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신형을 선고 받았구나
지적장애 2급의 엄마, 강경채 씨의 삶-②
에이블뉴스, 기사작성일 : 2012-06-18 16:16:07
의사는 아이의 병을 연구하는 병원이 있으니 그리로 보내보자고 했다. 인큐베이터에서 나온 핏덩이를 혹시나 하는 심정에서 눈물을 머금고 의사가 소개하는 병원으로 보냈다.
“한 달 후에 우리가 얻은 것은 아이가 낫는다는 것이 아니라 다운증후군이라는 것을 확신했을 뿐입니다.”
기가 막혔다. 이미 다운증후군이라고 알고 있었는데 그것을 확인하기 위해 한 달이나 어린아이와 떨어져 있어야 했다니……. 세상이 너무나 원망스러웠고 의사가 야속했다.
병원에서 아이를 데려오면서 ‘종신형을 선고 받았구나. 이제부터 나의 삶은 없겠구나.’ 싶었다. 그때부터 울었고 오랫동안 웃음을 잃었다. - 이 이야기를 하면서도 강경채 회장은 배시시 웃었는데, 지금은 잘 웃는단다.
그 때는 웃을 수도 없었지만 항상 웃음보다는 눈물이 먼저 나왔다. 내가 이런 애를 낳았다는 것, 애를 좀 더 잘 돌보아야 한다는 것이 천근만근 무게로 어깨를 짓눌렀다.
다운 증후군(Down syndrome)이란 이미 오래전부터 존재했던 것으로 추정되지만 공식적으로는 1866년 영국 의사 존 랭던 다운(J. Down)에 의해 처음으로 언급되어 그의 이름을 따라 다운 증후군이라 불리게 되었다.
일반적인 사람의 염색체는 2n=46으로 23개 염색체를 쌍으로 갖고 태어나는데 다운증후군은 21번 염색체를 하나 더 갖게 됨으로써 21번 염색체가 3개가 되는 것이다. 다운증후군은 성장발달이 느리고 면역력이 약해서 항상 조심을 해야 된단다.
늦된 아이! 우리나라 부모들이 그나마 위안을 받고 한 가닥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 말이란다. 은혜는 정말 늦된 아이였다. 아이는 성장 발달 단계에서 모든 것이 늦었다. 그러나 발달단계는 중요하지 않았다. 다운증후군은 보편적으로 수명이 짧다고 하여 은혜가 숨 쉬고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했다. 마침 남편이 교환교수로 동경으로 가게 되어 잠시나마 시집에서 벗어날 수가 있었다.
“우리 집에 이런 아는 없다.”
시도 때도 없는 시어머니의 말씀은 비수가 되어 가슴을 찔렀다. 본래 일을 잘 못하는 것인지, 애 때문에 못하는 것인지 그도 알 수 없었지만 시어머니는 종부가 되어서 일을 못한다고 넋두리했다.
시어머니는 장애 아이에다가 딸이라는 것이 더욱 못 마땅했던 것이다. 시어머니는 아들 손자를 바라고 계셨지만 둘째라니! 그는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러나 모두가 둘째를 바라고 있었기에 하는 수 없이 병원을 들락거렸다. 산모가 나이가 많지도 않았고 유전요인도 찾을 수가 없었기에 결론은 돌연변이였다. 의사가 유전적인 요인은 없다고 했지만 자신이 없었다. 조마조마하게 둘째를 가졌고 불안감 속에서 아이를 출산했다. 다행인지 둘째는 누나를 닮지 않았다.
은혜는 느리지만 조금씩 성장했다. 그러나 그는 언제나 그 자리에 있었다. 어제 했던 일을 오늘도 하고 내일도 똑같은 일을 해야 된다는 자신이 너무나 초라하고 암담했다.
“이대로 가다가는 제가 미쳐 죽을 것 같았습니다.”
몇 년 만에 자신을 돌아보고는 글을 한번 써 보려고 했다.
“부엌에서 펜을 잡았는데 손이 떨렸습니다.”
은혜를 부산혜성학교에 보내놓고 그는 자신을 추스르며 한자 한자 원고지를 메워 나갔다. 쓰고 지우고 또 쓰고 지우면서 희곡 한편을 완성했다. 그렇게 완성한 ‘바리공주 오신 날’을 모 방송국에 응모해서 신인상을 받았다.
“은혜를 낳았을 때 수명이 16세로 되어 있어서 각오는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은혜는 어느새 16세가 되어 가고 있었다. 그는 은혜의 장애를 이해하기 위해서도 공부를 더 하고 싶었다. 식구들 밥은 어떻게 하냐며 시어머니는 펄쩍 뛰었다. 식구들 밥이 문제가 아니었다. 대학원 진학은 딸 은혜 그리고 그의 살 길을 찾아야 하는 절박한 문제였다.
그는 대구대학교 교육대학원에서 특수교육전공으로 방학마다 출석하는 계절 학기를 지원했다. 집은 부산 남구 남천동이지만 창녕에 시골집이 있었다. 방학이 되면 창녕에서 대구대학교까지 학교를 다녔다.
대학원에서 특수교육 공부를 하면서 딸 은혜에 대해서 좀 더 이해할 수가 있었다. 석사논문으로 ‘가면극화놀이가 정신지체아의 자기표현능력 신장에 미치는 효과’를 쓰면서 딸 은혜의 발달과정을 되돌아보기도 했다.
대학원을 졸업하고 잠시 구화학교에 근무했다. 그리고 방과 후에는 은혜가 다니는 혜성학교에서 자원봉사로 아이들에게 극화놀이를 가르쳤다.
은혜도 초등학교는 일반학교를 다녔는데 그는 딸을 위해서 아들을 같은 학교에 보내지 않았었다. 누나가 동생 때문에, 동생이 누나 때문에 위축되거나 상처 받지 않기 위한 일종의 배려였다. 그러면서도 딸의 가장 좋은 친구이자 봉사자는 동생이라고 생각했다. 동생은 누나와 친했고 누나의 모든 것을 잘 돌봐 주었던 것이다.
<3편에 계속>* 이복남 기자는 에이블뉴스 객원기자로 하사가장애인상담넷(www.gktkrk.net) 원장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장애인 곁을 든든하게 지켜주는 대안언론 에이블뉴스(able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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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복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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