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문 턱까지 찾아온 지금 제주의 경치는 가히 일품이다. 천혜의 아름다움을 간직한 신비의 섬 ‘제주’는 해가 저물 무렵부터 깊은 밤까지 ‘푸른 밤’을 만끽할 수 있다. 특히 제주도의 푸른 밤의 색채감은 그야말로 압권이다. 제주도는 모든 이들에게 여유와 낭만, 일상의 원기를 가득 채울 수 있는 에너지 충전소의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경제적·이동의 어려움으로 신혼여행을 다녀오지 못한 장애인 부부을 위해 한국관광공사와 SK 이노베이션, 에이블복지재단이 ‘함께하는 여행’ 제3차 아주 특별한 허니문 제주여행을 마련했다.

청하한 날씨였던 지난 11일 오전 8시 반 김포공항 국내선 앞. 부부의 연을 오랜 시간 맺어왔지만 신혼여행을 다녀오지 못한 전국 각지의 장애인 부부 28쌍(56명)이 모였다.

2박 3일간 진행 된 이번 여행은 ‘제주일원’으로 한국관광공사의 ‘베리어프리(Baeeier Free)' 컨셉을 바탕으로 더마파크 마상공연, 분재예술원, 트릭아트뮤지엄, 제주서커스월드 등의 일정으로 마무리 됐다.

이 중 볼록 나온 배를 쓰담으며 서로 웃어 보이는 조병옥(40세·지체장애 2급)·정수지(23세) 부부가 눈에 들어왔다. 나이 차이가 많이 나 보인 탓에 모든 참가자들의 주목을 받았기 때문이다.

조병옥·정수지 부부가 서로 대화하고 있는 모습 (좌측부터) ⓒ에이블복지재단

조 씨는 어릴 적 앓은 소아마비로 인해 지체장애인이 됐다. 그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운전밖에 없어 무작정 택시 운전을 하게 됐다. 그러던 중 지난해 예상치도 못하게 어린 아내 정씨를 만나게 됐다. 이들의 첫 만남은 드라마 처럼 로맨틱 했다.

이른 아침 자판기에서 커피를 뽑던 조씨. 정씨와 부딪히며, 커피를 쏟아버렸다. 세탁비 대신 저녁식사를 하게 된 그들의 인연은 그렇게 시작됐다. 조씨는 아내 정씨에게 호감은 갖고 있었지만 무려 17살 차이 때문에 쉽게 이성의 감정으로 발전할 수 없었다고.

하지만 현재 아내의 어려운 형편을 알게 된 후 조심스레 같이 살 것을 권유했고, 이에 응했다. 결국 이들 부부는 경제적인 이유로 혼인신고만 한 채 지난해 가을부터 행복한 가정을 꾸렸고, 폭풍이(태명)까지 갖게 됐다.

행복이 오면 불행이 온 다 했던가, 조 씨 부부에게도 큰 불행이 닥쳤다. 조 씨가 택시기사를 하며 간간히 생계를 유지해왔지만, 목 디스크 수술 등 건강악화로 결국 일자리도 잃었다.

이에 조 씨는 번듯한 결혼식도 해주지 못하고 신혼여행도 가지 못한 마음에 아내에게 늘 미안함을 안고 지내왔다.

'함께하는 여행'을 통해 신혼여행을 떠나게 되는 이들 부부의 사연을 알게 된 KBS 2TV ‘사랑의 가족’ 프로그램에서는 조씨 부부의 결혼식을 치러주었다. 이후 이번 여행을 통해 진정한 신혼여행을 떠나게 됐다.

조 씨는 큰 한숨을 들이키며 아내의 부모님께 결혼 허락을 받지 못한 채 결혼생활을 하고 있어 내내 마음이 쓰인다고 말했다.

“저희 집에서는 부족하지만 저를 좋아해주고 같이 있어주니 아내를 좋아하죠. 그렇지만 나이 차이도 많이 나고 제가 부족한 게 많아서 인지 아직도 장모님, 장인어른은 허락해주시지 않아요. 이번에 좋은 기회로 결혼식을 한다고 말씀드리러 갔을 때도 집으로 들여보내주시지 않았죠. 출산을 앞 둔 아내 옆에 장모님이 있어주시면 좋을텐데… 걱정되네요”

그래도 그는 함박웃음을 보이며 말했다. 이번 기회로 결혼식에 신혼여행까지 나름 ‘풀세트’로 아내에게 선물하게 돼 기쁘다고.

조병옥·정수지 부부가 제주 분재예술원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에이블복지재단

아직 태풍이가 세상에 나오기까지 2달여간의 시간이 남아있지만 이들 부부의 마음은 초조하기만 하다. 장애수당, 수급비 등으로 70여만원으로 한 달을 생활 하고 있지만 빠듯하기만 한 주머니 사정 때문이다.

조씨 부부는 현재 고운맘카드를 통해 50만원의 출산지원금을 받고 있어 정기검진을 받고 있지만, 지원 액수가 부족하다고 토로했다.

보건복지부가 산모에게 임신, 출산 진료비를 지원해 임신 및 출산의 경제적 부담을 줄이기 위해 임신기간 동안 임신과 출산과 관련된 진료에 드는 비용 중 50만원의 비용을 지원 받을 수 있다. 임신·출산 진료비는 현금이 아니라 지정 요양기관에서 진료비를 결제 할 수 있는 전자 바우처(고운맘카드)를 통해 결제하는 방식이다.

특히 1일 한도액이 6만원으로 한정 돼 있어 기본적인 초음파만 받아도 5만원이 훌쩍 넘고 초과금액은 늘 자부담으로 하고 있어 1일 한도액을 확대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지금 우리나라가 저출산이잖아요. 출산을 도모하기 위해서 지원금 금액도 확대했으면 좋겠어요. 50만원이면 초음파 1~2번 받고 주사 몇 번 맞으면 끝이거든요. 또 한도액이 6만원으로 정해져 있어 초과금액은 늘 자부담으로 내야 하니 그것도 부담되죠.”

아이를 가진 기쁨을 누릴 새도 없이 양육비 걱정이 점점 커져가는 현실에 조 씨는 가장으로서의 책임감의 어깨가 무거워진다.

조 씨는 출산 후 100만원의 출산 비용(서울시 거주 장애인 가정이 출산할 경우)을 지원받게 되지만 이도 적다는 목소리를 냈다.

“산후조리하면서 드는 비용이랑 아이 우유 값, 기저귀 값 등 1명의 자녀를 대학까지 보내는데 드는 비용이 몇 억 든다고 하지 않나요. 100만원은 그냥 장려금 식의 비용이죠. 특히 장애가 있는 저 같은 경우 물론 100만원도 큰 돈 이죠. 그렇지만 소득이 없는 상태에서 아이를 키우기가 막막할 뿐이에요. 일시적인 비용이라도 더 지원해줬음 하는 바람이 큽니다.”

둘째 아이는 아들을 갖고 싶다는 아내 정씨. 하지만 둘째아이를 갖기에는 지금의 막연한 현실 때문에 망설여진다고 답했다.

“아들을 낳고 싶은데.. 형편이 이래서 뭐... 망설여지네요. 정부에서 출산장려정책을 활성하게 해주면 좋을텐데, 육아하기에 도움되는 그런 것들 있잖아요.”

이들 부부에게 이번 여행은 결혼식과 신혼여행의 기회까지 모두 안겨주었다. 이들은 이번 여행을 지원해준 한국관광공사와 SK이노베이션, 에이블복지재단에 감사하다는 말을 연신 했다. 형편이 어려워 결혼식과 신혼여행을 가진 못한 부부들에게 더 많은 기회를 안겨주길 바란다는 말도 덧붙였다.

“이 사람을 만나고부터 얼굴에서 웃음이 떠나가지 않아요. 진짜 내 사람이란 생각이 들고, 나이 차이가 나는 만큼 더 어른스럽게 더 자상하게 챙겨줄꺼에요. 지금 이 마음이 변치 않을 꺼라 확신해요.”

여행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부부의 얼굴에는 수줍은 미소가 가득했다. 인생의 동반자가 된 후 녹녹한 현실에 힘든 점도 있지만 사랑과 믿음으로 헤쳐 왔고, 앞으로도 그렇게 살아 갈 것이라는 확신에 찬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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