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이 내게로 온다.

여릿여릿

머얼리서 온다.

하늘은, 머얼리서 오는 하늘은,

호수처럼 푸르다.

호수처럼 푸른 하늘에,

내가 안긴다. 온몸이 안긴다.

가슴으로, 가슴으로,

스미어드는 하늘,

향기로운 하늘의 호흡,

따거운 볕,

초가을 햇볕으론

목을 씻고,

나는 하늘을 마신다.

자꾸 목말라 마신다.

마시는 하늘에

내가 익는다.

능금처럼 내 마음이 익는다.’

박두진 시인의 ‘하늘’은 저멀리 높은 곳에서부터 느릿느릿 다가오고 있다. 시인이 사랑했던 하늘은 그것이 자연과 하나 되는 물아일체였을까.

카페 사장이자 김래진씨. ⓒ이복남

박두진 같은 시인은 아니지만 하늘을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 다리에 장애를 입어 꼼짝 못하고 누워있을 때 그에게 보이는 것은 창밖에 펼쳐진 하늘뿐이었다. 하늘은 맑고 파랬으며 매일매일 달랐다.

눈이 시리도록 파랗기만 한 날도 있는가 하면, 시커먼 구름이 군데군데 흔적을 남긴 얼룩진 날도 있었다. 하늘이 파란색이거나 회색이거나 별이 반짝이는 밤이거나 상관없이 그는 하늘을 사랑했다.

뜻밖의 장애는 물리적인 고통과 함께 그의 삶을 짓눌렀다. 산지사방이 깜깜한 절벽으로 그를 옥죄는 날이 이어지고, 지치고 절망스런 삶이 너무나 막막해서 죽고 싶었을 때, 그의 가슴을 가득 채워준 것은 하늘뿐이었다. 그는 하늘이 되고 하늘은 그가 되었다. ‘내가 하늘인가, 하늘이 나인가’ 그도 어느 시인처럼 하늘에서 잠깐 소풍을 나왔으니 이 세상 소풍이 끝나는 날 하늘로 돌아가리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언젠가는 그의 소원이자 희망사항인 감성음악카페를 차리고 싶었다. 그 때 음악카페 이름은 ‘하늘’이라고 하고 싶었다.

김래진(63년생)씨는 부산 영도에서 2남 1녀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어머니는 전업주부로 아이들을 키웠다. 아버지는 마도로스였으므로 별로 어렵게 살지는 않았다.

대부분의 부모들이 그랬겠지만 그의 부모님도 그가 훌륭한 사람이 되기를 바랐다. 특히 장남인 그에 대한 기대는 남달라 부모님이 생각하는 훌륭한 사람이란 의사 또는 판검사가 되는 것이었다.

그는 부모님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기 위해 초등학교 때부터 공부에 매달렸다. 어떻게든 공부를 잘해서 부모님의 기대에 만족하는 훌륭한 사람이 되고 싶었기에 중고등학교 때도 공부 밖에 모르는 샌님이었다. 그러나 아무리 열심히 공부를 한다 해도 생각만큼 성적은 오르지 않았다. 대학입시를 앞두고 대학입학예비고사를 치렀는데 의대나 법대는 어림도 없었다.

꿈 많은 학창시절. ⓒ이복남

그는 대학입학예비고사 세대인데 결국 시험점수에 맞추어서 A대학교 회계학과에 입학했다. 부모님은 아들에게 의대에 진학하기를 희망했지만 의사는 애저녁에 물 건너 갔고 그나마 차선책으로 선택한 것이 공인회계사였다.

그렇다고 해서 공인회계사가 만만한 것은 아니었다. 공인회계사법에 의하면 대학 등에서 관련학과목을 이수하고 공인회계사 시험에 합격해야 한다. 공인회계사법에서 규정한 직무의 범위는 ‘회계에 관한 감사·감정·증명·계산·정리·입안 또는 법인설립 등에 관한 회계, 세무대리’ 등이다.

회계란 한마디로 돈이 들어오고 나가는 것을 계산하고 관리하고 운영하는 사람이다. 어릴 때부터 돈에 관심을 가지고 회계사를 꿈꾸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는 한 번도 회계사가 되기를 희망하지 않았으나 어쩌다가 회계학을 전공하게 되었다.

전공에 별 관심은 없었지만 이왕에 선택한 전공이기에 책가방을 들고 열심히 학교를 다녔다. 대학생이 되자 그동안 공부밖에 몰랐던 부모님의 시선에서도 어느 정도 벗어났고 대학에서 만난 친구들로 신선한 충격이었다. 그 중에서 두세 명과는 자주 어울리면서 단짝 친구가 되었다.

어느 날 그 단짝친구들과 영화를 보러갔다. 지금은 없어진 보림극장에서 ‘졸업’을 보았다. 인생의 입구에 서있는 대학 졸업생에다 초점을 맞춘 청춘 드라마로 더스틴 호프만을 스타덤에 올렸던 영화이다. 처음엔 멋모르고 영화를 보았는데 영화 속에서 흘러나온 음악에 그는 전률했다. 사이먼 & 가펑클의 ‘사운드 오브 사일런스(Sound of Silence)’를 비롯해서 ‘미세스 로빈슨’, ‘스카보로의 추억’ 등 처음 듣는 멜로디는 너무나 감미로웠다. 더스틴 호프만이 결혼식장에서 웨딩드레스의 신부를 데리고 도망치면서 영화는 막이 내렸다. 영화는 끝이 났지만 그는 일어설 수가 없었다. 사운드 오브 사일런스가 그를 사로잡았던 것이다.<2편에 계속>

* 이복남 기자는 에이블뉴스 객원기자로 하사가장애인상담넷(www.gktkrk.net) 원장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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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웃이 행복하지 않는 한 나 또한 온전히 행복할 수 없으며 모두 함께 하는 마음이 없는 한 공동체의 건강한 발전은 기대하기 어렵다. 우리는 함께 살아가야 할 운명공동체이기 때문이다. 아름답고 건강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가진 자와 못 가진자,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평등하게 공유할 수 있는 열린사회를 건설해야 한다. 쓸모 없음을 쓸모 있음으로 가꾸어 함께 어우러져 나아갈 수 있도록 서로 사랑으로 용서하고 화합하여 사랑을 나눔으로 실천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이복남 원장은 부산장애인총연합회 사무총장을 역임하였으며 현재 하늘사랑가족상담실을 운영하고 있다. 하사가장애인상담넷www.gktkrk.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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