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 숲 속에 길이 두 갈래로 났었습니다.

나는 두 길을 다 가지 못하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하면서,

오랫동안 서서 한 길이 굽어 꺾여 내려간 데까지,

바라다볼 수 있는 데까지 멀리 바라다보았습니다.

그리고, 똑같이 아름다운 다른 길을 택했습니다.

그 길에는 풀이 더 있고 사람이 걸은 자취가 적어,

아마 더 걸어야 될 길이라고 나는 생각했었던 게지요.

그 길을 걸으므로, 그 길도 거의 같아질 것이지만.

그 날 아침 두 길에는

낙엽을 밟은 자취는 없었습니다.

아, 나는 다음 날을 위하여 한 길은 남겨 두었습니다.

길은 길에 연하여 끝없으므로

내가 다시 돌아올 것을 의심하면서….

훗날에 훗날에 나는 어디선가

한숨을 쉬며 이야기할 것입니다.

숲 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다고,

나는 사람이 적게 간 길을 택하였다고,

그리고 그것 때문에 모든 것이 달라졌다고.

이 시는 로버트 프로스트(Robert Frost)의 ‘가지 않은 길’인데 피천득 번역이다. 누구에게나 인생은 한 번 뿐이다. 어떤 길로 가든지 선택하지 못한 인생의 행로에 대한 아쉬움은 남는다,

누구에게나 선택한 길에 대한 자부심과 어쩌면 선택하지 않은 길에 대한 미련은 남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인생은 일회성이다. 비록 먼 훗날 한숨을 쉴지라도 되돌아 갈 수가 없다.

박송이 씨. ⓒ이복남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을 간다는 것은 꽤나 쓸쓸하고 외롭고 고된 일이다. 그러나 그 길이 그녀가 선택한 길이라면 그 선택에 대한 책임 또한 그녀가 져야 한다. 그녀가 선택하지 않았던 또 다른 길에 무엇이 있을지 잘 모른다. 그녀가 선택한 그 길에도 깊은 강과 높은 산, 그리고 가파른 절벽이 수없이 도사리고 있을지도 모르지만 이미 선택한 길이었기에 지독한 인내심으로 묵묵히 가고 있을 뿐이다.

박송이(1992년) 씨는 부산 초읍에서 1녀 1남의 장녀로 태어났다. 두 살 아래 남동생이 있었기에 어릴 때는 남동생과 함께 무럭무럭 자랐다. 그녀가 4살이 될 때까지는 별다른 병치레 한 번 없었다.

“식구들이 둘러 앉아 텔레비전을 보는데 송이가 '뭔가 다른 것을 보고 싶다' 해서 ‘그래 봐라’하며 송이한테 리모컨을 주었는데 송이가 못 받는 거예요. 그 때만 해도 우리 송이가 이렇게 시각장애인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필자는 박송이 씨를 어머니와 같이 만났는데 어머니는 그 때를 회상하며 눈시울을 적셨다. 처음에는 별로 놀라지도 않았단다. 얘가 왜 이러지 했으나 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동네 안과병원으로 데려갔다. 의사도 별 이상이 없다며 일시적으로 시력 저하 현상일 수도 간혹 있으니 좀 더 두고 보자고 했다.

눈의 구조. ⓒ네이버 지식백과

하지만 별 차도가 없었다. 간혹 그러는 게 아닌 것 같아 대학병원으로 갔다. 그 곳 안과에서도 정확한 원인은 잘 알 수 없지만 6개월에 한 번씩 정기 검진을 다니라고 했다. 2년이 지났다. 아이의 시력이 나아지기는커녕 점점 더 안 보이는 것 같았다.

“유치원에 입학하기 전에 서울 세브란스 병원엘 갔더니 너무 늦었다고 했습니다.”

일곱 살 때였는데 이미 시신경이 다 죽어 어떻게 해 볼 수가 없다고 했다. 좀 더 일찍 왔더라면 어떻게 해 볼 수가 있었단 말인가. 너무나 억울했다. 안구이식을 하면 다시 시력을 찾을 수 있을까 싶어서 장기이식센터를 찾아 갔다.

“우리 송이 안구이식이라도 좀 해 주세요.”

담당의사는 어이없는 얼굴이었지만 그 때만 해도 송이 어머니는 의사의 그 표정이 무엇을 말하는지 알지 못했다.

“제가 무식해도 너무 무식한 것 같아서 정말 부끄러웠습니다.”

사람의 안구란 탁구공 정도의 크기인데 유리체 수정체 홍체 등으로 이루어져 있고 그 제일 바깥은 각막으로 덮여 있다. 각막을 통해 시각정보를 수집하고 이를 전기화학정보로 변환하여 시신경이라는 통로를 통하여 뇌로 전달한다.

“그 당시만 해도 사람 눈이 그렇게 큰 줄도 몰랐고, 눈이 잘 안 보이면 눈동자를 완전히 들어내고, 안구이식을 하는 줄 알았습니다.”

한·러 수교 20주년 초청음악회 팸플렛. ⓒ이복남

현재 의학 수준으로는 안구이식은 불가능하고, 각막이식인데 시신경에 이상이 있는 경우 각막이식이 불가능하고, 각막 혼탁이나 손상 등으로 잘 안 보일 때 다른 사람의 각막을 이식하게 되는데 현재 각막이식은 사후에만 가능하다.

“우리 송이는 시신경이 잘못된 것이라 수술도 안 된다고 합디다. 그나마 한 가지 위안인 것은 한 번도 수술을 안 받았기에 비록 볼 수는 없지만 안구는 그대로 남아 있다는 것입니다.”

그 순간, 송이와 엄마는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고 회상했다. 그렇게 무너지는 하늘 아래 서서 송이를 하늘을 향해 다시 한 번 고개 들 수 있게 한 것이 피아노와의 만남이었다.

“우리 가족 중에 피아노에 관련 된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렇다면 송이가 처음 피아노를 치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을까.

“제가 6살 때인 걸로 기억 하는데, 집에 장난감 피아노로, 어느 날 엄마가 좋아하시는 비틀즈 곡 '예스터데이'를 연주했어요.”

그동안 송이에게 아무도 피아노를 가르쳐 주지 않았다.

“당시에는 제목도 잘 몰랐지만 예스터데이 그리고 엘리제를 위하여를 자주 쳤습니다.”

송이 엄마는 송이의 피아노 소리를 듣고 깜짝 놀랐다. 눈도 잘 보이지 않는 애가 예스터데이를 듣고 그대로 치다니, 애가 청음이 발달 된 것일까. 아니면 피아노에 소질이 있는 것일까.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떨리는 가슴을 겨우 진정하고 송이를 데리고 근처 피아노 학원으로 달려갔다.

“애가 앞을 못 보네요. 이런 애를 가르치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피아노 학원에서는 눈 감은 아이를 난감 해 했다. <2편에 계속>

* 이복남 기자는 에이블뉴스 객원기자로 하사가장애인상담넷(www.gktkrk.net) 원장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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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웃이 행복하지 않는 한 나 또한 온전히 행복할 수 없으며 모두 함께 하는 마음이 없는 한 공동체의 건강한 발전은 기대하기 어렵다. 우리는 함께 살아가야 할 운명공동체이기 때문이다. 아름답고 건강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가진 자와 못 가진자,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평등하게 공유할 수 있는 열린사회를 건설해야 한다. 쓸모 없음을 쓸모 있음으로 가꾸어 함께 어우러져 나아갈 수 있도록 서로 사랑으로 용서하고 화합하여 사랑을 나눔으로 실천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이복남 원장은 부산장애인총연합회 사무총장을 역임하였으며 현재 하늘사랑가족상담실을 운영하고 있다. 하사가장애인상담넷www.gktkrk.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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