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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abnews.kr/1NJH

구필화가 김영수씨가 걸어온 길

촉망받던 건축학도 치료법 없는 근육이영양증 진단

화가로 다양한 작품 활동…올해 제6회 개인전 개최

에이블뉴스, 기사작성일 : 2019-09-26 11:45:22
김영수 화백 ⓒ김영수 에이블포토로 보기 김영수 화백 ⓒ김영수
서막

김영수는 고려대학교 건축학과 재학 시절 검도 동아리 활동을 하였다. 검도는 냉철한 판단력과 재빠른 동작 그리고 대담한 정신력을 요구하면서도 예절을 지키는 아주 신사적인 경기여서 그는 대학 시절 소위 킹카로 통했다.

대학에 들어가서 몸이 약해졌는데 운동량이 부족한 탓인 것 같아 대학 2학년 때 검도를 시작하였다. 검도 승단 심사를 앞두고 합숙훈련을 했다.

그런데 감기에 걸린 것처럼 고열과 함께 편도선염을 심하게 앓았다. 얼마 후 기력은 돌아왔으나 빠진 근육은 회복되지 않았고, 차츰 다른 부위의 근육도 조금씩 마르기 시작했다.

하지만 마르는 이유를 알 수 없었다. 1977년 2월, 대학 졸업 후 종합검진을 받았다. 검사 결과 진행성 근육이영양증(근육병)이란 진단을 받았는데 의사가 말하기를 치료 방법이 없다는 사형선고나 다름없는 절망적인 처방을 내려주었다.

당시는 그 말이 믿기지 않았다. 어떻게 걷지 못하게 된다는 건지, 어떻게 모든 기능이 마비되어 생명을 위협하게 된다는 것인지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의사가 치료를 못 한다면 신앙으로 고쳐 보리라 생각하고 대학 1학년 때부터 봉사 활동을 하던 야학으로 거처를 옮겨 낮엔 기도 생활을 하고, 밤엔 야학 학생들을 가르치며 지냈다. 7개월 정도 지나자 그의 몸은 더욱 수척해졌다.

1년 전에 할 수 있었던 움직임을 1년 후에는 못하게 되는 식으로 몸에 이상이 생겼다.

그는 앞으로의 삶에 막연한 불안감은 있었지만 절망하거나 큰 슬픔에 빠지지는 않았다. 그는 병마와의 싸움이 장기전이 될 것 같아 취직부터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전공을 살려 건축설계회사에 입사했다.

그러나 직장생활은 결코 만만한 것이 아니었다. 업무에 대한 스트레스도 많았고, 밤을 새우는 야근이 자주 있어서 과로를 하게 되었는데 조금만 피곤해도 후유증이 여러 날 갔다. 실력을 인정받고 있었지만 직장생활을 계속하는 것은 무리였다.

김영수 화백. ⓒ김영수 에이블포토로 보기 김영수 화백. ⓒ김영수
새로운 선택

그는 많은 생각 끝에 어려서부터 좋아하던 그림을 택하기로 했다. 직장에 사표를 내고 오전에는 그림을 배우고, 오후에는 남대문시장에 있는 누님의 옷 가게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용돈을 벌었다.

미래가 촉망되던 건축가의 암울한 현실이었다. 미국에 살고 있는 둘째 누나가 미국에 와서 치료를 받아 보라고 하여 미국행을 결심하였다. 왠지 미국에 가면 치료 방법이 있을 것 같아서 치료받고 나으면 곧장 뉴욕으로 가서 미술공부를 해야겠다고 마음먹고 1982년 11월 말 남동생과 함께 미국으로 떠났다.

미국에 있는 유명한 병원 이곳저곳을 다녀 보았는데 근육병이 한국보다 훨씬 많았다. 그러나 별다른 치료방법이 없기는 한국과 마찬가지였다. 그는 미국에서 3년 동안 이런저런 치료를 해 보다가 1985년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지만 상태는 더욱 악화되었다.

옆에서 부축하고 겨우 걸을 수 있을 정도였다. 1990년에 들어서자 걷다가 힘없이 픽 쓰러져 안경이 깨지는 일이 다반사였다. 남동생이 휠체어를 타는 것이 좋겠다고 했지만 그는 휠체어를 거부했다. 휠체어에 타면 다시는 일어설 수 없을 것이란 두려움이 있었다.

그런데 정말 두려운 것은 휠체어를 타면 그녀가 자신을 떠날 것 같다는 이별의 예감이었다. 불길한 예감은 빗겨 가지 않았다. 10년 동안 사귀던 여자친구가 그만 헤어지자고 했다.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막상 현실이 되니 허탈했다.

어느 날 밤, 불도 켜지 않고 캄캄한 방에 혼자 누워서 허공을 응시하고 있다가 리모컨으로 TV를 켰다.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은 아름다운 여성장애인이 입에 붓을 물고 그림을 그리는 모습이었다. 그 장면이 상처투성이로 멈춰 버린 심장을 다시 뛰게 하였다.

그는 자신도 한번 해 봐야겠다고 생각하고 연필을 입에 물고 주전자를 갖다 놓고 정물화를 그려 보았다. 힘들었지만 생각했던 것보다는 수월했다. 붓을 드는 것이 힘들어서 그림마저 못 그리게 될 처지였지만 그렇게 입에 붓을 물고 그림을 그리는 구필을 시작하였다.

그리하여 1993년 세계구족화가협회에 가입하여 경제적인 지원을 받으며 안정적으로 그림을 그릴 수 있었다.

대표작1. ⓒ김영수 에이블포토로 보기 대표작1. ⓒ김영수
다시 찾아온 행복

3남 3녀의 다섯째인 그는 어렸을 때는 많은 형제들 속에서 살았지만 막상 휠체어 생활을 하며 사람의 손길이 필요하게 되었을 때는 어머니와 단둘뿐이었다. 그의 주변에서 그를 돕는 사람들은 교인들이었다.

청년들이 집에 와서 성경공부를 하였는데 그 가운데 평생을 함께할 반려자를 만났다. 간호사인 그녀는 김영수 장애에 대해 누구보다 이해가 깊었다. 그래서 그들의 사랑에 장애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들은 1991년 9월 결혼식을 올렸다. 현명한 부인 덕분에 김영수는 길고 긴 어둠의 터널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그는 작품 활동에 더 매진할 수 있었다. 1997년 인사동의 한 갤러리에서 공개크로키를 한다는 소식을 듣고 호기심에 찾아갔다. 그곳에서 그는 화풍의 새로운 전환점을 맞이한다.

마치 수술실의 의사처럼 진지하고 빠른 손놀림으로 새로운 형체를 만들어 가는 작가의 모습을 보고 큰 감동을 받은 그는 누드크로키를 해 보자는 생각에 바로 문화센터에 다니기 시작하였는데 수강생 세 명으로 출발했지만 점차 줄어들더니 강의가 제대로 진행되지 않았다.

고민하던 그는 이참에 하나 만들자 싶어서 자신처럼 그림을 배우고 싶어하는 장애인들과 함께 국내 최초의 장애인 누드크로키 모임인 선사랑드로잉회를 만들게 되었다.

2000년 창립 당시 20여 명의 회원이 잠실 종합운동장 내의 서울장애인미술창작스튜디오에서 그림을 그리고 전시도 하며 모임을 가졌다. 선사랑드로잉회는 좋은 작가들이 모여 각자 개성 있는 작품 활동을 하며 화가로서 성장해 갔다.

대표작2. ⓒ김영수 에이블포토로 보기 대표작2. ⓒ김영수
화가로서

김영수는 1995년 첫 번째 전시회를 가졌다. 첫 전시회는 그림을 시작하며 그린 다양한 작품들을 선보였다. 그 후에도 거의 1년에 한 차례씩 개인전을 개최하였으나 2008년 5회 개인전을 하고 나서는 개인전을 열지 못하였다. 개인전 준비가 힘들었기 때문이다.

전시회 예산을 마련하기 위하여 공모 사업에 지원을 해야 했는데 사업계획서를 쓰고 정산을 하는 일도 혼자서 해야 했고, 공모 사업 경쟁이 점점 높아져서 포기하게 되었다.

무엇보다 전시회를 통해 작품이 소비가 되어야 하는데 우리나라 사람들은 장애인 작품이라고 하면 소장 가치가 적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작품 판매가 저조하여 개인전을 열고 나면 오히려 경제적으로 더 힘들었다.

그런 김영수가 제6회 개인전을 준비하고 있다. 10월 2일부터 8일까지 인사동 경인미술관에서 ‘내게 남은 작은 어제와 오늘’이라는 타이틀로 열리는데 김영수 화백의 작품세계를 한눈에 볼 수 있다.

그는 초창기에는 풍경화를 그리다가 추상화로 그리고 크로키를 시작한 후로는 크로키 작품이 많았고, 요즘은 구상풍의 작품을 그리고 있다. 작품 세계가 변화하며 성숙해져 가고 있는 것이다.

화가로서 성장해 가면서 딸 유진이 대학교 4학년 졸업반이 되었다. 아들에게 찾아온 근육병 때문에 마음고생을 가장 많이 하신 어머니는 99세가 되셨지만 여전히 아들을 보면 눈물을 훔치신다.

결혼 30주년을 앞두고 있는 부인은 그동안 큰 병치레를 했지만 남편 돌보느라고 온몸의 관절이 정상이 아니다. 하지만 근육병을 진단해 준 의사가 생명이 길지 않을 것이라는 진단과 달리 김영수는 개인전을 준비할 정도로 의욕적인 창작 활동을 하며 건재함을 과시하고 있다.

그는 이번 개인전에 산동네만의 미학을 화폭에 담은 ‘도시 이야기’ 시리즈를 선보일 예정이라고 하여 그의 개인전에 기대를 갖게 한다.

대표작3. ⓒ김영수 에이블포토로 보기 대표작3. ⓒ김영수
# 개인전

1995 제1회 나무화랑(서울), 갤러리 그림시(수원) 1999 제2회 경인미술관(서울) 2004 제3회 인사갤러리(서울) 2006 제4회 정글북아트갤러리(일산) 2008 제5회 소울음갤러리(안양), 잠실창작공간갤러리(서울)

# 단체전

구족화가 정기전 선사랑드로잉회 정기전 일어서는 사람들 정기전 국제누드드로잉전 한국크로키회 정기전 새로운 바람 정기전 제2회 광주비엔날레-여백의 한자리전 우수 드로잉작가 초대전 한국드로잉50년 초대전 우수 드로잉작가 초대전(오사카) 세계구족화가협회전(오스트리아 빈, 리스본, 포르투갈) 한·중·일 장애작가 초대전(후쿠오카, 일본) Overcome Artists(L.A.한국문화원갤러리, 미국) 한중교류전 등 국내외전 200여 회

# 현재

세계구족화가협회 회원 종로장애인복지관미술교육 강사 경기도장애인기능경기대회 심사위원

# 수상
2015 대한민국장애인미술대전 대상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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