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장애인들도 여러 가지 운동을 좋아한다. 시각장애인 중에 특히 걷기나 야구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걷기는 직접 참여하지만, 야구는 직접 하는 것보다 관람을 더 즐긴다.

비장애인들은 야구 축구 농구 등 여러 가지 운동을 좋아하지만, 시각장애인은 축구처럼 동적인 운동은 관람하기도 어렵다. 그러나 야구는 천천히 하는 정적인 운동이랄까, 야구에 조금만 관심있는 사람이라면 머릿속에 야구장을 그려놓고 아나운서의 중계방송을 충분히 따라간다.

무쇠팔 최동원 동상. ⓒ이복남

현재 각 야구구단은 지역과 연계를 맺고 있는데 부산은 롯데 자이언츠다. 야구장에 한두 번 가본 사람이라면 야구 스코어는 잘 몰라도 ‘그리움이 물결치면 오늘도 못 잊어 네 이름 부르는데, 부산갈매기 부산갈매기 너는 벌써 나를 잊었나’하는 ‘부산갈매기’는 알고 있는 것 같다.

‘부산갈매기’는 시각장애인들도 잘 알고 있지만, 시각장애인이 야구를 좋아해도 야구장에 가는 것은 쉽지가 않다. 쉽지 않은 시각장애인들을 불러 모아 야구장엘 간다고 해서 필자도 따라 나섰다.

지난 14일(수) 부산시각장애인복지연합회 부산진구지회(회장 김복명, 이하 부산진구지회)에서 롯데 자이언츠와 기아 타이거즈 경기에 시각장애인들을 초대했다. 김복명 회장은 부산사회복지공동모금회로부터 단체관람권을 받았다는데, 50여명의 장애인이 참여했다. 김복명 회장이 참가하는 산악회에서 지체장애인도 몇 명이 참가했다.

경기 시작이 저녁 6시 30분이라 6시경 사직야구장 북측 최동원 동상 부근에서 50여명의 장애인이 모였다. 봉사자들이 명단을 체크하고, 김밥과 생수 그리고 통닭 한 마리씩을 나눠 주었다. 단체사진을 찍고 시간이 되어 입장하는데……. 전동휠체어나 전동스쿠터를 탄 몇몇 사람은 1루, 3루의 휠체어 전용석으로 가고 나머지 40여명은 기다란 경사로를 지나서 5층을 더듬더듬 올라갔다. 2층부터는 계단인데 지금 생각해도 5층까지 어찌 갔는지 정말 아찔하다.

입장권에는 중앙상단석이라고 명시되어 있었는데 중앙상단석은 계단도 가팔라서 필자도 한 계단 한 계단씩 올라가기도 조심스러웠다. 장애인은 사직야구장 입장이 무료인데, 휠체어석이나 외야자유석이라 단체관람은 어쩔 수 없는 모양이었다. 공동모금회에서 표를 받았다고 하던데 5층 표를 주다니, 단체 표는 고맙지만 그래도 5층은 너무 한 것 같다.

아무튼 중앙상단석에 자리를 잡았더니 좀 멀기는 했지만 야구 경기는 잘 보였다. 그런데 시각장애인에게 야구코트가 잘 보이는 곳이 굳이 필요 했을까?

시각장애인 관람석. ⓒ이복남

옆에 앉은 시각장애인에게 야구를 좋아하느냐고 물었다. “야구는 좋아하지만 그 보다 더 좋아하는 것이 하나 더 있지요.” 야구보다 더 좋아하는 것이 무엇일까? “야구장에서 마시는 맥주입니다.” 그는 가방에서 맥주 캔을 꺼내 보였다. “야구 보면서 마시는 맥주는 그야말로 꿀맛입니다.”

시각장애인이든 아니든 대부분의 사람들이 운동 경기는 ‘보는 것’이라고 표현해서인지 시각장애인들도 야구를 듣는다가 아니라 본다고 이야기한다. 시각장애인들은 자리를 잡자마자 맥주를 한 잔씩 마시고, 라디오 또는 휴대폰으로 야구중계를 보기(또는 듣기) 시작했다.

오후 6시 30분, 해는 아직도 중천에 떠 있는데 경기는 시작되었다. 국민의례를 마치고, 오늘의 시구는 박성준 군이 한다고 했다.

지난 5월 16일 전국초등학교 야구대회에서 부산 수영초등학교가 우승했는데, 박성준 군은 수영초등학교 야구부 포수로 최우수선수(MVP)라고 한다. 수영초등학교는 이번 대회에서 내리 5연승을 거두며 1위를 차지했다는데 수영초등학교는 이대호와 추신수의 모교이다.

이어서 기아 타이거즈와 롯데 자이언츠의 경기가 시작되었다. 경기는 기아 타이거즈부터 시작했는데 1회와 2회는 둘 다 무실점이었다. 시각장애인들은 라디오 이어폰을 꽂고 옆에 앉은 사람들과 주거니 받거니 맥주잔을 기울였다. 3회에서 기아가 1점을 얻었고, 5회에서 전준우가 우전안타로 1루에 나가 있는 상황에서 강민호가 좌중 홈런을 날려 2점을 얻고 또 1점을 보태어 3점이 되었다.

롯데 자이언츠 응원석. ⓒ이복남

기아 타이거즈와 롯데 자이언츠는 올 시즌 여덟 번째 대결인데 기아 타이거즈는 리그 1위이고 롯데 자이언츠는 리그 7위란다. 그런데 응원은 롯데가 제일이라고 알려져 있다. 강민호가 투런 홈런을 날리자 롯데 응원석에서는 난리가 났다. ‘롯데의 강민호 (강민호) 롯데의 강민호 (강민호) 오오오오오오 ~~’ 강민호 응원가는 보니 엠(Boney M)의 바빌론 강가에서(River of babylon)를 개사 한 노래인데 대부분이 일어나서 합창을 했고, 강민호 응원가는 시각장애인들도 따라 불렀다.

“야구장에 오면 집에서 소리로만 들었을 때와 달리 직접 현장의 응원소리를 듣고 같이 응원할 수 있어 너무 즐겁습니다.”

저만치 내야필드 응원석에서는 가지가지 이벤트가 계속되고, 관중들은 롯데 선수가 나올 때마다 환호성을 질렀다. 그러나 6회에서는 기아가 3점을 얻었다.

“야구장에 와서 롯데가 이기면 스트레스가 확 풀리는데, 지면 오히려 스트레스가 팍팍 쌓입니다.”

6월 14일 기아 타이거즈와 롯데 자이언츠의 경기는 6대 3으로 끝났고, 롯데 팬들은 허무한 가슴을 쓸어내리며 사직야구장을 떠났다.

김복명 회장이 부산진구지회에서는 한 달에 한 번 씩, 매월 둘째 토요일엔 걷기모임을 한다고 했다. 걷기는 성지곡수원지 또는 시민공원에서 하는데 나이가 많은 어르신도 있고 중도장애인도 있어서 코스는 대부분이 그냥 평지란다. 그런데 걷기 모임에 나오는 시각장애인들이 야구 관람을 원하더란다. 그래서 1년에 한 번 이맘 때 쯤엔 사직구장에서 야구 관람을 하는데 올해가 벌써 세 번째다.

“걷기에는 한 번에 100명 정도는 참석을 하는데, 야구 관람은 야구를 좋아하는 사람들만 참여하니까 절반 정도 밖에 안 되는 것 같습니다.”

야구관람에 참가 한 사람들. ⓒ이복남

시각장애인 중에는 야구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지부사람 전체에게 알릴 수는 없고 해서, 지회사람들은 얼마 되지 않는 것 같다고 했다. 게다가 시각장애인들 중에 야구장에 직접 오는 관람 문화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도 많아 선뜻 나서지 못하는 것 같다고도 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예전에는 야구장에 살다시피 했습니다.”

김복명 회장은 시각장애 1급인데 어떻게 야구장엘?

“중도 장애인이라, 마흔 살까지만 해도 잘 보았습니다.”

이제 60이 다 된 김복명 회장이 예전에는 야구장에서 살다시피 했는데, 요즘은 이런 단체 행사가 아니면 자신도 야구장에 오는 것이 쉽지 않다고 했다. 그리고 전에는 이해창 선수를 좋아했는데, 요즘은 강민호 선수를 좋아한단다. 시각장애인들도 뭔가에 취미를 가지고 좋아하면서 즐겁게 살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눈을 감았다고 해서 인생을 다 산 것은 아니니까.

* 이복남 기자는 에이블뉴스 객원기자로 하사가장애인상담넷(www.gktkrk.net) 원장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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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웃이 행복하지 않는 한 나 또한 온전히 행복할 수 없으며 모두 함께 하는 마음이 없는 한 공동체의 건강한 발전은 기대하기 어렵다. 우리는 함께 살아가야 할 운명공동체이기 때문이다. 아름답고 건강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가진 자와 못 가진자,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평등하게 공유할 수 있는 열린사회를 건설해야 한다. 쓸모 없음을 쓸모 있음으로 가꾸어 함께 어우러져 나아갈 수 있도록 서로 사랑으로 용서하고 화합하여 사랑을 나눔으로 실천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이복남 원장은 부산장애인총연합회 사무총장을 역임하였으며 현재 하늘사랑가족상담실을 운영하고 있다. 하사가장애인상담넷www.gktkrk.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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