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은 아들 목숨이라도 건지려고 다리를 자르자고 했는데 그는 싫다고 했다. “죽었으면 죽었지 다리는 안자를 겁니다.” 부모님은 물론이고 의사에게도 대들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다행이지만 그 때로서는 부모님 말씀 잘 안 듣는 영락없는 청개구리였지요.”

멀리보이는 다도해. ⓒ이복남

그 무렵 병원에서 알게 된 동료들에게 ‘여수애양병원’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여수애양병원(麗水愛養病院)에서는 소아마비도 고치고 한센병도 고친단다. 별의별 전설 같은 얘기를 들으면서 엽서를 보냈는데 애양병원에서는 3년 만에 연락이 왔다.

애양병원에서는 골수염에 걸린 허벅지에 군데군데 구멍을 뚫고 뼈에서 고름을 긁어내는 수술을 했다. 오른쪽 허벅지 여기저기에 구멍이 패이고 다리는 15cm 쯤 짧아졌지만 아무튼 다리를 자르지는 않았다.

“그동안 내가 장애인이 된 게 참 부끄러웠는데 애양병원에 가보니 전부 장애인이었습니다.” 장애인에 대해서 더 이상 부끄러워하지 않아도 되었기에 장애인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그리고 장애인으로서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생각하게 되었다. 다른 장애인들과 어울리며 이것저것 장애인복지에 대해 논하기도 했다.

이 땅의 척박한 장애인복지에 대해 아우성처럼 울부짖는 청개구리의 울음소리가 잡힐 듯 말듯 들려오기 시작했던 것이다. 부모님에게는 지독하게 청개구리 짓만 해온 자신이 부끄러워 후회가 되었다.

이성열씨의 아내. ⓒ이복남

열손가락 깨물어서 안 아픈 손가락 없다는데 나를 살리고자 고생하는 부모님의 모습이 그동안 반대로만 행동해온 청개구리와 다를 게 무에 있겠는가 말이다. 부모님을 앞 냇가에 묻어 놓고 비만 오면 울부짖는 청개구리 같은 짓을 더 이상은 말아야지. 여수애양병원에서 결심하고 또 결심했다.

다리의 수술자국이 아물자 퇴원을 했다. 병원에서 장애인복지에 대한 꿈을 꾸었지만 퇴원을 하고보니 당장 먹고 살길이 막연했다. “공무원 시험을 쳐 봐라.” 모두가 권했다. 더 이상 청개구리 짓은 안하기로 결심했기에 책에 매달렸다. 형이나 동생처럼 머리가 나쁜 것은 아니었는지 고등학교 졸업도 제대로 못했는데 공무원 시험에 척 붙었다. S중학교 서무과로 발령이 났다. 오른쪽 신발을 높이고 그래도 다리를 절었으나 중학교 서무과에서 착실하게 근무를 했다.

3년쯤 지나자 L대학 총무과에서 오라고 했다. L대학교에 서류를 내고 면접을 보고 합격이 되어 S중학교에는 사직서를 제출했다. 그런데 대학에 출근을 해 보니 학생들이 진을 치고 있었다. 1980년 무렵이었고 학생들은 시위 농성 중이었던 것이다.

아름드리 팽나무. ⓒ이복남

L대학 행정실 직원은 학생들 데모가 좀 풀리면 그 때 출근하라고 했다. 한 달 두 달 석 달, 하염없는 기다림에 세월만 흘러갔다. S중학교에는 이미 사직서를 제출한 상태인데 L대학교에는 출근도 못하고 있었으니 참으로 난감했다.

일년이 지난 다음 아는 분의 소개로 부암동에서 인쇄를 시작했다. 당시엔 마스터 인쇄를 주로 했는데 행사 팸플릿 기획서 청첩장 등 여직원 하나를 데리고 닥치는 대로 일을 했다. 제법 일거리가 많아 돈도 좀 벌어 지역 청년회에 가입도 했다.

어느 날 친구 결혼식에 참석을 했는데 신부가 한 여자를 만나 보라고 했다. 신부의 친구는 오른팔을 골수염으로 앓은 여수애양병원의 후배였던 것이다. 부모님도 아들이 장애인이라서 그랬는지 장애인 며느리에 대해서 별 반대가 없었고 이성열씨는 동병상련인지 같은 골수염을 앓았든 최여인이 맘에 들었다. 신부는 집이 서울이었는데 혼자 부산으로 내려와 결혼을 했고 아들 재현(28)이를 낳았다.

이성열씨 이야기는 3편에 계속.

* 이 내용은 문화저널21(www.mhj21.com)에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이복남 기자는 에이블뉴스 객원기자로 하사가장애인상담넷(www.gktkrk.net) 원장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내 이웃이 행복하지 않는 한 나 또한 온전히 행복할 수 없으며 모두 함께 하는 마음이 없는 한 공동체의 건강한 발전은 기대하기 어렵다. 우리는 함께 살아가야 할 운명공동체이기 때문이다. 아름답고 건강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가진 자와 못 가진자,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평등하게 공유할 수 있는 열린사회를 건설해야 한다. 쓸모 없음을 쓸모 있음으로 가꾸어 함께 어우러져 나아갈 수 있도록 서로 사랑으로 용서하고 화합하여 사랑을 나눔으로 실천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이복남 원장은 부산장애인총연합회 사무총장을 역임하였으며 현재 하늘사랑가족상담실을 운영하고 있다. 하사가장애인상담넷www.gktkrk.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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