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섹스볼란티어'의 조경덕 감독. ⓒ에이블뉴스

조경덕(37) 감독의 영화 <섹스 볼란티어: 공공연한 비밀 첫 번째 이야기>(Sex Volunteer: Open Secret 1st story, 2009, 123분, 전주국제영화제 상영당시 15세 이상 관람가)는 ‘섹스 자원봉사’를 주제로 중증장애인, 섹스자원봉사자, 성매매여성 등 다양한 인물들의 이야기를 페이크 다큐멘터리(fake documentery) 형식으로 펼쳐낸 영화다.

이 영화는 지난해 4월 제10회 전국국제영화제에서 처음으로 공식 상영됐고, 같은 해 10월 브라질에서 열린 제33회 상파울루 국제영화제에서는 최우수 작품상을 수상했다. 지난 19일 서울 여의도 이룸센터 4층 한국장애인단체총연맹 회의실에서 조경덕 감독과 만나 영화 이야기를 나눴다.

조 감독이 섹스자원봉사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일본에서 생활하던 중 가와이 가오리의 <섹스 자원봉사>라는 책을 읽게 되면서부터다. ‘섹스’와 ‘자원봉사’라는,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단어가 한 단어로 만난 것을 보고 궁금증이 일었다고 한다. 인터넷에 이 책에 대한 온갖 비난의 글이 올라오는 것을 본 조 감독은 ‘우리나라의 상황은 어떨까?’하는 의문을 갖고 취재에 나섰다.

“아이템만 보고 접근했다가 늪에 빠졌죠. 그때까지 제 주변에는 장애인이 한 명도 없었어요. 장애인의 삶, 장애인의 성에 대해서 알려면 몸으로 부대끼면서 함께 하는 방법밖에 없을 것 같아 몇 개월 동안 장애인 시설 등에서 자원봉사자로 생활했죠.”

그렇게 직접 발로 뛰며 취재하는 데만 1년이 걸렸다. 취재 중 실제로 중증장애인들에게 섹스자원봉사를 제공하는 사람들의 인터넷 카페 모임에 대해서도 알게 됐고, 중증장애인에게 자위방과 자위도구를 제공하는 복지관을 찾아가기도 했다. 영화에 등장하는, 중증장애인의 성을 둘러싼 짧은 에피소드들은 모두 조감독이 취재하면서 만난 사람들의 실제 이야기다.

취재도 힘들었지만, 제작에 착수하기까지 겪은 어려움도 컸다. 제작사에서 ‘장애인 영화를 누가 와서 보겠느냐’며 난색을 표한 것이다.

“제작사에서는 장애인 역할에 스타 배우를 섭외하자고 했지만, 비장애인 연기자에게서 생생한 장애인의 삶이 묻어나는 연기를 끌어낼 자신이 없어서 거절했어요. 그래서 결국 제가 직접 제작까지 맡게 됐죠.”

장애인의 삶을 생동감 있게 그리려면 장애인당사자가 직접 연기를 해야 한다는 생각에 조 감독은 영화 속 ‘황천길’과 ‘이윤호’역에 중증장애인 ‘조경호’씨와 ‘이윤호’씨를 각각 캐스팅했다. 조경호씨와는 뇌성마비장애인캠프에 자원봉사를 하러갔다가 만났고, 이윤호씨는 장애인단체를 통해 소개받았다. 그렇게 취재에서부터 시나리오 작업, 제작까지 총 4년 반이 걸렸다.

영화 '섹스볼란티어'의 조경덕 감독. ⓒ에이블뉴스

조 감독은 영화를 만들면서 ‘장애인과 여성, 장애인과 성자원봉사자 중 어느 한쪽에만 치우지치 않아야 한다’는 것이 가장 힘들었다고 한다. 영화에는 중증장애인 황천길의 사랑 이야기와 일상뿐만 아니라 섹스자원봉사자이자 영화감독 지망생인 최예리가 섹스자원봉사를 통해 겪게 되는 엄마와의 갈등, 자신의 경험을 살려 제작한 단편영화도 담겼다.

“섹스자원봉사라고 했을 때 받는 사람과 하는 사람이 있는데, 장애인의 이야기만 그려지면 받는 사람만 있게 되죠. 최예리와 그 주변사람들에 대해서도 다뤄야 양쪽의 이야기를 모두 다 전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영화에는 성매매여성과 여성쉼터 소장, 성매매집결지의 포주 등도 등장한다.

“섹스 자원봉사는 장애인과 여성의 입장이 충돌하는 지점이라고 생각했어요. 둘 다의 이야기를 듣고 싶었죠. 취재를 하던 시기가 성매매특별법으로 성매매단속이 강화되던 시기였는데, 이 때 언론에서는 성매매여성 당사자의 목소리는 드러나지 않았어요. 영화 속에서도 이런 현실을 반영하고 싶었죠.”

‘섹스 자원봉사’는 장애인계의 뜨거운 화두다. 제목만으로도 비난을 받기가 쉽다. 조 감독은 이런 점을 고려해 영화 제목을 바꿀까 하는 생각도 했지만, 고민 끝에 제목을 바꾸지 않기로 했다.

“사람들은 장애인과 성매매여성들을 색안경을 끼고 보는데, 그들을 깊이 알게 되면 그들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제 영화도 마찬가지에요. 제목만 보면 칼을 던지고 싶을 테지만 보고나면 생각이 바뀔 수도 있어요. 굳이 다른 제목으로 영화를 포장하고 싶지 않아 그대로 하기로 했죠.”

조 감독은 이 영화가 사람들이 장애인에 대해 고민해 볼 수 있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했다. “영화를 만들면서 ‘내가 얼마나 많이 색안경을 벗을 수 있을까’라고 생각했는데, 색안경을 많이 벗은 것 같습니다. 전에는 언어장애가 심한 분들의 말이 제2외국어로 들렸는데, 지금은 많이 알아들어요. 영화가 잘 나가고 못나가고를 떠나서 제 인생은 많이 풍요로워진 것 같습니다. 제 영화를 본 다른 분들도 장애인문제에 대해 고민해보고 담론을 만들어나갔으면 좋겠습니다.”

끝으로 감독 자신은 섹스 자원봉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었다. “섹스볼란티어가 어떻게 보면 이상적인 것으로 보일 수도 있죠. 한쪽은 성욕을 해소하고, 한쪽은 자원봉사를 하는 거니까요. 그런데 이상적으로 보이는 부분의 맹점이 바로 감정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중요한 것은 성적 욕구의 해소가 아니라 감정의 교류, 감정의 소통이라고 생각합니다.”

*섹스 볼란티어: 공공연한 비밀 첫 번째 이야기 공식 홈페이지: www.s-volunte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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