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자리에서 그러한 경과 하나 하나의 시시비비를 들추는 것은 부질없는 일이라 생각되어 더 이상 말씀드리지 않겠습니다. 다만 보도 사실 내용 중 인과관계들이 사실과 다르게 과장되게 연결된 부분이 있다는 점만은 분명히 밝혀두고 싶습니다. 그것은 비단 저뿐만 아니라 공단 조직의 건전성에 대해 잘못된 견해를 낳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김선규 한국장애인고용공단(이하 공단) 전 이사장은 6일 열린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공단 본부에서 열린 자신의 퇴임식에서 퇴임사를 통해 이사장직에서 물러나는 심경을 이렇게 전했다. 임기 1년여를 남기고 공단 내부사업 비리 의혹, 정치후원금 의혹 등 최근 일련의 사태에 책임을 지고 자진 사퇴한 김 전 이사장은 그동안 시시비비를 가리기 위한 공식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김 전 이사장은 "최근 불거진 일들에 대해 진실을 규명하고 소명하기 위해 부단히도 애를 써봤습니다. 최소한 우리 공단가족들에게 만큼이라도 왜곡된 진실을 바로 잡고 싶어 이사장의 심정을 담은 메일도 보내려 했습니다만 모두 부질없는 일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여러 상황과 환경이 자연스럽게 물러날 때가 되었음을 알려주기에 순응하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라고 사퇴 배경을 설명했다.

김 전 이사장은 또 의무고용률 확대를 이끌어내고 근로지원인제도를 신설하는 한편 중증장애인 공무원 특별채용을 이뤄내고 자회사형 표준사업장 확대를 이루는 등 자신이 취임이후 진행한 공단 사업에 대해 자부심을 나타냈다.

이어 "공공기관 등에서 장애인 일자리를 만들기 위한 노력의 결실이 나타나는 시점에 물러나게 되어 매우 안타깝게 생각한다"고 말했고, 장애인고용촉진기금의 안정화를 이루지 못한 점, 공단 조직이 10% 축소되는 아픔을 겪은 점 등에 대해서도 아쉬움을 드러냈다.

김선규 한국장애인고용공단 전 이사장이 6일 공단 본부에서 퇴임식을 가졌다. ⓒ한국장애인고용공단

아래는 퇴임사의 전문이다.

퇴 임 사

올 봄은 최근 40년 가운데 비 내리는 날이 가장 많고 일조(日照) 시간이 가장 짧아 최근까지도 겨울날씨처럼 추웠습니다. 그렇지만 지난 주말부터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겨울에서 봄을 건너뛰고 초여름 날씨를 보이고 있습니다. 현대 과학기술로도 감히 누구도 쉽게 예측할 수 없는 장엄한 자연의 이치에 경건함 마저 듭니다.

사랑하는 공단가족 여러분!

그리고 언제나 동지적 애정을 보내주신 장애인계 동지 여러분!

이제 저는 사랑했던 우리 공단가족들과 정들었던 공단을 떠나기에 앞서 이사장으로서 마지막 인사를 드리고자 합니다.

저에게 보내주신 여러분들의 사랑이 워낙 깊었기에, 제가 감히 여러분 곁을 떠나야겠다고 결심을 하기까지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많이 괴롭고 힘이 들었습니다.

오늘의 사임에 이르기까지의 경과는 여러분도 언론보도를 통해 간접적으로나마 보고 들으셨을 줄 압니다. 이 자리에서 그러한 경과 하나 하나의 시시비비를 들추는 것은 부질없는 일이라 생각되어 더 이상 말씀드리지 않겠습니다.

다만 보도 사실 내용 중 인과관계들이 사실과 다르게 과장되게 연결된 부분이 있다는 점만은 분명히 밝혀두고 싶습니다. 그것은 비단 저뿐만 아니라 공단 조직의 건전성에 대해 잘못된 견해를 낳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점, 여러분께서 현명하게 판단하실 줄 압니다.

최근 불거진 일들에 대해 진실을 규명하고 소명하기 위해 부단히도 애를 써봤습니다. 너무나도 안타까운 마음에 밤잠을 못 이뤘습니다. 최소한 우리 공단가족들에게 만큼이라도 왜곡된 진실을 바로 잡고 싶어 이사장의 심정을 담은 메일도 보내려 했습니다만 모두 부질없는 일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여러 상황과 환경이 자연스럽게 물러날 때가 되었음을 알려주기에 순응하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제가 사직서를 낸 것을 두고 말이 많습니다만, 저는 기관장으로서 최근 불거진 일들에 대한 책임을 지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 저를 임명해주신 임명권자에게 조금이라도 누를 끼치지 않으려는 충심에서 결단을 내리게 된 것입니다.

비록 저는 이사장직에서 물러나지만 장애인고용을 위해 앞으로도 할 일이 많이 있을 것입니다. 공단과 저는 뗄래야 뗄 수 없는 숙명적인 인연이기에 밖에서도 항상 든든한 대변인이자 지원군이 될 것이며, 공단이 잘못된 방향으로 나아갈 때는 진심어린 충고를 아끼지 않을 것 입니다. 이사장이 되고자 마음먹었던 순간부터 하나님의 곁으로 돌아가는 그날까지 저는 장애인복지를 위해서 한평생 살고자 하는 생각은 한결 같다는 점을 말씀드립니다.

사랑하는 공단가족 여러분!

퇴임인사를 드리기에 앞서 먼저 잠시 공단과의 소중했던 인연을 되새겨 보고자 합니다.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던 저는 정년이 보장된 교수직을 박차고 나와 강단이 아닌 현장 속에서 장애인을 위하는 일을 찾고자 월드컵 4강의 환희와 기쁨을 안고 2002년 10월 고용개발원장으로서 공단과 첫 인연을 맺었습니다. 고용개발원장으로 재임하는 동안 고용개발원의 연구의 실용성을 높이기 위해 열정과 지혜를 모았습니다. 그 결과 대기업 고용증진협약의 시초라 할 수 있는 CJ텔레닉스와 협약을 체결하여 100여명의 중증장애인을 고용시키는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2005년부터는 공단 고용촉진이사직을 맡아 솔선수범과 섬김의 리더십을 발휘하여 그토록 높기만 했던 대기업의 장벽을 뛰어 넘는 놀라운 성과들을 여러분들과 함께 일구어 내기도 하였습니다.

또한 2008년 6월에는 공단 가족들의 성원에 힘입어 공단 역사상 최초로 내부에서 이사장이 되는 영광을 얻어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이사장으로 재임하는 동안 많은 일들이 있었습니다. 어려운 순간도 있었고 기쁜 순간들도 있었습니다. 그때마다 응원해 주시고 격려해주신 공단 가족들에게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사랑하는 공단가족 여러분!

저는 이사장에 취임하면서 장애인고용 문제를 조금 더 멀리 내다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미션과 비전을 새로 선포하고 미래경영의 이정표를 제시하여 공단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명확히 하였습니다.

그 결과 정부 및 공공부문 의무고용률 3%, 민간부문 의무고용률 2014년까지 2.7%로 확대하였으며, 중증장애인 고용시 2배수의 일반 장애인을 고용한 것으로 인정하는 증증장애인 더불카운트제도와 중증장애인의 안정적이고 원활한 직장생활을 지원하기 위해 근로지원인제도를 신설하여 중증장애인 고용확대를 위해 노력하였습니다.

이사장에 취임한 이후에는 제가 자주 쓰는 표현대로 휠체어 바퀴가 닳도록 돌아다녔습니다. 중증장애인의 공무원 특별채용을 이끌어내기 위해 서울시장을 비롯한 지방자치단체장들과 교육감들을 만나고, 대기업 CEO와 만나 자회사형 표준사업장의 필요성을 역설했습니다.

그 결과, 상당수의 광역자치단체에서 중증장애인 특별채용을 실시하게 되어 재임기간동안 공무원 122명, 교원 16명이 합격 하였으며, 지난 연말에는 국회에도 7명의 중증장애인이 채용되는 감동적인 성과를 냈습니다.

임기 중에 30개의 자회사형 표준사업장을 설립하기로 약속한 사항을 충실히 수행하여 현재까지 23개의 대기업과 자회사형 표준사업장의 설립협약을 체결하여 보다 많은 중증장애인의 양질의 일자리를 만들어냈습니다. 포스코에서 설립한 우리나라 최초의 자회사형 표준사업장인 포스위드가 문을 열게 되어 장애인고용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였고, 공단과 MOU를 체결한 대기업들이 자회사형 표준사업장 설립추진에 박차를 가하고 있어 중증장애인의 양질의 일자를 확보하였습니다.

원케어시스템을 도입하여 고객의 요구에 부응하는 서비스 지원체계 만들어 기업지원을 보다 효과적이고 일관되게 수행할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그리고 고객 여러분들의 성원과 관심, 임직원들의 노력으로 우리공단이 3년 연속 청렴도우수기관으로 선정되는 영예를 안기도 했습니다.

재임기간 중 미국발 경제위기로 국내 경제사정이 크게 위축되어 실직자가 늘어나는 힘든 상황 속에서도 장애인고용에 대한 우리의 노력에 힘입어 장애인 고용률도 전년도 1.54%에서 1.73%로 상승하였으며 특히 공공기관은 2.09%로 의무고용률을 초과하는 성과를 일궈냈습니다.

이러한 모든 성과들은 이사장 혼자 한 것이 아니라 우리 공단 가족 모두가 각자 맡은 분야에서 최선의 노력을 다 해준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사랑하는 공단가족 여러분!

이사장으로 재임하는 동안 이루지 못해 아쉬운 부분도 있습니다.

먼저 중증장애인의 공직진출을 확대하기 위해 금년에 중점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중앙정부, 교육청, 기초지방자치단체, 공공기관 등에서의 장애인 일자리를 만들기 위해 노력한 결실들이 서서히 나타나는 시점에서 물러나게 되어 매우 안타깝게 생각합니다. 지난주에는 대구 및 대전교육청과 장애인고용 증진 MOU를 체결하였습니다. 해당 부서에서는 이러한 노력들을 계속해서 보다 많은 능력 있는 중증장애인들이 공직에 진출할 수 있도록 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두 번째는 2011년 제8회 서울 국제장애인기능올림픽대회를 1년 앞둔 시점에서 이사장직에서 물러나게 되어 성공적인 대회 준비를 위해 기여할 수 없게 되어 매우 안타깝습니다. 그렇지만 후임 이사장님과 남아 있는 공단 가족 모두가 한마음 한뜻으로 준비하여 2011년 국제장애인기능올림픽대회가 우리나라 장애인 복지분야의 품격을 한 단계 더 높일 수 있는 계기로 만들어 주실 것을 당부 드립니다.

세 번째는 장애인고용촉진기금의 안정화를 위해 노력하였으나, 아직도 장애인 고용을 위한 사업은 사업주가 내는 부담금에 거의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는 것입니다.

장애인고용촉진기금의 안정화 없이 장애인 고용정책의 성과는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기금 안정화를 위해 다양한 방안을 모색하고 노력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 있기 때문에 현직에서 물러나더라도 물심양면 지원하도록 하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이사장으로 재임하는 기간 동안 공단 가족들에게 가장 미안하게 생각하는 부분은 정부의 경영효율화 방침에 따라 공단 조직이 10% 축소되는 아픔을 겪은 것과 정부의 가이드라인으로 실질적인 임금인상이 거의 이루어지지지 않아 기관장으로서 좀 더 뿌듯하고 신나게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드리지 못한 것입니다.

하지만 여러분, 석과불식(碩果不食)이란 말이 있습니다.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후손을 위해 씨과실은 남겨둔다는 말입니다. 비록 지금 공단의 제반 상황이 어렵고 미래를 낙관할 수 없는 상황이라 하더라도 저는 여러분께 ‘일에 대한 소명의식’과 ‘동료에 대한 신뢰’는 꼭 씨과실로 남겨둘 것을 당부드립니다. 일에 대한 소명의식은 우리가 방향을 못 잡을 때 항상 우리의 좌표를 되새겨줄 것이며, 동료에 대한 신뢰는 그러한 좌표를 따라 우리가 한 몸으로 전진할 수 있도록 해줄 것입니다.

사랑하는 공단가족 여러분!

공단에 몸담은 8년 동안 정이 너무 깊게 들었나 봅니다.

야근하는 직원들과 함께 자장면을 먹으며 서로 안부를 묻던 고용개발원장 시절부터 여러 가지로 어려웠던 시기에 중책을 맡았다는 사명감으로, 여러분을 편안하게 해 주기보다는 앞장서서 리드해 나가려고 애썼던 마음에 상처도 많이 주었던 것이 아닌가 반성해 보면서 용서를 구합니다.

여러분들도 피부로 느끼시겠지만 우리사회의 장애인분야는 빠르게 변화하고 성장하고 발전해가고 있습니다. 이제 전혀 낯설거나 어색하지가 않은 것입니다.

이러한 변화에 대하여 여러분은 무한한 자긍심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이렇게 우리 사회에 긍정적 에너지와 희망을 만들어 온 우리공단에 대하여, 그 어느 누구도 함부로 폄하하여 말할 수 없습니다.

부디 여러분 서로서로가 귀하게 여기시고 사랑하셔서, 그 힘으로 공단을 지켜 나가시고, 대한민국의 장애인들에게 계속 희망을 주시기 바라는 마음 간절합니다. 저는 어느 곳에 있든지, 여러분의 열정과 행보에 박수를 보내며 함께 하고 싶습니다.

끝으로 고용개발원장에서 현재의 이사장직에 이르기까지 여러분들이 보내주신 무한한 애정과 격려에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부족한 제가 공단에 재직하면서 작게나마 기여한 점이 있다면 이 모두가 여러분의 성원 덕분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이제 남은 마음의 빚은 제가 평생을 간직하면서 장애인의 사회적 지위 향상에 앞장서는 것으로 갚고자 합니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도종환 시인의 ‘담쟁이’라는 시를 잠시 소개를 해드리면서 마지막 인사를 드릴까 합니다.

저것은 벽

어쩔 수 없는 벽이라고 우리가 느낄 때

그때

담쟁이는 말없이 그 벽을 오른다

물 한 방울 없고 씨앗 한톨 살아남을 수 없는

저것은 절망의 벽이라고 말할 때

담쟁이는 서두르지 않고 앞으로 나아간다

한 뼘이라도 꼭 여럿이 함께 손을 잡고 올라간다

푸르게 절망을 다 덮을 때까지

바로 그 절망을 잡고 놓지 않는다

저것은 넘을 수 없는 벽이라고 고개를 떨구고 있을 때

담쟁이 잎 하나는 담쟁이 잎 수천 개를 이끌고

결국 그 벽을 넘는다.

담쟁이처럼 장애인고용에 어떠한 높은 장벽이 있더라도 서두르지 않고 힘을 합쳐 나아간다면 직업선택에 장애가 문제가 되지 않는 그날이 반드시 현실로 다가올 것이라 확신합니다.

항상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길 기원합니다.

2010년 5월 6일

김 선 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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