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2TV 수목드라마 ‘슈츠’(극본 김정민/연출 김진우)는 “저마다 다른 욕망과 가치가 충돌하는 대한민국 최고 로펌을 배경으로 법의 저울을 움직이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변호사들의 활약을 그린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정의의 여신 디케(dike)는 한손에는 칼을 그리고 한손에는 저울을 들고 눈을 가리고 있는데 법의 여신이라고도 한다. 디케가 눈을 가린 이유는 어떤 일을 판단하고 실행함에 있어 편견이나 외부의 부당한 압력에 흔들리지 않고 공정하게 판단하겠다는 의지의 표명이다.

슈츠. ⓒKBS

“법은 지키라고 있는 것이지, 어기라고 있는 것이 아니다. 법을 지키는 모든 이에게 상을 내리는 것보다 법을 어기는 자에게 벌을 내리는 것이 합리적이다. 그러니까, 애초에 법이란 저울 위에 죄와 벌을 놓고 그에 따라 칼을 들겠다는 거다. 그리고 법이 칼을 들기 전, 저울을 움직일 수 있는 마지막 기회를 위해 변호사라는 존재를 허락한 것이다.”

KBS 2TV 수목드라마 ‘슈츠’는 미국 NBC에서 시즌7까지 방영한 동명드라마 ‘슈츠(Suits)’의 리메이크 작품이다.

슈츠는 법률소송이고, 변호사들이 입은 양복이고, 욕망을 쫓는 카드의 무늬 등 세 가지 뜻을 가지고 있단다. 드라마 “슈츠”는 슈츠(양복)를 입고 슈츠(법률소송)에 이기기 위해서 욕망의 슈츠(카드 무늬)를 쫓는 이야기라고 한다.

대한민국 최고 법무법인 강&함의 에이스 변호사 최강석은 시니어 파트너로 승진해 법무법인 강&함의 신입 변호사를 뽑는 일을 맡게 됐다. 어느 재벌의 갑질 함정에 빠진 고연우가 마약을 배달하다가 잠복중인 마약반 형사들에게 쫓긴다. 도망치던 고연우는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면접장에 들어와 지원자 가운데 유일하게 막힘없이 술술 대답하며 최강석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슈츠”는 강&함 로펌의 에이스 변호사 최강석(장동건 분)이 우연히 굴러 온 변호사도 아닌 그러나 한번 본 것은 그대로 기억하는 천재적인 기억력을 탑재한 고연우(박형식 분)를 만나서 고군분투하는 브로맨스(bromance) 이야기다.

박형식과 장동건. ⓒKBS

고연우는 천재적인 기억력으로 변호사가 되고 싶었으나 부모님이 두 분 다 뺑소니사고로 숨져 할머니 손에 길러졌다. 그가 변호사 시험을 치를 즈음에는 할머니가 아파서 입원하는 바람에 돈이 필요하여 돈을 받고 로스쿨 시험을 대신 쳐야 했다.

고연우 “할머니 병원비 때문에 대학근처에도 못 가보고 로스쿨에도 못 갔습니다.”

최강석 “운명을 결정짓는 것은 우연이 아니라 선택이야!”

최강석은 고연우에게 약한 변명하지 말라면서 고연우의 초라한 행색을 나무랐다.

최강석 “옷이 그게 뭐냐, 변호사에게 슈츠는 갑옷이야 마음가짐이라고…….”

고연우 “전쟁에 출전하는 장수한테 중요한 건 갑옷이 아니라 칼이 아닌가?”

최강석 “중요한 건, 재판이란 승자나 패자 양쪽 다 쓸데없는 피를 흘리는 거다. 가능하면 재판에 가지 말아야지.”

그래서 최강석이 내세우는 카드는 재판까지 가지 않고 합의하는 것이다.

최강석 “슈츠 한 벌 맞춰 입고 당분간 필요한데 써. 실수는 절대 안 돼!”

최강석은 고연우에게 카드 한 장을 내밀었다.

박형식에게 카드를 내미는 장동건. ⓒKBS

강&함의 대표변호사 강하연(진희경 분)은 다음 사건으로 최강석에서 이혼소송을 맡겼다. 최강석이 맡은 이혼 소송은 서주항공 대표이사 성연주(정애연 분)의 대리인이다. 이에 맞서는 남편 남명학(권혁 분)은 서주항공 상무인데 그는 최강석의 옛 연인 나주희 변호사(장신영 분)의 의뢰인이다.

성 사장은 이혼을 원하고 남 상무는 남편과 아빠로서 자신의 가정을 지키려고 노력했다. 남 상무는 이혼하고 싶지 않았기에 천문학적인 재산분할을 청구했다. 성 사장의 그 많은 재산은 불법증여이고 성 사장이 그 많은 재산을 위자료로 주지는 않을 것이므로. 나주희 변호사는 성 사장이 이혼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강&함의 에이스 변호사 최강석이 원하는 것은 재판까지 가지 않고 합의를 이끌어 내는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의뢰인이 변호사에게까지 자신의 속내를 드러내지 않기 때문에 강하연과 최강석은 성 사장의 의중을 파악하기 위해 노력했다.

강하연이 성 사장에게 최악의 경우 자녀들과 서주항공 중 어느 쪽을 택하겠냐고 묻자, 성 사장은 “서주예요. 다른 사람들 눈에 어떻게 보이던 상관없어요. 다행히도 내 눈에는 아무 것도 보이지 않으니까”라며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성연주는 앞을 볼 수 없는 시각장애인이었다.

정애연과 면담하는 진희경. ⓒKBS

최강석은 고연우에게 성 사장의 이혼소송에 관한 준비서면을 준비하라고 했다. 이혼신청 이유 등을 살펴보던 고연우는 남 상무가 이혼하고 싶지 않았기에 무리한 재산분할을 요구했다는 것을 알고는 “서주항공, 하늘의 여신 땅 위의 인간과 결혼하다.”는 시나리오를 작성했다. 이혼하려는 성연주나 이혼하지 않으려는 남명학의 공통점은 사랑이라는 것을 고연우가 간파했던 것이다.

사랑하니까 헤어져야 된다는 사람도 있고, 사랑하니까 헤어져서는 안 된다는 사람도 있다. 성연주는 서주항공을 경영하기 위해서 남명학과 계약결혼을 했는데 남명학이 성연주를 사랑했던 것이다. 따라서 신과 인간의 사랑처럼 비극을 맞을 수밖에 없었다.

최강석 변호사는 남명학이 계약을 어기고 성연주를 사랑했으므로 유책배우자라는 것이다. 성연주도 남명학을 사랑했기에 서주항공의 치열한 후계자 구도에서 남 상무를 아이들을 구해주고 싶어서 이혼을 신청한 것이라고 했다.

정애연과 장동건. ⓒKBS

남 상무도 최강석 변호사의 이야기를 듣고서야 이혼에 합의했다.

성연주 “잔인하시네요.”

최강석 “소송까지 가지 않으려면 어쩔 수 없었습니다.”

성 사장은 남편에게 진실을 알린 최강석이 잔인하다며 눈물을 흘리며 법정을 떠났다.

“슈츠”는 1~2회에 걸쳐 사건이 시작되고 끝이 나는 것 같은데 성 사장의 이혼소송은 3~4회에서 끝이 났다.

그런데 성연주가 시각장애인임에도 이혼소송에서는 그 어디에서도 성연주의 시각장애를 언급하지 않았다. 다만 성 사장이 강하연 변호사와 면담할 때 “내 눈에는 아무 것도 보이지 않으니까” 그리고 이혼소송이 끝난 후 최강석과 함께 법정을 나오면서 강하연이 한 말이 전부였다. “눈이라는 게 세상 모든 것은 볼 수 있어도 자기 자신은 볼 수 없다는데, 아무것도 볼 수 없는 성 사장 눈에는 자기 자신이 보였나봐.”

눈물을 흘리며 돌아서는 정애연. ⓒKBS

이혼을 하지 않으려던 남 상무였기에 “아내는 앞을 보지 못하는 시각장애인이므로 제가 반드시 옆에 있어야 된다.”고 통사정이라도 했다면 너무 진부한 대사였을까.

시각장애는 선천적인 시각장애인도 있고 후천적인 시각장애인도 있다. 후천성인 경우 산재나 교통사고 등 각종 사고로 눈을 다치는 경우와 질병으로 오는 경우가 있는데 시각장애 원인이 되는 질병은 여러 가지가 있다.

시각장애를 유발하는 질환에는 백내장, 녹내장, 시신경 위축, 고혈압성 망막증, 당뇨병성 망막증, 안구건조증, 안구진탕증, 망막박리, 망막색소변성증 등 여러 가지가 있고 심지어는 그 이유를 모르는 경우도 있다.

시각장애를 잘 모르는 사람들은 시각장애인이 되면 누구나 각막이식을 하면 다 되는 줄 아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시각장애인 중에는 시신경에 이상이 있는 사람도 있고, 각막에만 이상이 있는 사람들도 있는데 시신경에 이상이 있는 경우에는 각막이식도 할 수가 없다.

“슈츠”에 나오는 서주항공의 성 사장의 시각장애에 대해서는 별 말이 없었지만 성 사장이 돈이 없어서 각막이식을 하지 않은 시각장애인으로 남아 있었겠는가.

“슈츠”에서 성연주는 어떻게 시각장애인이 되었으며 어떻게 살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이 없었다. 미드의 “슈츠”에도 이 같은 내용이 있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항공사 사장이 시각장애인 여자라는 설정은 정말 반갑고도 고마운 일이다. 성 사장이 서주항공 대표직을 어떻게 수행하고 있었는지 한 번쯤 보여주었더라면 더 좋았겠지만.

예전에 어떤 사람은 불천위(不遷位) 가문의 종손인데, 시각장애인이라는 이유로 종손 자리를 내 놓아야 하는 안타까운 사연도 있었다.

한 가지 더 부언하자면 “슈츠”에 나오는 강&함 로펌의 대표 변호사를 맡은 강하연 역은 배우 진희경이 맡았는데 배우 진희경은 장애인 여행의 중요성을 알리는 ‘초록여행 셀럽 릴레이 여행지원’ 프로젝트 첫 주자로 나섰다고 한다.

맹인 연기를 잘했다는 정애연의 기사. ⓒ네이버 뉴스

한 가지 아쉬운 것은 많은 언론에서 “슈츠”에서 성연주를 연기한 정애연을 소개하면서, 고급스러운 이미지 덕분에 이번 작품에서도 대기업 CEO로 등장하여 맹인 연기에 강렬한 존재감을 드러냈다며 칭찬 일색이었다. 그런데 그런 칭찬 일색에서 정애연을 지칭한 것은 시각장애인이 아니라 ‘맹인’이었다.

우리 사회에서 맹인(盲人)이란 용어는 사라진지 오래고, 고유명사 맹인으로는 아직도 더러 남아있다. 예를 들면 동창회의 반대로 학교 이름을 바꾸지 못하고 몇 군데 남아 있는 00맹학교, 청각장애인과 시각장애인의 중복장애인을 돕는 촉수어통역사들의 농맹인모임 손끝세(손끝으로 전하는 세상), 그리고 600년 전 조선시대 시각장애인 악사를 궁중악사로 채용했던 세종대왕의 애민정신이 반영된 ‘관현맹인 제도’를 계승한 관현맹인전통예술단 등이 그것이다.

이렇듯 맹인이라는 용어는 일부 고유명사 등에서만 사용되고 있으며, 현재 앞을 보지 못하는 사람에 대한 법률용어이자 행정적인 용어는 시각장애인이다.

참고로 “슈츠”는 드라마지만 현실에서는 변호사를 사칭하거나, 자격 없이 소송 관련 업무를 하게 되면 변호사법 위반이 된다.

* 이복남 기자는 에이블뉴스 객원기자로 하사가장애인상담넷(www.gktkrk.net) 원장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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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웃이 행복하지 않는 한 나 또한 온전히 행복할 수 없으며 모두 함께 하는 마음이 없는 한 공동체의 건강한 발전은 기대하기 어렵다. 우리는 함께 살아가야 할 운명공동체이기 때문이다. 아름답고 건강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가진 자와 못 가진자,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평등하게 공유할 수 있는 열린사회를 건설해야 한다. 쓸모 없음을 쓸모 있음으로 가꾸어 함께 어우러져 나아갈 수 있도록 서로 사랑으로 용서하고 화합하여 사랑을 나눔으로 실천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이복남 원장은 부산장애인총연합회 사무총장을 역임하였으며 현재 하늘사랑가족상담실을 운영하고 있다. 하사가장애인상담넷www.gktkrk.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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