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포자기였을까. 성심외국어대학 베트남어과에 입학을 했으나 공부가 너무 재미가 없어 경남정보대 기계설계과에 다시 입학을 했다. 경남정보대학에서는 캐드를 배우는 등 열심히 공부를 해서 졸업을 했다. 그러나 졸업을 해도 그가 갈 곳은 없었다.

경주 여행. ⓒ이복남

그제서야 대학에는 법학과만 있는 게 아니라 특수교육과도 있고 상담치료과를 비롯하여 사회복지과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먼저 학교를 나온 누나가 사회복지관련 일을 하게 되었던 것이다. 대구대학교 특수교육과에 들어가고 싶었으나 그의 입학은 허락되지 않았다. 성적이 되지 않았던 것이다. 할 수 없이 대구대학 사이버대학에 입학을 했는데 사회복지과는 현장실습을 해야 했다.

그런데 사이버대학이다보니 어디 가서 어떻게 실습을 해야 할지 막막하기만 했다. 여기저기 인터넷으로 알아보던 중 지하철 노선에서 가까운 곳을 찾다보니 연산6동에 있는 우리요양병원이 눈에 띄었다. 실습신청자는 모두 7명이었다.

우리요양병원은 함께하는의료생활협동조합에서 운영하는 노인요양기관으로 자원봉사자 교육을 하고 있었다. 처음 배우는 입장에서 모든 것이 다 막막하기만 했으나 실습생에게 필요한 것을 조목조목 일러 주는 슈퍼바이저의 지도로 행정 처리를 비롯하여 어르신 수발, 병원 청소 등 자원봉사자를 교육하여 어르신들을 돌보는 것이 재미있었다. 실습은 4주를 받았는데 끝나고 나니 계속 일할 생각이 있느냐고 물었다. 실습기간동안 그의 실습점수를 높게 매긴 덕택이리라.

영천 만불사 대불. ⓒ이복남

그의 실습을 맡았던 슈퍼바이저 김경아 실장의 얘기를 들어보자. “실습에 임하는 태도가 성실했던 것 같아요. 무엇보다도 장애인임에도 그것에 개의치 않고 자신과 자신이 하는 일을 좋아 했던 것 같습니다. 처음엔 많이 수줍어했는데 수줍음은 세월이 지나면 나아질 거라고 여겼거든요.”

별로 고민할 것은 없었다. 나이가 들어서야 사회복지 쪽으로 일해보고 싶어서 대구대학에 입학한 것이므로 망설일 것도 없이 하겠다고 했다. 그로부터 벌써 1년이 다 되어 간다. 올 여름이면 사회복지사 2급을 받게 되는데 내년 봄 1급 시험에도 도전해 볼 예정이다.

한편 중고등학교 다닐 때 그의 체육점수는 언제나 꼴찌였다. 대학입시 때는 체력장이라는 게 있었다. 윗몸일으키기, 멀리뛰기, 100달리기, 매달리기, 오래달리기 등의 종목이 있었는데 제대로 하지도 못했을 뿐더러 언제나 제일 마지막이었다. 그래서 경쟁대상 조차 되지 못했던 것이다.

해운대 바닷가. ⓒ이복남

정말 체육은 못하는 것일까. 슈퍼맨이나 스파이더맨 같은 특수능력을 가질 수는 없는 것일까. 우리 부모님은 왜 나를 이런 사람으로 낳았을까. 온갖 잡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고 알지 못할 분노와 회한이 가슴을 쳤으나 모두가 지나간 일이었다. 부모님이나 누나, 선생이나 친구들 그 누구도 대신해 줄 수 없는 자신의 일이었다. 뭔가를 해 보자 싶어 이것저것 기웃거려 봤으나 그가 할 수 있는 것도 없었고 할 것도 없었다.

그러다가 우연히 한 가지를 발견했으니 수영이었다. 당장 수영을 시작했다. 다른 운동처럼 키가 문제가 되지 않는 운동이었다. 다행히 수영 코치도 그의 심정을 아는 지 말없이 수영을 잘 가르쳐 주었다. 시간만 되면 수영장으로 달려갔다. 처음에는 자신을 이기기 위해서, 그 다음에는 취미로 했으나 이제는 장애인의 재활로 수영을 하고 있다. 수영을 하면서부터 대회에도 몇 번이나 출전을 했다. 비록 우승은 못했지만 처음부터 우승을 예상한 것이 아니었으므로 별 상관이 없었다.

현재 우리요양병원에는 지하철로 출퇴근을 하고 있는데 가끔 지하철이나 버스를 탈 때 자리가 없으면 손잡이가 손에 닿지 않아 어려움을 겪는다. 그럴 때면 앉을 자리를 찾기보다는 두 발로 서서 넘어지지 않는 훈련을 해야 한다. 꼬마들 또는 이상한 사람들이 돌아보면서 자기네들끼리 수군대는 것 같지만 그냥 못 들은척하고 만다.

우리병원 창구에서. ⓒ이복남

병원에서는 행정처리부터 자원봉사자교육에서 노인수발까지 배우면서 가르치는데 무엇보다도 자신이 좋아서 하는 일이므로 어려움보다는 기꺼이 즐겁게 하고 있다. 처음 자원봉사자 교육 때는 모두가 낯선 사람들이라 고개도 들지 못한 채 가운데 서지도 못하고 구석에서 모기만한 소리로 시작했는데 1년 만에 당당하게 장족의 발전을 한 것이다.

우리요양병원에 얼마나 있게 될지는 알 수 없지만 그가 하고 싶은 일은 조그마한 법인이라도 하나 차려서 장애인들의 그룹홈 내지 단기보호 같은 것을 하고 싶단다. 그래서 수영을 취미나 재활치료에 이용하고 싶단다. 그 꿈이 과연 이루어질지, 그 때가 언제가 될지도 지금은 알 수 없는 일이지만 언젠가는 할 수 있다는 꿈과 희망을 가지고 오늘도 그는 열심히 일하고 있다. 끝.

* 이 내용은 문화저널21(www.mhj21.com)에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이복남 기자는 에이블뉴스 객원기자로 하사가장애인상담넷(www.gktkrk.net) 원장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내 이웃이 행복하지 않는 한 나 또한 온전히 행복할 수 없으며 모두 함께 하는 마음이 없는 한 공동체의 건강한 발전은 기대하기 어렵다. 우리는 함께 살아가야 할 운명공동체이기 때문이다. 아름답고 건강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가진 자와 못 가진자,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평등하게 공유할 수 있는 열린사회를 건설해야 한다. 쓸모 없음을 쓸모 있음으로 가꾸어 함께 어우러져 나아갈 수 있도록 서로 사랑으로 용서하고 화합하여 사랑을 나눔으로 실천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이복남 원장은 부산장애인총연합회 사무총장을 역임하였으며 현재 하늘사랑가족상담실을 운영하고 있다. 하사가장애인상담넷www.gktkrk.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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