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는 아름다운 금수강산이다. 일본은 화산과 지진이 많고 비와 습기가 많아서 일본 사람들은 자연재해는 운명이라고 받아들인다고 했다. 다행히도 이번 ‘일본 북큐슈 파크골프 원정대’ 2박 3일 동안 날씨는 맑고 쾌청했다.

지난 3월 6일 가고시마현과 마야자키현에 걸쳐 있는 해발 1421m의 활화산 산모에다케(新燃岳) 화산이 폭발했다. 산모에다케의 폭발적 분화는 연기가 3천 미터까지 치솟고 며칠 동안은 간헐적 폭발로 화산재가 수십 킬로나 화산재가 날았다고 한다. 보통 화산 폭발이 일어나면 반경 3~4km 까지는 통행이 제한된다고 하는데 산모에다케 화산 폭발로 아소산케이블카 운행은 금지 되었다고 하는데 기쿠치 계곡 입산 금지는 산모에다케 화산 폭발의 영향은 아닌 모양이다.

3월 6일 산모에다케 화산 폭발. ⓒ구글 이미지

어제 저녁 가이드 말이 ‘기쿠치 계곡 입산은 지난 번 화산 폭발로 금지 되었는데 나도 모르는 사실을 정복만 회장이 알고 있더라’며 정복만 회장이 구마모토까지 와서 기쿠치 계곡을 가야 한다고 하므로 내일 아침 8시까지 호텔 정문으로 나오라고 했다.

아침 8시 모두가 버스에 올라 기쿠치 계곡으로 향했다. 꼬불꼬불 산길을 돌았는데 기쿠치 계곡 입산은 며칠 전에 풀린 모양이라 주변 사람들도 잘 모르는 사실이라고 했다. 그런데 기쿠치 계곡 입산 금지는 산모에다케 화산 폭발의 영향이 아니라 그 전의 구마모토 화산 폭발 이후 2년 만에 재개된 입산이란다.

가이드는 아침이므로 어제 못다 한 조용한 노래를 한곡 하겠다며 주현미의 ‘비 내리는 영등교’를 부르겠으니 조용히 감상해 달라고 했다. 사람들은 가이드의 말에 조용히 귀를 기우렸는데, 가이드의 노래가 흘러나오자 모두가 아침부터 배꼽을 잡고 포복절도 했다. 가이드의 입에서 흘러나온 조용한 노래는…….

어두컴컴한 골방에서 고스톱 치는 사모님

서방님은 모를 거야 모르실거야

청단에 울고 홍단에 울고 피박에 울고

돈 나간다 돈 나간다 내 돈 다 나간다

끊어야지 하면서도 못 끊는 것은

본전 본전 본전 때문인가 봐

관객들의 열화와 같은 앙코르 박수로 가이드는 노래를 두어 곡 더 불렀는데 19금이라 가사는 생략한다. 가이드는 초상권이 있으므로 촬영은 절대 안 된다고 했다. 이러고 다니는 줄 어머니나 남편이 알면 난리 난다고. 모두가 그렇게 웃고 떠드는 가운데 어느새 기쿠치 계곡에 도착했다.

기쿠치 계곡의 산책로와 연못. ⓒ이복남

일본 사람들은 한국 사람들만큼 등산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쿠치 계곡(菊池渓谷)은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단다. 그러나 아직은 출입금지가 해제 되었다는 것을 잘 모르는 듯 우리 일행 외에 다른 사람은 없는 것 같았다.

기쿠치 계곡은 기쿠치강의 상류에 해당된다는데 여러 가지 원시림 나무들이 빽빽이 들어서 있었다. 자연이 아주 뛰어난 상태로 보존되어 있기 때문에 아소쿠주국립공원[阿蘇くじゅう国立公園]의 특별보호지구로 지정되어 있고 일본명수100선(日本名水100選)에 선정되어 있단다.

숲속의 아침은 맑고 공기는 싸늘했다. 어제는 날씨가 더웠으므로 어제 같은 옷차림으로 나선 사람들은 너무 추워서 몸을 움츠리기도 했다. 입구에서 안내원은 일본인인데 우리 일행을 보고 ‘안녕하세요’라고 인사했다. 비장애인들은 앞서 가고 장애인들은 천천히 뒤따라갔다. 산책로는 완만한 아스팔트였고 왼쪽으로 흐르는 맑은 물은 곳곳에 작은 폭포와 연못을 이루었는데 연못에는 떨어진 파란 나뭇잎들이 나무사이로 비치는 아침 햇빛을 받아 에머랄드처럼 반짝 거렸다.

기쿠치 계곡 입구에는 주차장이 없어서 우리 일행을 내려놓고, 다시 돌아온 관광버스를 타고 다음 코스로 떠났다. 가이드는 일본 사람들은 대체로 대대로 가업을 잇고 있는데 세계에서 가장 역사가 깊고 오래된 기업은 천년이 넘었는데 절을 짓고 개보수하는 금강조합이라고 했다.

우리가 역사에서도 배운 사천왕사는 578년 성덕태자(쇼토쿠, 聖德太子)가 백제에서 장인 몇 사람을 데려와서 오사카에 지은 절이다. 시텐노지(사천왕사 四天王寺)를 지은 백제 장인들은 고국으로 돌아가지 않고 곤고구미(金剛組)를 설립해서 절을 짓고 개보수 했는데 그 곤고구미가 천년을 넘어서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단다.

필자가 생각하기는 일본 사람들이 가업을 대대로 잇는 풍습이 있기도 하지만, 현재 우리나라처럼 계층이동이 쉽지 않아서 그렇게 된 것이 아닐까 싶다. 그렇다 하더라도 천년이 넘는 동안 후손들이 가업을 잇는 기업이 있었다니 필자도 미처 몰랐던 사실이라 놀라웠다.

화산 분지라는 황무지. ⓒ이복남

꼬불꼬불 버스가 돌아가는 산길은 높은 분지라고 하는데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은 나무하나 없는 광활한 황무지였고 저 멀리 연기가 피어오르는 아소산이 보였다. 화산재가 내리면 그 지역은 황무지가 된다고 한다. 그런 황무지에도 나무는 없지만 풀은 자라는지 군데군데 불을 질러서 까맣게 된 곳이 많았다. 이렇게 어마어마한 황무지가 화산재가 내린 분화구라니…….

필자의 옆 자리에는 제오종 씨가 앉았는데 제오종 씨는 그런 황무지를 보면서 ‘은하철도999’를 떠 올렸다. 한 때 인기를 끌었던 미야자와 겐지(宮沢賢治)의 ‘은하철도 999’의 애니메이션에는 은하철도999라는 증기기관차를 타고 미래로 가는데 그 기차에는 철이와 메텔이 타고 있다. 은하철도999가 지나는 곳에는 이곳처럼 황량한 황무지가 있었던 것이다.

그러고도 한참을 지나서 풍력발전소가 있는 지 커다란 바람개비가 돌아가는 우부야마 파크골프장에 도착했다. 그런데 우부야마는 파크골프장 전용이 아니라 우부야마촌(産山村)이라는 목장이었다. 목장에는 아이스크림 및 버터 만들기, 우유 짜기, 자전거타기, 조랑말타기, 트랙터마차 타고 목장 일주하기, 레스토랑, 쇼핑몰 등 여러 가지 프로그램이 있었고, 그 중의 하나로 파크골프장이 있었다.

우부야마 파크골프장. ⓒ이복남

우부야마 파크골프장은 총 27홀인데 구장은 산비탈에 조성되어 있었다. 티잉그라운드가 대체로 높은 곳에 있었고, 그린에서 이동시 가파른 내리막길과 비스듬한 홀컵 근처에 아스팔트 도로가 있어서 공이 굴러가기가 일쑤였다. 나중에 알고 보니 파크골프장을 가로지르는 아스팔트길은 트랙터마차가 지나가는 길이었다. 비탈에 있는 홀은 그린도 구불구불했고 4~50도 정도의 언덕 위에 홀컵이 있었는데 경사가 너무 심해서 티잉그라운드에서는 홀컵이 보이지도 않았다.

첫날 간 카네노쿠마 파크골프장은 우리 일행 밖에 없었으나, 시오이가와 파크골프장과 우부야마 파크골프장에는 일본사람들이 공을 치고 있었다. 평일이라 그런지 대부분이 가족들 같았는데 우부야마 구장에는 할아버지 아들 손자 등 그야말로 3세대가 공을 치는 일본인도 있었다.

파크골프는 3세대가 교류하고, 자연을 사랑하고 에티켓을 지키는 매너게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빨리빨리에 길들여진 한국인들에게 비해 일본인들은 느릿느릿했다. 뒤따라가는 우리 일행들이 차마 말도 못하고 조바심을 내기도 했다.

우부야마 파크골프장에서. ⓒ이복남

그런데 타인에게 폐를 끼치지 않고 상대를 배려하는 일본 사람들은 파크골프를 치는데도 여실히 드러나는 것 같았다. 파크골프는 티잉그라운드 위에 티를 놓고 티 위에 공을 올려놓고 치는데 공을 치고 나면 티가 달아나기 일쑤이다. 그래서 티를 1m 정도의 끈에 묶어서 티잉그라운드 옆에 고정시켜 놓는다. 그런데도 공을 치고 나면 티가 1m 내에서는 어디로 튈지 모른다. 일본 사람들은 공을 치고 난 후에는 티를 티잉그라운드 위에 올려놓고 나갔다. 한국에서는 아무도 그러지 않았던 것이다.

그리고 파크골프장이 유료라서 그런지 워드 해저드에 공이 빠졌을 때 공을 건지는 뜰채도 있었고 물에 빠진 공을 닦는 수건도 걸려 있었다. 공이 모래 벙커에 빠질 수도 있을 텐데 모래벙커는 언제나 말끔했다. 알고 보니 모래 벙커 옆에 벙커 레이크(Bunker rake) 즉 모래를 고르는 고무래 같은 것이 있어서 공을 치고 나면 뒷사람을 위해서 벙커 레이크로 모래를 고르고 나갔기 때문이었다.

일본에서 먹은 가이세키 요리와 벤또. ⓒ이복남

다음 일정으로 옮겨야 가야 할 시간이었다. 우선 식당으로 점심을 먹으러 갔다. 식당 이름은 잘 모르겠지만 가이드가 설명하기를 이곳은 저지우유가 유명하니 우유, 아이스크림, 요구르트 같은 것을 먹어보라고 했다. 오구니마치(小国町)에서는 저지(Jersey) 품종의 젖소를 키우고 있어서 저지우유가 유명하단다. 일 행 중에서 저지아이스크림을 하나 사주었는데 특별히 맛있다는 느낌은 없었다.

이제는 부산으로 돌아가야 할 시간이다. 정복만 회장이 2시간 쯤 가야 하니 그동안 노래자랑을 할 것이라고 했다. 그런데 점심을 먹고 버스에 오르자마자 모두가 노곤한지 잠이 들었고 2시간이 지난 고속도로 휴게소에서야 다들 일어났다. 덕분에 노래자랑은 물 건너갔다.

고속도로 휴게소 장애인주차장. ⓒ이복남

버스에서 내려서 화장실로 가는데 입구에 장애인주차장이 있었다. 휴게소 입구 제일 좋은 자리에 설치 된 장애인주차장에만 지붕이 있었다. 운전을 하는 장애인들이 비오는 날 우산을 쓰기란 쉽지 않다. 특히 양목발을 사용하는 지체장애인들은 우산을 들 손도 없어서 아예 비를 그냥 맞기도 하는데 지붕이 있다니 참 좋은 아이디어인 것 같다.

공항으로 가는 길에 모두가 파크골프를 하는 사람들이니 혼마대리점에 들리자고 했다. 필자의 클럽은 미즈노(MIZUNO)인데, 혼마(HONMA) 클럽이 더 비싸고 좋은 것 같았다. 정복만 회장이 혼마는 특히 그립(Grip)이 좋다고 했다. 그립이란 클럽 샤프트의 손잡이로 가죽이나 고무로 감겨져 있는 부분이다. 사람들은 클럽도 사고 그립도 사고 공을 사기도 했다.

후쿠오카 공항으로 가는 길에 가이드는 일본에서 살 물건들도 있을 테니 면세점을 들린다고 했다. 일본 여행 한다고 친구나 친인척들이 용돈을 보태 주었을 텐데 10만원을 받았다면 손해 보는 장사는 하지 말고 선물은 2~3만 원짜리로 사고 나머지는 자신을 위해서 쓰라고 했다.

혼마 대리점 앞에서. ⓒ이복남

그러면서 하는 말이 일본 제품들이 대부분 고품질로 알려져 있지만, 일본에서 산다고 해서 모든 제품이 made in Japan은 아니므로 잘 보고 사라고 했다. 일본에서도 인건비가 비싸므로 made in Japan 외에 OEM(주문자 상표 부착 생산)방식도 있고, 심지어는 중국이나 동남아 제품도 많다는 것이다.

이번 ‘일본 북큐슈 파크골프 원정대’의 일원으로서 2박 3일 동안 즐겁게 먹고 온천도 하고 공을 칠 수가 있어서 정말 다행이었다. 한 가지 아쉬운 것은 장애인 및 휠체어가 넘을 수 있는 높이가 2cm 이하인 점을 감안하면 이번에 체험한 세 곳의 파크골프장은 장애인들이 이용하기에는 만만치 않았던 것 같다. 또한 어디에서도 공을 치는 일본 장애인은 한 번도 만나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 외에는 이번 행사를 기획한 정복만 회장을 비롯하여 김남희 회장과 김정포 회장, 그리고 모든 일을 뒷바라지 해 준 그랑투어 김창수 이사와 즐겁게 안내 해 준 모두투어 박은선 가이드에게 감사드린다. 무엇보다도 이번 원정대에 함께 해준 42명 모두에게 감사드린다. 덕분에 즐겁고 멋진 파크골프 원정여행이었다.<끝>

* 이복남 기자는 에이블뉴스 객원기자로 하사가장애인상담넷(www.gktkrk.net) 원장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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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웃이 행복하지 않는 한 나 또한 온전히 행복할 수 없으며 모두 함께 하는 마음이 없는 한 공동체의 건강한 발전은 기대하기 어렵다. 우리는 함께 살아가야 할 운명공동체이기 때문이다. 아름답고 건강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가진 자와 못 가진자,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평등하게 공유할 수 있는 열린사회를 건설해야 한다. 쓸모 없음을 쓸모 있음으로 가꾸어 함께 어우러져 나아갈 수 있도록 서로 사랑으로 용서하고 화합하여 사랑을 나눔으로 실천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이복남 원장은 부산장애인총연합회 사무총장을 역임하였으며 현재 하늘사랑가족상담실을 운영하고 있다. 하사가장애인상담넷www.gktkrk.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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