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으디 높은 산마루

낡은 고목(古木)에 못 박힌 듯 기대어

내 홀로 긴 밤을

무엇을 간구하며 울어 왔는가.

아아 이 아침

시들은 핏줄의 굽이굽이로

사늘한 가슴의 한복판까지

은은히 울려오는 종소리.

이제 눈감아도 오히려

꽃다운 하늘이거니

내 영혼의 촛불로

어둠 속에 나래 떨던 샛별아 숨으라.

환희 트이는 이마 위

떠오르는 햇살은

시월상달의 꿈과 같고나.

메마른 입술에 피가 돌아

오래 잊었던 피리의

가락을 더듬노니

새들 즐거이 구름 끝에 노래 부르고

사슴과 토끼는

한 포기 향기로운 싸릿순을 사양하라.

여기 높으디 높은 산마루

맑은 바람 속에 옷자락을 날리며

내 홀로 서서

무엇을 기다리며 노래하는가.’

이 시는 1945년 8월 15일 해방공간을 노래한 조지훈 시인의 ‘산상의 노래’이다. 홀로 긴 밤을 무언가를 간구하며 울어 왔는데, 은은히 울려오는 종소리를 들으며 어둠이 걷히고 햇살이 비치고 있어 감격했지만 그래도 또 다른 무언가를 기다려야 하다니, 시인이 기다린 것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이진섭씨와 아들 균도. ⓒ이진섭 블로그

균도아빠 이진섭 씨의 어릴 적 꿈은 여행이었다. 새처럼 나비처럼 훨훨 날아서 산천경계를 돌아다니고 싶었는데 한 번도 그 꿈을 실행하지 못했다. 허덕이며 사느라고 그 꿈을 실천할 겨를도 없었던 것이다.

50세가 된 어느 날 아들 균도를 위해서, 균도를 위해서라기보다는 아들 균도와 함께 젊은 날의 못다 한 꿈을 이루게 된 것이다. 아들 균도와 함께 걸어서 전국을 돌며 장애아동복지지원법과 발달장애인법 제정을 외쳤고 기초수급자에서 부양의무자폐지를 주장했다.

덕분에 ‘장애아동복지지원법’(2011.8.4.)은 제정되었으나 ‘발달장애인법’은 아직도 국회에 계류중이고, 기초생활수급자에서 ‘부양의무제폐지’는 오리무중이다. 그러나 그의 바람이 이루어진다해도 그는 결코 평온하지는 못할 것이다.

이 험한 세상의 가시밭길을 균도는 여전히 혼자서 걸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결국 그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아들 균도가 가는 길을 조금이나마 평안하도록 닦아주는 일일 뿐 결코 아들 균도 대신 가 줄 수는 없다.

균도 아빠 이진섭(1964년) 씨는 50년을 살았는데 그의 인생은 장애인과 함께 하는 삶이었다. 25년은 아버지와 함께했고 그리고 나머지 25년은 아들 균도와 함께하고 있다. 이진섭 씨의 아버지는 4.19 때의 부상으로 정신장애에 시달렸는데 그는 솔직히 아버지에게서 벗어나고 싶었다고 했다.

그래서 서둘러 아내 박금선(1966년생) 씨 결혼을 했고 그래서 태어난 아들이 균도(1992년생)였다. 균도는 태어나마자자 무호흡증으로 삼칠일 동안이나 인큐베이터 신세를 져야 했다. 당시에는 기장 좌천에 살고 있었는데 삼칠일이 지난다음 병원에서 퇴원하고 집으로 돌아 온 균도에게 별다른 이상은 없었다.

그런데 날이 갈수록 아이가 다른 보통의 아이들과 좀 달랐다. 한창 재롱을 부릴 나이에 방실방실 웃지도 않았고, 엄마하고 눈 맞춤도 없었고 아이는 멍하니 혼자서만 놀았다.

“아이의 양육은 아내 몫이라고 생각해서 생업에만 열중했습니다.”

그는 무역상을 하고 있었는데 양육은 당연히 아내 몫이라고 생각하고 자랐기에 아내가 균도 때문에 힘들게 병원을 오가는 것을 보면서도 그냥 좀 늦은 아이라고만 생각했었다. 그런데 아이가 세 살이 되던 어느 날 아내가 울면서 애원했다.

“균도가 이상합니다. 서울대학병원 소아정신과에서 진단이라도 받아 보는 것이 소원입니다.” 그는 뜨끔했다. 아내가 균도 때문에 그렇게 힘든 줄은 생각지도 못했던 것이다. 그동안 내가 사느라고 아내와 아들을 못 챙겼구나하는 자책이 들었다.

그는 서울에서 대학을 다니면서 아내를 만났기에 아내의 친정도 서울이었다. 그는 살림을 정리하고 아내와 아들을 위해서 서울로 이사를 했다. 그 때만 해도 아내가 친정 옆으로 왔으니 아내의 마음도 좋아질 것이고 균도도 서울대학병원 소아정신과엘 다니고 있으니 나아질 것이라 생각했기에 타향살이도 그냥 묵묵히 참아내고 있었다. <2편에 계속>

* 이복남 기자는 에이블뉴스 객원기자로 하사가장애인상담넷(www.gktkrk.net) 원장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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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웃이 행복하지 않는 한 나 또한 온전히 행복할 수 없으며 모두 함께 하는 마음이 없는 한 공동체의 건강한 발전은 기대하기 어렵다. 우리는 함께 살아가야 할 운명공동체이기 때문이다. 아름답고 건강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가진 자와 못 가진자,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평등하게 공유할 수 있는 열린사회를 건설해야 한다. 쓸모 없음을 쓸모 있음으로 가꾸어 함께 어우러져 나아갈 수 있도록 서로 사랑으로 용서하고 화합하여 사랑을 나눔으로 실천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이복남 원장은 부산장애인총연합회 사무총장을 역임하였으며 현재 하늘사랑가족상담실을 운영하고 있다. 하사가장애인상담넷www.gktkrk.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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