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 봄이 되었다. 해가 바뀌어도 그의 무역업은 여전히 지지부진했다. 그 무렵 아내에게서 전화가 오기를 지현이가 좀 이상하다고 했다. 그 때 지현이는 중3이었다.

어디가 어떻게 이상한데? 학교에서 애들하고 싸우고 나서부터 선생이 이상하다고 해서 정신과에 갔었다고 했다.

정신과에서는 뭐라고 하던데. 사춘기라서 정서적으로 좀 문제가 있는 것 같다고 하더란다. 그의 사업도 부진하던 때이고 중3이라서 있을 수 있는 일이라 그러려니 하고 말았다.

한바다축제에 참석한 정가협 회원. ⓒ이복남

제일 처음 담임선생이 느낀 것은 중학교 3학년 1학기가 끝나갈 무렵부터인데 자꾸 담임선생에게 사탕을 가져 오더란다.

‘처음에는 그냥 고맙다 잘 먹을게’ 했는데 사탕을 가져오는 일이 점점 더 반복이 되었고, 또 하나는 공부도 잘하던 모범생인 지현이가 이층에서 계단으로 내려오지 않고 난간을 타고 내려오더라는 것이다.

그래서 담임선생이 지현이 어머니를 불러서 정신과 진료를 받게 했는데 병원에서는 별 말 안하더라며 아내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3학년 1학기가 끝나가자 지현이는 학교에 가기 싫다고 했다. 아버지는 호주에 있었고 담임선생이 설득하고 어머니가 달래 보았으나 지현이는 막무가내였다.

하는 수 없이 3학년 1학기 말에 지현이는 자퇴를 했다. 그런데 집에는 지현이 아래 두 동생이 있었으므로 아버지 없이 딸 셋을 키워야 되는 아내는 친정이 있는 부산 신암으로 이사를 했다. 아내는 물론이고 외할아버지나 외할머니도 처음에는 집 안에만 틀어박혀 있는 지현이를 대수롭지 않게 여겼단다.

한바다축제에서 김석모 회장. ⓒ이복남

아버지는 제일 처음 지현이에 대해서 어떻게 알게 되었을까.

“91년도 가을에 친척에게서 빨리 귀국 하는 게 좋겠다는 전화가 왔습니다.”

그 때까지는 그도 지현이가 사춘기라서 단순히 정서장애가 있는 거라고만 생각했었는데 친척의 전화를 받고 보니 사업이고 뭐고 이래서는 안 되겠다 싶어서 호주 생활을 정리하고 귀국을 했다.

3년 만에 만나는 아버지를 두 동생과는 달리 시큰둥해하며 몰라보는 것 같았다. ‘그깟 사업이 뭐라고, 이럴 줄 알았으면 진작 올 것.’ 그야말로 억장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집에 와 보니 지현이는 단순한 정서장애가 아니라 이미 정신분열병이 깊어진 것 같은데도 그대로 방치되어 있는 겁니다.”

아내도 딸의 정신분열병을 알지 못했지만 딸이 병원도 싫다 집 밖에 나가는 것도 싫다했으니 어쩔 수 없이 그냥 방치한 모양이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정신분열병은 15~6세 무렵에 많이 발병하는데 현재는 도파민의 과잉 분비로 인한 뇌질환으로 보고 있습니다.”

정신분열병의 주 증상은 망상과 환청인데 혼자서 실실 웃고 누가 자꾸 자기를 감시한다고 한다는 것이다. 그도 딸의 병에 대해서 자세하게는 알지 못했지만 일단 딸을 데리고 근처 정신과 병원을 찾았다. 그런데 딸을 진료한 의사가 고개를 저었다. 너무 오랫동안 방치되어 있어서 자기로서는 어쩔 수 없으니 큰 병원으로 가보라고 했다.

한미래 사회복귀센터 개소식. ⓒ이복남

하는 수 없이 B병원 정신과로 데려갔는데 B병원 의사도 고개를 저으며 입원도 안 된다고 했다. 병원에는 간호사가 있기는 하지만 밤에는 환자가 무슨 짓을 할지 모르기에 중증환자는 입원이 곤란하다는 것이다.

그는 15일 동안 밤에는 자신이 딸을 지키기로 담당의사와 약속을 하고 딸을 입원시켰다. 그가 15일을 약속한 것은 그동안 딸이 병원도 안가고 방치되어 왔기에 행동이 제멋대로였지만 15일 정도만 약을 먹고 치료를 하면 어느 정도는 안정이 될 거라는 기대 때문이었다.

그는 호주에서 돌아와 다시 직장생활을 하고 있었는데 퇴근 후에는 병원으로 가서 딸의 밤을 지켰고 아침이 되면 병원에서 회사로 출근하였다.

“진작 와 보지 못한 것이 후회가 되었지만 어쩌겠습니까?”

그렇게 보름동안 딸을 지켰고 3개월이 지나면서부터 한 달에 한번씩은 2박 3일 외출을 허락 받아 집으로 데려 왔다. 그렇게 병원 생활을 하면서 딸이 조금씩 나아지는 것 같았지만 그래도 집으로 데려올 상황은 아니었다. 한 병원에 2~3년 씩, 부산 창원 김해 진영 등 가까운 정신병원을 전전했다.

“C병원에 있을 때 밥을 안 먹는다고 연락이 왔습니다.”

정신병원에서도 대부분은 한 방에서 여러 명이 생활하는데 누군가가 음식을 거부하거나 문제가 생기면 독방에 가두어 둔다. 환자가 무슨 일을 할지를 알 수가 없으므로 폐쇄병동에 가두어 놓고 손발을 묶어 두기도 하는데 밥을 계속 안 먹으면 데려가라고 한다는 것이다. <3편에 계속>

* 이복남 기자는 에이블뉴스 객원기자로 하사가장애인상담넷(www.gktkrk.net) 원장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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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웃이 행복하지 않는 한 나 또한 온전히 행복할 수 없으며 모두 함께 하는 마음이 없는 한 공동체의 건강한 발전은 기대하기 어렵다. 우리는 함께 살아가야 할 운명공동체이기 때문이다. 아름답고 건강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가진 자와 못 가진자,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평등하게 공유할 수 있는 열린사회를 건설해야 한다. 쓸모 없음을 쓸모 있음으로 가꾸어 함께 어우러져 나아갈 수 있도록 서로 사랑으로 용서하고 화합하여 사랑을 나눔으로 실천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이복남 원장은 부산장애인총연합회 사무총장을 역임하였으며 현재 하늘사랑가족상담실을 운영하고 있다. 하사가장애인상담넷www.gktkrk.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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