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시아스두술 데플림픽에 출전한 대한민국 축구 선수단. ⓒ한국농아인스포츠연맹

"아르헨티나, 충분히 잡을 수 있었는데….“

2일(한국시각) 카시아스두술 데플림픽 '남미 강호' 아르헨티나전 직후 만난 '캡틴' 정준영(36)의 얼굴엔 아쉬움이 가득했다.

'10번' 정준영은 지난달 30일, 우크라이나와의 1차전(1대 2패)에서 가장 빛난 선수였다. 중원에서 풍부한 활동량으로 상대를 압도했고, 날선 패스에 직접 슈팅을 때리며 공격의 활로를 열었다. 그러나 후반 상대 수비수의 스터드에 발목을 차였고, 이 과정에서 엄지발가락에 실금이 갔다.

이틀 만에 카시아스두술 마르코폴로 파운데이션에서 열린 조별리그 2차전은 '이겨야 사는' 아르헨티나전. 정준영은 선발 라인업에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0-0으로 전반을 마친 후 후반 시작과 함께 김영욱 감독(용인대 코치)은 '아껴둔 에이스' 정준영과 배성진을 동시 투입했다. 필승을 위한 승부수였다.

하지만 후반 2분, 예기치 않은 돌발 상황이 터졌다. '2004년생 골키퍼' 김태림이 박스 안으로 쇄도하는 아르헨티나 11번 란틴 에마누엘을 막아서려 뛰어나오다 충돌했고, 심판은 곧바로 페널티킥을 선언했다.

에마누엘이 가볍게 골망을 흔들었고, 이후 경기는 원치 않는 방향으로 흘러갔다. 태극전사들은 쏟아지는 폭우 속에 마지막 휘슬이 울릴 때까지 죽을 힘을 다해 아르헨티나를 거세게 몰아붙였지만 간절했던 한 골은 끝내 터지지 않았다. 우세한 경기력에도 불구하고 첫 승을 가져오지 못했다.

검붉은 피멍이 든 정준영 선수의 발. ⓒ대한장애인체육회

경기 후 만난 정준영의 오른발은 검붉은 피멍이 든 채 퉁퉁 부어 있었다. 이천시민축구단에서 맹활약했던 '에이스' 정준영은 축구를 누구보다 사랑하는 선수, 실력과 인성으로 인정받아온 선수다.

새벽엔 안성시 환경미화원으로 일하고, 주 3회 안성시설관리공단에서 공을 차며 생애 세 번째 데플림픽을 준비해왔다. 팀이 비기고 있는 상황, 아프다고 마냥 앉아서 기다릴 순 없었다. "할 수 있다. 뛰고 싶다"며 출전을 자청했다. 오늘이 마지막인 것처럼 뛰고 또 뛰었건만, 팀 패배를 막지 못했다.

정준영은 "아르헨티나는 무조건 이기고 싶었는데, 할 말이 없다"며 고개를 숙였다. "전반부터 뛰고 싶었다. 밖에서 볼 때 우리가 훨씬 잘할 거라고 생각했다. 충분히 잡을 수 있었는데 너무 아쉽다"고 했다.

'베테랑 캡틴' 정준영은 '고등학생 골키퍼' 김태림의 실수를 감쌌다. "태림이는 데플림픽 첫 경험이다. 계속 앞으로 나아가야 할 어린 선수다. 3년 뒤 도쿄 대회선 더 좋은 활약을 펼칠 것"이라며 믿음을 전했다.

우크라이나, 아르헨티나에게 2패 한 한국은 '지난 대회 동메달 팀' 이집트(5월 6일 오후 10시), '유럽 강호' 프랑스(5월 8일 오후 10시)와 2경기가 남았다.

한국 축구의 데플림픽 역대 최고 성적은 1989년 뉴질랜드 크라이스트처치 대회 8강. 목표 삼은 8강 진출을 위해선 남은 2경기를 모두 이긴 후 다른 팀의 결과를 살펴야 한다.

주장 정준영은 "팀 분위기를 다시 살려서, 남은 2경기는 무조건 이겨야 한다"며 결의를 다졌다. "대한민국 국민께서 우리 농아인 축구대표팀을 응원해주셔서 정말 감사하다. 끝까지 최선을 다해 후회 없이, 좋은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다"고 했다.

김영욱 감독은 "후반 정준영, 배성진 선수를 투입해 승부를 보려고 했다. 하지만 후반 이른 시간 PK 골을 내주면서 마음이 급해졌다. 센터백 김기현을 최전방에 세우고 골을 노렸는데 뜻대로 풀리지 않았다. 우크라이나전에서 많이 뛴 체력 부담도 있었던 것 같다"고 돌아봤다. "충분히 이길 수 있는 경기였는데 너무 아쉽다"는 소감을 전했다.

김 감독 역시 '18세 막내 골키퍼' 김태림의 실수를 일절 탓하지 않았다. "우크라이나전도 잘해줬고, 오늘도 잘했다. 무엇보다 더 많이 성장해야 할 어린 선수다. 첫 데플림픽에서 좋은 경험이 됐을 것"이라고 했다. "동료들이 태림이를 감싸고 격려하는 모습에서 우리 팀이 더 좋은 팀이 돼가고 있다고 느꼈다"고 덧붙였다.

2경기를 남겨두고 김 감독은 선수들에게 "긴장하지 말고 후회 없이 마음껏 달릴 것"을 주문했다. "국제대회 경험이 많지 않다 보니, 계속 긴장한 모습이 있다. 남은 2경기는 부담 없이 편안하게 해줬으면 한다. 우리 팀이 잘하는 축구, 간결하고 빠른 패스 축구를 잘 준비하겠다. 선수들이 하고 싶은 걸 후회 없이 다 쏟아붓고 나왔으면 한다"는 바람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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