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일 진행된 인터뷰에서 오토복코리아 송창호 의지기사가 평창패럴림픽대회 선수들에게 전달된 하지의지를 들고 기능을 설명하고 있다. 사진의 하지의지는 장애인아이스하키 정승환 선수가 사용하는 하지의지와 동일한 모델이다. ⓒ에이블뉴스

동계장애인스포츠 선수들의 경기력은 본인의 기량 뿐만 아니라 장비의 성능에도 큰 영향을 받는다. 당연히 기량이 동일한 경우 성능이 좋은 장비를 착용한 선수와 착용하지 않은 선수는 기록에서 큰 차이를 보일 수 밖에 없다.

그동안 우리나라의 동계종목 선수들은 평창동계패럴림픽을 앞두고 레저용 수준의 장비(하지의지)를 사용해 훈련을 받아왔다. 우리나라는 동계패럴림픽대회 개최국임에도 불구하고 출전하는 자국 장애인선수들의 장비 지원에는 인색했다.

악조건 속에 평창대회를 준비하던 선수들에게 도움의 손길을 전해졌다. 글로벌 의지, 휠체어 제작공급사 오토복(OTTO BOCK) 한국지사가 선수들에게 경기용 의족 등을 지원한 것이다.

특히 오토복 코리아는 선수들에게 단순히 하지의지를 지원하는 것 뿐만 아니라 개개인의 신체조건에 맞춘 소켓을 제작해 전하는 등 풀케어 서비스를 제공했다. 평창패럴림픽대회를 앞두고 선수들의 장비를 제작해 경기력향상을 돕는 숨은 조력자 오토복코리아 송창호 의지기사를 만나봤다.

오토복코리아 송창호 의지기사가 동계스포츠 선수들의 하지의지 제작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지난 2016년 말로 거슬러 올라간다. 송 의지기사는 우연히 한 모임에서 장애인스노보드팀 선수들을 만났고 이 자리에서 우리나라의 국가대표팀이 질이 안좋은 하지의지를 사용해 훈련을 하고 있음을 알게 됐다.

선수들이 해외에서 열리는 대회에서 참가해 외국 선수들의 질 좋은 하지의지를 봤지만 가격 부담 때문에 구매를 포기했다는 말도 함께 들었다.

"장애인 국가대표 선수들은 레저활동을 할 때 사용하는 수준에도 미치지 못하는 하지의지를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정말 말도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오토복 코리아 박동현 대표는 대한장애인체육회에 오토복코리아 차원에서 선수들이 착용할 하지의지를 후원하겠다고 입장을 전했다. 특히 소켓(의지의 끝을 덮어 씌우는 부분) 제작도 무상으로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자동차의 성능이 아무리 좋아도 시트가 불편하면 운전자가 운전을 하기 불편한 것처럼 하지의지의 성능이 아무리 좋아도 소켓이 불편하면 선수 본인이 제 성능을 내기 힘들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후 오토복코리아는 대한장애인체육회와 후원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했고 송 의지기사는 장애인스노보드, 노르딕스키, 아이스하키 선수들을 위한 하지의지 중 소켓을 제작하는 일을 맡게 됐다.

평창패럴림픽 스노보드 종목 선수들에게 지급된 하지의지를 설명하고 있는 송창호 의지기사. ⓒ에이블뉴스

소켓제작은 쉽지 않았다. 평창패럴림픽을 앞두고 선수들이 해외로 전지훈련을 가거나 각종 선수권대회에 참여해 일정을 맞추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소켓제작은 석고취형, 석고수정, 체크소켓, 소켓완성 순으로 진행된다.

송 의지기사의 손을 거쳐 완성된 하지의지는 장애인스노보드 김윤호, 박학승 선수, 장애인아이스하키 정승환, 한민수 선수, 노르딕스키 신의현 선수에게 각각 전달됐다.

오토복 코리아 하지의지의 좋은 성능 때문에 소켓을 다시 제작한 헤프닝도 있었다. 오토복 코리아의 런닝용 하지의지를 받은 장애인스노보드 종목의 김윤호 선수가 본격적인 운동을 했고 체중이 15kg 가량 빠지면서 소켓과 환부(절단이 된 자리)가 맞지 않게 된 것이다.

현장에 도착한 송 의지기사는 김 선수의 소켓을 새롭게 제작해야한다는 판단을 했다. 하지만 현장에서 만들기에는 한계가 있어 보였고 당일 평창에서 서울로 복귀해 밤새 제작을 한 후 김 선수에게 전달했다.

"새로운 소켓이 없으면 김 선수는 맞지 않는 하지의지를 착용한 채 전지훈련에 떠나야했습니다. 훈련에 다녀오면 아픈 상태로 1~2달이 지날 것이고 반드시 당일 제작해야한다고 판단했습니다. 대가를 바라고 한 것은 아닙니다. 마음에서 우러나와 한 행동 같습니다."

오토복의 하지의지는 선수들의 경기력을 끌어올렸다. 스노보드 박항승 선수는 환부가 짧아 점프를 하는 동작에서 발이 저절로 뻗어나가는 상황이었다. 스노보드 국가대표 감독은 점프를 할 때 이런 자세가 경기력에 좋지 않다고 판단, 송 의지기사에게 해결해줄 것을 요구했다.

이에 점프시에도 발이 저절로 펴지지 않도록 했고 소켓과 맞닿은 환부에 통증이 가지 않도록 제작했다.

특히 상지절단 때문에 균형을 잡는데 어려움을 겪는 박 선수를 위해 어깨소켓을 만들어 무게추 역할을 하는 파이프를 달 수 있도록 했다. 이후 박 선수는 경기력이 상승해 순위권 안에 들어가는 선수가 됐다.

송창호 의지기사가 런닝용 하지의지를 소개하고 설명하는 모습. ⓒ에이블뉴스

송 의지기사는 소켓의 디자인에도 신경을 썼다. 평창패럴림픽 때 사용한 하지의지는 선수 본인에게 의미있는 기억으로 남기 때문에 일단 멋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한 것이다. 이에 소켓을 제작하는 과정에서 평창패럴림픽대회 로고를 삽입해 코팅을 했다.

이런 활동을 인정한 대한장애인체육회는 송 의지기사를 장애인스노보드 국가대표팀 기술자문원원으로 위촉하고 대회기간 동안 테크니션(장비전담 매니저)로 활동하도록 했다.

현재 우리나라의 동계종목 중 송 의지기사와 같은 장비전담 매니저가 있는 종목은 장애인아이스하키이 전부다. 외국의 경우 대부분 자국 선수단에 장비전담 매니저를 배치해 운영하고 있다.

"올림픽과 다르게 패럴림픽은 장비가 고장나면 아무것도 못합니다. F1 경기에서 자동차의 타이어가 터지면 아무것도 못하는 것과 같습니다. 결국 선수들의 4년간 노력이 물거품이 되는 겁니다. 장애인스노보드 선수들이 최소한 장비에는 신경을 쓰지 않도록 하는게 각오입니다."

송 의지기사는 선수들이 본인이 제작한 하지의지를 착용한 채 훈련하는 모습을 보면서 뿌듯하기만 하다. 훈련에 도움이 되고 기량이 좋아졌다는 피드백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선수들이 목표한 만큼만 이뤄내고 대회를 안전하게 치르면 좋겠다고.

"일부 선수들에게 메달을 기대하는 시선이 있습니다. 선수들에게는 부담으로 다가올 것 입니다. 대회를 안전하게 무사히 마쳤으면 좋겠습니다. 메달을 따지 못했다 하더라도 좌절하거나 그런 감정을 갖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장애인스노보드 국가대표팀 김윤호 선수의 소켓을 만들기 위해 석고취형을 한 모습. ⓒ오토복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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