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진현 화백. ⓒ대구장애인미술협회

전복된 인생

송진현은 1968년 11월 4일 대구에서 태어났다. 좋은 체격에다 인물도 좋았던 그는 대구대 화학교육과를 졸업하고 학사 장교로 입대했다. 학창시절 사람들을 좋아하고 리더십이 있어서 군에서도 브리핑 전문가로 인정받으며 직업군인의 꿈을 키웠다.

군장교로 군복무 중이었던 1996년 2월 새벽, 급브레이크를 밟은 앞차를 피하기 위해 급하게 핸들을 돌린 그의 차가 미끄러져 전복되는 교통사고가 발생했다. 사고가 난 지 보름 만에 의식이 돌아온 송진현은 그곳이 병원 중환자실이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만 해도 아주 가볍게 생각했었다.

그런데 평소처럼 팔을 들어 올리려고 하자 꼼짝을 하지 않았다. 다리를 움직이려고 했지만 역시 말을 듣지 않았다. 경수 손상으로 인한 전신마비 상태였다. 얼굴 아래 온몸이 마비되어 누워서 지내야만 했다. 그때가 그의 나이 29세였다.

아, 그림!

속절없이 천장만 쳐다보며 깊은 좌절과 절망 속에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어떻게 살아야 할까 고민하다가 그림이 생각났다. 입이나 발가락에 붓을 꽂고 그림을 그리는 것을 본 기억이 났다.

그는 초등학생 때 학교 대표로 사생대회에 나가서 수상도 했지만 교사였던 부친이 그림 그리는 것을 반대하여 물감을 뺏고 대회 참가비도 주지 않아 그 이후로 그림 그리는 것을 포기하고 잊고 살았었다.

그림을 제대로 그리기 위해 그림 공부를 하고 싶었지만 공부를 하러 나갈 수도 없고, 그림을 지도해 줄 선생을 집으로 모셔 올 수도 없어서 혼자서 해야 했다. 중·고등학교 미술 교과서를 헌책방에서 구해다가 공부하며 그대로 연습을 해보았다.

수 없는 시행착오를 거치며 열심히 그림을 그렸다. 붓에 연결한 젓가락이 부러져 입안을 찔러 입안이 헐고, 젓가락이 부러져서 생긴 가시 같은 것이 목구멍에 걸려 숨을 쉴 수 없는 사건이 일상처럼 일어났다. 이렇게 10년을 매달리자 화폭에서 생명이 느껴졌다.

구족화가로

그는 2008년 까다롭다는 세계구족화가 자격시험을 통과하였고 2011년에는 세계구족화가협회 준회원이 되었다. 세계구족화가협회 회원은 전 세계에 600여 명이 활동하고 있고 우리나라에는 22명이 가입되어 있는데 대구·경북지역에서 그가 유일하다.

구족화가는 분기별로 2점 이상, 적어도 1년에 8점 이상 그림을 그려야 하는 의무가 있는데 그 역시 거뜬히 해내고 있다. 그 후 그는 2010년 문화체육관광부 희망축제 장애인미술가상 최우수상, 2012년 장애인문화예술축제 ‘온몸으로 전하는 회화서예전’ 대상을 비롯해 각종 공모전에서 20여회 수상하는 쾌거를 올렸다.

세계구족화가협회 회원이 된 후 생활에 많은 변화가 생겼다. 의존적인 삶에서 자립하는 삶이 된 것이다. 무엇보다 그림에만 몰두할 수 있어서 가장 좋다. 그렇게 몰두하자 작품이 좋아졌다는 평을 받았다. 그만큼 기회도 많아졌다. 개인전도 열 수 있었고, 2013년에는 오스트리아 빈에서 열린 세계구족회화협회 국제전에 참가했다.

화실 수업 모습. ⓒ대구장애인미술협회

대구장애인미술협회 창립

1998년부터 장애인미술 동아리 활동을 했다. 장애미술인들이 뭉쳐서 목소리를 내자는 움직임이 있어서 서울에서 열리는 회의에 여러 번 참석을 했었다. 그러다 2005년 독립적으로 사단법인 대구장애인미술협회를 창립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처음 출발할 때는 10명 정도가 모였었는데 지금은 회원이 200여 명에 이른다.

협회를 통해 장애인화가와 비장애인화가들이 함께하는 전시회 ‘삶의 숨결을 그리는 사람들 展’을 비롯하여 지하철 역사를 순회하면서 개최하는 지하철 전시회, 야외스케치 여행 등을 주최하며 장애인화가들에게 활동의 장을 마련해 주었고, 장애인미술의 발전 방안을 모색하는 세미나를 개최하며 장애인화가들의 목소리를 전하였다.

현재 대구의 장애인화가들과 ‘그림소리’ 화실을 열어 강사 초빙교육을 통해 장애인화가들의 실력 향상을 돕고 있지만 공간 부족과 재정 어려움으로 소극적으로 운영 중이라고 아쉬워하 였다.

그는 창작공간이 협소하여 회원들이 오브제를 사용하는 것과 캔버스 100호 정도의 대작을 시도하는데 한계가 있다며 장애인미술 창작공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하고, 일일이 물감을 짜주고 섞어 주며, 때론 작품 속 주인공의 손발이 되어 주는 활동지원사들이 없다면 작업은 불가능하다며 창작 활동의 질을 높이기 위하여 예술 전문 활동지원사를 제안하였다.

작품으로 말하다

그는 수채화와 유화를 그린다. 그가 좋아하는 소재는 꽃들이 있는 그의 고향 풍경이다. 최근 그는 바다에서 가져온 조개로 세월호의 아픔을 표현한 ‘그들의 목소리를 기억하라’는 작품처럼 대상에 스토리를 입히고, 이미지를 구도에 맞게 편집한 후 그림을 그려넣는 초현실주의 그림에 푹 빠져 있다.

송진현은 하루 24시간 중 16시간을 침대에서 보낸다. 그는 장애인 활동지원사가 오전 11시에 출근해 휠체어에 앉혀야만 하루가 시작되고 퇴근하는 오후 7시면 침대로 다시 옮겨진다. 활동하는 8시간 중 4시간을 그림에 몰두한다. 더딘 작업으로 2개월 정도의 시간이 걸려야 작품 하나가 완성되지만 붓을 입에 물지 않는 날이 없다.

그림은 그에게 새로운 삶을 가져다 주었다.

“예전의 비관적인 생각이 긍정적이고 활동적인 모습으로 바뀌었어요. 작가 명함도 가지게돼 자존감이 생겼습니다.”

그의 목표는 개인적으로는 자신의 그림을 통해 세상과 소통하는 것이고 단체장으로서는 장애인화가들이 안정적으로 창작활동을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다. 주위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을 받으며 화가가 되었기 때문에 자신도 장애인화가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은 것이 그의 소망이다.

송진현 화백의 작품. ⓒ대구장애인미술협회

송진현 화백

# 주요 경력 대구대학교 사범대학 화학과 졸업

# 개인전첫 번째(세상속으로 BS아트센터 2011) 두 번째(#공감, #함께, #누구와? 범어아트스트리트 2017) 개인부스전 3회 장애인창작아트페어 서울문화역 2014대구아트페스티벌 2015장애인창작아트페어 DDP 2019

# 전시 기획 장애인작가와 비장애인작가가 함께 “그림으로 떠나는 여행” 대구장애인미술협회 정기전 “삶의 숨결을 그리는 사람들”

# 전시 경력LA 한국문화원“고난을 극복한 작가들”展 운보 김기창 문화재단 특별기획 “소리없는 메아리”展 2010 문화체육관광부 주최 희망축제 장애인미술가상 최우수상 2011 아시아 태평양 장애인 대표작전 2012 장애인문화예술축제-제3회 온몸으로 전하는 회화서예전 대상 수상 2014 아시아 장애인미술가“희망 빛”을 그리다(인천아시안게임) 2015 한마음아트페스티벌 초대전 2016 대한민국장애인미술대전 대상 2017 웃는얼굴아트센터 기획 초대전 2019 화가촌 연합전, 한중일 작가교류전 2019 한국장애인문화예술총연합회 미술 부문 추천작가 세계구족화가협회전(대만, 비엔나, 바르셀로나) 한유미술대전, 보문미술대전, 대한민국미술대상전 등다수의 비장애인 공모전 수상현 (사)대구장애인미술협회장, 세계구족화가협회원, 한국장애인전업미술협회원, 대구특수학교사생대회심사위원장, (사)현대미술인협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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