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조울증은 회복될 수 있다’의 저자 정안식씨.ⓒ에이블뉴스

정신장애 100만시대. 100명중 1명은 한번이라도 우울증이나 조울증을 겪었다. 최근 연이은 자살 원인에서도 정신건강 문제가 자주 거론되곤 한다. 손가락질 받던 ‘정신병자’만이 정신과에 가서 약을 처방받는 것이 아니라, 누구나 정신과 상담이 평범한 모습으로 그려지는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이런 와중에, 스스로 정신장애인들을 대변하며, 그들의 아픈 마음을 치유하고자 하는 이가 세상에 나왔다. 최근 발표한 ‘조울증은 회복될 수 있다’의 저자이자 한국정신장애인연대(KAMI) 이사이기도 한 정안식(41)씨다.

스스로 정신장애인의 멘토가 되길 바라는 안식씨를 서울 근방에서 만났다. 그가 책을 쓰고자 했던 것은 참 오래된 이야기다. 누구보다 힘겨웠을 정신장애를 회복함에 있어서 다음 사람에게는 꼭 회복방법을 알려야 하겠다는 사명감에서다.

“현재 우울증과 조울증으로 고생하는 정신장애인 분들이 100만명 정도로 추산되요. 하지만 이들은 장애인이란 것을 인정하기 싫어서 질병을 숨기고 쉬쉬하는게 많죠. 그런 분들에게 어떻게 하면 질병을 극복할 수 있는지 알려줘야 겠다는 사명감이 들었어요. 죽기 전에 책을 써야겠다고 무턱대고 덤볐던 게 5년이나 걸렸죠.(웃음)”

책을 쓰기 위한 준비만 5년이나 걸렸다. 전문가들도 많이 만났고, 같은 병을 앓았던 환우들도 많이 만났다. 집중적으로 앉아서 기록한 것도 1년이다. 어느 순간 우리사회에 던져진 질병이지만, 너무나 무지한 국민들에게 알리고 싶었던 것이 그의 간절한 마음이다.

꿈 많던 20대 청년 안식씨에게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운 건 지난 1991년이다. 갑자기 잠이 많아졌다. 12시간을 잤는데도 개운치 않았다. 몸이 풀어지고 무력화되면서 죽음에 대한 향수가 피어났다. 알라딘 286세대, 정보의 고갈 속 그는 그 것이 정신장애의 거대한 서막일 줄 몰랐다.

까페 안 화분의 꽃이 갑자기 죽은. 얼어죽었을지도, 누군가 남은 커피를 부어 죽었을지도 모르는, 다양한 원인 속 안식씨도 모르는 사이에 그렇게 됐다.

“조울증의 경우 원인이 너무 많아서 없다는 말이 있을 정도예요. 밥 잘 먹는 사람이 갑자기 우울증이 올수도 있고, 못 먹어서 걸리기도 하고. 원인은 음식이 될 수 있고, 스트레스 등 심리적인 부분이 출발이 될 수 있죠. 저는 약간 유전적인 부분도 있었구요. 동생과 형도 잠깐씩 병에 걸리기도 했었거든요. 원인이 너무 많은 병이라 문제죠.”

1년이 지난 후, 그는 갑자기 기분이 좋아졌다. 조울증의 시작인 경미한 조증이 온 것이다. 내면적으로 업이 된 안식씨는 지나친 낙관성이 생겼다. ‘잘되겠다’, ‘대박 치겠다’ 등 검증되지 않은 자신감이 그를 휘감았다. 반면 주변사람들은 “성격 쾌활하고, 허풍있네, 이친구”하며 웃어넘기는 수준이었다.

무관심은 안식씨의 병을 키웠다. 갑자기 우울해지다가도 갑자기 기뻐지고, 자신만의 세계에 빠지고 만 것이다. 꽃이 시들어 있는 모습만 봐도 ‘죽어서 아프겠다, 힘들겠다’라며 눈물까지 흘렸다. 2달이 지나자 망상은 점점 심해졌다. 종말이 온다는 생각에 두려움에 떨었고, 베스트셀러가 된 헛된 망상에 사로 잡혔다.

“어느 날 밤 9시에 길을 걷는데, 어떤 분이 공중전화에 차를 세워놓고 통화를 하더라구요. 그 차를 보는 순간 ‘내가 저 차를 타고 가라고 천사가 보내준거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아무런 죄책감 없이 차를 운전하다가 접촉사고를 냈어요. 결국 파출소도 갔고, 교도소까지 경험했네요.”

당시 정신장애란 병을 몰랐던 파출소는 횡설수설하는 안식씨에게 폭력을 가하기도 했다. 환각상태에 빠져 진술이 엉망인 그는 결국 교도소까지 가게 됐다. 교도소로 들어가는 순간에도 안식씨는 ‘새로운 행성에 도착했구나’라는 환각에 빠진 상태였다. 밤마다 철문을 발로 찼고, 밥그릇을 깼고, 독방에 갇혀 심하게 맞기도 했다.

“재판을 해야 하는데 재판이 안 되잖아요. 결국 그때 처음으로 정신과 의사와 만났어요. 회전 의자 뺑 돌고 나온 거 밖에 기억이 안 날 정도예요. 예전에는 정신장애가 악마가 들렸다는 병으로 인식해서 주사기로 피 빼는 의료기술을 남발하기도 했어요. 참 무식했었죠. 정신과 의사와 만나고 나서 얼마 있다가 교도소도 나오게 됐죠.”

교도소를 나와서도 안식씨의 병은 깊어만 갔다. 1992년 당시, 종말론이 사회에 팽배했을 때, 안식씨는 갑자기 ‘종말이 됐다’라는 깊은 망상 속에서 차에 뛰어 들었다. ‘영혼이면 깔려도 안죽겠지’를 확인하고 싶은 거였다. 누군가 말리지 않았더라면 목숨을 잃었을지도 몰랐을 것이다.

안식씨는 그때의 일을 회상하며 “그때 기사분께 너무 죄송해요. 그분도 당황해서 욕을하고 그랬는데 지금 생각하면 너무 미안할 정도입니다. 하지만 저는 그 당시 너무 힘들어서 차라리 죽었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이 들정도였거든요”라고 말했다. 그 뒤 안식씨는 정신병원에 입원하며 정식 치료를 받게 됐다.

“좌절의 극치를 맛봤었죠. 이러면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병으로 인해 사고도 생기고 빚도 생기고, 이 병이 있는 한 뭐도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자 그때부터 노력을 했어요. 의사들의 처방이외에 스스로의 생활을 바꿔보려 노력했어요. 의사만을 맹신하지 않으려고 했죠.”

그가 첫 극복 시도를 시작한 것은 영양제다. 다른 질병을 앓고 있던 친구가 영양제를 먹고 좋아졌다고 추천한 것이다. 일반 약국에서 찾아볼 수 있었던 영양제에는 ‘우울증 개선’이 써있어서 그저 먹었다. 오랜 병이었던 치질도 없어졌다.

신간 ‘조울증은 회복될 수 있다’의 저자 정안식씨.ⓒ에이블뉴스

“근본적인 치료는 통합적인 치유라고 할 수 있어요. 의사의 처방도 물론 중요하지만 전부는 아니예요. 약을 10알씩 먹는거에서 3~4알로 줄이는 것. 그게 하나의 시작이라고 볼 수 있어요. 영양적으로 음식을 영양소에 맞게 섭취하고, 등산하고, 생활의 패턴을 바꾼다던가 그런 단순한 노력이 중요해요. 그렇다보면 의사와 싸우지 않으면서 약이 저절로 줄여가겠죠. 약이 줄어든다는 건 내 몸이 좋아진다는 뜻이잖아요.”

하지만 많은 대중들은 아직까지도 정신장애를 손가락질 하고 있다. 우울증에 걸려 힘들어하는 사람들에게 ‘정신력이 저리 약해서야..’하며 쯧쯧 거리는 모습에 안식씨도 할 말이 많다.

“대중들의 편견으로 정신장애인들은 정말 상처를 많이 받아요. 정신력과 상관이 없어요 정말. 있다면 5%정도? 정신력이 부족해서 병에 걸렸다라는 말은 정말 ‘무뇌한’들이나 하는 말이죠. 주변에서 조언보다는 전문가의 상담을 받아보는 게 좋을 거 같아요.”

무엇보다 정신장애의 극복을 위해서는 우리 사회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 안식씨의 생각이다. 여성 성폭력 사고가 터지니까 관련법이 강화되고, 누가 죽었다 하면 그 쪽에 관리가 엄격해지는 ‘사후약방문’적인 모습을 벗어나는 게 첫 단추라는 거다.

“우리나라에는 많은 정신장애인들이 있어요. 정부가 어떻게 케어하느냐에 따라 선진국이 되고 안되고가 될 정도예요. 정신장애는 일반장애의 마지막 단계로 애매하죠. 신체가 멀쩡하니까요. 국민의 의식이 정부에 반영이 되잖습니까? 정부에게 해달라는 것보다는 우선적으로 국민의 의식이 깨우는 게 먼저라고 봅니다.”

아래로부터의 개혁, 국민에게 많이 알려지면 단체 집합이 되고, 연대가 꾸려져 조직적인 행동을 취하면 정부도 반드시 움직일 것이라는 자신. 이제는 먹고 사는 문제에서 조금은 벗어나 정신건강 문제에도 관심이 있어야 하는 시점이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이 당선되고 새 정부가 꾸려질 준비를 하고 있다. 여성의 섬세함으로 내부적으로 병 들어있고 힘들어있는 정신장애 문제를 끄집어내줬으면 하는 것이 그의 소망이기도 하다.

“의료계 전문가들과 제약사들만 정책을 필게 아니라 환자와 환자가족, 검증된 영양학자가 골고루 의견을 만들어야 해요. 일단은 저는 정신장애를 더 깊이 연구해서 전문가로 거듭나고 싶어요. 영어랑 일본어, 중국어로 번역도서를 출간해서 외국인들이 정신건강을 배우러 오게끔 만드는 것이 목표구요.”

당사자로서 정신장애인들의 ‘멘토’가 되고 싶다는 안식씨는 무척 바빠보였다. 인터뷰가 있었던 날도 환자들과 그의 가족을 만나기로 했다. 결혼 문제, 이성문제 등 많은 고민거리가 있는 그들을 외면하고 싶지 않다.

“저 같은 사람이 100명만 더 있었으면 좋겠네요. 연대 활동이 꾸려져서 많이 활동하고 그래야 하는데 사실 지금은 힘들어요. 정신장애, 이제 남 얘기만은 아닌데, 2020년 이후에는 암보다 정신건강 문제가 화두로 떠오른다고 해요. 대비를 하기 위해서는 많이 알고, 정책도 많아져야 하겠죠. 지금은 글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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