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명(黎明)의 종이 울린다.

새벽 별이 반짝이고 사람들이 같이 산다.

닭이 운다. 개가 짖는다.

오는 사람이 있고 가는 사람이 있다.

오는 사람이 내게로 오고

가는 사람이 다 내게서 간다.

아픔에 하늘이 무너졌다.

깨진 하늘이 아물 때에도

가슴에 뼈가 서지 못해서

푸른빛은 장마에

넘쳐 흐르는 흐린 강물 위에 떠서 황야에 갔다.

나는 무너지는 둑에 혼자 섰다.

기슭에는 채송화가 무더기로 피어서

생의 감각을 흔들어 주었다.’

이 시는 김광섭 시인의 ‘생의 감각’이다. ‘성북동 비둘기’로 잘 알려진 김광섭 시인은 일제강점기에는 암울한 민족의 고독과 허무를 그리고 해방이후에는 정치적 유토피아를 꿈꾸다가 급격한 산업화로 인한 도시의 파괴를 안타까워 한 것 같다.

그 와중에 김광섭 시인은 고혈압으로 쓰러져 사경을 헤매다가 일주일 만에 깨어났었는데 ‘생의 감각’은 그 때 쓰인 시라고 한다. 시인은 깨진 하늘, 흐린 강물 같은 절망 속에서도 채송화 같은 희망의 아침을 맞았던 것 같다.

김원규 씨. ⓒ이복남

그 시절에는 장애라는 용어도 없었지만 참고로 장애는 앓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김광섭 시인이 걸어 온 길을 보면 김원규 씨와는 이념이나 사상 등 살아 온 길은 전혀 다르면서도 어쩌면 비슷한 여정이 아니었을까 싶은 생각이 들어 이 시를 골라 보았다.

김원규 씨는 태어나자마자 장애를 입었다. 불우한 어린 시절이었을 테지만 본인은 크게 느끼지 못 한 채로 어린 시절을 보냈고 다른 사람들도 다 그런 줄 알았기에 그럭저럭 살다가 성인이 되어서야 절망했고 이제 서서히 그 절망에서 벗어나고 있는 중이다.

김원규(1955년생) 씨는 충청북도 단양군 가곡면 가대리 시골에서 8남매의 넷째로 태어났다. 그의 집은 마을에서 조금 떨어진 언덕 위에 있었다. 그는 2월에 태어났는데 위로 두 명의 형과 누나가 있었다.

“보리타작할 무렵이었으니까 6월쯤 된 모양입니다.”

보리타작할 무렵이면 보릿대로 모깃불을 피우곤 했는데 그날도 어머니는 마당에 모깃불을 피워놓고 모깃불 옆에 멍석 깔고 그 위에 네 아이를 두고 이웃집에 낮에 타작한 보리를 까불러 갔다. - (까불다 - 타작한 보리를 키에 담아서 키를 위 아래로 흔들어 곡식의 티나 검불 따위를 날려 버리는 키질. - 필자 주)

“형이나 누나는 옥수수를 먹고 놀았다던데 저는 갓난쟁이라 기억이 없습니다.”

형과 누나는 옥수수를 먹으며 모깃불을 헤집으며 장난을 치고 있었던 모양이다.

이것은 주로 경제학에서 인용되는 우화인데 뜨거운 물이 끓고 있는 냄비 안에 개구리를 넣으면 물이 너무 뜨거워서 개구리는 넣는 순간 바로 뛰어 나온다고 한다. 하지만 찬물이 담긴 냄비 안에 개구리를 넣고 천천히 불을 지펴 가면, 물이 서서히 따듯해지므로 개구리는 안심하고 자고 있다가 서서히 죽게 된다고 한다.

아내 서현자 씨와 삼천포 여행. ⓒ이복남

이상한 비유 같지만 필자가 김원규 씨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퍼뜩 떠오르는 생각은 냄비 속의 개구리였다. 그는 2월에 태어났으니 보리타작할 무렵이라면 4개월 남짓한 갓난아이다. 갓난아이가 잠결에 뒤채이다가 그 조그만 발이 모깃불과 함께 타들어가도록 냄비 속에서 서서히 죽어가는 개구리 마냥 아무도 몰랐던 것이다. 본인조차도…….

생각만 해도 몸서리쳐지는 모습이지만 어느 순간엔가 아이는 뜨거움을 느꼈는지 말도 못하는 아이가 “아악”하는 비명을 질렀단다. 멀리서 보리를 까불던 어머니는 아이의 비명소리에 놀라서 뛰어 왔더니 아이의 발은 이미 모깃불과 함께 타고 있었다.

“죽었다고 담요에 싸서 윗목에 밀쳐놨는데 다음날 아침에도 안 죽더랍니다.”

그는 구두를 벗어서 필자에게 발을 보여 줬다. 오른발은 발 자체가 없었고, 왼발은 쇼파관절(발등과 발목사이) 정도는 남아 있었는데 이렇다 할 치료는 없었다고 했다. 그래도 어머니는 상처가 아무는 치료는 하지 않았을까. 그 당시의 민간요법으로 화상에는 감자를 갈아서 붙이거나 간장을 바르기도 했었을 텐데…….

어머니가 뭔가 했을지는 모르겠지만 그는 어려서 알지 못했고 나이가 들어서는 떠올리기 싶지도 않았던 기억이기에 어머니에게 물어보지도 않았단다. <2편에 계속>

* 이복남 기자는 에이블뉴스 객원기자로 하사가장애인상담넷(www.gktkrk.net) 원장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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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웃이 행복하지 않는 한 나 또한 온전히 행복할 수 없으며 모두 함께 하는 마음이 없는 한 공동체의 건강한 발전은 기대하기 어렵다. 우리는 함께 살아가야 할 운명공동체이기 때문이다. 아름답고 건강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가진 자와 못 가진자,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평등하게 공유할 수 있는 열린사회를 건설해야 한다. 쓸모 없음을 쓸모 있음으로 가꾸어 함께 어우러져 나아갈 수 있도록 서로 사랑으로 용서하고 화합하여 사랑을 나눔으로 실천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이복남 원장은 부산장애인총연합회 사무총장을 역임하였으며 현재 하늘사랑가족상담실을 운영하고 있다. 하사가장애인상담넷www.gktkrk.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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