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DA 봉사단원 단체사진. ⓒ은진슬

봉사단 해단식에서 소감문을 발표하는 중. ⓒ은진슬

저는 점자와 컴퓨터 화면읽기 프로그램을 사용하는 1급 시각장애인입니다.

VODA 봉사단원 모집공고를 보고 저를 떠올린 한 후배의 권유로 이번 봉사단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이번 봉사단에 선발되던 날, 결코 가볍지 않은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격한 기쁨과 설렘을 느꼈습니다.

생기발랄, 파릇파릇했던 대학생 시절, 저는 영어 소통에도 능통하고, 국제관계에도 관심이 많으며, 사회에 무언가 이로움을 끼치고 싶은 마음이 충만했던 청년이었습니다.

당연히, 저 역시 외국어에 능통한 다른 친구들처럼 해외봉사 경험을 해 보고 싶었지만, 중증장애를 가진 입장에서 선뜻 나서지 못하고 늘 아쉬워했던 미완의 꿈이 있었지요.

당시의 사회적 인식 수준이 장애인이 봉사를 한다는 생각을 하기 어려운 상황이었음은 물론이려니와 행여 장애인인 내가 괜히 참여한다고 했다가 함께하는 이들에게 민폐가 되지 않을까 우려되고 위축되는 마음도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국내 최초 장애인봉사단에, 그것도 결코 적지 않은 나이에 참여하게 되다니, 어린 시절의 미완의 꿈을 이루게 된 저의 설렘과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프놈펜 왕립 대학교에서 '장애, 창조와 혁신의 씨앗이 되다!' 라는 주제로 강의하고 있는 모습. ⓒ은진슬

저는 프놈펜 왕립대학교 학생들을 대상으로 ‘장애, 창조와 혁신의 씨앗이 되다!’라는 주제로 2회에 걸쳐 장애관점에 대한 강의를 영어로 진행하였습니다.

다른 강사님들이 장애 당사자나 장애와 연관된 일을 하시는 전문가들을 대상으로 강의를 하셨던 것과 달리, 저의 강의는 기본적으로 비장애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청중들이 제 강의를 어떻게 받아들일지 궁금하기도 하고 긴장되기도 하였습니다.

첫날 강의를 마치고 리셉션 시간에 제게 와서 소감을 말씀해 주신 두 분의 말씀이 특히 기억에 남습니다.

한 분은 푸놈펜 왕립대학교 한국어과 교수님이셨는데, 파워포인트나 교수/학습자료들을 매우 효과적으로 활용하는 것이 인상적이었으며, 지금껏 캄보디아 학생들이 접해보지 못한 장애에 대한 관점이라 큰 의미가 있을 것이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덧붙여서, 실은, 장애를 가진 친구 하나가 수업을 들었다며 그 학생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 주셨습니다.

이 학생은 한국에 취업을 하러 들어와서 일을 하다가 장애를 입고 다시 캄보디아로 돌아오게 되었고, 장애를 가지고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많은 고민을 하며 노력한 끝에 캄보디아의 서울대학교라고 할 수 있는 프놈펜 왕립대학교에 입학까지 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롤 모델로 삼을만한 자신과 같은 처지의 학우도 없는 학교 생활 속에서 앞으로 장애인으로서 무엇을 하며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고민도 많은 학생이었는데, 자신의 장애를 가볍고 긍정적인 태도로 다루는 제 강의를 듣고 표정이 밝아져서 강의장을 떠났다는 말씀을 해주시더군요. 뜻 밖의 장애 당사자가 제 강의를 들었다는 것과 저의 창조와 혁신의 장애관점 강의를 통해 조금이나마 힘을 얻었다는 사실에 감사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다른 한 분은, 프놈펜 왕립대학교 근처 고등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치는 쌈낭이라는 교사로, 캄보디아에서도 어릴 때부터 학생들이 자연스럽게 장애이해와 공감을 위한 이러한 교육들을 많이 접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프놈펜 왕립대학에서 제 강의 뒤에 진행되었던 김대현님의 Universal design에 대한 강의는 아직 이 개념에 대해 익숙하지 않은 학생들에게 매력적인 지적 자극이 되어 주었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질문을 이끌어내고자 애쓰셨던 강사님의 노력과 이를 통해 우리나라의 건설교통부 정도에 해당되는 정부 부처에서 공무원 생활을 시작하실 한 분의 심도 깊은 질문은 강의의 큰 수확이 아니었나 생각했습니다.

VODA 장애인 해외봉사단에 참여했던 봉사 단원들. ⓒ은진슬

저희 VODA 강의 일정 중, 제가 첫 테이프를 끊었기 때문에, 나머지 강의 일정은 편안한 관찰자 입장에서 많은 것을 보고 배울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두번째 강의처는 반티에이쁘리업이라는 장애인 직업훈련 기관이었습니다.

저는 평소, 장애인 당사자에게 우리의 이야기를 들려주며 장애인으로서의 경험을 나누는 일은, 어찌 보면 비장애인들에게 장애인식에 대해 강의하는 것보다 더 어렵기 때문에, 좀 더 예민하고 조심스러운 접근이 필요한 일이라고 늘 생각해 왔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제 우려는 기우였나봅니다.

국가대표 강세웅님과 이미경님의 휠체어 스포츠 댄스를 본 휠체어 장애 당사자가 자신도 저렇게 휠체어 댄스를 추고 싶다는 희망을 이야기 했을 때, 장애청년으로서의 자신이 가진 꿈을 이야기하며, 당신들의 꿈은 무엇이냐는 질문을 던지며 울림 있는 강의를 해 주셨던 박승리님의 강의를 듣고는 저마다 자신의 꿈을 도화지에 그리며 진정성과 열정을 담아 발표하는 훈련생들의 모습을 보았을 때, 장애를 가진 당사자만이 전달하고 공감할 수 있는 메시지가 분명히 있구나 하는 생각에 더할 수 없는 벅참과 보람을 느꼈습니다.

프놈펜 왕립대학과는 달리, 장애인 직업 훈련 시설에는 에어컨도 없고, 시설도 열악한 편이어서 이미 문명의 혜택에 너무나도 익숙해진 몸을 가진 저희 입장에서는 그 곳에서 강의를 관전하며 일정을 소화하는 것만으로도 에너지가 많이 소진되고 체력적으로 힘이 들기도 했지만, 그 이상의 보람과 감응을 얻을 수 있는 매우 소중하고 뜻 깊은 경험이었습니다.

셋째날에는 우리 나라의 장애인 단체 연합 정도에 해당하는 기관인 PWDF에서 강의를 하였습니다.

이 날은 정전이라는 돌발상황이 발생하여 PPT나 빔프로젝터도 사용할 수 없었고, 당연히 조명이나 에어컨도 사용할 수 없어 실외에서 야외 소풍을 나온 기분으로 강의를 진행해야 했습니다. 강사들에게는 매우 열악한 환경에서 강의를 진행해야 했던 다소 난감한 상황이었지요.

강의가 진행되고 있는 모습. ⓒ은진슬

PWDF 강의에서 정전으로 인해 야외에서 강의를 진행하는 모습. ⓒ은진슬

오전 강의는 김종숙님께서 ‘나는 장애인이지만, ‘장애인이 아닙니다’라는 주제로 70년대에 태어나 유아기에 장애를 갖게 되면서 장애인으로서 살아온 그간의 삶에 대해 맛깔나고 재미있게 풀어 놓아 주셨습니다.

야외에 반원형으로 둘러 앉아, 프리젠테이션도 없이 진행된 강의였음에도, 어찌 보면 현재 캄보디아의 상황과 우리의 70년대 장애인으로서의 경험에 접점이 많아서였는지 프리젠테이션이 없었던 단점을 상쇄하고도 남을 정도의 집중과 공감을 보여주셨답니다.

오후 강의에서는 함성기님께서 현재 우리 나라에서 시행되고 있는 다양한 복지 정책과 참고할 만한 프로그램들을 서울시 사례들을 중심으로 훌륭하게 풀어 놓아 주셨습니다.

역시 장애 관련 실무를 담당하는 분들이어서인지 열심히 메모도 하고 질문도 많이 쏟아 놓아 주시며 진지하게 강의를 들어 주셨답니다. 정보를 전달하는 강의의 특성상, 정전으로 인해 프리젠테이션 기법을 사용할 수 없었던 것을 성기님께서는 매우 안타까워 하셨지만, 프리젠테이션이 없기에 청중들이 더 열심히 들어 주시고 메모도 해 주시며 강의에 집중해 주신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관찰자 입장에서 해 보았습니다.

특히나 셋째날 장애인재단 강의에서 제게 인상에 남는 코멘트를 남겨주신 한 분이 계셨습니다.

그 분은 장애인 재단의 실질적인 운영 등을 맡아 보시는 사무국장 정도의 위치에 계신 분이었고 영어 또한 매우 유창하여 저와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캄보디아의 장애 관련 서비스 제공을 위한 인적자원과 물적 자원을 업그레이드 하고 싶은 열망이 매우 컸던 분으로 기억합니다.

이 분이 휠체어 스포츠 덴스 공연을 보고는 아래와 같이 말씀해 주셨습니다.

‘이것은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어떻게 서로 협력하며 조화롭게 살아갈 수 있는가를 매우 직관적으로 보여주는 멋진 퍼포먼스라고 생각합니다.’

어찌 보면 장애인을 많이 접해보신 프로에게 이런 코멘트를 들으니, 정말 우리가 의미 있는 일을 했구나 하는 보람과 감동에 마음이 조금 울컥해짐을 느꼈습니다.

사실, 저는 이 한 마디가 너무 소중해서 이 말이 공중으로 날아가 휘발되어 버리기라도 할까봐 멋진 댄스를 선보여 주셨던 강세웅님과 이미경님에게 얼른 달려가서 전해 드렸답니다. 물론, 두 분은 무척 기뻐하셨죠.

단원들이 함께 화이팅을 외치고 있는 모습. ⓒ은진슬

한편, 저희가 이러한 현지 활동들을 큰 어려움 없이 해낼 수 있었던 데에는 많은 사람들의 조력과 배려가 있었습니다.

우선, 주로 봉사의 수혜자로 여겨져 오던 저희 장애 당사자들이 봉사의 주체가 될 수 있다는 믿음과 철학을 세워 주시고, 저희 가능성을 믿고 이번 사업을 추진해 주신 최경숙 원장님을 포함한 장애인개발원 VODA 사업 담당 직원 여러분들께 깊은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또한, 각 장애 영역에 대한 깊은 공감과 이해와 연구를 바탕으로, 저희 단원들이 현지에서 겪을 수 있는 다양한 안전 문제에서부터 기후와 장애 특성에 따른 건강 문제, 심지어 호텔의 룸 컨디션까지도 꼼꼼히 챙겨 주시며 그 누구보다도 든든하고 멋진 모습으로 저희와 함께 해 주셨던 세이프티 넷 최영배 대표님께는 감사했다는 말만으로는 감사를 다 표현하지 못할 것 같습니다.

저 뿐만 아니라, 모든 장애 단원들 역시 한국보다 열악하고 변수가 많은 현지에서도 마음 든든하고 편안하게 활동할 수 있었던 것은, 최영배 대표님이 함께 해 주셨기 때문이었다는 사실에 전적으로 동의하시리라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비장애 단원으로 저희와 함께해 주셨던 이서현님과 이미경님, 조금은 유니크한 입지에서 저희와 개발원 직원들 사이의 가교 역할까지 톡톡히 해 주신 인턴 김승혁님께 진심을 가득 담아 감사한 마음 전합니다.

저희의 장애로 인해 손길이 미치지 못하는 많은 일들을 감당해 주셨지요. 여러분들이 계셨기에 저희 VODA가 무사히 의미 있는 활동을 멋지게 마무리할 수 있었습니다. 마치, 비장애인과 휠체어 장애인이 함께 하는 멋진 휠체어 스포츠 댄스처럼 말이죠.

강의 후 찍은 단체사진. ⓒ은진슬

흔히, 우리 사회에서 장애인은 봉사의 대상이자 수혜자로만 여겨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이번 VODA 해외봉사단은 증명했습니다. 장애인도 봉사의 주체가 될 수 있다는 것을. 같은 입장의 장애 당사자가 공감하며 전달하는 메시지의 힘이 얼마나 큰 것인지를.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어떻게 하면 조화롭게 협력하며 살아갈 수 있는지를.

저는 이번 VODA 봉사단원 활동을 통해 ‘해외 봉사 참여’라는 20대의 미완의 꿈을 이루었습니다.

또한, 강의는 제가 했지만, 오히려 많은 것을 배우며 겸손해질 수 있는 소중한 기회를 가질 수 있었음에 감사하고 또 감사할 뿐입니다. VODA 봉사단원 활동을 통해, 이제 제게는 또 하나의 꿈이 생겼습니다.

캄보디아에는 아직 시각장애인의 문자인 점자조차 없다는 사실을 이번 활동을 통해 알게 되었습니다. 다행히도 현재 연구/개발 중으로 내년에 공포를 앞두고 있다고는 하더군요.

프놈펜 왕립 대학교 앞에서. ⓒ은진슬

제 아이가 제 손길이 필요치 않을 만큼 성장하고, 은퇴를 하게 되면, 코이카의 시니어 봉사단원이 되어, 저개발 국가에서 점자를 가르치고 싶은 꿈이 생겼습니다. 그런데, 코이카 봉사단원이 되려면 신체검사를 통과해야 하더군요. 1급 시각장애인인 저는 과연 미래에 코이카 시니어 봉사단원이 되어 저의 또 하나의 꿈을 이룰 수 있을까요?

국내 최초의 장애인 해외봉사단 VODA의 이번 활동이, 장애인의 봉사자로서의 가능성과 역량에 대한 사회적 인식의 전환을 가져오는 계기가 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래 봅니다.

*이 글은 에이블뉴스 독자 은진슬님이 보내온 글입니다. 에이블뉴스는 언제나 애독자 여러분들의 기고를 환영합니다. 에이블뉴스 회원 가입을 하고, 편집국(02-792-7166)으로 전화연락을 주시면 직접 글을 등록할 수 있도록 기고 회원 등록을 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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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진슬 칼럼리스트 세상이 너무 궁금했던 나머지 7개월 만에 급하게 세상 밖으로 나오는 바람에 시각장애와 평생의 불편한(?) 친구 사이가 되었습니다. 언어로 연주하고, 음악으로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20년 정도 피아노와 뜨거운 사랑을 했지만 첫사랑은 대게 이루어지지 않듯 그 사랑을 이루지는 못했습니다. 그래서 다시 새로운 사랑을 찾아 헤매던 끝에 지금은 장애, 음악, 보조공학 등에 관련된 글을 쓰고 번역도 하고 있습니다. 유치원, 학교, 기업체 등에 찾아가 장애와 장애를 가진 사람들의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스토리텔러(storyteller) 역할도 하고 있지요. 가끔은 강의의 전달력을 높이기 위해 피아노 앞에 앉기도 한답니다. 다섯 살 아이의 엄마이기도 한 저는 우리 아이가 살아갈 세상에서는 장애와 다름이 좀 더 편안하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으로 더 열심히 글을 쓰고, 강의를 하며, 연주도 하고 있습니다. 눈이 나쁜 대신 세상을 보는 눈이 조금은 더 예민하고, 커피와 독서, 클래식 음악을 사랑하는 다섯살 아이 엄마가 들려 드리는 같은 듯 다르고, 다른 듯 같은 아이 키우는 이야기 한 번 들어 보시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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