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반짝 햇빛을 보았으나 다시 먹구름이 밀려 왔다.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 하고 있을 때 친구를 만나 한 줄기 빛이 보았다.

“우리 아파트 위층에 사는 음악을 전공한 친구를 만났습니다.”

피아노 학원을 하던 친구였는데 아기를 낳고 집에서 쉬고 있다는 것이다. 친구가 송이를 보더니 한번 가르쳐 보겠다고 했다.

“덕분에 바이엘부터 차근차근 배울 수 있었습니다.”

점자정보단말기를 사용하는 박송이 씨. ⓒ이복남

박송이 씨는 엄마 친구가 좋은 선생님이었다고 했다. 바이엘을 배우고 체르니를 배우고 소나티네를 배웠다. 물론 앞을 보지 못하니 악보는 없고 오로지 선생이 치는 피아노 소리를 듣고 그대로 따라 할 뿐이었다.

“그 때까지만 해도 송이에게 피아노를 전공시킨다는 것은 생각지도 못했고, 앞을 못 보니 취미로나마 가르칠 생각이었습니다.”

엄마는 송이를 어떻게 할 것인지 고심했다. 피아노는 그렇다 치고 학교를 어디로 보낼 것인가. 여기저기 수소문하여 부산맹학교 유치부에 입학하였다.

“송이가 유치원에 다닐 때도 직장 생활을 했는데 학교 버스가 집 앞까지 오니까 아침에 태워주고, 저녁에는 버스에서 내리는 송이를 데려오곤 했습니다.”

“유치원을 졸업할 무렵 또 고민을 했습니다.”

부산맹학교는 신설건물이라 학교 시설은 좋았지만 입학생이 별로 없어 걱정이었다. 그러자 몇몇 지인들이 청주로 보내라고 했다.

“송이를 데리고 청주맹학교를 찾아 갔는데 부산에 비하면 건물이 낡은 것 같아 괜히 왔나 싶어 후회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학교를 둘러보고 기숙사 방에 들어가 보니 방이 너무 따뜻하고 포근했다.

“그 때가 겨울이었는데 다른 건 다 몰라도 춥지는 않겠구나 싶었습니다.”

“그건 엄마 생각이고, 청주에 가면 피아노를 마음대로 칠 수 있다고 엄마가 설득했어요.”

이제는 나이가 든 박송이 씨가 웃으면서 말했다. 송이는 청주맹학교에 입학했다. 청주맹학교는 그래도 초등학교 1학년이 7~8명은 되었다. 대부분은 점자를 알고 왔는데 송이는 학교에서 처음으로 점자를 배웠다.

“송이가 점자를 금방 배우고, 무엇보다도 음악선생이 송이를 예뻐해서 피아노를 치게 해줬습니다.”

엄마는 토요일 오후에 청주로 가서 송이를 데려 왔다. 때로는 금요일 저녁에 가서 기숙사에서 송이와 같이 자고 송이가 토요일 오전 공부를 마치면 같이 내려오기도 했다. 요즘같이 토요일도 휴무가 아니었던 것이다.

청주맹학교에서 점자를 처음 배울 때 무슨 글자부터 배웠을까.

“주로 날씨에 관해서 배운 것 같습니다. 맑다, 흐리다, 바람이 분다, 같은 거요.”

누구든 의지만 있다면. ⓒ국제신문

박은영 음악선생은 송이가 2학년이 되자 피아노 경연대회 참가를 준비했다. 대구에서 열리는 비장애인 음악 콩쿠르인데 선생은 그 대회에 송이를 출전시키려 했던 것이다. 송이는 아직 어린 나이라 선생이 시키는 대로 했다. 물론 악보는 없었고 선생이 치는 피아노 음계를 따라 할 뿐이었다.

“모차르트 소나타를 쳤는데 1등을 했습니다.”

송이 엄마도 비장애인 대회라 생각지도 않았는데 송이가 1등을 해서 정말 기뻤다.

“50만원인가 상금이 나왔는데 전교생에게 떡을 돌렸습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집에는 피아노가 없었다. 대구대회에서 1등을 하자 외할머니와 큰이모가 피아노를 사주었다.

“집에 피아노가 생겨 너무너무 기뻤습니다.”

이제는 토요일 집에 와서도 피아노를 칠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학교에서는 정규 과정의 수업을 하고 나면 음악실에 가서 혼자 피아노를 쳤다. 선생이 한 번 시범을 보여 준 곡이면 그대로 따라 쳤다. 슈베르트 즉흥곡이나 베토벤 연가곡 등도 이 때 쳤다.

중학생이 되었다. 학교 수업이나 피아노 연습 등도 예전과 별반 다를 것 없는 일과였는데 2학년이 되면서 시름시름 앓기 시작했다.

“별로 아픈 데는 없었는데, 힘이 없고 아무것도 하고 싶지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아침이면 기숙사에서 나와 학교로 갔고, 저녁이면 다시 기숙사로 돌아갔다.

“하루는 학교에서 저를 보자고 하더군요.”

엄마는 무슨 일인가 싶어 청주로 달려갔다. 송이를 보니 축 늘어진 아이는 피골이 상접했다. 눈물이 났다. 선생은 아이가 이 꼴이 되도록 어찌 보고 있었을까. 송이가 집과 엄마와 떨어져 살다보니 생긴 신경쇠약 같은데……. 향수병인 모양이었다.

“당장 보따리를 사서 송이를 데리고 왔습니다.”

송이를 집으로 데려 오니 차차 기운은 회복하는 것 같았지만 마냥 집에서 놀릴 수만은 없었다.

“피아노를 치던 아이라 손가락이 굳어질까봐 피아노 선생을 집으로 불렀습니다.”

지인들과 담소를 나누며. ⓒ이복남

송이는 집에서 쉬면서, 피아노를 다시 치기 시작하자 조금씩 원기를 회복하기 시작했다. 청주맹학교 중학부 과정을 자퇴하고, 고입검정에 합격하자 피아노 레슨 선생이 부산예고에서 음악 콩쿠르가 있으니 경험 삼아 한 번 나가보라고 추천했다. 그 대회에서 2등을 했다.

“부산예고 콩쿠르에서 2등을 했더니 집으로 입학원서가 왔어요.”

송이는 그 때까지도 자신의 진로를 못 정하고 있었지만 일반학교를 갈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이런 게 왜 왔지?' 엄마는 예고 원서를 받아들고는 학교로 달려갔다.

“우리 송이가 어떻게 하면 됩니까?”

학교에서는 송이가 시각장애인임을 모르고 있었기에 어쩔 줄 몰라 했다.

“시험을 쳐서 합격하면 다니게 하겠습니다.”

예고에서도 처음에는 난감해 했지만 시험에 합격하면 다니게 하겠다고 약속했다.

“시험에 떨어질까 봐 노심초사 했는데 송이가 오히려 저를 위로 합디다.”

음악 콩쿠르에서 1등은 한 사람이지만 입시에서 음악과는 몇 십 명을 뽑을 텐데 거기에서 떨어지겠느냐는 것이다.

“엄마는 왜 내가 떨어진다고 생각하는데? 붙을 거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예고에서 입학시험을 쳤다. 쇼팽의 연습곡 혁명을 쳤다. 그리고 합격했다. 부산예술고등학교를 다녔지만 시각장애인을 위한 특별한 편의는 별로 없었다. 부산예고도 학교 통학버스가 있었으므로 아침에는 집 앞까지 오는 버스에 엄마가 태워줬고, 방과 후에도 엄마나 큰이모가 마중을 나갔다.

“학교 공부는 일반 교과 과정 외에 음악시간이 따로 있었는데 이론과 실기로 나눠 배웠습니다.”

음악과에도 피아노와 오르간 등 건반악기와 관악기 현악기 성악 작곡 국악 등 여러 과가 있었다. 그리고 이론시간에는 시청과 청음, 음악사, 연주 등을 공부했다. <3편에 계속>

* 이복남 기자는 에이블뉴스 객원기자로 하사가장애인상담넷(www.gktkrk.net) 원장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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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웃이 행복하지 않는 한 나 또한 온전히 행복할 수 없으며 모두 함께 하는 마음이 없는 한 공동체의 건강한 발전은 기대하기 어렵다. 우리는 함께 살아가야 할 운명공동체이기 때문이다. 아름답고 건강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가진 자와 못 가진자,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평등하게 공유할 수 있는 열린사회를 건설해야 한다. 쓸모 없음을 쓸모 있음으로 가꾸어 함께 어우러져 나아갈 수 있도록 서로 사랑으로 용서하고 화합하여 사랑을 나눔으로 실천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이복남 원장은 부산장애인총연합회 사무총장을 역임하였으며 현재 하늘사랑가족상담실을 운영하고 있다. 하사가장애인상담넷www.gktkrk.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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