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2일 KBS 2TV 새 수·목 드라마 '단, 하나의 사랑'(극본 최윤교 연출 이정섭 유영은)이 첫 방송되었다. '단, 하나의 사랑'은 사랑을 믿지 않는 발레리나와 큐피드를 자처한 사고뭉치 천사의 판타스틱 천상로맨스를 그린다고 한다.

그런데 제목에서 말하는 단 하나의 단은 하나 또는 다만 등의 단이 아닌 것 같다. ‘단, 하나의 사랑’은 발레리나 이연서(신혜선 분)과 천사 김단(김명수 분)의 이야기다.

발레리나들이 무대에서 백조의 호수 발레 공연을 펼친다. 프리마돈나는 이연서다. 이연서가 백조의 호수 공연을 마치고 관중에게 마지막 인사를 하는데 조명이 터졌다. 깨어진 유리 조각이 이연서의 눈에 박혔다.

의자에 걸려 넘어진 이연서의 갑질. ⓒKBS

3년 전 눈을 다친 이연서의 꿈이었다. 이연서는 일어나 욕실로 향하다 의자에 걸려 넘어졌다. 이연서는 재벌의 상속녀였다. 이연서는 비명을 지르고 집안사람들을 다 불러놓고 눈을 가리고 의자에 걸려 넘어지게 했다.

이연서가 그나마 믿고 의지하던 조 비서 아저씨(장현성 분)가 달려와 이게 무슨 짓이냐고 나무랐다.

이연서 : “아무도 본 사람이 없다잖아, 욕실 옆에 딱 걸려 넘어지기 좋게 놓인 발판, 앞이 하나도 안 보이는 사람이 걸려서 넘어지면 머리가 깨져 죽을 수도 있어.”

그러나 아무도 나서는 사람은 없었다.

이연서 : “좋아 전부 해고!”

그러자 한 사람이 나섰다.

라벤더 : “제가 어제 계절 옷 정리하느라 밟고 올라섰다가 그만…….”

이연서 : “그딴 거 하나도 안 궁금해, 그러면 라벤더 너만 해고.”

그때 집사 정유미(우희진 분)가 우편물을 가져왔다. 우편물은 전부 5개였다. 정유미가 우편물을 훑어보다가 마지막 우편물에 멈췄다. 조 비서가 보더니 “별거 아니야 광고야 광고.” 그러자 이연서가 우편물을 뺏어서 열어보았다.

점자 초대장. ⓒKBS

이연서 : “우리나라 좋아졌네, 광고를 다 점자로 제작하고…….”

이연서는 우편물을 읽었다. 판타지아 문화재단 20주년 기념 파티 초대장이었다.

그런데 판타지아 문화재단 같은 곳에서 시각장애인을 위해서 점자 초대장을 발송했다는 것도 대단하지만, 뭔가 이상하다. 우편물이라면 당연히 우표가 붙어 있어야 한다. 현재 우푯값은 지난 5월 1일부터 330원에서 50원이 인상되어 380원이다. (규격봉서 25g까지)

우표도 없고, 판타지아 문화재단에서 보냈다면 대량 우편물일 테니 **우체국 요금별납일 수도 있겠지만 그런 것도 없다. 그리고 작년부터 우편번호 아래 집배코드를 쓰게 되어 있다. 판타지아 문화재단 같은 곳에서 집배코드가 없다는 것도 이상하다.

점자 초대장이 든 봉투. ⓒKBS

그리고 또 하나, 판타지아 문화재단에서 시각장애인 이연서에게 점자로 초대장을 보냈다. 점자 우편물은 무료이고 봉투에 ‘점자 재중’이라는 표시를 해야 된다.

우리나라에서 「우편법」이 처음 제정된 것은 1960년 2월 1일이었다. 현재 「우편법」은 과학기술정보통신부(우정사업본부 우편정책과)에서 담당하지만, 당시 체신청에서 제정된 것은 「우편규칙」이었다. 그리고 10년이 지난 1970년 1월 1일 「우편규칙」이 개정되면서 점자 우편물은 ‘무료우편’이 되었다.

「우편규칙」 [시행 1969. 12. 27.] [대통령령 제4500호, 1970. 1. 1. 전부개정]

“제26조 (무료우편) 우편·우편저금·우편환·전기통신·국고금수불 또는 수입인지의 판매등에 관한 사무상의 우편물과 천재·지변이 발생한 지역의 이재민의 구호에 관하여 필요한 우편물 및 맹인우편규칙용 점자의 우편물은 대통령령의 정하는 바에 의하여 무료로 할 수 있다.<개정 1970·1·1>”

당시 개정 사유를 보면, “신체적인 결함으로 인하여 낙후된 사회생활을 영위하고 있는 맹인들의 생활향상에 기여하기 위하여 맹인용 점자우편물을 무료로 취급할 수 있게 하려는 것임.”이라고 되어 있다.

공식적인 개정 사유는 그렇다 치고, 정부에서 그냥 해주었을 리가 없을 것 같아서 개정 사유를 알아보다가 서인환 씨에게 문의를 했다. 다음은 서인환 씨가 말해 준 점자 우편물이 무료가 된 개정 사유다.

송암 박두성 선생이 한글점자를 만든 것은 일제강점기였고, 해방 이후 점자가 조금씩 보급되었으나 점자 용지가 없어서 대부분이 달력에다 쓰기도 했다. 점자 용지, 흰지팡이, 시각장애인을 위한 녹음테이프 등은 전부 우편을 이용해서 주고받았다. 이는 일반 우편물이라기보다는 교육용이라고 봐야 하는데 우편료가 너무 많이 지급되므로 시각장애인이 여러 루트를 통해서 관계기관에 건의를 해서 무료가 되었는데, 이미 미국 등 선진국에서는 점자 우편물은 무료로 실시되고 있었다고 한다.

우편규칙에서 점자 우편물 무료 제정. ⓒ법제처

판타지아 문화재단에서 이연서에게 점자 우편물을 보내면서 무료 우편물인 ‘점자 재중’도 없고, 우표도 안 붙이고, 요금별납도 없다면 누군가 사람이 직접 갖다 놓았다는 것일까?

이연서는 산책을 하겠다며 문을 나서는데 조 비서에게 전화가 왔다. 장기이식센터나 병원인 것 같다. 이연서가 조 비서의 전화를 낚아챘다.

이연서 : “나한테 말해요. 각막 기증받을 사람은 나니까, 이번엔 왜 안 되는데요? 또 마지막에 보호자가 안 된대요? 아니면 또 감염이 발견됐어요? 이번엔 또 무슨 실수에 무슨 착오인데요? 됐고, 더 이상 전화하지 마세요. 대기명단에서 뺄 테니까.”

이연서의 전화 내용을 보면 그동안 여러 차례 이연서에게 각막이식수술의 기회가 왔으나 그때마다 뭔가 이유를 붙여서 각막이식수술을 못 한 모양이다. 각막이식수술의 경우에는 여러 원인을 다 거친 후에 마지막으로 연락을 해야 할 텐데, 아마도 누군가가 중간에서 농간을 부린 모양이다.

이연서의 반려견. ⓒKBS

이연서는 개를 불렀다. 어디선가 개 한 마리가 달려왔다. 이연서가 실명된 지 3년이 되었고 점자도 잘 아는데, 왜 안내견을 이용하지 않고 반려견을 키우는 것일까.

이상하다 싶어서 ‘단, 하나의 사랑’을 인터넷으로 검색을 해 보았더니 어떤 곳에서는 안내견이라 하고 또 어떤 곳에서는 반려견이라고 되어 있다. 필자는 몇 번이나 그 부분을 돌려 보았는데 이연서의 개에게 안내견이라는 표시는 어디에도 없었다.

시각장애인의 보행을 안전하게 안내하는 안내견은 하네스라는 가죽장구를 착용해야 하고, 장애인보조견 표지를 하고, 안내견인식 목줄을 하고, 안내견 조끼를 입어야 한다.

안내견은 시각장애인의 안전한 보행을 돕기 위해 훈련된 개인데, 20세 이상의 시각장애인으로서 안내견 학교에서 4주의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으면 누구나 무상으로 안내견을 분양받을 수 있다.

누구라도 길에서 안내견을 만날 경우 안내견을 쓰다듬거나, 먹을 것을 주거나, 메리 쫑 등 어떤 이름으로라도 불러서는 안 된다. 안내견은 주인(시각장애인)에게 길들어져 있기 때문이다.

안내견. ⓒ삼성화재안내견학교

아무든 이연서는 개를 데리고 공원으로 산책을 나갔다. 천사 김단(김명수 분)은 공원 벤치에 앉아서 마지막 임무를 기다리던 중 이연서가 나타났다. 두 명의 불량배가 킥보드를 타고 오다가 이연서와 부딪혀 다 같이 넘어졌다.

이연서 : “죄송합니다. 괜찮아요? 안 다쳤어요?”

불량배 : “뭐야? 장님이야? 장님이면 집에 얌전히 처박혀 있어야지, 왜 바락바락 기어 나와서 피곤하게 민폐를 줘? 정상인들에게 피해를 주냐고?”

이연서 : “죄송합니다.”

불량배 : “예전에도 네가 여기서 뛰는 거 몇 번 봤어, 야, 우리랑 같이 놀자.”

김단은 소스라쳐 놀라서 그 모습을 지켜봤다.

불량배 :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는데 우리 같이 마시자.”

불량배는 주머니에서 술병을 꺼내 흔들었다. 이연서도 흰지팡이를 꺼내서 폈다. 흰지팡이를 사용하지 않을 때는 4단 또는 5단으로 접혀있다. 이연서는 흰지팡이를 펴서 불량배를 향해 겨누었다.

불량배 : “뭐야? 그거로 펜싱이라도 하게? 장님으로 살아서 뭐해? 어차피 의미도 없는 인생인데!”

이연서 : “넌 175쯤, 넌 더 작구나. 내 몸에 손끝 하나 댔다간 너희 안전은 책임 못 진다!”

청년 : “하! 탄력이 장난 아닌데…….”

불량배에게 지팡이를 겨누는 이연서. ⓒKBS

이연서는 순식간에 흰지팡이로 불량배를 내려치며 돌려차기로 때려눕혔다. 불량배는 이연서를 우습게보았으나 이연서는 두 사람을 꼼짝 못하게 때려눕히고 흰지팡이로 겨누었다.

이연서 : “경고했다. 조심해! 사고 한순간이야, 나라고 내 눈이 이렇게 될 줄 상상이나 했겠니? 장님 아니고 시각장애인, 따라 해 봐.”

불량배들은 꼼짝 못하고 마지못해 ‘시각장애인’을 따라 했다.

이연서 : “장님은 선천적이거나 후천적인 원인으로 시각에 이상이 생겨 앞을 보지 못하는 사람을 낮잡아 부르는 말이란다. 무슨 말인지 이해는 가니? 이 구르미만도 못한 자식들아.”

옆에서 이를 지켜보던 김단도 이연서의 날쌘 동작에 혀를 내둘렸다.

이연서는 장님이 시각장애인을 낮잡아 부르는 말이라고 했다. 국어사전에도 그렇게 나와 있다.

시각장애인을 낮잡아 이르는 말은 장님뿐 아니라 소경이나 봉사도 있다. 그런데 이런 말이 조선시대까지만 해도 높임말이었다. 소경(少卿)은 고려시대 종4품 관직명이고, 봉사(奉事)는 조선시대 종8품 관직명이다. 그리고 시각장애인을 높여 부르는 말이 장님이다. 장(杖)님은 지팡이를 짚은 님이라는 말이다.

말이란 생성 소멸 발전한다. 심청전이 나올 때만 해도 심청이 아버지가 심봉사였는데 언제부터인가 장님·소경·봉사는 비하용어가 되어 버렸다. 뜻이 아무리 좋아도 사회에서 비하나 모욕의 의미로 사용된다면 어쩔 수가 없을 것이다. 식모(食母)나 차장(次長)이 비하용어가 되었듯이.

그런데 맹인(盲人)은 비하용어라기 보다는 시각장애인의 다른 말이라고 보아야 할 것 같다. 현재(2018년) 전국에 있는 시각장애인학교는 총 13개다. 1999년 「장애인복지법」이 개정되면서 시각장애인이라는 용어가 법정용어가 되자 그동안 맹학교라고 불리던 시각장애인학교가 교명을 바꾸기 시작했다. 그러자 몇몇 학교는 동창회에서 반대를 하는 바람에 예전 명칭을 그대로 사용한다고 한다.

대전맹학교 부산맹학교 서울맹학교 전북맹아학교 청주맹학교 한빛맹학교 강원명진학교 광주세광학교 대구광명학교 은광학교 인천혜광학교 제주영지학교 충주성모학교 등 13개교.

이연서와 김단의 만남. ⓒKBS

이연서는 불량배들이 사라지자 다리 위로 나갔다. 천사 김단도 흥미를 느껴 이연서를 따라갔다.

김단 : “너 여기서도 한 번 죽은 적이 있구나.”

이연서는 다리에서 뛰어내리던 지난날을 떠올렸다.

이연서 : “발레리나는 두 번 죽는다고 했다. 첫 번째 죽음은 춤을 그만 둘 때, 두 번째 죽음은 숨이 멈출 때, 춤이 사라지자 온통 암흑이었다. 두 번째 죽음을 기다릴 필요 있을까. 차라리 한꺼번에 두 죽음을 맞이하게 되기를 나는 바랐다.”

이연서는 다리 난간에 기대어 숨을 멈췄다.

김단 : “어리석은 인간이여, 인간은 숨을 안 쉬면 죽어.”

김단은 이연서에게 숨을 불어 넣었다. 비가 내렸다. 이연서는 비를 피해 공원 벤치에 앉았다. 옆에는 천사 김단도 앉았다.

이연서 : “사람이 있는 벤치에 왜 말도 없이 앉아 있나요?”

김단은 놀랐다. 김단의 모습이나 목소리는 사람들에게는 보이지도 않고 들리지도 않기 때문이다.

이연서 : “뻔히 있는 거 다 아는데, 거 봐 대답도 안 하잖아, 아무것도 안 보인다고 아무것도 모르는 거 아니거든요. 내가 잃어버린 것은 시력 하나라서 후각 청각 촉각은 다 생생하고 앞이 보이지 않으니까 빌어먹을 육감은 더 시퍼렇게 살아 있거든요.”

김단 : “설마, 내 말이 들려! 들려요?”

이연서 : “내가 할 말이야, 내 귀는 멀쩡하다고. 넌 뭐야! 소매치기야 변태야! 노리는 게 뭐냐고?”

김단 : “이 의자의 주인은 그대도 아니고 나도 아니고 오직 천지를 창조한 신뿐이라 했다.”

이연서 : “변태도 소매치기도 아니고 또라이 사이비였어?”

김단 : “신성을 부정하는 자에게 화 있을지어다.”

이연서 : “하늘엔 부처든 알라든 예수든 아무도 안 산다고! 우리 아빠 하루만 더 살게 해달라고 천국가기 전에 딱 1초만 볼 수 있게 해달라고 11시간 동안 비행기 안에서 울면서 기도해도 안 들어 줬어. 눈 대신 팔 하나 다리 하나를 가져가라고 그러면 춤 출 수 있다고 기도해도 못 들은 척 했어 지금 당신이 미쳐있는 신이라는 작자가…….”

김단 : “비극을 맞이한 인간이 다 당신처럼 비뚤어지지는 않아, 그대처럼 다리에서 뛰어내리지도 않고.”

이연서 : “당신 누구야?”

그때 멀리서 집사 정유미(우희진 분)가 아가씨를 부르며 쫓아 왔다.

이연서 : “저놈 잡아! 저놈!”

정유미 : “아가씨, 누구요?”

이연서 : “내 옆에 있는 남자, 저놈!”

정유미 : “아무도 없는데요?”

정유미의 눈에 천사 김단은 보이지 않았다.

‘단, 하나의 사랑’에서 시각장애인 이연서가 공원에서 불량 청년 둘을 때려눕혀 제압하는 것이 현실적으로는 다소 불가능하다. 그런데도 드라마니까 이연서는 청년 둘을 제압하면서, 시각장애인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고쳐 주는 것은 비장애인들에게는 귀감이 될 수 있고, 또한 많은 사람들에게 카타르시스를 선사한 것 같아 작가나 연출가에게 감사하다.

그 밖에도 시력을 상실하니까 오히려 후각이나 청각 촉각이 더 발달한다는 것도 시각장애인에 대한 인식을 그런 대로 잘 짚어 준 것 같다. ‘단, 하나의 사랑’에서 시각장애인에 대한 이해는 비교적 잘 묘사한 것으로 보인다. 점자 초대장 부분만 조금 개선했더라면 완전 굿이다.

* 이복남 기자는 에이블뉴스 객원기자로 하사가장애인상담넷(www.gktkrk.net) 원장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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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웃이 행복하지 않는 한 나 또한 온전히 행복할 수 없으며 모두 함께 하는 마음이 없는 한 공동체의 건강한 발전은 기대하기 어렵다. 우리는 함께 살아가야 할 운명공동체이기 때문이다. 아름답고 건강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가진 자와 못 가진자,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평등하게 공유할 수 있는 열린사회를 건설해야 한다. 쓸모 없음을 쓸모 있음으로 가꾸어 함께 어우러져 나아갈 수 있도록 서로 사랑으로 용서하고 화합하여 사랑을 나눔으로 실천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이복남 원장은 부산장애인총연합회 사무총장을 역임하였으며 현재 하늘사랑가족상담실을 운영하고 있다. 하사가장애인상담넷www.gktkrk.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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