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가을 발달장애인 서번트 신드롬(savant syndrome)에 관한 자료를 찾을 일이 있어 관련 기관에 문의를 한 적이 있었다. 서번트 신드롬에 관한 이렇다 할 사례는 별로 없지만 대부분이 ‘굿 닥터’는 알고 있었다. 서버트 신드롬은 ‘굿 닥터’에 나오지 않느냐면서.

‘굿 닥터’는 KBS2에서 2013년 8월 5일부터 2013년 10월 8일까지 방영되었던 드라마인데 주인공 박시온(주원 분)이 서번트 신드롬이었다. 그래서 ‘굿 닥터’를 검색해 보니 놀랍게도 KBS2의 ‘굿 닥터’보다는 미국 ABC방송의 ‘굿 닥터(The Good Doctor)’가 더 많이 나왔다.

굿 닥터에서 김도한과 박시온. ⓒAXN

평소 우리나라 영화나 드라마가 미국 방송을 리메이크하는 경우가 있어서 설마 ‘굿 닥터’도 미국 드라마를 리메이크 한 것일까 싶어 의아했는데 그런 게 아니라 미국 ABC방송에서 우리 것을 리메이크 한 것이었다.

KBS2의 ‘굿 닥터’는 2013년 8월 5일부터 시작한 월·화 드라마로 20회로 끝이 났다. 그런데 미드 ‘굿 닥터’는 미국의 공중파 ABC방송에서 2017. 09. 05 ~ 2018. 03. 26. 시즌1을 방영했다고 한다. 그래서 찾다보니 에이블뉴스에도 ‘미국판 굿 닥터와 참여하는 미국 장애인 사회’라는 이유니 칼럼이 있었다.(에이블뉴스, 2018. 03. 19)

필자는 미드 ‘굿 닥터’를 제대로 알지 못했다. 사실 그 때는 하는 줄도 몰랐다. 그리고 또 몇 달이 지난 후 미국 ABC방송에서 2018년 9월부터 시즌2를 방영한다고 했다. AXN Korea에서 토요일 오후 9시부터 미국 ABC방송과 동시 방송을 한다는데 왠지 잘 봐 지지가 않았다.

그러다가 왜 이제 와서 이런 글을 쓰느냐 하면 지난 설 연휴동안 AXN Korea에서 KBS2의 ‘굿 닥터’를 연속으로 재방송을 해 주었기에 필자가 다시 한 번 ‘굿 닥터’를 보게 되었기 때문이다.

미드 굿 닥터에서 숀 머피. ⓒAXN

에이블뉴스 이유니 칼럼에 의하면 미국에서 가장 큰 자폐증 권익 옹호 단체가 오티즘 스픽(Autism Speaks)이란 곳인데, ‘굿 닥터’ 방송을 앞두고 오티즘 스픽에서 ‘굿 닥터’를 홍보하기 시작했고, ‘부모들의 열띤 지지와 참여, 피드백을 반영하기라도 한 듯이 결국 굿 닥터 7회에는 실제 자폐증을 가진 배우가 출연하였다.’는 것이다.

실제로 자폐증 배우가 출연한 회에서는 ‘굿 닥터’의 주인공 숀이 자신의 자폐증을 그 아이를 통해 새롭게 바라보는 내용으로 이곳 부모들 사이에서는 또다시 열렬한 호응을 얻은 에피소드로 손꼽혔다는 것이다. ‘자폐증을 가진 소년이 배우의 꿈을 꾸고 한 회를 이끌었다는 것만으로도 이미 합격 도장을 받은 셈’이라고 했다.

미드 ‘굿 닥터’에는 숀 머피 역에 프레디 하이모어가 출연하는데 오티즘 스픽의 연말 펀드레이징 행사에 프레디 하이모어가 직접 참여도 했다는 것이다.

이유니 칼럼은 ‘드라마가 자폐증을 홍보하는 것인지 우리 부모들이 드라마를 홍보하는 것인지 알 수 없지만, 이 멋진 윈윈 게임이 계속되기를 마음 한편으로 응원해본다.’고 끝을 맺었다.

미드 굿 닥터에서 숀 머피의 좌절. ⓒAXN

필자가 이유니 칼럼을 보면서 미국에서는 ‘굿 닥터’에 발달장애인 부모들이 이렇게 열성을 보이는데 왜 우리나라에서는 KBS2에서 ‘굿 닥터’를 방영할 때도 조용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그래서 얼마 전 AXN Korea에서 재방송한 KBS2의 ‘굿 닥터’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살펴보고자 한다.

박재범 극본, 기민수 연출의 KBS2의 ‘굿 닥터’는 메디칼 드라마다. 성원대학병원 최우석(천호진 분)원장은 박시온( 주원 분)을 소아외과 레지던트 1년차로 채용하려는데 이사진들의 반대가 심했고, 설득 끝에 6개월 한시로 허락을 받는다.

박시온은 천재적인 의사였으나 주변 사람들과 잘 소통하지 못했기에 담당 교수 김도한(주상욱 분)에게 야단을 맞기 일쑤였다. 박시온의 천재성을 인정한 김도한은 박시온에게 가상 수술 실험을 시켰는데 긴장한 박시온은 수술 도중 메스를 떨어뜨렸다.

“환자는 죽었다. 이러면 넌 메스를 든 서전(surgeon)이 아니라 칼을 든 살인자야.”

김도한이 박시온을 야단 칠 때마다 박시온을 감싸고 도는 차윤서(문채원 분)는 성원대학병원 펠로우(전문의) 2년차의 선배다. 나중에는 차윤서와 박시온이 연인사이가 되지만 다른 사람들은 차윤서가 박시온 같은 사람을 택했다고 수군거리고, 박시온도 자신 없어 하지만 둘은 이를 극복해 낸다.

어머니는 아버지의 주사와 폭행을 피해 박시온을 보육원에 맡겼고 보육원에서 자라면서 박시온은 아버지에 대한 아픈 기억을 지워버렸다. 박시온은 자폐성 장애 3급이었으나 열심히 공부한 덕분에 의사가 될 수 있었던 것이다.

차윤서와 박시온. ⓒAXN

한편 박시온이 나오는 병원 홍보영상을 보고 아버지 박춘성(정호근 분)이 의사 아들 덕 좀 보자며 찾아온다. 박시온은 어린 시절 어머니 오경주(윤유선 분)와 함께 아버지에게 얻어맞았다.

“어디서 이 따위가 태어났어! 덜 떨어진 자식! 덜 떨어진 자식! 뒈져! 뒈져! 네 엄마와 뒈져!”

박시온은 아버지를 보는 순간 완전히 넋이 나갔고 그 때의 공포감이 되살아나 부들부들 떨다가 혼절하고 말았다. 박시온은 어릴 때 얻어맞았던 아버지의 폭행에 강한 트라우마가 있었기에 병원으로 그를 찾아 온 아버지를 보고 혼절하자 김도한 교수가 이를 눈치 챘다.

“해리성 장애가 온 거야! 오랜 세월 의식적으로 기억을 잃어버렸다가 나타난 거라 충격이 클 거야. 겉으로는 멀쩡해 보이지만.”

차윤서가 두려움은 더 강한 것으로 극복할 수가 있다고 했다. 박시온은 어릴 때 그의 천재성을 인정해 주던 형이 있었는데 형은 이미 죽었고, 지금은 김도한 교수가 그 역할을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것이다.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것은 아버지지?”

“아니요 환자가 죽는 것입니다.”

“지금 아버지 때문에 제 기능을 발휘 못하고 있잖아! 시간이 약이니 그딴 소리 하지 마라, 그런 생각을 할 동안에도 환자는 죽어. 세상에서 제일 겁나는 게 아버지야?”

“아닙니다. 환자가 죽는 겁니다! 안 죽이려면 잘 진단하고 치료해야 합니다.”

“너는 나를 뛰어 넘어야 돼!”

박시온에게 아버지 보다 더 크고 훌륭한 사람은 김도한 교수였다.

아버지 박춘성은 후두암말기로 죽어가고 있었는데 박시온은 그를 버렸다고 미워했던 어머니도 용서하고, 아버지에게도 좋은 아버지로 기억되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아버지를 보고 졸도한 박시온. ⓒAXN

‘굿 닥터’에서 김도한은 좋은 의사가 뭔지 고민하는 사람이 좋은 의사라고 했다. 좋은 의사가 되려면 사람들의 마음을 헤아려봐야 한다. 남의 아픔을 헤아리려면 자기부터 아파봐야 한다고 했다.

박시온은 좋은 의사가 되었다. 박시온의 채용을 놓고 열린 마지막 위원회에서 박시온은 '모든 장애인에게 희망과 용기를 준 인물'로 뽑혔다.

‘굿 닥터’에서 박시온은 자폐증 때문에 의사시험합격이 취소되었었다. 성원대학병원에서 의사를 인정받아 국시원 원장이 직접 성원대학병원을 방문해서 박시온에게 의사자격증을 전했고 이에 박시온이 감사인사를 했다.

“저는 아직 다른 사람들과 조금 다릅니다. 그래서 다른 차이를 없애려고 많이많이 노력했습니다. 하지만 잘 되지 않았고 노력할수록 아프기만 했습니다. 그런데 많은 좋은 분들이 그 차이를 채워주셔서 감사합니다. 피하지 않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사랑해주셔서 너무너무 감사합니다.”

‘굿 닥터’는 그렇게 막을 내렸으나 2013년 당시에도 드라마는 엄청난 히트를 쳤다. 그러나 우리나라 발달장애인 단체와 장애인부모회 등에서는 별 다른 반응이 없었고, ‘청년의사’에서도 픽션에 불과하다고 해서 필자도 망설이다가 시기를 놓치고 말았던 것이다.

청년의사에 실린 ‘굿 닥터’. ⓒ청년의사

청년의사에 의하면 국시원(한국보건의료인국가시험원) 관계자는 아직까지 과거 자폐를 앓았던 사람이 의사국시에 응시한 사례는 없다고 했다.

그런데 미국에서는 ‘굿 닥터’가 히트를 치자 ABC방송에서는 ‘굿 닥터’ 시즌1 시즌2에 이어 시즌3을 준비 중이라고 한다. ‘굿 닥터’가 현실에서는 있을 수 없는 픽션이라고 해도 어쩌면 사람들은 ‘굿 닥터’를 통해서 희망을 보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발달장애인을 바라보는 시선이 미국과 우리 사회가 많이 다른 모양이다.

미드 ‘굿 닥터’를 통해 미국과 우리나라와의 문화적 차이를 다시 한 번 짚어보자면, 첫째 자폐증 내지 서번트 신드롬을 홍보하기 위하여 장애인 단체의 적극적인 호응이 있었다는 것이다. 둘째 부모들의 호응에 힘입어 자폐증 배우가 직접 출현하는 등 장애인과 함께 하려는 실질적인 접근이 있었다는 것이다. 셋째 ‘굿 닥터’가 픽션이라고 하더라도 능력만 있다면 누구나 차별 받지 않고 함께 공유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기 때문에 시즌3을 기획한다는 것이다.

누구나 꿈을 꾼다. 그러나 그 꿈을 이루고 사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래서 꿈이라고 부르는 것일지도 모른다. 모두가 불가능하다고 했을 때 뜻밖의 반전이 나올 수도 있으므로.

* 이복남 기자는 에이블뉴스 객원기자로 하사가장애인상담넷(www.gktkrk.net) 원장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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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웃이 행복하지 않는 한 나 또한 온전히 행복할 수 없으며 모두 함께 하는 마음이 없는 한 공동체의 건강한 발전은 기대하기 어렵다. 우리는 함께 살아가야 할 운명공동체이기 때문이다. 아름답고 건강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가진 자와 못 가진자,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평등하게 공유할 수 있는 열린사회를 건설해야 한다. 쓸모 없음을 쓸모 있음으로 가꾸어 함께 어우러져 나아갈 수 있도록 서로 사랑으로 용서하고 화합하여 사랑을 나눔으로 실천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이복남 원장은 부산장애인총연합회 사무총장을 역임하였으며 현재 하늘사랑가족상담실을 운영하고 있다. 하사가장애인상담넷www.gktkrk.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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