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울음아트센터 최진섭 원장이 그림을 그리고 있다.ⓒ에이블뉴스

경기도 안양에 위치한 ‘소울음 아트센터’에 들어서자 유화냄새가 훅 들어온다. 예술가가 된 느낌에 왠지 기분이 좋다. 초입에 들어서면 최진섭 원장(지체1급, 58세)의 인터뷰 기사가 가득 채워져있는데. 빛바랜 신문기사들 속 최 원장의 이야기는 ‘장애극복’, ‘장애 딛고 일어나다’, ‘장애 아픔 나누다’란 타이틀로 다루고 있었다.

하지만 과연 그 뿐일까. 최 원장의 오랜 때가 묻은 붓과 유화물감은 그저 ‘극복’ 만은 아니었다. 본지 기자에게 들려준 이야기는 오랜 세월 함께한 장애미술계에 대한 애정과 따끔한 충고가 가득했다.

“내가 어떻게 유명하죠?다이빙하다 다친 사연인가?”

널리 알려진 최 원장의 과거를 새삼스럽게 꺼내려니 머쓱해지자, 그가 껄껄 거리며 웃는다. 혈기 왕성하던 18세 여름, 친구들과 동네 계곡에서 다이빙을 하다 사고가 난 최 원장. 경추 5, 6번이 골절돼 전신마비를 판정받았다. 다시 일어설 것이라 믿었지만 그의 일상은 매일 병원 천장만 바라볼 뿐. 그저 ‘살아야겠다’하는 마음으로 붓을 잡았다.

“예전부터 미술시간은 재밌었어요. 붓 잡으면 시간 가는 줄 몰랐죠. 욕창이 있어서 그림 그리는 것이 중노동이긴 하지만 붓을 잡으면 행복해요. 그냥 칩거하면서 그림 그리는 게 가장 재밌죠.”

1992년 다른 장애인화가들과 연 ‘소울음 3인전’을 계기로 운수업을 하셨던 아버지의 건물에 ‘소울음 아트센터’를 차렸다. 그림을 배우고 싶은, 또 전업 작가로 먹고살고 싶은 장애인 작가들의 공간이 없다는 것이 이유였다.

‘장애인이 그림을 그린다고?’ 했던 편견도 23년이 지난 지금은 경기도내 사단법인으로 등록된 전국 최초이자 유일한 장애인 미술교육기관 원장님으로 탈바꿈했다.

안양시에서도 그의 선전을 지지하듯 흔쾌히 공간을 제공했다. 지난 2011년부터 옛 주민센터였던 곳을 무료로 임대해주고 있다는데. 월 2만원의 회비를 통해 총 40여명의 회원들이 그림을 그리는 소중한 공간이다.

“감사한 일이죠. 진짜. 타시도에서는 그런 것들이 없거든요. 전국에서 유일하게 사단법인 교육기관이다 보니까 다른 시도에서 많이 와요. 전주에서도 오시고, 부천에서도 오시고. 다만 장애인복지과가 아닌 문화예술과의 법인으로 지원을 받고 싶은데 말이죠.”

인터뷰를 하고 있는 중에도 최 원장의 붓은 바쁘다. 센터 안 화이트보드에 빼곡히 쓰여 있는 일정, 오는 10월3일 안양시민과의 만남전, 평생학습원 전시, 경기도청 전시…. 10월7일부터 13일까지의 최 원장의 6번째 개인전까지. ‘중노동’이라 표현하는 그의 붓놀림을 멈출 수가 없다.

소울음 아트센터 전경과 장애인작가들의 작품.ⓒ에이블뉴스

“개인전 출품작을 당장 그려내야 해서” 껄껄 웃으며 붓을 잡는 최 원장의 모습을 조용히 지켜봤다. 뒤로 뉘어져 있는 전동휠체어에서 유화물감을 발라 하나하나 터치한다. 그런 그의 곁에는 두 명의 도우미가 함께 숨죽이며 지켜보는데. 10년째 회원이라는 허철웅(60세, 정신장애3급)씨와 활동보조인 임추자(60세)씨다.

21살에 되던 해, 군대사고로 장애를 입은 허씨. 만화가를 꿈꾸던 까까머리 청년은 누님의 소개로 그림계에 입문했다. 소울음 아트센터 회원으로써 10년째, “원장님이 그림을 많이 봐주십니다” 미소 짓는 그는 오전9시 센터 문을 열고 하루 종일 그의 곁에서 도우미를 자처한다.

활동보조인 임씨 또한 “제가 노는 것 같죠? 엄청 바빠요 진짜”라는데. 작업을 하는 최 원장 대신에 물통 물을 갈고, 붓을 갈고, 심지어는 최 원장의 작품 활동을 위해 전국 방방곡곡 경치가 좋은 곳에서 사진까지 찍어오는 중요한 직무까지 맡았다. 하소연 하는 사이 소울음 아트센터 안에 웃음이 번진다.

정말 궁금했던 질문을 던졌다. “장애인작가의 작품이 팔리길 바라는데, 어떻게 하면 좋겠냐”란 물음에 ‘시기상조’라는 냉정한 답이 돌아왔다.

비장애인의 경우 초등학교 때부터 20년이 넘도록 각고의 노력 끝에 화가가 되는 반면, 장애인들은 그만의 노력을 할 수 없는 환경이 없다는 것.

“중도장애인의 몇 년 만에 그림에 입문해 작품을 판다는 것이 말이 되요? 예술의 세계는 정말 인내예요. 당장 팔릴 것이라 생각하면 안 되고 살아가는데 힘이 바로 예술이라는 마음을 갖고 열심히 노력하고 공부를 하면 나중에 돼서야 기대해보는 게 아닐까해요.”

현재 문화예술 주무부처인 문화체육관광부 속에는 장애인 예술을 전문적으로 담당하는 부서가 없다. 전문 인력 없이 예술정책과 속 하나의 업무로 주어지고 있다. 이달 말 장애예술계의 염원이었던 장애인문화예술센터가 개관된다고는 하지만 큰 기대는 없다는데.

“정부에서 공간을 주셨지만 아직 일반 공무원이 장애인예술을 담당하고 있거든요. 에이블아트를 전파시킬 수 있는 전문 인력이 필요해요. 아직 장애예술에 대한 관심이 부족한 것이 사실이거든요. 전시회에 큰돈을 지원할 것이 아니라 장애인 작가들이 작품성을 키울 수 있는 교육이나 공간마련, 해외경험 등에 대한 지원이 늘어나야해요. 전 정말 답답해요. ”

‘왕관’은 필요도, 관심도 없단다. 그저 그냥 이 공간에서 많은 장애인작가들과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최 원장. 그의 꿈도 소박했다. 센터의 규모를 높여 장애인미술학교를 설립하는 것이다.

오고 가느라 많은 시간을 소비하는 중증장애인들을 위한 기숙사도, 토론도 하고, 그림도 그리는 그저 행복하게 그림을 그리는 공간. 단, 학교를 설립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건 장애인작가들의 작품이 좋아져야 한단다.

“장애인미술계에서 전시를 꾸준히 할 수 있고 실험적인 작가들이 냉정하게 보면 없거든요. 우리 선배 작가들이 열심히 힘써줘야 해요. 장애인이 아닌 작가로 인정받기 위한 길은 고되고 힘들어요. 그림 열심히 그려야죠,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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