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저 음악하고 싶습니다.”

“와 할라 하는데?”

“오케스트라에서 드보르자크의 신세계 교향곡을 연주 해 보고 싶습니다.”

“야, 임마 장난치냐!”

선생도 별 대수롭지 않게 장난 치냐면서 꿀밤을 한 대 때렸다.

호산나교회 파크콘서트. ⓒ이복남

“참말인데요.”

그가 정색을 하자 선생은 한참 후에 다시 묻기를

“야, 니 돌은 거 아이제?”

그러면서 선생은 뭐 하고 싶으냐고 물었다.

“나팔요!”

그는 선생의 물음에 자신만만하게 큰 소리로 대답했다. 그의 대답에 선생은 어이없어 했지만 그 때까지만 해도 그가 알고 있기로는 부는 것은 전부 나팔인 줄 알았다. 그 때 음악실에는 3학년 선배가 하나 있었다.

“저 자식 트럼본 하나 얹어 줘라”

당시 학교에는 작은 악단이 하나 있었는데 그의 악단 입문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나팔이란 산스크리트의 'rappa'에서 온 것으로 입을 크게 벌린다는 뜻이 있으며, 중국에서 나팔(喇叭)이라고 번역되어 우리나라에서도 나발 또는 나팔로 불렀다. 그런데 현대에 와서 서구에서 나팔이라고 부르는 것은 군대에서의 신호용이며, 우리나라 국악기에서 나팔은 날라리로도 불리는 태평소이다. 그 밖에 부는 악기는 관악기라고 하는데 관악기는 목관악기와 금관악기로 구분된다. 목관악기는 나무로 만든 악기로 플루트, 오보에, 클라리넷, 바순, 색소폰 등이 있다. 금관악기는 금속으로 만든 악기로 트럼펫, 호른, 트럼본, 튜바 등이 있다. -필자 주)

“트럼본은 처음인데 해 보니까 재미있대요.”

부는 악기는 호흡이 중요하기 때문에 복식호흡을 해야 되는데 처음에는 웬만큼 불어서는 얼굴만 벌게지고 소리도 안 났다. 그렇지만 그에게는 이뤄야 될 꿈이 있었고 목표가 있어 죽자 살자 연습을 했더니 3일 만에 코피가 터졌다.

그렇게 트럼본을 익히면서 3학년이 되자 음대진학을 위해 개인사사도 했지만 그는 대학에 진학하지 않았다. 음악선생이 대학진학 보다는 장애인예술단에서 활동해 보는 것이 실력 쌓기에 더 좋을 것 같다며 장애인예술단에 입단할 것을 권했던 것이다.

자동차운전체험. ⓒ이복남

고등학교를 마치고 신체검사를 받으러 갔다. 그의 눈을 검사 한 군의관은 ‘면제’라고 했다. “안 됩니다. 저 군대 보내 주이소.”

“임마, 그 눈을 가지고 군대 가서 누구를 쏴 죽일라꼬?”

그는 군의관에게 오히려 핀잔을 듣고 병무청을 나와야 했다.

장애인예술단에서 여기저기 공연을 하다 보니 시립교향악단에서 협연 요청이 왔다. 협연자 오디션을 보는데 처음에는 많이 떨렸으나 다행히 합격하여 대구시립교향악단과 협연을 하였다. 얼마 후에는 경북심포니오케스트라와 협연도 했다. 여기저기서 협연을 하게 되자 제법 주가도 올라서 1996년에는 대구예술대학교 관현악과에 4년 장학생으로 입학하게 되었다.

대학생이 되자 더 바빠졌다. 대구필하모닉오케스트라를 비롯하여 그린아트쳄버 오케스트라와 협연도 했다. ‘97년부터 금관 5중주(트럼펫1, 트럼펫2, 호른, 트롬본, 튜바)를 구성하여 공연을 했다. 그리고 ‘98년에는 북헝가리심포니 오케스트라가 내한해서 협연하게 되었고, 진주에서 열리는 개천관악콩쿠르 나가서 2위에 입상하기도 했으며, 전국관악경연대회에 나가서 금상을 받기도 했다.

“학교 때는 여기저기 불려 다니느라고 정신없이 바빴는데 1999년도에 졸업연주회 하고 나니 끝이었습니다.”

2000년에 서울로 갔다. 서울에서 아는 선생을 만나 제주국제관악제를 소개 받았다. 제주국제관악제는 관악기로만 구성된 예술축제로 1995년부터 격년제로 시작되었다. 그는 서귀포금관앙상블 팀으로 참여해서 연주를 했다. “덕분에 말로만 듣던 제주 바다에 발도 한번 담가 봤습니다.”

다시 서울로 돌아 왔을 때 코리안심포니 오케스트라에서 객원을 모집하고 있었다. 면접을 보러 가서 연주를 했다. 면접을 본 사람은 “눈도 안 보이는데 잘 하네.” 농담처럼 말하면서 그를 합격시켰다. 아, 그러고 보니 내가 시각장애인이었구나. 주변 사람들은 신기해했지만 그 뿐이었다. 아무튼 눈감은 1급 시각장애인이 코리안심포니 오케스트라에서 객원으로 활동했다.

코리안심포니에서 마침내 그의 꿈이 이루어졌다. 그의 소원은 오케스트라에서 신세계 교향곡을 연주해 보는 것이었는데 그 꿈이 성큼 한 발 앞으로 다가 온 것이다. 코리안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정기연주회가 예술의 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렸는데 드보르자크의 신세계 교향곡이 레퍼토리였던 것이다.

대구 오페라하우스. ⓒ이복남

밤~밤밤~빠바밤~밤~밤빠밤. 질풍노도의 시기 어느 날에 반해버린 ‘신세계 교향곡’ 그 후 폰 카라얀 지휘의 베를린 필의 연주를 판이 닿도록 듣고 또 들으며 언젠가는 오케스트라에서 ‘신세계 교향곡’을 연주 해 보리라는 꿈을 안고 여기까지 달려 왔는데 드디어 그 꿈을 실현하게 되었던 것이다.

“신세계 교향곡을 연주하고 나니 베를린 필의 단원이 부럽지 않았고 세상을 다 얻은 것 같은 커다란 감동으로 가슴이 벅차올랐습니다.”

그런데 눈을 감고 악보는 어떻게 익혔을까.

“고등학교 때는 악보를 통째로 다 외웠는데 대학에서 악보 보는 법을 훈련했습니다.”

눈이 잘 안 보이는데 악보는 어떻게 볼까.

“A4 같으면 잘 안 보이는데 B5 정도는 훈련 만 하면 볼 수도 있습니다.”

그는 무섭도록 훈련했다. 훈련이 힘들고 어려울수록 ‘신세계 교향곡’이라는 꿈을 위해 참고 또 참았었다.

그런데 라트라비아타를 공연하는 오페라오케스트라 등 여러 음악 단체를 거쳐서 2008년도에는 '하트시각장애인체임버 오케스트라‘에 들어갔다. 그동안 그가 활동했던 오케스트라는 비장애인 악단이었지만 '하트시각장애인체임버 오케스트라’는 모두가 시각장애인이었던 것이다. 그들이 연주하는 ’신나는 예술여행’에는 ’지휘자도 악보도 없이 모든 곡을 외워서 연주했고, 불을 끄고도 공연할 수 있었다. <4편에 계속>

* 이복남 기자는 에이블뉴스 객원기자로 하사가장애인상담넷(www.gktkrk.net) 원장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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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웃이 행복하지 않는 한 나 또한 온전히 행복할 수 없으며 모두 함께 하는 마음이 없는 한 공동체의 건강한 발전은 기대하기 어렵다. 우리는 함께 살아가야 할 운명공동체이기 때문이다. 아름답고 건강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가진 자와 못 가진자,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평등하게 공유할 수 있는 열린사회를 건설해야 한다. 쓸모 없음을 쓸모 있음으로 가꾸어 함께 어우러져 나아갈 수 있도록 서로 사랑으로 용서하고 화합하여 사랑을 나눔으로 실천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이복남 원장은 부산장애인총연합회 사무총장을 역임하였으며 현재 하늘사랑가족상담실을 운영하고 있다. 하사가장애인상담넷www.gktkrk.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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