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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성이 낳은 휠체어 탄 소리꾼 허정

“세계인에게 우리 소리를 들려주고 싶다”

한국장애인국악협회 창립…공연 활동 왕성

에이블뉴스, 기사작성일 : 2019-07-30 13:21:32
국악인 허정. ⓒ허정 에이블포토로 보기 국악인 허정. ⓒ허정
사고로 뒤바뀐 인생

“세상에 평창에 산사태가 났네.”

TV뉴스에서는 연일 비 소식과 수해 소식을 전하고 있었다. 산사태 소식을 듣고 중얼거렸다. 여름이 지나고 겨울이 되었을 정도로 한동안의 시간이 흐른 후 ‘나 오늘 좀 늦어. 평창 파견 근무 마무리지어야 하거든’이라며 집을 나선 허정은 집에 다시 들어올 때는 휠체어를 타야 했다.

횡성산림조합 토목반장으로 근무하던 허정이 강원도 평창 수해로 발생한 산사태 복구작업에 파견 나가서 며칠 동안 작업을 진행하던 2006년 12월 15일이 마지막 날이었다.

복구를 잘 마치고 정리를 하고 있었는데 잔해물을 든 굴삭기가 낙하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반장이다 보니 앞장서 있었기에 그 무거운 바위 덩어리가 가득한 굴삭기에 가속도가 붙어 그를 덮쳤다. 그 사고로 흉추 10번 손상 하반신마비 장애를 갖게 되었다. 그때 그의 나이 44세, 초등학교 3학년 아들과 유치원에 다니는 딸을 둔 가장에게는 너무나도 가혹한 형벌이었다.

당시 그는 횡성산림조합에 근무하면서 사방댐 건설, 간벌(산림의 수목을 솎아내는), 토목 일을 하며 능력을 인정받고 있었고 횡성군 공근면 학담2리에서 3대가 같이 모여 살며 화목한 가정 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한순간의 사고로 모든 것이 뒤죽박죽 되고 말았다. 병상에 누워 암울한 미래를 걱정 해야 하는 처지가 되었다.

자신에게 닥친 불행이 믿기지 않고 억울해서 혼자 있을 때는 어린 아이처럼 눈물을 쏟았다.

중도에 장애를 갖게 되면 처음에는 장애인이 되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거부와 분노를 거쳐 현실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데 허정은 그 기간이 3년이 걸렸다.

스스로 무너지면 안 된다고 다짐하였고, 부인과 어린 두 자녀가 그를 잡아 주었다. 하루 종일 병상에 있으면 오만 가지 생각이 다 들었다. 잡념은 재활치료에도 도움이 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어 무언가 집중할 일을 찾다가 막연히 한자를 쓰기 시작했다.

중고등학교 한자 참고서, 천자문을 보며 무작정 쓰고 또 썼다. 그러다 무슨 일이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그는 휠체어를 타고 세상 밖으로 나왔다.

판소리를 만나다

세상 밖으로 나가 사람들과 어울려 살고 싶다는 생각에 외출을 하려고 했지만 딱히 갈 곳이 없었다. 장애인이 되면 장애인복지관을 먼저 떠올린다. 그래서 허정도 장애인복지관에서 민요를 배웠다. 하반신마비가 되면 폐활량이 줄어 노래 부르기를 권하기 때문이었다.

그러다 민요보다는 판소리가 더 도움이 될 것 같아서 횡성문화원에서 운영하는 판소리 프로그램에 신청서를 냈다. 판소리를 좋아하지도 않았고 판소리를 흉내내 본 적도 없었지만 왠지 그렇게 하고 싶었다.

여기서 스승 박양순 선생을 만났다. 그때가 2010년이었다. 박양순 선생은 국창 조상현 선생 판소리 이수자이자 사단법인 한국전통판소리진흥회 이사장이며 한국판소 리보존회 강원도지부장으로 강원도 최고 명창이었다. 판소리 불모지나 다름없던 강원도에 판소리 붐을 일으킨 장본인이다.

하지만 허정은 음치였다. 음치인 그가 판소리를 배운다고 하니 처음엔 주변에서 ‘취미 삼아 조금 하다 말겠지.’ 하고 대수롭지 않게 보았다. 그러나 그는 누구보다도 열정적으로 연습에 몰두했다.

연습할 공간이 없어서 사람들이 없는 산과 강을 찾아다녀야 했다. 횡성뿐 아니라 인근 산과 강은 안 가 본 곳이 없을 정도로 열심히 했다. 산에 가서 연습하다가 산길에 자동차가 빠지기도 하고, 강에 가서 연습하다가 모래사장에 자동차가 빠지기도 했다. 그때마다 119의 도움을 받아야 했다. 그런 피나는 연습 덕분에 판소리의 맛을 조금씩 알아 갔다.

어릴 때부터 신동 소리를 들어가며 천부적인 재능을 뽐내는 사람도 판소리로 성공하기가 힘든데 허정처럼 음악에 대해 전혀 문외한인 사람이 전문적인 판소리를 배운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하반신이 마비된 그는 배꼽 아래로는 신경이 느껴지지 않아서 판소리 교육의 기본인 단전호흡을 할 수 없다. 폐활량이 적어서 소리를 내는 데도 제약이 있지만 혹독한 연습으로 소리를 만들어 가고 있다.

욕심껏 소리를 내지르며 연습을 하다가 사고 후유증으로 약해진 고막까지 터져 버렸다. 인공고막을 해 넣었는데 최근 그것마저 터지고, 나머지 한쪽 고막도 약해져서 스승의 소리를 듣고 배우는 일이 남보다 몇 배는 더 힘들었다. 그래도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연습을 한다. 매주 화, 목요일에는 횡성문화원에서 다른 날은 스승의 강의가 있는 홍천, 춘천을 따라다니며 배우고, 개인 사사까지 받고 있으니 소리를 배우지 않는 날이 없을 정도로 그의 일상은 오로지 판소리로 채워지고 있다.

그는 판소리교육지도자 1급 자격증도 땄다. 어느새 초보자를 가르칠 만한 실력을 쌓았다. 자기처럼 힘든 시기를 판소리를 통해 이겨 내도록 하고 싶고, 판소리를 더 널리 전파하고 싶은 마음뿐이다.

소리꾼이 되다

판소리는 우리나라 고유의 음악이다. 한 사람의 소리꾼이 고수의 북장단에 맞추어 대여섯 시간의 긴 이야기를 노래로 들려주는데 조선 중기까지 판소리 열두 마당이 전해져 왔으나 조선 후기에 하나씩 사라져 조선말기에 활동하던 명창을 마지막으로 <춘향가>, <심청가>, <흥보 가>, <수긍가>, <적벽가> 다섯마당만 남았다.

그가 배우고 있는 것은 <춘향가>, <심 청가>, <흥보가>인데 이중 <춘향가>와 <심청가>는 완창하는데 5시간 이상이 걸리고 <흥보가>는 그보다 훨씬 짧은 2시간 정도 걸린다.

일반 공연을 할 때는 판소리의 한 대목을 하게 된다. 그가 판소리를 배운 지 9년. 아직 완창을 하려면 멀었지만 부지런히 배워서 횡성문화예술 회관에서 <흥보가> 완창 발표회를 갖는 것이 꿈이다. 그래서 횡성이 자랑스러워하는 소리꾼이 되는 것이 목표이다.

그는 2014년 도민요 국악경창대회에서 신인부 장려상을 받았고, 2015년 국악경창대회 판소리 부문에서 신인부 대상을 받았다. 이것으로 그의 실력은 인정을 받은 것이다.

한국장애인국악협회 창립

지방에서 공연을 할 때는 몇 시간씩 운전을 해서 가는데 무대에 선다는 기쁨에 피곤한 줄도 모른다. 공연이 5월이나 10월 한때여서 늘 경제적인 어려움 속에 있지만 자기가 하고 싶은 판소리를 하며 살 수 있어 행복하다. 하지만 공연을 하고 싶어도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문전박대를 당한 경우도 수없이 많다.

연습장소를 구하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다가 비어 있는 공간이라면 어디든 찾아가서 부탁을 하거나 사람을 못 만나 허락 없이 연습을 하다가 욕을 들으며 쫓겨나서 상처를 받은 적도 셀 수 없이 많다. 그런 어려움을 겪으면서 그것이 자기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주위를 둘러보니 재주도 있고 열정도 있지만 무대에 설 기회가 없어서 재능을 썩히고 있는 장애국악인들이 많았다. 그래서 2017년 5월 판소리, 남도민요, 경기민요, 한국무용, 대금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을 하고 있거나 관심이 있는 장애인들이 모여서 함께 활동하는 한국장애인국악협회를 설립하였다.

한국장애인국악협회는 지난해 11월 횡성문화예술회관에서 제1회 전국장애인국악공연이 판소리, 북병창, 남도민요, 경기민요, 판소리, 한국무용, 창극 등 11개 팀이나 개인이 출연 하여 멋진 공연을 펼쳐 관객들의 갈채를 받았다.

자신의 인생을 바뀌게 한 평창에서 개최된 2018평창동계패럴림픽 개막식 무대에 서고 싶었던 꿈은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2018평창동계패럴림픽 G-100일로 개최된 한중일장애인 예술축제 강릉공연에 참여할 수 있었던 것은 큰 보람이었다.

앞으로 소리꾼 허정으로 뿐만이 아니라 한국장애인국악협회 회장으로 장애인국악을 발전시켜서 장애를 딛고 꿈을 이루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고, 세계인에게 우리 소리를 들려주고 싶다며 우리 소리를 알리는 일에 봉사하고 싶은 소망을 넌지시 밝혔다.

사고로 휠체어를 타게 된 후 살기 위해 판소리에 빠져 있는 동안 아이들이 훌쩍 커서 남매가 모두 대학생이 되었다. 12년 세월 동안 가장 고생을 한 사람은 아내라며 부인에 대한 미안함과 고마움을 전했다.

허 정

# 수상

2014 진도 남도민요 국악경창대회 신인부 장려상 2015 아차산국악경창대회 판소리 부문 신인부 대상 2015 판소리 교육지도사 1급 자격증

# 경력

한국장애인국악협회 회장 (사)한국전통판소리진흥회 횡성지부장

# 공연

2010 판소리 입문(박양순 선생님으로부터 춘향가, 흥보가 및 창작 김유정 판소리 사사, 남도민요 사사) 2012 횡성 평생학습축제 공연, 횡성 한우축제 공연, 춘천문화예술회관 한국판소리보존회 강원지부 공연 2013 춘천 김유정 생가 판소리 공연 외 6회 2014 춘천문화예술회관 공연 외 6회 2015 원주시문화재단 상설공연 외 5회 2016 우리소리 좋을씨구 정기공연 외 23회 2017 춘천 도립 화목원 가을숲속 크리스마스 공연 외 15회 2018 횡성 썸머콘서트 공연 외 15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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