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 신동근 국회의원. ⓒ한국장애예술인협회

2017년 11월 23일 국회 본청 506호에서 있었던 국회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주최 ‘장애예술인 지원에 관한 법률안’에 대한 공청회에서 필자를 꼼짝 못하게 만든 사람은 신동근 의원이었다.

장애예술인지원금이 장애인연금과 중복되지 않느냐, 장애예술인이 전문성이 없는데 장애인예술쿼터제도를 만들면 부작용이 있지 않느냐며 장애인예술을 전문성이 부족하고 생활비 지원의 복지 서비스 차원으로 이해하는 의원들이 대다수였는데 신동근 의원은 이렇게 질문하였다.

질의 “300명을 지원 규모로 보는 이유는 무엇인가?”

답변 “장애인체육연금의 규모와 형평성을 맞추기 위해서이다.”

질의 “그건 말이 안 된다. 체육은 포인트 제도가 있다.”

답변 “장애예술인 가운데 300명은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신 의원은 문화부 담당자에게 장애예술인 지원을 위한 법률 제정을 위해 미리 해결해야 할 법률 개정을 지적하면서 법률 제정을 위한 근거가 너무나도 부족하다고 일침을 놓았다.

그때 필자는 너무나 부끄러웠다. 너무 준비 없이 의욕만 갖고 달려들었다는 반성을 하며 그때부터 근거를 만들기 시작하였다.

열심히 활동하고 있는 장애예술인 343명의 예술 활동 경력을 담은 <장애예술인수첩>을 제작하고 「장애인예술론」을 집필하였다. 두 가지 근거를 손에 쥐고 지난 4월 10일 신동근 의원을 찾아가 그날의 부끄러움으로 두 권의 자료집이 발간되었다고 고백하였다.

신동근 의원은 무뚝뚝함 속에서 연하게 번지는 미소로 칭찬해 주었다.

“책이 정말 예쁘네요. 잘 만드셨어요. 이 교과서는 천천히 읽어 보겠습니다.” 그의 말에 진정성이 넘치도록 가득하였다.

담화하는 신동근 국회의원(좌측)과 방귀희 발행인(우측). ⓒ한국장애예술인협회

Q: ‘청년고용촉진 특별법 개정안’을 준비하고 계신 것으로 아는데 그 내용이 일정비율 이상을 다자녀 가구의 자녀로 채용하도록 한다는 기사를 읽고 참 반가웠다. 청년실업 문제 해결에 어느 정도 효과가 있을 것으로 예상하는지.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특단의 대책으로 ‘다자녀지원 3법’을 준비하고 있다. 부모의 양육 부담을 줄여 아이 키우기 좋은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초·중등교육법’, ‘고등교육법’, ‘청 년고용촉진 특별법’을 패키지로 발의할 예정이다.

자녀가 3명 이상인 다자녀 가구를 대상으로 자녀의 성장·생애단계별(청소년·대학생·취업준비생) 맞춤형 지원 대책을 마련함으로써, 출산을 기피하는 사회적 분위기를 개선하고 출산율을 높이는 것이 목적이다.

Q: 저출산 문제가 정말 심각한데 그 원인이 뭐라고 생각하는가.

출산을 하려면 결혼을 해야 하는데 요즘 결혼율이 너무 떨어져서 걱정이다. 우리 아이들도 결혼할 생각을 하지 않는다. 우리 사회가 너무 경쟁적인 양상으로 치닫고 있어서 낭만이 없어 지다 보니 청춘들이 사랑하고 결혼하는데 관심을 두지 않는 것 같다.

Q: 국회문화관광위원회 더불어민주당 간사를 맡으시면서 문화와 체육, 관광은 한반도 평화를 향한 신뢰 형성의 삼두마차라고 하셨는데 그 이유는.

남북한 문제는 정치·군사적으로 접근하기 전에 문화예술로 교류하는 것이 가장 안전하고 효과적이라고 본다. 문화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강력한 힘이 있지 않은가.

Q: 문화계 블랙리스트 작동 정황을 가정 먼저 제기하셨는데.

가깝게 지내는 예술인들이 몇몇 있었는데 그분들과 사적인 자리에서 문화계가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다는 얘기를 듣곤 하였다. 그래서 국정감사를 앞두고 조사를 해 봤더니 미르재단이 5시간 만에 초고속으로 승인된 사실을 발견하여 문화체육관광부 국정감사에 그 사실을 최초로 밝히고, 문화계 블랙리스트가 작동하고 있는 정황을 제기하였다.

Q: 그 블랙리스트가 장애인예술계에도 작동을 한 것에 대해 어떤 의견을 갖고 계신지.

있어서도 안 되는 일이다. 정부는 지원을 하는 역할만 하는 것이지 간섭을 해서는 안 된다. 간섭을 하면 창작이 되겠는가. 더욱이 장애예술인들은 어려운 여건 속에서 창작을 하고 있는데 그런 정치적 올가미를 씌우는 것은 참담한 일이다.

Q: 예술인복지법에 원로예술인 복지처럼 장애예술인 복지를 삽입시키는 개정을 원하고 있는데 의원님께서 대표 발의를 해 주시면.

그렇지 않아도 장애인예술은 예술인복지법으로 풀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장애예술인 창작 지원이 법률에 포함이 된다 하여도 예산 문제 등으로 장애예술인들이 원하는 결과가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 현실이다. 하지만 관심을 갖고 검토하겠다.

Q: ‘청년고용촉진 특별법’처럼 장애예술인의 고용을 촉진할 수 있는 법률이 필요하다.

설명을 듣고 보니 장애예술인후원고용제도(장애인고용촉진법 개정)는 장애예술인의 고용 촉진을 위해 꼭 필요한 제도이다. 우선 면밀한 검토가 필요하다.

더불어민주당 신동근 국회의원. ⓒ한국장애예술인협회

Q: 국회의원이 된 것은

치과의원이 없던 인천 서구에 있는 검단신도시에 치과를 개업하고 환자를 치료하다 보니 이런저런 사연을 갖고 있는 분들을 많이 만날 수 있었다. 신도시이기는 하나 매립지여서 많이 낙후되어 있었다.

당시 서울대학교에서 박사과정 공부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전문의로서의 역할에 충실하려고 했었지만 내 가슴속에서 또다시 바로잡아야 한다는 투쟁의식이 솟구쳤다. 그래서 2002년 인천 강화을 보궐선거에 출마하면서 정치에 뛰어들었다. 하지만 선거는 노력만으로 되지 않는 생물이라서 4번 고배를 마신 후 다섯 번째 국회에 들어왔다.

Q: 개인적인 이야기도 궁금하다.

집안 형편이 몹시 어려워서 대학에 갈 꿈도 꾸지 못했다. 그래서 전북기계공업고등학교에 진학했다. 국립학교여서 학비도 없고 졸업을 하면 방위산업체에서 군복무를 하며 바로 돈을 벌 수 있었다.

어렸을 때부터 쇠붙이를 보면 망치로 두들겨서 냄비도 만들고 자질구레한 물건들을 만들어서 손재주가 있다는 소리를 들었었다. 그래서 기계공고를 택한 건데 막상 졸업 후 취업을 해보니 산업 현장은 내가 생각했던 것과는 너무나 달랐다.

그래서 대학을 가기로 결심하고 입시 학원에 등록하였다. 그 당시는 무모한 도전이었다. 한 달치 학원비 외에는 없었고, 그 비싼 대학등록금을 마련할 길도 없었지만 결심한 이상 포기란 없었다.

3수 아닌 3수를 하고 1981년도에 경희대학교 치과대학에 합격하였다. 6년 동안 학비와 생활 비를 받는 장학생으로 선발되었지만 대학에 들어가서는 학생운동에 열중하였다.

빨리 졸업하여 치과의사로 돈을 버는 길을 눈앞에 두고 민주화운동을 하며 제적을 당하고 감옥 생활을 하느라고 졸업하는 데 10년이 걸렸지만 후회하지 않는다. 정의를 위해 투쟁하는 것은 당연히 해야 할 의무이다.

Q: 21대 국회 도전은.

20대 국회에서 참 많은 것을 경험하였다. 대통령 탄핵과 파면 그로 인해 앞당겨진 대통령 선거로 야당이 여당이 되었다. 야당 시절에는 문제점을 지적하며 공격하는 역할이었는데 여당이 되니 책임감이 더 무거워진다.

재선 같은 초선이라는 칭찬을 받았지만 20대 국회의 다양한 경험이 21대 국회에서는 제대로 진가를 발휘할 수 있을 것 같아 도전을 준비 중이다. 지역구인 인천 서구는 신도시여서 할 일이 많지만 잘 꾸미면 가장 멋진 지역이 될 수 있다. 가장 당면한 문제는 매립지가 있어서 환경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서구 시민을 위해 시민 밀착형 정책을 구상하고 있다.

Q: 문화예술 발전을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문화예술 발전을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문화소비이다. 그런데 문화소비도 교육이 필요하다. 고기도 먹어 본 사람이 고기맛을 알듯이 연극, 뮤지컬, 전시회 등을 관람해 본 경험이 없이 청소년기를 보내면 성인이 되어 경제적 여유가 생겨도 문화를 소비할 줄 모른다.

내가 바로 그렇다. 장애인문화예술도 마찬가지이다. 사람들이 장애인예술을 접할 기회가 없어서 장애인예술을 모르고 있기 때문에 장애인예술 소비가 안 되고 있는 것이다. 문화소비에 장애인예술이 포함되어 모든 문화예술이 균형 있게 발전되어야 한다.

신동근 의원의 경력을 살펴보면 참 독특하다. 경남 하동에서 장남으로 태어났지만 청년기는 전북 전주에서 보냈다. 인천에서 치과의사로 일하며 건강사회를 위한 치과의사회 회장을 맡으며 시민사회운동을 하다가 2002년 정치를 시작하였고, 2010년 인천시 정무부시장으로 임명되어 행정 능력을 쌓았다. 기계공고를 졸업하고 3수 끝에 의과대학에 입학하여 학생운동으로 제명, 투옥으로 졸업하 기까지 10년, 국회의원 4번 낙방… 그의 인생에서 실패는 항상 따라다녔지만 실패 뒤에는 반드시 성공이 있었다. 이런 굴곡진 삶의 경험에서 ‘평범한 것이 지속되면 비범함이 된다.’는 인생 철학을 깨달았기에 우직하게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 믿음직스러운 지도자가 되었다.<글 방귀희/사진 이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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