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충체육관을 찾는 시각장애 관중의 눈이 되어주는 현장해설사 전진아 아나운서. ⓒ2015서울세계시각장애인경기대회 조직위원회

잠시 눈을 감고 상상해보자. 지금 당신은 농구나 배구 같은 실내스포츠를 직접 즐기기 위해 경기장을 찾았다. 먹을거리도 사고 응원할 준비도 마쳤다. 경기가 시작되었다. 그때 갑자기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다.

경기에 대해 느낄 수 있는 거라곤 공 튀기는 소리와 심판의 호각소리, 다른 관중의 뜻 모를 환호성뿐이다. 말도 안 되는 상황이라고? 그렇지 않다. 이 모든 건 시각장애인이 겪고 있는 현실이다.

‘2015서울세계시각장애인경기대회’는 세계 최초로 시각장애 관중에게 ‘청전(聽戰)의 세계’를 열어주었다.

조직위원회는 ‘현장해설방송 시스템’을 통해 시각장애인도 ‘두 눈으로 보듯’ 경기를 즐길 수 있도록 만들었다. 시각장애 관중은 지급된 단파 수신기를 통해 현장해설사의 경기 중계 및 상황 해설을 생생하게 들을 수 있다.

13일 남자 골볼 경기가 열리고 있는 장충체육관. 골볼은 공안에 든 방울 소리를 통해 경기가 이루어지기에 경기 중엔 조용해야한다. 선수 외에 오로지 세 사람만 경기 중에 말할 수 있다. 두 명은 경기판정과 매 플레이 직전 ‘Quite Please’(정숙해주세요)를 외치는 심판. 또 다른 한 명은 마이크를 앞에 놓고 경기장의 모습을 말로 그리는 ‘현장해설사’ 전진아(30)다.

처음 전진아의 목소리를 들으면 ‘어디서 들어봤는데?’라는 생각이 든다. 그는 KBS 32기 공채 성우로 ‘다큐 공감’, ‘남성공감 랭크쇼 M16’를 비롯해 다수 애니메이션에서 활동하며 많은 이에게 목소리를 알렸다.

그 외에 이번 대회에 참가하는 현장해설사 8명도 모두 성우다. 이들 모두 ‘말로 그림을 그릴 줄 아는’ 사람들이다.

“시각장애인도 TV방송을 볼 수 있도록 돕는 ‘화면해설’이란 것이 있습니다. 여러 방송국출신 성우들이 모여 시각장애인 복지관에서 봉사를 하고 있어요. 조직위원회 측에서 현장해설사가 필요하다는 연락을 받았어요. ‘우리의 전공을 살려 많은 분들에게 도움을 드리자’라는 생각으로 이 대회에 함께 했어요.”

화면해설과 현장해설은 많이 다르다. 녹화된 영상을 보고 ‘준비해서’ 말해 줄 수 있는 화면해설과 달리 현장해설은 경기장에서 일어나는 생생한 일을 ‘곧바로’ 설명해야 한다. 더구나 스포츠와 동떨어진 생활을 해왔던 전진아는 이 대회를 위해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저는 그동안 스포츠와 담을 쌓고 지내서 많이 공부해야 했어요. (웃음) 장충체육관에 계신 골볼선수 출신 부장님께 경기 룰에 대해 많이 배웠습니다. 제가 종목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야 보다 쉽고 간단하게 현장해설을 해드릴 수 있으니까요. 회의도 참가하고 경기장에서 나오는 자료들도 모두 챙겨봤어요.”

‘옆에 앉은 내 친구에게 설명하듯이’ 전진아가 말하는 현장해설의 모토다. 현장해설은 시각장애 관중이 귀를 통해 경기장을 볼 수 있도록 한다. 심판과 장내 아나운서가 말하지 않는 것을 모두 말해줘야 한다. 선수 유니폼색깔, 선수의 위치, ‘한국 7번 선수가 우측에서 중앙으로와 오른쪽 공격’ 같은 상황묘사 등을 최대한 간단명료하게 한다.

전진아의 첫 현장해설은 모토대로 시각장애 관중을 옆에 두고 했다. 지난 11일 한 시각장애인이 남자 골볼이 열리는 장충체육관을 찾았다. 실내라 그런지 그에게 배급된 단파수신기가 현장해설 주파수를 잡지 못했고, 관중의 불만은 극에 달했다.

종목담당관과 전진아는 침착하게 그를 진정시킨 뒤 바로 옆에서 현장해설을 하는 것으로 상황을 일단락 했다. 그녀의 해설을 들은 시각장애 관중은 경기 후 “감사하다”라는 인사와 함께 카드형 USB를 선물했다.

‘현장해설 시스템’이 전 세계 최초인 것처럼 서울세계시각장애인경기대회도 아시아 최초로 열린 대회다. 많은 준비를 했어도 첫 시도에 대한 시행착오가 생기기 마련이다.

“홍보가 안 되어 저희들의 존재를 모르시는 분들이 많아요. 단파수신기가 실내경기장 주파수를 잘 잡지 못하는 기술적인 문제도 있고요. 어려움이 많지만 이런 시도가 있다는 자체에 의의를 두어요. 아무것도 안 하면 바뀌는 게 없죠. 시각장애 관중을 위한 움직임을 시작했고 그 첫 걸음에 함께하게 되어 정말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이번 대회를 통해 골볼을 처음 봤는데 정말 역동적이고 재미있는 스포츠더라고요. 경기를 ‘보는’ 제가 이렇게 재미를 느끼듯 제 해설을 ‘듣는’ 분들도 제가 받은 재미를 느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대회기간 내내 하루 종일 현장해설 할 각오로 많은 준비를 했는데 오시는 분이 적어서 적적해요. (웃음) 한 분이 오시더라도 정말 최선을 다할 테니 앞으로 많은 분들이 찾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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