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때가 98년이었는데 어머니의 애원으로 홀로 대구로 내려오니 세상은 온통 깜깜 절벽이었다. 누나가 조그만 가방공장을 하고 있었는데 어머니는 만촌동에서 누나와 같이 살면서 누나를 도와주고 있었다.

2014년도 장애인선수 해단식. ⓒ이복남

“예전에 처음 장애인이 되었을 때 보다 더 괴로웠습니다.”

그 때는 누군가에 의한 교통사고였지만 이번에는 스스로가 저지른 실책이었기에 가슴을 치고 통곡을 해도 고통은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다. 처음 장애를 입었을 때와 다른 것이 하나 있다면 술로 세월을 낚았던 것이다.

어느 날 아침 일어나 보니 어머니와 누나 식구들은 다 일하러 나가고 물을 마시려고 주방으로 가보니 한 쪽 구석에 소주상자가 잔뜩 쌓여 있었다. 누나가 어쩌지 못하는 동생을 위해서 소주를 상자떼기로 사 놓았던 것이다.

그것을 보자 가슴이 울컥해지면서 눈물이 났다. ‘내가 마실 소주 값이라도 내가 벌어야지.’ 대문을 나서자 신문영업소가 하나 있었는데 배달원구함이라고 붙어 있었다. 그는 문을 열고 들어갔다. 당시에는 다리는 절어도 목발을 사용하지는 않았다. 소장은 그를 아래위로 훑어보더니 배달 할 사람 같지 않다며 미심쩍어 했다.

파크골프를 가르치며. ⓒ이복남

그래도 해 보겠다고 하니 골목길을 그려 놓고 좌로 몇 번째 집, 우로 몇 번째 집에 신문을 넣으라고 했다. 첫날 새벽 2시에 100여부의 신문을 받아서 소장이 시킨 대로 신문을 넣었지만 다 넣고 나니 11시쯤 되었다.

“도저히 못하겠습니다.”

소장은 배달 말고 수금 관리를 좀 맡아 달라고 했다. 배달은 3~40만원인데 관리는 90만 원 정도라고 했다. 그는 열심히 관리를 했다. 그가 관리를 잘 한다는 소문이 돌아서 여러 곳에서 스카우트 제의를 받아 지국을 옮기기도 했고, 나중에는 신문지국을 직접 인수하게 되면서 8년 만에 빚 청산을 하게 되었다.

“아마도 그 때가 가장 기뻤던 것 같습니다.”

교통사고 때 다리를 절단하지 않고 살렸던 기쁨도 컸지만 남의 빚을 청산하는 그 기쁨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었다는 것이다.

그제야 세 번째 삶이 시작되었다. 그동안 멀리했던 교회도 다시 나가 성가대 지휘도 하고 기타도 치고 볼링도 다시 시작했다.

“볼링은 처음 교통사고가 났을 때 재활운동으로 시작한 것인데 재활에는 정말 볼링이 좋은 것 같습니다.”

운동신경이 있어서인지 강원도 대표선수도 하면서 강릉MBC에서 7년간 토요볼링해설을 맡기도 했었다.

그러던 중 교회에서 아이들을 상담해 주던 박정혜(1963년생) 씨를 만났다. 박정혜 씨는 휠체어를 이용하는 1급 장애인이었는데 작곡을 전공한 중학교 음악선생이었다. 그가 성가대를 지휘하면서 박 선생과도 친해졌고 결국 박 선생은 그의 아내가 되었다.

아내 박정혜 씨와 함께 . ⓒ이복남

그는 예전부터 필드골프와 볼링을 하고 있었기에 처음에는 아내가 하는 파크골프가 시시해 보였으나 몇 번 아내를 따라 갔다가 파크골프에 빠지게 되었다. 아내 덕분에 대구 장애인골프협회(회장 류복렬)에서 전무이사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파크골프장은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사용하고 있는데 2013년에 제33회 전국장애인체육대회가 대구에서 개최되었다. 전국대회를 앞두고 대구환경자원사업소 파크골프장를 그의 지휘로 조성했다. 물론 파크골프장은 대구시에서 조성했지만 장애인들이 전용으로 사용할 수 있는 파크골프장을 대구장애인골프협회에서 이뤄낸 것이다.

“아마 전국에서도 이렇게 조성 된 파크골프장이 없을 겁니다.”

그동안 많은 골프대회에 출전하여 30여회 우승을 하기도 해서 장애인은 물론이고 비장애인에게도 파크골프를 가르치는 선생으로 제법 유명해 졌다.

현재는 대구의 몇 군데 중학교에서 교육을 하고, 올해부터는 계명대학교에서 2학점짜리 파크골프 교육을 하고 있다. 몇 해 전부터는 대구 위스쿨 학생들에게도 파크골프를 교육하고 있는데 1년을 하고 나니 아이들 눈빛이 달라보였단다. 시각장애인도 교육을 하는데 시각장애인의 경우 공의 위치를 잘 알지 못하므로 봉사자가 있어야 되지만 약간의 인원이 되면 시각장애인부를 만들 거란다.

그는 골프도 하고 볼링도 하고 일요일에는 성가대 지휘도 한다. 그러면서 아내와 같이 파크골프를 치고 보급하면서 마지막 여생을 보내고 싶단다. 파크골프가 좋아서 비장애인은 물론이고 모든 장애인이 파크골프를 했으면 좋겠단다.

파크골프가 필드 즉 야외 잔디구장에서 공을 치므로 물리적인 재활운동 뿐 아니라 정신건강에도 아주 좋은 것 같단다. 그는 아내와 함께 파크골프와 음악 외에 낚시도 즐긴다는데 그가 하고 싶은 모든 소망이 꼭 이루어지기를. <끝>

* 이복남 기자는 에이블뉴스 객원기자로 하사가장애인상담넷(www.gktkrk.net) 원장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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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웃이 행복하지 않는 한 나 또한 온전히 행복할 수 없으며 모두 함께 하는 마음이 없는 한 공동체의 건강한 발전은 기대하기 어렵다. 우리는 함께 살아가야 할 운명공동체이기 때문이다. 아름답고 건강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가진 자와 못 가진자,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평등하게 공유할 수 있는 열린사회를 건설해야 한다. 쓸모 없음을 쓸모 있음으로 가꾸어 함께 어우러져 나아갈 수 있도록 서로 사랑으로 용서하고 화합하여 사랑을 나눔으로 실천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이복남 원장은 부산장애인총연합회 사무총장을 역임하였으며 현재 하늘사랑가족상담실을 운영하고 있다. 하사가장애인상담넷www.gktkrk.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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