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무슨 일로

그리합니까?

홀로이 개여울에 주저앉아서

파릇한 풀포기가

돋아나오고

잔물이 봄바람에 헤적일 때에

가도 아주 가지는

않노라시던

그러한 약속이 있었겠지요.

날마다 개여울에

나와 앉아서

하염없이 무엇을 생각합니다.

가도 아주 가지는

않노라심은

굳이 잊지 말라는 부탁인지요.'

이 시는 김소월 시인의 ‘개여울’이다. 산유화, 진달래꽃, 엄마야 누나야, 초혼 등의 주옥 같은 시를 쓴 김소월은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시인인데 ‘개여울’는 1922년에 발표 된 작품이다.

그러나 ‘개여울’은 사람들에게 별로 알려지지 않았다. 1966년 이희목이 곡을 붙여 김정희라는 가수가 노래했지만 반응이 신통찮았다. 그러다가 1972년 정미조가 데뷔곡으로 ‘개여울’ 불러 히트를 쳤고 그 후 심수봉 적우 등이 리메이크해서 오늘날까지 애창되고 있다.

김석모 씨. ⓒ이복남

‘개여울’은 헤어진 연인의 노래인데 가도 아주 가지는 않겠노라니 정말로 잔인한 약속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몸은 비록 떠나가도 사랑하는 마음은 변치 않으마 그래서 늙어 죽을 때까지 흐르는 물살이나 바라보면서 비록 만나지는 못하지만 그리워하며 잊지는 말자는 것이다.

어쩌면 가시는 길에 꽃을 뿌릴 테니 사뿐히 즈려밟고 가시라는 진달래꽃보다도 더 잔인하고 가슴 아픈 노래인 것 같다.

그런데 그렇게 가슴을 후벼 파듯 절절하게 아프고 고통스럽게 사랑하는 사람이 떠나보낸 님이 아니고 가슴에 품은 딸임에랴 더 무엇을 말하랴. 그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것 같이 사랑스럽고 예쁜 딸은 이미 오래전에 잃었다.

딸을 잃었다는 것이 아니라 이미 그 때의 딸이 아니라는 것이다. 딸은 그렇게 갔지만 그는 딸을 보내지 않았다. 보내지 않은 게 아니라 차마 보낼 수가 없어서 그 끈을 놓지 못했던 것이다. 가냘픈 그 끈을 부여잡고 딸과 함께 울고 웃으며 보낸 세월이 벌써 20년이다.

어쩌면 다시는 오지 돌아오지 않을 님일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김석모 씨는 그 딸이 예전처럼 웃으면서 돌아 올 날이 있을 거라는 희망을 버리지 않고 오늘도 과거를 잃어버린 딸과 함께 집을 나선다.

김석모(1941년생) 씨는 부산상대 무역학과를 졸업하고 해병대 학사장교 시험을 쳐서 32살에 대위로 전역했다. 그리고는 곧바로 A건설회사에 취업을 했다. 상대를 나와서 건설회사에 취업이라.

“그 당시만 해도 사우디에 건설공사를 하고 있었기에 저는 무역을 담당했습니다.”

김석모 씨의 딸 복지카드. ⓒ이복남

그의 집은 부산이었지만 직장 때문에 서울에 살았기에 서울에서 부산 아가씨인 아내 박00(47년생) 씨를 만나 결혼했다. 그리고 낳은 첫 딸이 지현(1976년생)이다.

그의 앞날은 탄탄대로였고 예쁜 아내에다 귀여운 딸까지 얻었으니 더 이상 부러울 것이 없었다. 아내는 지현의 아래로 딸 둘을 더 낳았다.

그는 건설회사에서 무역담당이라 사우디에도 나가야 하는 등 눈 코 뜰 새 없이 바빴지만 집에 돌아오면 딸 셋의 재롱으로 피곤이 봄 눈 녹듯이 사라졌다.

첫 딸은 영리하고 예뻤고 공부도 잘 했는데 특히 그림을 잘 그렸다. 그래서 나중에 디자이너가 되겠다며 희망에 부푼 꿈을 그리기도 했다.

그동안 그는 A건설회사에서 수주업무 및 무역을 담당하면서 필리핀, 사우디 등에서 장기간 근무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이제는 기반도 잡았고 외국 문물도 어느 정도 익혔기에 주변에서는 자꾸만 독립을 부추겼다.

“88올림픽이 있던 해였는데 회사를 그만두었습니다.”

그 무렵 친구가 호주에서 신발제조업을 하고 있어서 그와 의논하여 호주 및 중동시장 개척을 위하여 호주로 갔다. 그 때가 1988년 겨울이었다. 그는 그동안의 경험을 바탕으로 열심히 노력했지만 대기업 제품들과 경쟁하기란 생각만큼 순조롭지가 않았다.

“처자식 다 놔두고 혼자 호주가서 고생했는데 그래도 고국의 딸들을 생각하면 힘이 났습니다.” <2편에 계속>

* 이복남 기자는 에이블뉴스 객원기자로 하사가장애인상담넷(www.gktkrk.net) 원장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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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웃이 행복하지 않는 한 나 또한 온전히 행복할 수 없으며 모두 함께 하는 마음이 없는 한 공동체의 건강한 발전은 기대하기 어렵다. 우리는 함께 살아가야 할 운명공동체이기 때문이다. 아름답고 건강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가진 자와 못 가진자,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평등하게 공유할 수 있는 열린사회를 건설해야 한다. 쓸모 없음을 쓸모 있음으로 가꾸어 함께 어우러져 나아갈 수 있도록 서로 사랑으로 용서하고 화합하여 사랑을 나눔으로 실천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이복남 원장은 부산장애인총연합회 사무총장을 역임하였으며 현재 하늘사랑가족상담실을 운영하고 있다. 하사가장애인상담넷www.gktkrk.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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