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2학년 때에 처음으로 올 백이라는 최고점을 받았습니다.”

공부도 잘 했고 어느 정도 말도 할 수 있게 되자 담임선생은 그에게 일반초등학교로 가라고 했다. 담임선생의 추천을 받아 일반학교로 전학을 했다.

어느 날 실험실에서. ⓒ이복남

“일반 초등학교는 모두 건청인이라 말로만 소통을 하므로, 농아학교와 많이 달랐습니다.”

공부는 앞자리에 앉아서 선생의 입모양과 판서를 보고 그리고 선생의 배려로 그럭저럭 따라 갈 수가 있었다. 그러나 건청인 친구들의 커뮤니케이션은 알려고 노력했으나 잘 되지 않았다.

방학 때는 시골 할머니 집에 자주 갔다. 할머니 집은 시골이라 장수풍뎅이도 많고 사슴도 있었다. 맑고 깨끗한 물이 흐르는 시냇물에는 송사리도 있었다. 밤이면 무엇보다도 그를 매료 시키는 것은 신비로운 반딧불이였다.

“밤이면 반딧불이를 쫓아다니며 반딧불이를 잡아서 호박꽃 초롱불을 밝히기도 했습니다.”

초등학교 때는 부모님도 특별히 간섭하지 않아서 참 많이 놀았다. 아버지가 수학선생이라 어릴 때는 수학을 잘 했는데 학년이 올라 갈수록 국어가 좋아졌다.

“부모님 영향인지 몰라도 파일럿을 포기하자 선생이 되고 싶었습니다.”

물론 지금은 학교 선생도 아니지만. 일반 건청인학교를 다녔으면 아이들의 놀림은 없었을까.

“처음에는 모두가 건청인이라 제가 농아라고 놀리는 아이들도 있었습니다.”

그는 체육을 잘 했고 덩치가 컸다고 했다. 처음에 놀리는 애들이 있었으나 그는 싸움에는 진 적이 없었기에 더 이상 아무도 그를 놀리지 않더라는 것이다.

고양이와 함께. ⓒ이복남

“사실은 귀가 잘 안 들리기 때문에 설사 친구들이 나쁜 말을 한다 해도 알아듣지 못했습니다.”

씁쓸한 자위 같았다. 체육을 좋아해서 여러 가지 운동을 많이 했는데 야구부에서는 직접 활동하기도 했다. 고등학생이 되자 진학반이라 모두가 공부에 매진하였다. 그는 공부도 잘 했고 집안이 가난한 것도 아닌데 왜 대학을 가지 않았을까.

“저는 후쿠오카에서 일반 고등학교를 다니고 있었는데 고3 때 토요타에서 장애인법정 고용률을 위한 스카우트 제의가 왔습니다.”

비행기가 아니라면 자동차라도…….

그는 대학보다 토요타를 택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토요타 회사근처인 아이치현으로 이사를 했다.

3년 쯤 근무했을 때.

“전국장애인기능대회 선반부분에서 금상을 받았습니다.”

금상수상 신문기사. ⓒ이복남

한편 수화 통역이 없는 기업에서는 농아한테 취업과 승진에 지장이 올 수도 있었기에 농아의 사회 참여와 평등을 위해서 농아협회 청년부장으로 3년 간 근무하기도 했다.

그는 카레이스를 즐겼다. 사륜짐카나(四輪ジムカーナ)등 몇몇 자동차경주에 나가서 매번 우승했다. 카레이싱에 나가는 것은 자신의 능력의 한계를 알고 또한 대회 과정에서 기술도 배워 자동차 안정성 부분의 향상을 이루겠다는 목적이기도 했다.

자동차경주는 일반 건청인들과 스피드시간을 경쟁하는 것인데 항상 우승을 했기에 자동차 회사에서 일하는 데도 여러모로 일조를 했다.

그는 여전히 운동을 좋아했다. 회사에 다니면서도 카레이스 외에 테니스를 즐겨했다. 25살 무렵 농아테니스대회에서 아내를 만나 결혼했다. 아들(23살)과 딸(21)을 낳고 그런대로 평화로웠다. 그러다가 10여 년 전 아내와 헤어지게 되었다. 아내는 다른 지방에 있는 친정아버지를 모시겠다고 했다. 아들딸은 엄마를 따라가기 보다는 그냥 살던 곳에 남겠다며 아버지를 택했다.

아들딸이 어렸을 때는 아이들을 키우고 돌보느라 다른 생각을 할 겨를이 없었다. 아들딸이 성년이 되어 각기 자신의 일을 갖게 되자 그도 노후를 생각하게 되었다.

“회사를 정년한 후에 농아복지를 위해 일하고 싶었습니다.”

자동차경주에서 1등. ⓒ이복남

그 무렵 일본 지인이 한국에서 농아인 A씨가 오는데 그를 만나고 싶다고 했다. 2012년 5월 16일 수요일 나고야에서 처음으로 한국에서 온 농아인 A씨와 그를 소개해 준 일본인을 만났다. 처음에는 못 미더워서 한국에 가서 건청인 B씨를 만나 공장을 돌아 본 후에야 처음으로 500만 엔을 주었다.

A씨는 보온덮개와 흡착포를 생산하는 C회사의 사장이고, 건청인 B씨는 C회사의 영업 및 생산라인 책임자라고 했다. A씨와 B씨는 사업을 확장하여 장애인을 고용하려 하는데 투자를 하면 원금은 물론이고 순수익금 70%를 배당하겠다고 했다.

“저는 그들을 믿고 처음에는 500만 엔을 투자했습니다.”

우모(羽毛) 즉 오리털을 이용하여 부직포를 만드는데 농업용 비닐하우스에 사용하면 유류비를 20%나 절감할 수 있다고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의 구미를 당긴 것은 장애인을 채용하겠다는 것이었다.

“이 사업이 잘 되면 저도 일본에서 장애인을 채용하여 부직포 생산을 해 보려고 했습니다.”

알고 보니 A씨와 B씨는 보온덮개나 흡착포를 생산할 능력도 없었다. 그럼에도 왜 돈을 투자했을까.

“그 사람들이 가져 온 일본어 회사소개서며 특허권 등을 보여 주는데 처음에는 저도 깜빡 속았습니다.”

그래서 다른 농아 친구들 몇몇 사람들에게 A씨와 B씨를 소개까지 했다. <3편에 계속>

* 이복남 기자는 에이블뉴스 객원기자로 하사가장애인상담넷(www.gktkrk.net) 원장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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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웃이 행복하지 않는 한 나 또한 온전히 행복할 수 없으며 모두 함께 하는 마음이 없는 한 공동체의 건강한 발전은 기대하기 어렵다. 우리는 함께 살아가야 할 운명공동체이기 때문이다. 아름답고 건강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가진 자와 못 가진자,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평등하게 공유할 수 있는 열린사회를 건설해야 한다. 쓸모 없음을 쓸모 있음으로 가꾸어 함께 어우러져 나아갈 수 있도록 서로 사랑으로 용서하고 화합하여 사랑을 나눔으로 실천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이복남 원장은 부산장애인총연합회 사무총장을 역임하였으며 현재 하늘사랑가족상담실을 운영하고 있다. 하사가장애인상담넷www.gktkrk.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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