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시험 2차 시험에서 시각장애인으로는 처음으로 합격한 최영씨. ⓒ노컷뉴스

“세상에 버릴 사람은 하나도 없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습니다.”“그런데 지금 이 방안에 몇 명이나 들어와 계시죠?”

인터뷰를 하다 말고 갑자기 방 안에 몇 명이 들어와 있느냐고 묻는 사법시험 2차 합격자 최영 씨.

최영 씨(27, 서울대 법대 졸)의 사법시험 합격 소식을 전하기 위해 50여명의 취재진이 최 씨의 4평 남짓한 고시원 방으로 몰려들었지만, 정작 주인공인 최 씨는 자신을 인터뷰하고 있는 기자들이 몇 명인지 알지 못했다.

앞을 볼 수 없기 때문이다.

3급 시각장애인인 최 씨는 지난 3년여 동안 책을 읽는 대신 “음성 낭독 파일”을 들으며 사법시험을 준비했고, 결국 제50회 사법시험 2차 합격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사법시험 제도가 시행된 이래 시각장애인으로서는 첫 2차 합격자다.

어릴 시절부터 시력이 나빴던 그는 고등학교를 졸업할 무렵 시야가 점점 좁아지는 ‘망막색소변성증’ 진단을 받았다.

2000년 서울대 법대에 입학할 때만해도 그럭저럭 일상생활을 할 수 있었지만, 사법시험 준비를 시작하면서부터 눈은 급속도로 악화됐다. 시야가 점점 좁아져, 한 줄씩 보이던 글씨가 한 단어씩 그리고 한 글자씩밖에 보이지 않다가, 결국 2005년 무렵엔 아무 것도 보이지 않게 된 것이다.

그는 “‘어릴 적 봤던 얼굴을 이젠 영원히 다시 볼 수 없게 돼 버렸다’는 절망감에 모든 것을 포기하기도 했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다시 도전에 나섰다.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는 방 바깥으로 한 발자국도 나가지 못하는 최 씨를 위해 끼니때 마다 찾아와 식당에 데려다 줬던 친구들이 큰 힘이 됐다. 또 식당일을 하는 어머니와 운전을 하는 아버지의 사랑과 격려에서 큰 용기를 얻었다.

최 씨는 “시각 장애를 겪은 뒤 서로 도와가며 사는 세상이라는 것을 깨달았다”며 “단지 기회를 갖지 못한 사람이 있을 뿐, 세상에 버릴 사람은 하나도 없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시각장애인으로서 공부를 시작해 보니 역시 책이 문제였다. 점자를 배우지 못한 그는 오직 귀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지만, 저작권법과 연관돼 텍스트 파일을 구하기가 쉽지 않았다. 다행히 한 복지재단의 도움으로 필요한 책을 한자 한자 컴퓨터에 쳐 넣은 뒤, 음성 낭독 프로그램을 돌려 무한반복 해서 들었다.

밥 먹는 시간만 빼고, 듣고 또 들었다. 최씨는 “시험 준비에만 몰두하느라 보행 연습도 제대로 못했다”고 고됐던 수험 생활을 돌아봤다.

그러나 최씨는 “나를 불쌍한 사람으로 묘사하거나 동정의 시각으로 보지 말아 달라”고 당부했다.

“남들이 볼 때는 적은 돈이겠지만 적어도 내게는 부모님이 보내주신 풍족한 용돈이었고, 친구들과 복지재단의 도움을 받은 것은 크나큰 행운이었다”고 그는 밝게 웃었다.

그는 다만 “단지 장애를 이유로 아예 기회를 갖지 못하고 포기해버리는 사람들이 더 이상 나오지 않았으면 좋겠다”며 “사회적인 시스템이 갖춰진다면 장애인 사법시험 합격자가 연달아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시각 장애인으로서는 처음으로 사법시험 합격의 9부 능선을 넘은 최영 씨는 “어려운 사람들 입장에 선 변호사가 될 꿈”에 부풀어 있다.

CBS사회부 심훈 기자 simhun@cbs.co.kr/에이블뉴스 제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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