혈관수술을 전문으로 하는 외과의사가 국소 마취를 하고 피부를 절개하여 동맥과 정맥을 연결한다. 응급 투석의 경우 쇄골에 카데터를 삽입하여 투석 한다.

그는 다른 병원에서 왼쪽 팔목에 혈관 접근로를 만들었다. 그런데 그의 혈관이 구부러져 있어서 안 된다고 했다. 다시 왼쪽 팔꿈치 위에 새로 만들었다. 그래도 안 된다고 했다. 이번에는 오른쪽 팔목에다 시술을 했다. 오른쪽 팔목은 괜찮다고 했다.

“그러면서 서너 달이 걸렸는데 그동안 목에 관을 꽂아놓고 투석을 했습니다.”

혈액 투석을 하면서 경비원 자리도 날아갔다.

“처음에는 일주일에 두 번씩 받았는데 요즘은 세 번씩 받습니다.”

아침 일찍 버스를 타고 지하철로 갈아타고 다시 병원 가는 셔틀버스를 타고 가서 9시쯤 투석을 하기 시작하는데 4시간쯤 걸린다고 했다. 주사 바늘 찌를 때만 따끔하고 투석 할 때는 아프지는 않는데 4시간 동안 침대에 혼자 누워 있어야 하므로 지루하다고 했다.

“개인용 텔레비전이 다 있어서 텔레비전을 보고 있습니다.”

그는 화·목·토요일에 투석을 하고 있는데 20병상이 다 차는 것 같다고 했다.

혈액투석하는 김영탁 씨. ⓒ이복남

투석비용은 병원마다 약간씩 차이가 나는데 대략 15만 원 정도이다. 처음에는 수급자라 투석비가 무료였다. 그런데 아들들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사회활동을 하면서 수급자에서 탈락했다.

“제가 한 번에 15만원을 무슨 수로 충당을 합니까? 그래도 아들이 부양의무자라서 어쩔 수가 없다는데 어쩝니까?”

지금은 희귀난치성질환으로 등록을 해서 무료로 투석을 받고 있는데 점심은 병원에서 준단다. 수급자도 떨어지고 아들만 바라보고 살 수가 없어서 동사무소에 가서 사정했더니 ‘장애인 일자리 창출’로 투석을 안 가는 이틀은 복지관에서 발달장애아 도우미를 하고 있단다.

그의 얼굴을 보니 기미인지 주근깨인지 얼굴이 얼룩덜룩했다. 얼굴이 왜 그러세요? 죄송하지만 안 물어 볼 수가 없었다.

“작년부터 얼굴과 손발에 여드름처럼 나더니 손발은 낫던데 얼굴은 이렇게 되네요.”

피부과에도 여러 군데 가 봤지만 투석 후유증이 아닌가 하더란다. 그래서 이제는 그냥 그러려니 한단다.

“처음에는 잘 걷지도 못하고 자꾸 넘어졌습니다.”

내 팔자가 왜 이러나 싶어서 한탄도 하고 울기도 많이 울었단다. 그러나 자신이 살아 온 길을 되돌아보면 술로 세월을 보내다가 당뇨와 고혈압이 온 걸 알면서도 그 길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것이다. 어쩌면 첫사랑에 대한 아련한 추억 때문인지도 모른다.

“운명은 타고 나는 거라고 했는데 모두가 제 팔자겠지요.”

이렇게라도 살아있는 게 그래도 자식들에게는 낫지 않겠나 싶어서 죽는 날까지 열심히 살려고 노력한단다. 그는 현재 전셋집에서 택배 일을 하는 아들 둘과 함께 어렵게 살고 있어서 임대아파트라도 신청해 보라고 했다.

운명은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개척하는 것이고 진심으로 최선을 다한다면 운명조차도 바꿀 수 있다고 한다. 김영탁 씨의 여생이 또 어떻게 바뀔지 알 수 없지만 열심히 살 되 좀 더 편히 살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끝>

* 이복남 기자는 에이블뉴스 객원기자로 하사가장애인상담넷(www.gktkrk.net) 원장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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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웃이 행복하지 않는 한 나 또한 온전히 행복할 수 없으며 모두 함께 하는 마음이 없는 한 공동체의 건강한 발전은 기대하기 어렵다. 우리는 함께 살아가야 할 운명공동체이기 때문이다. 아름답고 건강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가진 자와 못 가진자,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평등하게 공유할 수 있는 열린사회를 건설해야 한다. 쓸모 없음을 쓸모 있음으로 가꾸어 함께 어우러져 나아갈 수 있도록 서로 사랑으로 용서하고 화합하여 사랑을 나눔으로 실천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이복남 원장은 부산장애인총연합회 사무총장을 역임하였으며 현재 하늘사랑가족상담실을 운영하고 있다. 하사가장애인상담넷www.gktkrk.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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