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새벽 텔레비전 채널을 돌리다가 시각장애인이 나오기에 보고 있자니 ‘기막힌 이야기 실제상황’이었다. 이날의 제목은 ‘사랑이라는 이유로’였다. 내용은 참으로 어이없고 안타까운 사연이었다.

방송이 끝나고 다시 찾아보았다. ‘기막힌 이야기 실제상황’은 MBN에서 방영하는 교양 프로그램이라고 하는데 재연 드라마다. 기획 김시중, 프로듀서 류승민, 2014년 4월 20일부터 시작했고 2020년 9월 6일 406회를 끝으로 휴방 중이라고 했다.

필자가 우연히 보게 된 내용은 2015년 11월 26일에 방송된 116회였다. 시각장애인 구혜민(32세)은 흰지팡이를 짚고 홀로 길을 가다가 넘어졌다. 홀로 길을 가다 보면 넘어지기도 예사라 비상약을 가지고 다니기도 한다. 그러다가 방향을 잃고 차도로 뛰어드는 바람에 한 남자가 구해주었다.

시각장애인 구혜민의 기막힌 사연. ⓒMBN

구혜민을 구해준 남자는 김준표(35세)였다. 이를 계기로 김준표와 구혜민은 연인이 되었다. 구혜민은 서른을 넘긴 시기에 찾아온 첫사랑에 마냥 행복해했다. 상대는 장애까지도 이해해주는 재력과 매너를 갖춘 완벽한 남자였다.

김준표는 구혜민을 여러 군데 데리고 다니면서 데이트했다. 그러다가 김준표는 구혜민에게 여동생을 소개했다. 김준표의 여동생이라는 김수연(30세)은 구혜민에게 무슨 재주로 이렇게 멋진 남자를 얻었느냐며 부러워했다.

그런데 김준표가 잠깐 전화를 하러 간 사이 김수연은 돌변했다.

김수연 : “네가 얼마나 불쌍하게 보였기에 우리 오빠를 꼬여?”

구혜민 :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김수연 : “감히 네깟 주제에 우리 오빠를 이용해서 팔자를 고쳐 보려고 여우짓을 해?”

김수연의 돌변한 태도에 구혜민은 어이가 없어서 말문이 막혔다.

여동생 김수연과 식사하는 구혜민. ⓒMBN

주문한 음식이 나왔다. 구혜민이 주문한 음식은 파스타였다. 김수연은 구혜민의 파스타 접시에 소금을 들이부었다. 김준표가 돌아왔고 셋은 같이 식사하는데 구혜민은 파스타를 한 젓가락 먹어보고는 질겁했다. 김준표가 왜 맛이 없느냐고 물었으나 구혜민은 아니라고 하면서 잠자코 소금 파스타를 먹었다.

김준표는 구혜민에게 여행을 가자고 했다. 웬 여행? 구혜민은 김준표가 여행을 가자는 말에 반색했다. 그런데 그 여행에 김수연도 같이 간단다. 구혜민은 김수연과 같이 가기 싫었지만, 김준표가 같이 가자고 하므로 차마 싫다는 말도 못 했다.

세 사람은 함께 여행을 갔다. 여행지에서 셋이 술을 마시다가 구혜민은 먼저 자겠다며 방으로 들어가서 잠이 들었다. 김준표와 김수연은 밤늦도록 둘이서 술을 마셨다. 깜빡 잠이 들었던 구혜민은 김수연이 지르는 비명 소리에 놀라 잠이 깼다.

눈이 안 보인다고 소리 지르는 김수연. ⓒMBN

김수연은 눈이 찌르는 듯이 아프고 앞이 안 보인다고 몸부림쳤다. 김준표는 놀라서 김수연을 병원으로 데려갔다. 의사가 검안하는데 김수연은 눈이 아프고 안 보인다고 계속 소리를 질렀다. 구혜민은 한쪽 구석에서 웅크리고만 있었다.

이 사건의 전모는 김준표와 김수연은 결혼을 앞둔 예비신혼부부였다. 김수연은 멋진 결혼식을 꿈꾸며 드레스를 입어 보기도 했다. 그런데 그들에게는 멋진 결혼식을 치를 돈이 모자랐다. 그들은 결혼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고심했다. 그러다가 그들이 생각해낸 묘수는 눈이 멀었다는 보험금이었다.

김준표와 김수연은 자기들의 계획에 도움이 될 만한 시각장애인을 물색했다. 그러던 중 흰지팡이를 짚고 혼자 다니던 구혜민이 눈에 띄었다. 김준표는 구혜민에게 접근하여 친절을 베풀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구혜민은 서른의 나이에 찾아온 첫사랑에 행복해했다.

결혼을 준비하는 김준표와 김수연. ⓒMBN

김수연이 여행지에서 눈이 아프고 앞이 안 보인다고 하는 것은 거짓 쇼였다. 김수연은 눈이 찌를 듯이 아프고 앞이 안 보인다고 했지만, 김수연의 눈을 살펴본 의사는 별문제가 없다고 했다. 김준표는 김수연을 데리고 다른 병원으로 가겠다고 했다.

김준표가 구혜민에게 김수연이 결혼할 예비신부라는 말은 안 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김준표는 구혜민에게 동생 김수연이 시각장애로 보험금을 타려고 하니까 구혜민이 대신 진료해 달라고 했다.

구혜민에게 진료를 부탁하는 김준표. ⓒMBN

구혜민이 처음에는 안 된다고 거절했다. 그러자 김준표는 사랑하는 사이에 그런 것도 못 해주느냐, 인제 보니 당신은 나를 사랑하지 않는 모양이라며 다그쳤다. 구혜민은 이 일로 김준표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구혜민은 마지못해 김수연이라는 이름으로 진료를 받았다. 진료받을 때 이름과 실물을 대조하지 않는 병원의 허점을 노린 것이다. 구혜민은 김수연의 이름으로 진료를 하고 1급 시각장애인 진단서를 받았다.

김수연 대신 검사 받는 구혜민. ⓒMBN

김준표과 김수연은 구혜민의 1급 시각장애인 진단서로 3개 보험사에서 보험금 12억 3천만 원을 받았다. 그러나 보험조사관이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던 김준표와 김수연은 보험조사관을 속이기 위해 구혜민을 이용해 김수연에게 시각장애인 연습을 시켰다.

김수연은 흰지팡이를 짚고 혼자 길을 걸어가다가 넘어지기도 했다. 김수연은 더 이상 못하겠다고 울부짖으며 난리를 치기도 했지만, 김수연은 어쩔 수 없이 시각장애인 연습을 했다.

세 사람 모두 구속되었다고 한다. ⓒMBN

그런데도 김수연의 시각장애인 연습이 부족했던지 김수연의 행동을 수상하게 생각했던 보험조사관에게 가짜라는 것이 발각되고 말았다. 갑자기 들이닥친 돌발상황에서 김수연은 눈을 뜨고 말았던 것이다.

구혜민은 사랑을 위해 어쩔 수 없이 김준표와 김수연의 계획에 동조했지만, 김준표와 김수연 그리고 구혜민까지 세 사람 모두 사기 미수죄로 구속되었다고 한다.

실제상황은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된 드라마다. 드라마를 보면서 이해할 수 없는 것은 김준표와 김수연은 처음부터 계획적으로 구혜민에게 접근했는데 김수연은 왜 구혜민을 못살게 괴롭혔을까? 아무리 계획적이라고 해도 자기 남자 김준표의 연인이라는 것이 못마땅한 시샘이었을까?

전국장애인등록현황(2021년도). ⓒ보건복지부

현재(2021년 통계) 전국의 등록장애인은 2,644,700명이다. 이 가운데 시각장애인은 251,620명인데 남자는 149,321이고 여자는 102,299명이다. 예전에는 장애를 1급부터 6급까지 여섯 단계로 구분했으나 이제는 심한 장애와 심하지 않은 장애 두 단계로 구분하고 있다.

2021년 통계에서 심한 장애인은 47,022명인데 이 중에서 남자가 23,883명이고, 여자가 23,139명이다. 통계수치를 보다가 필자도 깜짝 놀랐다. 대부분의 장애인 통계에서 대체로 남자가 많은데 심한 시각장애인은 남녀 비율이 어째서 비슷할까? 그 이유는 필자도 잘 모른다. 그런데 심하지 않은 장애인은 204,598명이며 그중에 남자는 125,438명이고 여자는 79,160명으로 남자가 훨씬 많다.

이 드라마는 2015년 11월 26일에 방송되었다고 한다. 그때도 시각장애인 여자가 혼자 다니는 일은 별로 없었지만, 요즘은 활동지원사가 있어서 드라마에 등장하는 구혜민처럼 앞이 보이지 않는 시각장애인 여성이 혼자 다니는 일은 거의 없다.

* 이복남 기자는 에이블뉴스 객원기자로 하사가장애인상담넷(www.gktkrk.net) 원장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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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웃이 행복하지 않는 한 나 또한 온전히 행복할 수 없으며 모두 함께 하는 마음이 없는 한 공동체의 건강한 발전은 기대하기 어렵다. 우리는 함께 살아가야 할 운명공동체이기 때문이다. 아름답고 건강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가진 자와 못 가진자,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평등하게 공유할 수 있는 열린사회를 건설해야 한다. 쓸모 없음을 쓸모 있음으로 가꾸어 함께 어우러져 나아갈 수 있도록 서로 사랑으로 용서하고 화합하여 사랑을 나눔으로 실천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이복남 원장은 부산장애인총연합회 사무총장을 역임하였으며 현재 하늘사랑가족상담실을 운영하고 있다. 하사가장애인상담넷www.gktkrk.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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