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나그네가 캄캄한 밤길을 걸어가고 있었다. 낯선 길인데다 길이 험하여 걸어가기가 매우 힘이 들었다. 나그네가 겁을 먹은 채 더듬거리고 있는데 뜻밖에도 앞쪽에서 등불이 반짝이는 게 보였다. 반가운 마음에서 등불 가까이에 다가간 나그네는 깜짝 놀랐다. 등불을 든 사람이 시각장애인이었기 때문이다.

나그네는 “앞을 보지 못하는 분이 왜 등불을 들고 나오셨습니까?”하고 물었다. 그러자 그 시각장애인이 말하기를 “나는 등불이 필요 없지만 다른 사람에게는 도움이 될 것이기에 들고 나왔지요.”라고 대답했다. 등불을 든 시각장애인 이야기는 탈무드에 나오는 이야기다.

제등. ⓒ네이버지식백과

캄캄한 밤길에 시각장애인이 등불을 든 것은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타인을 위한 것이라고 했다. 그런데 탈무드는 2000년 전의 이야기다. 2000년 전 시각장애인이 든 등불은 무엇으로 어떻게 만들었을까.

인류의 역사는 불과 함께 시작되었고 불의 역사는 등기(燈器)의 발전을 가져 왔다. 2000여 년 전의 등불은 무엇으로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는 잘 모른다. 그러나 사람이 들고 다닐 수 있는 제등(提燈)은 주로 철사나 대나무 등으로 골격을 짜 맞추고, 표면에는 한지나 비단을 발랐고 윗부분에는 손잡이를 달아 이동하기에 편리하도록 만들었다. 등의 내부에 초를 넣은 것은 초롱, 등잔을 넣은 것은 등롱이라고 했다.

그러나 실제로 등불을 든 시각장애인 이야기는 듣지 못했다. 그런데 전깃불이 훤한 현대에서도 촛불이나 등잔불 그리고 남폿불까지 여전하지만 지금의 등불은 남을 위한 배려가 아니라 종교의식이나 장식용으로 사용되고 있다.

남폿불은 남포등에 불을 밝힌 것인데 남포는 영어 램프(lamp)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는 개화기에 들어 와서 1950~60년대까지 전성기를 누리다가 70년대쯤부터 사라지기 시작했다.

남포등은 석유가 타면서 유리 등피 표면에 그을음을 남기므로 필자도 어렸을 때 저녁마다 남포등을 닦아야 했다. 유리 등피는 입구가 좁은 타원형이라 가끔 잘못해서 유리 등피를 깨뜨리는 바람에 아버지에게 꾸중을 듣기도 했다.

MBC 주말드라마 ‘당신은 너무합니다’에서 이경수(강태오 분)는 시각장애인인데 동네에서 작은 카페를 운영하고 있다. 그 카페에는 남포등이 여기저기 불을 밝히고 있다. 전기불이 들어오면서 사라진 남폿불이 현대에 와서 다시 켜진 것은 순전히 카페의 인테리어를 위한 장식품이다. 전기조명은 따로 있었으므로.

곳곳에 남폿불을 밝힌 카페. ⓒMBC

일반적인 카페에 남폿불이 있었다면 아무리 많아도 굳이 필자가 얘기할 문제는 아니다. 인테리어의 일종일 테니. 그런데 이 카페를 운영하는 사람은 활동보조인도 없는 시각장애인이다.

전기조명이야 스위치 하나로 켜고 끌 수도 있을 터이니 시각장애인이라고 해서 못 할 것도 없다. 그러나 카페에는 알바생 한 사람이 커피를 팔다가 밤이면 퇴근을 하고, 그 후에는 시각장애인 이경수만 혼자 남아서 피아노를 치곤한다. 그런데 카페 곳곳에 놓인 남포등불을 누가 날마다 일일이 켜고 또 끄는 것일까.

‘당신은 너무합니다’는 톱스타 유지나(엄정화 분)와 모창가수 유쥐나라고 하는 정해당(처음에는 구혜선이었으나 구혜선이 하차하고 현재는 장희진이 대신하고 있음)의 이야기다.

유지나와 우연히 만난 정해당이 ‘허락도 받지 않고 폐를 끼쳐 미안하다’고 하자 유지나는 ‘폐도 아니고 다 자기에게 주어진 인생’이라고 했다. 그랬다가 정해당의 연인 조성택(재희 분)을 보자 생각이 달라졌다. 유지나는 ‘빚 갚는 셈 치고 나 달라’며 조성택을 빼앗아 갔다. 그리고 얼마 후 조성택은 사고를 당했다.

조성택이 죽고 슬픔에 젖은 정해당이 밤늦게 이경수가 운영하는 동네 카페를 찾았다. 시각장애인 이경수는 영업이 끝났다고 했다. 정해당은 잠깐 앉았다 가도 되느냐고 물었다. 이경수는 정수기에서 따듯한 물을 받았다. 직원은 퇴근해서 없고 자기는 앞을 못 보니 정해당에게 뜨거운 물을 직접 가져가라고 했다. 그리고 이경수는 피아노를 치고 그 옆에서 정해당은 흐느껴 울었다.

시각장애인에게 꽃냄새를 알려주는 정해당. ⓒMBC

어느 날 이경수가 치는 피아노 반주에 정해당이 노래를 불렀다. ‘낮에 나온 반달은 하얀 반달은 해님이 쓰다 버린 쪽박인가요.…….’ 이경수는 깜짝 놀랐다. 정해당이 부르는 그 노래는 이경수가 어릴 적에 불러주던 엄마의 목소리였던 것이다.

6살 어린 나이의 이경수는 엄마가 불러주던 ‘낮에 나온 반달’을 생각하며 엄마를 기다렸지만 끝내 엄마는 오지 않았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 엄마를 기다리는 어린 아이, 아무것도 볼 수 없는 막막한 두려움과 애타는 그리움을 20여년의 세월 동안 이경수는 어떻게 견뎌 냈을까.

시각장애인 이경수는 엄마의 목소리를 닮은 정해당을 좋아 했다. 그렇게 둘이 친해지면서 정해당은 이경수를 꽃집에도 데려가 장미 튤립 히아신스 등 하나 하나 꽃 냄새를 맡게 하는 등 둘의 친분이 쌓여 갔다. 그러면서 어느 날 밤 이경수가 정해당에게 전화를 걸었다.

정해당이 쓰는 핸드폰은 스마트폰인데 이경수가 사용하는 핸드폰은 폴더폰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스마트폰을 쓰는데 일부 어르신들은 지금도 폴더폰을 사용하고 있다. 스마트폰에는 인터넷 등 여러 가지 기능이 첨가되면서 요금이 비싸다. 그래서 어르신들은 손에 익숙하기도 하고 상대적으로 요금도 싼 폴더폰을 선호하는 것 같다. 스마트폰은 복잡해서 오히려 사용하기 불편하다고 폴더폰을 고집하는 사람들도 더러 있다.

시각장애인 중 많은 사람들 또한 스마트폰을 사용하고 있으며, 그리고 복지관 등에서도 시각장애인들에게 스마트폰 사용법을 가르치고 있다. 스마트폰의 기능들은 제대로 사용할 줄 알면 시각장애인에게도 여러모로 편리하기 때문이다.

시각장애인 이경수의 폴더폰. ⓒMBC

드라마에서 이경수는 비록 시각장애인이지만 음대를 나온 지식인이다. 그럼에도 이경수가 폴더폰을 사용하는 것은 혹시라도 시청자들에게 시각장애인은 스마트폰을 사용할 줄 모른다는 인식을 심어 줄까봐 약간은 염려스러운 부분이다.

그 때 이경수와 정해당은 밤늦게 서로 안부를 묻는 전화를 했었다. 그런데 정해당이 미처 전화를 끊기 전에 정해당의 아버지가 들어 왔다. “카페사장이야? 몸도 불편한 사람이라면서? 평범한 사람 만나서 별 탈 없이 살아야지. 카페사장하고 별 사이 아니지?” 어느 날 아버지는 카페에서 정해당이 이경수와 춤을 추는 모습을 보았던 것이다.

이에 정해당은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이라 뭐라도 도움이 될까 해서 그러는 거예요.” 그 이야기를 전화기 너머에서 이경수가 듣고 있었다. 이런 경우 현실에서도 대동소이하다. 이경수는 정해당을 사랑하고 있었는데 정해당은 이경수가 시각장애인이기 때문에 동정하고 있었다니, 이경수에게는 청천벽력이었다. 서러움이 북받친 이경수는 밖으로 뛰쳐나갔다.

그러나 이경수는 정안인처럼 밖으로 달려 나갈 수 없는 시각장애인이었다. 그래도 이경수는 흰지팡이를 챙겨들고 밖으로 나가 무작정 걸었다. 이경수는 흰지팡이를 더듬거리며 거리로 나섰는데 여기저기서 빵빵하고 클랙슨이 울렸다. 이경수는 사방에서 울려대는 클랙슨 소리에 놀라 횡단보도에서 쓰러졌다.

클랙슨 소리에 놀라 쓰러지는 이경수. ⓒMBC

「도로교통법」 제49조는 (모든 운전자의 준수사항 등)이다. 제1항 제2호 나에 의하면 ‘앞을 보지 못하는 사람이 흰색 지팡이를 가지거나 장애인보조견을 동반하는 등의 조치를 하고 도로를 횡단하고 있는 경우’에는 ‘일시정지 할 것’을 명시하고 있다. 그러나 이경수가 흰지팡이를 짚고 있었음에도 그 앞에서 일시정지를 하는 운전자는 아무도 없었다.

「도로교통법」

제49조(모든 운전자의 준수사항 등) ① 모든 차의 운전자는 다음 각 호의 사항을 지켜야 한다.  <개정 2013.3.23., 2013.8.13., 2014.11.19., 2015.8.11.>

1. 물이 고인 곳을 운행할 때에는 고인 물을 튀게 하여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는 일이 없도록 할 것

2. 다음 각 목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경우에는 일시 정지할 것

가. 어린이가 보호자 없이 도로를 횡단할 때, 어린이가 도로에서 앉아 있거나 서 있을 때 또는 어린이가 도로에서 놀이를 할 때 등 어린이에 대한 교통사고의 위험이 있는 것을 발견한 경우

나. 앞을 보지 못하는 사람이 흰색 지팡이를 가지거나 장애인보조견을 동반하는 등의 조치를 하고 도로를 횡단하고 있는 경우

다. 지하도나 육교 등 도로 횡단시설을 이용할 수 없는 지체장애인이나 노인 등이 도로를 횡단하고 있는 경우

운전자가 「도로교통법」 제49조를 지키지 않았을 때는 어떻게 되는 걸까. 제49조를 위반했을 때는 20만 원 이하의 벌금이나 구류 또는 과료에 처한다고 되어 있다.

「도로교통법」 제156조(벌칙)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사람은 20만 원 이하의 벌금이나 구류 또는 과료(科料)에 처한다.’ 단 제1항 제1호 제3호 제4호는 제외한다. 제1호는 행인에게 물을 튀겨 피해를 주는 일이고, 제3호는 법 규정을 어기는 지나친 선팅이고, 제4호는 불법 장치인데 이에는 더 많은 과태료가 부과되고 있었다. 그러나 사실 이런 조항을 알고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

유지나에게 필요 없다고 말하는 이경수. ⓒMBC

아무튼 이경수는 정해당이 자신을 동정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는 이별을 통보한다. 그리고 는 눈을 뜬다. 설마 자기 차례가 올까 생각도 하지 않았다는데 이경수에게 차례가 와서 개안수술을 하게 된다. 시각장애인의 개안수술이란 각막이식수술이다. 각막이 손상되어 실명하는 경우 각막이식으로 눈을 뜰 수가 있지만 시신경이 손상되는 경우에는 각막이식도 소용이 없다. 이경수는 6살 때 교통사고로 각막이 손상되었던 것이다.

눈을 뜬 이경수에게 어느 집 파티에서 연주를 해달라는 요청이 왔다. 처음에는 거절을 했으나 그 집에 재벌집이라는 사실을 알고는 연주를 수락한다. 그 집은 앞을 못 보는 자신에게 피아노를 배우도록 해주고 많은 후원을 해준 고마운 사모님의 집이었던 것이다. 지금은 자신에게 많은 후원금을 남겨주고 자살을 했지만.

이경수는 눈을 떴지만 시각장애인 흉내를 내면서 그 집을 찾아 간다. 파티를 앞두고 선곡을 의논하기 위해서라는 명목으로. 그런데 그곳에 꿈에도 잊지 못할 그리운 어머니 유지나가 있었다. 물론 유지나는 아들 이경수를 알아보지 못했다. 그러나 어릴 때 보육원에 버린 시각장애아들을 생각하며 “제가 좀 도와 드려도 될까요?” 유지나는 공손하게 물었다. “필요 없습니다.” 이경수의 대답은 퉁명스러웠다. 드라마에서는 어릴 때 자신을 버린 엄마 유지나에 대한 애증 때문에 그랬을 수도 있을 것이다.

시청자 의견. ⓒMBC

장애인이라고 해서 비장애인에게 동정의 대상이 되어야 할 이유는 없다. 필요할 때 배려하고 협동하고 공존하면 된다.

등불을 든 시각장애인처럼. 장애인이 길을 가다가 넘어 졌을 때 비장애인이 “도와 드릴까요?”라고 묻는다면 “아니요, 괜찮습니다. 혼자 할 수 있습니다.”라며 거절 할 수는 있다. 그럴 때는 이경수 처럼 ‘필요없습니다’가 아니라 ‘괜찮습니다’라고 해야 한다.

그래야 서로에게 상처 받지 않는 배려가 될 테니까. 비장애인이라고 해서 ‘너는 나의 도움을 받아야 돼’하면서 막무가내로 도와주려 한다면 서로가 서로에게 별로 바람직하지 않는 모습이 될 수도 있다.

점자정보단말기. ⓒ이복남

물론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이다. 그럼에도 시청자 게시판에는 ro***라는 시각장애인이 점자는 왼손으로 읽어야 하는데 왜 이경수는 오른손으로 읽느냐며 수정을 요청했다. 물론 예전에는 왼손으로 점자를 읽고 오른손으로는 점자를 쓰기도 했다.

그러나 요즘은 점필로 점자를 쓰는 사람은 줄어드는 반면, 점자노트북(점자정보단말기)으로 점자를 쓰고 읽는 등 점자정보단말기를 활용하는 사람이 증가함으로 인해 점자는 왼손 또는 오른손으로도 읽을 수도 있으므로 그 시각장애인도 이 부분은 너무 마음에 담아 두지 않았으면 싶다.

오른손으로 점자를 읽는 이경수. ⓒMBC

필자가 드라마나 영화에 대해서 가끔 글을 쓰지만 필자가 쓰는 글은 비평이 아니라 일종의 후기이다. 비평이란 전문가의 영역이므로, 그러나 필자의 후기는 그 드라마나 영화가 장애인과 관련이 있고 필자가 뭔가 말하고 싶기 때문이다.

아무튼 최근에는 드라마나 영화 등에 장애인이 자주 등장한다. ‘당신은 너무합니다’에서도 몇 가지 오류는 있을지언정 비장애인들에게 시각장애인에 대한 인식을 무언중에 심어 줄 수 있어 그나마 다행이고 고마운 일이다. 그리고 이경수 역할의 강태오도 많이 노력했겠지만 시각장애인 역할을 그런대로 잘 하는 것 같아서 감사하게 생각한다.

끝으로 한 가지 바라고 싶은 것은 드라마에 장애인이 나올 때는 장애인의 현실 생활을 잘 반영해서 제작하는 노력을 기울였으면 한다. 그렇게 될 때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서로 배려하고 협동하고 공존하는 세상이 되지 않을까 싶다.

* 이복남 기자는 에이블뉴스 객원기자로 하사가장애인상담넷(www.gktkrk.net) 원장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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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웃이 행복하지 않는 한 나 또한 온전히 행복할 수 없으며 모두 함께 하는 마음이 없는 한 공동체의 건강한 발전은 기대하기 어렵다. 우리는 함께 살아가야 할 운명공동체이기 때문이다. 아름답고 건강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가진 자와 못 가진자,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평등하게 공유할 수 있는 열린사회를 건설해야 한다. 쓸모 없음을 쓸모 있음으로 가꾸어 함께 어우러져 나아갈 수 있도록 서로 사랑으로 용서하고 화합하여 사랑을 나눔으로 실천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이복남 원장은 부산장애인총연합회 사무총장을 역임하였으며 현재 하늘사랑가족상담실을 운영하고 있다. 하사가장애인상담넷www.gktkrk.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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